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주는 레시피
공지영 지음, 이장미 그림 / 한겨레출판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믿고 보는 작가. 정말 이 타이틀이 잘 어울리는 작가님이다.

왜 사람들이 이 분의 책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요즘 에세이는 가볍다 못해 날아갈 것 같은 책들이 많다. 위로라고는 하지만 진득한 무언가가 없어서 다 읽고 나면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책들도 많다. 그런데 이분의 책은 언제 읽어도 시간이 꽤 지나 다시 읽어도 참 괜찮은 책인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기 분명히 있는 것이다.

아이 셋을 키우기 위해 다작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독자들은 그녀의 책을 실컷 읽을 수가 있다. 미안하지만 그래서 감사함을 느낀다. 계속 볼 수 있으니까.. 누군가는 다작을 하면 퀄리티가 떨어진다고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은 다작을 통해서 진짜 멋진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할 수만 있다면 다작을 하는 것도 능력이다. 글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읽었던 책 <내가 어떤 삶을 살던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처럼 딸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글이다. 위녕이라는 딸아이를 등장시켜서 엄마가 해 주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이 두 책을 읽고 나도 딸에게 이런 글을 써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아니면 쓸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 나중이 되면 분명 나도 더 많은 경험들을 하며 지금 이 순간들을 뭉텅거려 '그래도 재미있고 행복했던 때'라 칭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딸도 똑같이 누군가의 엄마가 될 테인데 그때를 대비해서 아이에게 편지 형식으로 글을 써봐야겠다. 잔소리 하기를 싫으니까... ^^

<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위녕, 산다는 것도 그래. 걷는 것과 같아. 그냥 걸으면 돼.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살면 돼. 그 순간을 가장 충실하게. 그 순간을 가장 의미 있게. 그 순간을 가장 어여쁘고 가장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만들면 돼. 평생을 의미 있고 어여쁘고 선하고 재미있게 보람되게 살 수는 없어. 그러나 10분은 의미 있고 어여쁘고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살 수 있다. 그래. 그 10분들이 바로 히말라야 산을 오르는 첫 번째 걸음이고 그것이 수억 개 모인 게 인생이야. 그러니 그냥 그렇게 지금을 살면 되는 것.

명심해. 이제 너도 어른이라는 것을. 어른이라는 것은 바로 어린 시절 그토록 부모에게 받고자 했던 그것을 스스로에게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이 이정이든 배려 든 혹은 음식이든. 너는 무엇을 엄마에게 받고자 했으나 받지 못했니? 네 마음은 뜻밖에도 너의 질문에 많이 울먹거리게 될 것이고, 너는 오늘 밤 오래도록 네 안에 사는 어린아이와 대화해도 좋겠구나. 오늘 밤은 충분히 기니까. 그리고 그 안의 아이가 훌쩍 아름답게 자라날 만큼 깊으니까.

엄마가 좋아하여 늘 끼고 읽는 비터 프랭클의 책 <죽음의 수용소>를 보면 그런 말이 나와. 28명 중 1명꼴로 살아남은 그 모진 곳에서 그는 어떤 사람이 살아남는가를 분석했다. 물론 그는 살아남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운 혹은 신의 가호를 들었어. 이건 그이 겸손이지. 두 번째는 삶의 의미. 즉 왜 자기가 살아 있어야 하는지 아는 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사람을 들었단다.

사랑하는 달, 꿀 바나나는 설거지도 쉽지? 뽀독뽀독 씻은 그릇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오늘 밤은 책이라도 한 권 펴보자. 가을이 깊어 간다. 엄마에게 얼마나 많은 날들이 남아 있을지, 네게 얼마나 많은 날들이 남아 있을지 우리는 사실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 수 있지. 이 순간이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거. 이 순간을 우물우물 보내면 인생이 그렇게 허망하게 흘러갈 것이라는 것.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어떤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표상이다. 표상이라는 말은 즉 이미지라는 것이다. 가난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가난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학벌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학벌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나를 진정으로 힘들게 하는 거야.

옷을 잘 입는 사람의 비결이 뭔지 아니? 사서 못 입었던 옷이 엄청 많았다는 거. 요리 잘하는 사람의 비결? 망친 요리가 많았다는 거야. 그러니 두려워 마. 그리고 이 재료들은 아무리 넣어 먹어도 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주 맛있단다.

백합은 가시가 있을 수 없고 나팔꽃은 꼿꼿이 설 수가 없단다.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고치려고 해서는 안 돼. 고치려고 하는 순간. 네 영혼은 네가 너를 거부하고 너를 미워하는 것이라고 알아듣고 말 거야. 때로 영혼은 우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영혼은 자신을 싫어하는 혹은 미워하는 자아가 시키는 일에 복종하지 않아. 영혼은 진정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고 느낄 때만 자신을 변태시키려고 한단다. 그것도 자신이 타고난 한도 내에서 말이야.

위험한 상황에서 죽음을 각오해야 할 때 그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게 뭔지 아니? 그건 화려한 파티도 아니고 처음 키스를 했던 그날도 아니야. 그들이 가장 그리워한 건 그냥 평범한 어느 날이라고 했다. 친구랑 공원 벤치에서 점심으로 싸 간 샌드위치를 먹으며 웃던 일, 저녁에 짐에 돌아오니 엄마가 끊이는 맛있는 수프 냄새가 나던 일, 학교에 가던 일, 집 안의 냄새, 혹은 문자 메시지를 보내며 웃었던 것.. 어쩌면 sns 상의 친구들과 깔깔거리던 일... 그래. 오늘이 바로 네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제발 다시 왔으면 하고 바랄 그날이라는 거, 잊지 마라. 아아. 너무도 소중한 이 일상의 평화를.

밤새 생각해 보았는데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열쇠가 있었다면 그건 감사였어요.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내게 남은 것, 내게 아직도 주어지고 있는 것, 내가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을 자각한 순간 고통은 힘을 잃었어요. 왜냐하면 남은 것이 잃어버린 것보다 훨씬 아주 훨씬 더 많았거든요.

아직도 장담한단다. 내게 거금을 물려준 부모가 있었다면, 위자료를 주고 아이들 양육비를 챙겨준 남편이 있었다면 무어라고 힘들게 글을 썼겠니. 돈을 위해 썼지만 돈만을 이해 쓰지는 않았던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사실은 엄청난 창조적 긴장을 내게 주지 않았던가 싶다. 그리고 그것이 준 가장 큰 미덕은 겸손이었던 것 같아.

그러니 위녕, 지금 아르바이트를 하며 견디는 너의 시간들을 절대로 지금의 슬픈 시선 속에 가두지 마라. 꿈이 이뤄지면 그때는 그 시간들이 네게 얼마나 향기로운 거름 같은 때였는지 알게 될 거야. 설사 꿈이 이뤄지지 않고 네가 진로를 변경한다 해도 자신의 밥그릇을 책임지려 노동하는 모든 사람은 추하지도 비뚤어지지도 타락하지도 않고 늠름하고 아름답단다.

아름다운 나의 딸. 그래 하루씩 하는 거야. 오직 오늘이 있을 뿐이야. 그게 인생의 전부이다. 엄마를 만나러 오는 버스 안에서 네가 보는 풍경이 온통 봄빛이라면 네 인생은 전부 봄인 거야. 엄마는 이제 너를 마중하러 들길을 걸어 나가련다. 죽는 날 아침에도 거울을 보며 말하고 싶구나. "네가 살아온 모든 날 중에서 오늘 네가 제일 아름답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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