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이 말이 듣고 싶었어 -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나를 위한 다정한 말 한마디
윤정은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글 잘 쓰는 사람이 부럽다. 특히나 잔잔한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의 예민함 (?) 아니 섬세함이 참 부럽다.

에세이를 쓰는 동안 모든 신경을 다 세우고 있듯이 예민해진다고 했다. 나도 그 느낌을 알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섬세하지 못하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까지 한다.

섬세한 사람들의 글은 섬세하게 읽히는 것 같다.

잔털이 하늘하늘 바람에 흔들리듯, 책은 나에게 그렇게 읽힌다. 그래서 좋다. 잔잔한 감동도 오고 잔잔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크게 사건이 터지지 않아도, 일상의 작은 일들이 모두 에세이의 소재가 된다. 아이와 나누는 대화, 누군가에게 던졌던 한 마디, 상대방의 반응 등이 글이 된다.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들을 다시 불러주는 것 같아서 좋다. 그 맛에 에세이를 읽는 것 같다.

처음엔 에세이를 읽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자기 계발서라든지, 나에게 새로운 지식들을 주는 책만 읽었다.

어느 날 무심코 내게 다가온 에세이는 묘한 매력을 풍기며 나를 점차 빠져들게 했다. 지금도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가볍게 무언가를 읽고 싶을 때면 에세이를 읽는다. 내가 아닌 타인의 생각을 알고 싶고, 그 소리에 귀 기울여보고 싶을 때 찾게 되는 것 같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그녀가 행복해 보였다.

그것이 그녀의 글에서도 느껴진다. 글을 쓰면서 마음의 치유를 받는다는 작가의 말에 동감했다.

나 또한 글을 쓰면서 마음의 치유를 받았는데,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겁을 냈다. 나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도 겁이 났고, 이제 조금 글쓰기의 맛을 아는 것이 오히려 더 겁이 나게 한 것 같다.

다시 써야겠다. 아니 다시 쓰고 싶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고, 스스로 치유하고 싶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쓰고 싶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몸으로 넘어지는 순간과 마음으로 넘어지는 모든 순간에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넘어지는 지금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유로운 몽상가에게는 그 어떤 모퉁이라도 길로 바꿔내는 능력이 있으니 끝은 언제든 시작으로 이어진다.

미워하기만 할 때는 생각만 해도 몸이 쑤시고 아프더니 잘 지내냐고 빌어주면 마음도 온화해진다. 뾰족한 마음을 둥글게 닦아내며 소심하게 생각한다. 나 같은 예쁜 꽃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나 같은 예쁜 꽃에게 사랑받지도 못하는 불쌍한 사람이라니. 당신 참 안됐다.

그러니, 부디 잘 지내길. 미워하는 사람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사실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것, 다른 누구보다 나를 위한 것이다.

작가로 살다 보니 자연스레 일상에서 관찰력이 늘었다. 특히 에세이를 쓰다 보면 사소한 일도 세밀히 들여다보게 된다. 하루 동안 만나고 겪고 생각하는 것들이 글감이 되어 자연스레 글에 녹아든다. 때문에 책 한 권을 쓰는 동안은 평소보다 더 민감하게 느끼고 작은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기억하렴. 가장 중요한 때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란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너와 함께 있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거야. 니콜라이야. 바로 이 세 가지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란다.

어느 날의 나는 사랑을 하며 생각했다. 사랑이 맑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당신 마음의 우산이 되어주고 싶다고.

유독 웃는 날이 많은 사람이었다. 아프고 슬픈 이야기는 비껴가며 괜찮은 척하는 당신을 보며 나는 쨍하게 햇빛 비춘 날 우연히 길을 걷다 만난 소나기처럼 대책 없이 쏟아진 감정의 소나기를 함께 맞고 싶다고 생각했다. 슬픈 당신, 아픈 당신, 상처 입었던 당신.

자지러지게 재미있던 당신. 무미건조한 당신까지 모든 당신이 내게로 올 수 있도록 마음의 응급실이 되어주고 싶었다.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하는 거라 했으니,

사랑이란 광활한 이 세상에서 초라한 내가 초라하지 않다 느끼게 해 주는 온기가 아닐까.

프리랜서로 일하며 만난 담당자 중에 해가 바뀌어도 한결같이 대답하는 분이 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면, 언제든 웃는 목소리로 "제가 더 고맙습니다!"라는 대답을 들려준다. 아. 이 말이구나. 덕분에 '제가 더'라는 말의 기쁨을 새로 배운다. 말속에 담긴 감정이 배가 되어 내게 돌아오는 기분이 든다. 내가 건넨 따뜻한 마음을 반으로 쪼개어 받은 것만 같다. 내가 더 고마워. 내가 더 사랑해. 내가 더 미안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품위가 있다. 우아하고 편안한 품위가 지니는 온화한 느낌이 좋아 그 사람의 곁으로 가고 싶어진다. 단단하고 다정한 미소에서, 화려하지 않아도 꾸밈없는 존재 자체에서 빛이 난다. 그 빛은, 내면으로부터 시작된다. 희미해지더라도 빛이 꺼지지 않도록 나를 사랑하고 그 힘으로 너를 사랑해야지.

자주 넘어지니 이제 착지 법도 익히는구나. 이 얼마나 큰 발전인지. 스스로 기특해 다리를 절룩이면서도 오늘의 착지 감각을 잊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이렇게만 착지한다면 다시 넘어져도 상처가 적을 것이다.

종이 위에 마음을 풀다 보니 어느새 상처가 조금씩 아무는 것이 느껴졌다.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고, 단어와 문장으로 마음을 문자화하며 비로소 상처를 마주 볼 수 있었다. 글을 쓰며 일상은 반질반질해졌고, 스스로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파도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더욱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발견해내기 시작했다. 그런 행위들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며 몰랐던 진짜 나를 알게 되었다.

어떤 슬픔으로부터 나를 지켜내는 힘을 가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애써 밝은 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다행이다. 나를 이해하고 내 마음에 공감한 뒤에야 나는 비로소 내가 편해졌다. 어른이 되는 게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런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충분히 애쓰고 수고했어. 그동안 나를 지켜내고 살아내느라."

지금 내가 소설의 어느 페이지 즈음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모르기 때문에 더 다정하게 삶을 대한다. 다른 사람의 소설 역시 존중하는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다.

아마도 내일 돌아보면 돌아가고 싶은 찬란한 순간이 바로 오늘 일 테니, 앙투안의 말처럼 무엇이 기다릴진 모르지만 우리는 끝까지 살아내자.

이제는 추억으로 남겨두고 내일은 미지의 날들로 자유로이 남겨두고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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