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10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 - 30년간 아픈 나무들을 돌봐 온 나무 의사 우종영이 나무에게 배운 단단한 삶의 지혜 35
우종영 지음 / 메이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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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담아 놓은 책이다. 한 번쯤 들어봤기 때문에 읽어봐야지라고 했는데, 이렇게 읽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그 우연치고는 꼭 필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내용이 참 좋았기 때문이다. 전자책으로 읽어서 책장을 넘기는 맛을 느끼지 못했고, 작은 사진으로 본 것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한다면 꼭 이 책을 선물해 주고 싶다.

나는 나무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이 책을 통해서 연상하게 되었다. 나무의 성질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 나무가 주는 교훈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은 뭐라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그냥 참 좋다. 괜히 10만 부나 나간 책이 아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책이 된 것이다. 10만 부 기념 스페셜. 참 부럽기만 하다.

언제 나는 이런 책을 쓸 수 있을까.. 우둑하니 꾸준하게 외길 인생을 걸어야만 갈 수 있는 길인 것 같다.

이 책을 읽게 돼서 감사했다. 그냥 읽는 내내 미소를 띠었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강연도 꼭 들어보고 싶다.

<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아마도 이 때문일 게다. 내 눈에 아까시아나무가 아름답게 비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살아간다는 것. 아무리 좋은 환경에 풍족한 영양분을 주어도 잎을 떨구고 죽어가는 나무들에 비하면,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모습이 기특하지 않은가. 베어 내고 베어 내도 있는 힘을 다 끌어모아 새순을 올리고 꽃을 피우는 아까시 나무를 그래서 나는 감히 나무랄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아까시 나무엔 유독 가시가 많은데, 그것은 하도 많은 사람들에게 구박을 받다 보니 나무가 자기방어로 만든 결과물이다. 아까시 나무에 달린 가시들을 볼 대마다 "나는 그래도 꿋꿋이 살 겁니다."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마 녀석은 무슨 악담이냐며 펄쩍 뛸지도 모른다. 못생겨서 당한 고통이 어딘데 그걸 자식에게 물려주냐며 말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어디까지나 진심이다. 요즘 세상에 그런 후배 녀석을 닮은 진국이 하나쯤 더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해주고도 싶다. 모과나무가 아름다운 이유는 눈으론 절대 찾을 수 없는 숨은 매력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네 자식도 너처럼 숨은 그림을 간직한 사람으로 키우라고 말이다.

처음 노간주나무를 봤을 땐 그랬다. 참 바보 같다고, 제 코가 석 자면서 남 다 퍼주는 놈이 어디 있냐고.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내게는 노간주나무의 그런 바보 같은 모습이 오히려 사랑스럽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제 것만 챙기는 사람보단 형편이 어려워도 주변 사람 도와주며 허허거리는 사람이 더 정겹지 않은가. 겉보기엔 답답해 보일지 몰라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결국에 다시 찾게 되는 건 그런 바보 같은 사람이다. 가끔 사람과의 일로 괴로울 때 뭔가 억울한 일이 생길 때 나는 노간주나무를 떠올린다. '일평생 불평 않고 그렇게 사는 놈도 있는데'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말이다. 도봉산에 있는 노간주나무는 오늘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좀 바보 같으면 어떻습니까? 좀 손해 보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더불어 사는 세상 아닙니까?"

이처럼 기구한 자신의 삶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는 대나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대나무의 꿋꿋한 푸르름이 유독 인상 깊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지 싶다. 그런 대나무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이런 기원을 하게 된다. 내 남은 삶이 대나무처럼 주어진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용기 있는 모습이기를. 그래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한 세상 잘 살고 간다'고 말할 수 있기를.

은행나무는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수정 한번 못해 본 채 살아야 하는 기구한 운명에 처하게 된다. 뿐만 인가. 은행나무는 병충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독을 만들어 낸다. 우리가 혈액순환제로 알고 있는 '징코민'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은행나무가 만들어 낸 일종의 독이다. 그런데 살기 위해 자구책으로 만든 독이 결과적으로 주위의 모든 생명체를 물리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얼마나 독하면 집안의 개미를 없앤다고 일부러 은행나무 잎을 방바닥에 깔아 놓을까. 차라리 제 몸 일부를 포기하고 다른 생명과 더불어 살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은행나무는 오랜 시간 살아온 습성을 절대 버리지 못한다.

나무를 대하면서부터 나는 내 안에 있던 조급증이 많이 사라졌다는 걸 느낀다. 나무를 키우는 일이 끊임없는 기다림의 과정이며, 그 안에서 스스로 여유를 찾아야만 가능한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일분일초를 앞다투며 사는 시대에 기다림을 이야기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 할지 모르지만 나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참고 기다리면 되는데, 그 인내심이 없어서 소중한 꿈을 중도에 포기해 버리는 예를 너무도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더 슬픈 일은 어느 순간부터 기다리고 인내하는 삶이 싫어 아예 꿈조차 꾸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누군가 옆에서 기다려 보겠노라고, 견뎌 보겠노라고 말하면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니라면 하나같이 고개를 젓는다. 정작 자신의 인생이 어떤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나는 뒤에서 날아오는 돌은 숙명이고, 앞에서 날아오는 돌은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뒤에서 날아오는 돌은 우연이 아니고서는 피할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숙명은 타고난 본성과 관련된 것이기에 바꿀래야 바꿀 수가 없다. 개인의 의지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운명은 개인의 의지로 바꿀 수 있다. 앞에서 날아오는 돌을 피하듯 말이다. 나무에게 땅에 묶여 평생을 사는 게 숙명이라면, 뿌리를 내린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은 운명이다. 나무란 놈은 워낙에 그걸 잘 알고 있는지 일단 뿌리를 내리고 나면 주변의 환경에 강하게 맞선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어도, 이 땅 어느 생명보다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 나무는 결코 자기 삶에 느슨한 법이 없다.

그렇게 보면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존재가 바로 사람인 것 같다. 제 두 발로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무엇이든 생각한 대로 행할 수 있고,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게 바로 사람 아닌가. 그러나 사람들은 노력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도 마치 숙명인 양 체념해 버린다. 그리곤 그 탓을 주위로 돌리며 이렇게 말한다. "도저히 어쩔 수 없어. 이건 내 힘으론 불가능한 일이야." 뭔가 일이 안 풀리면 어떻게든 풀어보겠다는 의지를 세우기 전에 포기하고 주저앉아 버리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나무를 보라고 얘기해 준다. 맘먹은 것이 있다면 포기하지 마라. 그것이야말로 나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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