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 나를 지키고 관계를 지키는 일상의 단단한 언어들
김유진 지음 / FIKA(피카)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는 매우 여리고 세심한 사람인 것 같다.

말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고 말 때문에 기분이 좋았던 적이 많았을 것 같은... 디테일한 그녀의 감정이 느껴지는 듯하다.

나는 때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내가 건강할 때는 그 어떤 말도 다 수용할 수 있지만, 내가 건강하지 않을 때는 칭찬도 곱게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이 책에 나온 한 마디 한 마디가 공감이 간다.

아마도 살면서 한 번쯤은 다 들어본 말이다. 그때는 속도 상하고 기분 상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사람이 되다 보니

"그래..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도 기분이 나빴었어!" 하는 과거형이 돼버렸다.

작가의 자존심을 확 상하게 했던 말 " 돈 버는 게 그렇게 중요해??"

생각 없는 교수의 한마디로 인생이 좌절될 수도 있다.

학교 다니면서 나도 이런 경험이 있다. 미술 시간에 선생님이 "이거 진짜 네가 만들었니? 어쩜 넌 남자애들보다 못하니.."

주머니 만드는 시간이었는데, 다른 애들은 엄마가 해준 애들이 많았다. 나는 부모님께 그런 부탁을 드릴 여력이 없어서

초등학교 3학년인가 4학년 때 내가 직접 바느질을 해 갔는데, 선생님이 내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많은 아이들 앞에서 그렇게 망신을 당했던 나는 그 이후로 나는 바느질을 안 했다.

물론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초등학생 시절이었고 선생님의 이야기에는 아무 변명할 수 없는 그때였다.

예민한 나이였을 때 많은 학생들 앞에서 나를 망신 준 선생님이 35년이 돼도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아직도 그 여운이 있는가 보다.

그 이후로 나는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못한다는 생각이 늘 나를 지배하고 있어서 시도조차 안 했던

소심한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이 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뭐든 다 도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요리도 못하고.. 아니 안 했고, 뭔가 만들기를 한다는 건 더더욱 피했던 사람인데,

요즘에는 딸아이와 함께 이것저것을 만들어 본다. 그리고 무언가 만드는 것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말 한마디가 그렇게 중요하다. 내가 흥미를 갖고 만들기를 시작하면서 나는 주변에서 잘한다는 이야기를 곧잘 듣는다.

물론 예의상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말은 잘 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말도 많이 해야 하고, 힘을 내게 하는 말도 많이 해 줘야 한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책 제목과 같은 이 말을 많이 들어야 한다.

사람을 세우는 말. 그 말이 분명 나중에 나 자신을 세울 것이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말은 두 가지 운명을 타고 난다. 첫째, 말은 혼자가 아니다., 말 뒤에는 그 말을 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상황, 그 상황에 놓인 내가 있다. 이것이 말의 첫 번째 운명인 '관계'이다. 그 관계 안에서 상처를 주고 위로도 주는 것이 말의 운명이다.

둘째는 말은 바뀌는 운명을 지녔다. 말은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다. 말에 어떤 프레임을 씌우느냐는 내게 달려 있다. " 돈 버는 게 그렇게 중요해?"라고 물었던 교수는 얼마 뒤 여전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마 이 정도 썼으니까 넘어가는 거야." 나는 '이 정도'라는 말에 고맙게 느껴졌다. 말의 상처는 필연이며, 위로의 말은 선택이다.

우리는 말에 대한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 말에 대한 수많은 명언, 어록, 속담, 고사 성어들이 말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되니 항상 조심하라고 가르쳐준다. 하지만 말의 속성과 별개로 오늘도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여 속이 상하고 마음을 다친다.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말은 믿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규정하는 타인의 말이라면 더더욱 믿지 않아도 된다. "너는 이러이러한 사람이야"라는 말은 그것이 칭찬이든 비난이든 그저 말하는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나를 규정할 수 있는 말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다 이해하려고 하지 마."

그렇다. 상대의 입장이 있다는 것만 알아도 인간관계가 훨씬 가벼워진다. 거기서 덜 나아가도 더 나아가도 인간관계가 훨씬 가벼워진다. 거기서 덜 나아가도 더 나아가도 문제가 생긴다. 상대의 입장을 살피지 못하면 대화 자체가 되지 않아 갈등으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상대이 입장을 억지로 이해하려 하다 보면 내 입장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게 되거나 타인의 마음 하나 이해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게다가 마음에도 없는 이해와 공감은 질이 낮다. 상대도 그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나는 이것 하나만 기억하기로 했다.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지 말고 '있음'만 인식할 것"

어떤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유난히 거슬리거나 그것에 예민해진다면 나도 모르게 실눈을 뜨고 상대방의 일거수일투족을 수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편견을 증명할 만한 것들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빠르고 쿨한 인정이 필요하다. "나는 언제든 틀릴 수 있다."

내가 몰랐던 그녀의 진짜 힘은 '수많은 하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자존감이 떨어지는 곳은 피하고 자신과 맞지 않으면 하차하겠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차하고 승차하기를 반복할 수 있는 힘, 하차한 뒤에 다시 승차할 기회를 기다리는 힘, 승차했어도 언제든지 하차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자기만의 색깔에 가까이 가는 힘이 있었다. 그게 그녀만의 '멋짐'이었다.

그렇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좋아하는 감정과 그것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낮추지 않는다. 좋아한다는 이유로 약자가 되지 않는다. 상대방을 좋아하고 살아하지만 그 주체가 자기 자신임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고백하면서 "내 열정의 주인은 나예요"라고 말한 남자 주인공이 멋있어 보인 것이다.

"내 안에 울지 않은 눈물이 너무 많아. 그 감정들을 꺼내놓으면 엄청난 홍수가 일어날 거야. 내 안의 분노를 꺼내놓으면 엄청난 산불이 일어날 거야." 다행히 찬이는 그 누군가의 도움으로 자신의 감정을 터뜨리고 마침내 이렇게 말한다. " 나 안 괜찮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