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리커버 에디션)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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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작가님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글을 읽게 된건 처음이다. 글을 읽고 사람들이 왜 정여울 작가님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책 한권으로 작가님에 대해서 다 알수는 없지만 이 책 한 권으로도 그녀의 매력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오랫동안 묵상하지 않으면 나오지 못할 책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귀하게 느꼈다. 자신의 삶을 곱씹어봐야 알 수 있는 글들이기 때문에 얼마나 귀한지...

20대에게 해 주고 싶은 말들이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말들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쓴 글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들이 소중했다.

나는 지금 내 딸에게 해 주소 싶은 말들을 쓰고 있다. 쉽지 않다. 내 삶을 복귀하면서 때로는 쓰라린 기억들도 소환 해야 할 때가 있다. 이야기 해 주고 싶은 것은 엄마의 자랑거리가 아닌 아픔 속에서 느꼈던 것들을 이야기 해 주고 싶을 때가 많다. 기쁨은 어느 누구와 나누어도 좋지만 아픔이나 슬픔은 쉽게 누군가와 나눌 수가 없을때 그때 엄마의 경험들이 내 아이를 위로하는데 사용되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작가는 결혼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결혼하지 않은 사람으로서도 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을 20대 분들과 나눌수 있다면 더 좋을것 같다.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공유할 수 있을것도 같다. 내게 만약 20대 아이들에게 하고 픈 말에 대해서 집필의뢰가 왔어도 이 처럼 잘 쓸 수 없을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수 많은 곳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만큼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보다. 20대 아이들에게 성공해라! 돈을 벌어라!라는 말보다 여기에 나와있는 말들을 더 많이 해 주고 싶다.

나의 딸에게도 20살때쯤 이 글을 읽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12년전 엄마게 네게 해 주고 싶었던 말들처럼 공감하면서 읽었어. "라고 하면서 말이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아픈은 증상이지 본질이 아니다. '내가 얼마나 아픈지' 강조하는 사람은 넘쳐나도 '내가 왜 아픈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아픔에 질색하기 전에 아픔의 원인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능력. 나는 이것이야말로 나의 20대에 가장 부족했던 능력이었음을 최근에야 깨닫게 되었다. 왜 아픈지를 제대로 알았다면 그토록 아픔에 짓눌리진 않았을 것이다. 왜 아픈지를 차분히 돌아보았더라면, 아픔 자체에 굴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방황도 멋지게, 슬픔도 아프답게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때 몰랐지만, 지금에야 깨달은 소박한 앎'이야말로 내가 20대에게 전해줄 수 있는 유일한 지식임을 깨달았다.

20대에 놓쳐버린 '기회들'보다 20대에 놓쳐버린 '감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기회는 노력해서 다시 만들 수 있지만, 감성은 노력만으로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지식은 추구하여 얻을 수 있지만, 감성은 노력보다 그때 그 순간의 우연에 기댈 때가 많다. 게다가 20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감성 중에서도 '설렘' 같은 것은 정말 아무리 애를 써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첫사랑의 설렘을 억지로 조작해낼 수 없듯이, 나이가 들수록 순수한 설렘을 느끼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무슨 일을 새로 시작해도 대부분 웬만하면 설레게 되어 있는 20대야말로 '설렘'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가장 멋진 시기가 아닐까.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갑자기 찾아오는 두근거림. 이런 건 정말 20대 다운 감성, 20대가 제대로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것이다.

'젊기 때문에 사서 하는 고생'의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다시 알아볼 만한 명랑한 시선을 회복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잃어버린 영혼의 명랑성을 회복하기 위해 내가 썼던 달콤한 극약처방이 바로 '여행이었다.' 여행 늦바람을 통해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사는 곳에서 통용되는 게임의 법칙이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바쁜 인생 속에서 때로는 '돈을 벌지 않을 권리'를 적극적으로 향유할 필요가 있다는 것. 20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미래를 위한 막무가내식 스파르타 훈련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내가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바쁨을 핑계 대매 내가 잊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속속들이 알아내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건 바로 '재능'이라고. 인간이 끊임없이 매력적인 다른 인간을 찾는 한, 재능은 저절로 발견되는 것이라고.

타인의 재능을 발견하는 재능이야말로 멘토의 첫 번째 요건이다 숨겨진 타인의 재능을 발견하는 것. 그것은 숯검정이 시커멓게 칠해진 수만 개의 돌들 중에 숨겨진 단 하나의 다이아몬드를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특히 자신의 재능을 어디에다 써먹어야 될지 전혀 모르는 사람일 경우에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재능을 키울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질투'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에 대한 질투는 열정을 불사르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재능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도 '질투'지만, 동시에 재능이 더 뻗어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장애물도 '질투'다. 질투가 극한으로 치달으면, 원래의 목적, 즉 '내 꿈을 향한 순수한 집중'자체가 흐려지고, 지루는 너무도 손쉽게 '증오'로 바뀌어버리기 때문이다

20대 시절에는 '내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왠지 남 일 같지 않아서'참여하게 되는 장소가 많았다. 그만큼 순진했고, '내 일'과 '남 일'을 굳이 분리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더욱 가슴이 따뜻해지던 시간이었다.

요즘 나는 눈에 보이는 상품의 소비를 최소화하고, 보이지 않는 생활의 체험을 소비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옷을 사지 않는 대신 영화를 한 편 보고, 가방을 사지 않는 대신 전시회를 가고, 신발을 사지 않는 대신 산책을 나간다. 물건 대신 삶을, 유행 대신 우정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대신 생에 대한 감사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눈이 맑아지고, 마음 또한 가벼워지고 있다. 기쁨도 더 온몸으로 깊숙이 느끼고, 슬픔도 더욱 투명하고 냉철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화폐는 단지 재테크의 대상이 아니라 위대한 스승이다. 계산할 수 있는 것의 가치를 통해 계산할 수 없는 것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나는 이제야 깨달은다. 피아노를 포기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때부터 '포기하는 버릇'을 가슴 깊이 내면화한 것이 문제라는 것을. 도전하기 전에, 미리 온갖 잔머리를 굴려 내 인생을 '시뮬레이션' 해보고, 안되겠구나 싶어 지레 포기하는 것. 아주 어릴 때부터 나도 모르게 소중하게 가꿔온 버릇이라 쉽게 고칠 수도 없었다. 내게 주어진 것보다 현실을 실제 상황보다 훨씬 나쁘게 인식하는 것. 내가 가진 것을 실제보다 훨씬 작게 생각하는 버릇. 가슴 깊이 감추어진, 생에 대한 뿌리 깊은 비관. 그것을 금속에 슬기 시작한 '녹'같다.

방황이란, 더욱 대차게 나다움을 벗어던짐으로써 오히려 진정한 나다움을 되찾는 방법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방황하지 않는 비법이 아니라 더욱 멋지게 방황하는 법이었다. 나는 사실 지금도 매일매일 방황한다. 아직도 매일 '도대체 나는 이다음에 뭐가 될까'를 고민한다. '도대체 내 꿈은 뭘까'를 언제든지 질문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아졌다. 눈치 보지 않고 방황할 권리. 어떤 꿈에도 정박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이것이 내가 살아 있는 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자유니까.

내가 평생 잊을 수 없는 가르침은 바로 이런 순간들이었다. 내 안의 절실함을 이끌어내는 순간. 자기 안의 믿음을 이끌어 내는 배움. 우리가 가진 최고의 빛을 이끌어내는 것. 우리가 가진 줄도 몰랐던 힘을 깨닫게 하는 것. 그것이 입시도 면접도 그 어떤 자격시험도 따라올 수 없는 배움의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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