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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바람 - 일상의 순간을 소묘하는 80편의 아포리즘 에세이
노정숙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9월
평점 :
아포리즘 에세이? 무엇일까? 처음 접해보는 책이라 호기심에 그만 손대고 말았다. 책을 읽기 전에 노정숙 저자에 대해 검색을 해봤는데, 그다지 많은 책을 내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눈에 띄게 책이 팔린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책을 펼치기 전인데도 불과하고 불안감이 엄숙히 다가왔다. 도망치고 싶은 감당하기가 힘든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포리즘 에세이 글에 관해서는 궁금했기에.. 원하지 않지만 다가가기로 했다. 이 책은 노정숙 저자가 짧은 글 속에 그의 눈에 담겼던 세상의 다양한 표정들과 시적 전율의 순간을 짧지만 진솔하게 벼려낸 문장 글들이라고 한다. 소개 글을 읽으니 약간의 빛이 보였다.
1부 바람의 편력, 2부 미안한 사랑, 3부 백년학생, 4부 사람 풍경 나누어져 짧은 글과 사진이들어가 있다. 사진 대부분들은 눈을 홀리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시간
장례식장에서 상주와 맞절을 하는데 무릎에서 똑, 또드득 소리가 난다.
젖은 눈 맞대고 멋쩍게 웃는다.
내 뼈마디도 이제, 스스로 우는 법을 알았나 보다.
노인은 나의 미래
따뜻하고 연하던 몸이 뻣뻣하고 퉁명스러워지고 있다.
말랑말랑한 노인이 내 희망사항인데...
목 뒤로 찬바람이 지나간다.
늑대를 위하여
약육강식은 이 사회의 법칙, 먹히지 않으려 새벽부터 나가 밤이슬 맞도록 일했지.
당당한 눈치 백단, 물러서야 할땐 딴전피우고, 나아갈 때는 염치없이 앞장섰지.
머리에 서리 내릴 때까지 살아남았네. 정년 채우고 개선장군처럼 내려섰네.
성긴 머리카락, 풀기 죽은 눈. 이빨마저 흔들거리네. 세차게 돌아갈 때 몰랐던 것들.
세상살이 어둔하네. 할 일도 없고, 집 밖을 나서면 모두 돈 돈 돈, 발 떼기가 겁나네.
우리의 늑대들이 저물어가네.
여러 편 중에서 위 세 개의 글들이 마음에 든다. 그 중에서 늑대를 위하여 제목을 현대 사회에 맞게 늑대와 여우를 위하여로 바꿔야 하지 않나? 싶었다. 글도 살짝 바꾸고.. 늑대를 위하여가 마음에 드는 것은 지금 현재 내 모습을 조금 닮았기 때문이어서 그런 것 같다. 시간, 노인은 나의 미래도 조만간 내가 맞닥트리게 될 상황이어서 읽으면서 심난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글들은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어려웠다. 아포리즘 에세이어서 그런지 짧게 추려낸 것이 솔직히 이해하기가 애매했다. 표현도 톡톡 뛰는 것이 아니라 노곤함이 묻어 있는 표현들이 대부분 차지해서 지루했다. 글 한편 한편마다 오래된 시계를 비추었고, 외면과 내면이 다른 책이어서 외면은 시원스러운 젊은 분인데, 내면은 신중함이 물씬 풍기는 연세 드신 분이었다. 날이 쌀쌀해지는 이 계절에 이 책을 읽어서 그런지 쓸쓸함이 오히려 더 깊게 진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리고 아포리즘 에세이는 나에게 “ 끄~응 ” 이다. 시간을 두고 조금씩 거리를 좁혀 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