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를 살다 - 광야의 삶을 버티고 견디고 이겨 내는 방법 광야 시리즈
이진희 지음 / 두란노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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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시리즈의 두 번째 책. 이제는 광야 전문 목사님이 되셨다는 서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광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알고 싶고 더 궁금했을 것 같다.

그래서 4년 만에 두 번째 광야 이야기를 쓰셨다. 이번에는 성경의 주인공들의 광야 이야기다.

아브라함의 광야 이야기가 나에게는 가장 와닿았다. 그는 아들을 갖기 위해 25년을 기다렸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하시고 나서 25년을 기다리게 하셨다. 왜 그러셨을까? 아브라함에게는 25년이 250년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을 것 같다. 그래서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이라는 아들도 낳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갈이 아니라 사라의 몸에서 아들을 주신다는 약속을 잊지 않으셨고 결국 그 약속을 지키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신 이유가 그들의 약점 때문이었다는 사실. 만약 그들이 아이를 잘 낳는 부부였다면 처음부터 선택되지 않았다.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누구를 통해서라도 당신의 일을 하실 거라는 그 말씀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돈다. 약점투성이인 나도 선택받을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 하나님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잘하는 사람보다 나 같은 부족한 사람도 선택하셔서 쓰실 거라는 말이 내게는 희망의 말처럼 들린다.

이 책에 나오는 말들이 하나같이 귀하다. 우리가 0이 될 때까지 광야에서 훈련시키시는 하나님. 너무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강해서 내 힘을 쭉 뺄 때까지 광야 학교를 보내신다. 생각해 보니 나 또한 내 힘을 너무 믿고 사는 건 아닌가 싶다. 아직 젊으니까, 아직은 혼자 있어도 되니까, 아직은... 해야 할 일들도 많고 벌려야 할 일들도 많다 보니 내 머릿속에는 하나님보다 내 생각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내려놓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내려놔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도 광야인데... 내가 아직 0이 아닌 것 같다. 내 힘을 더 빼야겠다. 내 것들을 더 내려놔야겠다. 내 생각들을 더 내려놓고 내 마음을 더 내려놔야겠다. 지금 이러고 있는 것 자체가 형통으로 들어가는 과정 중 하나 일지도 모르다는 희망이 있다. 분명 이 길은 언젠가 끝이 날 것이고, 나는 그곳에서 주님의 손을 잡고 걸어 나오게 될 것이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하나님은 누구를 선택하셨는가? 우상 장수 아버지를 둔 아브라함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라를 택하셨다. 그들을 선택하신 이유는 그들의 믿음이나 성품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결정적인 약점 때문이었다. 사라가 아이를 순풍순풍 잘 낳았다면 하나님은 아브라함 부부를 선택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들이 선택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라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런 여인을 택하셔서 하늘의 별만큼, 바닷가의 모래알만큼 그의 후손들이 번성하도록 축복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시고자 할 때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만을 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택하기도 하신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서라도 당신의 일을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요셉은 구덩이에 던져지고, 애굽에 팔려가고, 보디발의 집에서 종노릇을 하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던져졌다. 집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그때를 10이라고 한다면 그는 9,8,7,6,5,4,3,2,1, 그리고 0이 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다음에야 그를 인생의 정상의 자리로 올라가게 하셨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완전한 0이 되도록 하기 위해 광야로 들어가게 하신다. 광야에 들어가면 누구나 0이 된다.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자신의 무능을 철저히 깨닫게 된다. 그런 후에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에서 나오게 하시고 0이 된 우리를 사용하신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행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너무 약해서 쓰지 못하실 때보다 우리가 너무 강해서 쓰지 못하실 때가 더 많다. 부족할 경우 채워 주면 되지만 강한 사람은 내려놓게 해야 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너무 강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로 들어가게 하셔서 더 내려놓고 더 비우고, 더 죽이고, 더 무릎 꿇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우리의 믿음과는 상관없이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는 상관없이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반드시 행하신다.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의 믿음에 달려 있다면 그 계획은 하나도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아브라함 이야기에서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 은혜, 축복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같은 것들이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을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신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이 한 유명한 말이 있다. "하나님의 도움은 결코 늦는 법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성급할 뿐입니다." 기다림의 광야를 지날 때는 서두르지 말라. 조급해하지 말라. 서두른다고 더 빨리 광야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형통은 막힘이 없고, 장애물이 없고, 하는 일마다 잘되고, 계속 파란 신호등이 들어오며, 금수저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고난이나 고통 또는 어려운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역경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것이다. 장애물이 있어도 그것을 잘 뚫고 헤쳐 나가고 있다면 형통한 것이다. 광야를 지나고 있어도 잘 버티고 있다면 형통한 것이다. 누가 봐도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형통한 사람이 아니었다.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혀 있는 요셉은 형통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사실 형통함 가운데 있었다. 다 잘 되는 가운데 있었다. 구덩이(pit)에서 시작해서 왕궁(Palace)으로 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잘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잘되고 있는 중일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것, 이것이 바로 형통이다. 요셉이 바로 그런 삶을 살았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고 하신 말씀을 '결국은 다 잘 될 것이다.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선은 그런 것이 아니다. 선은 축복이나 성공, 풍요, 형통, 번영,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 내가 소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 그것이 최고의 선이다.

광야에 들어갔을 때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대개 이렇다. '빨리 이 광야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만일 우리가 잘못해서 정신 차리라고 광야로 들여보내신 것이라면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깨닫고 회개하고 정신을 차리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를 그 광야에서 나오게 해 주실 것이다. 그런데 회개는 하지 않고 광야에서 빨리 벗어나게 해달라고만 기도하면 그 기도는 응답되지 않을 것이다.

광야에 내몰리게 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면 기도다. 광야에서는 엎드려야 산다. 기도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 광야다. 자다가 깰 때, 잠이 오지 않을 때, 자다가 벌떡 일어날 때, 밤새도록 뒤척일 때가 있는가? 다윗이 그랬다. 그때 그는 기도했다. 건강 문제, 직장 문제, 가정 문제, 자녀 문제, 사업 문제로 잠을 못 이루는가? 광야에 들어간 것이다. 기도해야 한다. 가정이, 삶이, 인생이, 사업이 광야와 같은가? 기도해야 한다. 다윗은 기도로 광야를 견뎌냈다. 기도로 광야를 이겨 냈다. 광야에서 기도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기도로 광야에서 살아남았다.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 광야로 내몰렸는가? 기도하라. 기도하지 않고는 광야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기도하지 않고는 광야를 벗어날 수 없다.

우리도 광야에 머무는 시간이 지체되면 이러다 내 인생 이렇게 광야에서 끝나는 것 아닌가 초조해질 때가 있다. 아무리 둘러봐도 광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래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언제, 누구를 통해서 우리를 지금 이 광야에서 구해 주실지 모른다. 우리에게도 노역의 때가 끝나는 날, 복역의 때가 끝나는 날, 죄에 대한 충분히 치르고 죄 사함을 받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이 광야에서 데리고 나가실 것이다.

마음이 심란할 때 기도하라. 마음이 흔들릴 때 주님을 바라보라. 고요한 새벽에 기도하라.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품에 안기라. 고독의 광야에 들어가서 침묵을 지킬 때 아침이 밝아 오는 숲속처럼, 깊은 산속의 호수처럼, 우리 안에 그런 고요가 찾아올 것이다. 그러면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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