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조금 울었다 - 비로소 혼자가 된 시간
권미선 지음 / 허밍버드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들로 책을 낸 것 같다. 글은 짧은데 그 안에 다 들어있다.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들이 참 대단해 보인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짧지만 그 안에 다 담아낸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어제 정말 피곤한 상태였지만 누워서 슬슬 읽기 딱 좋았다.

의외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린다는 것을 어려워한다.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운다는 의미는 나약이라는 단어와 연결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남자는 울면 안 되고, 여자들도 "울지 마!"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란다.

그냥 울어...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도 거의 울지 않았다. 아무리 슬퍼도 오히려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나갔다.

그런데 요즘에는 예전보다 훨씬 많이 운다. 우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울고 난 다음의 시원함을 알아버렸다.

꺼이꺼이 목놓아 울지는 못하지만, 눈물 뚝뚝 흘리고 나면 개운함이 있다.

눈물과 함께 아픔도 닦이는 느낌이다.

드라마 보고서도 울고, 힘든 일이 있을 때도 운다.

이제는 덜 부끄럽다. 울면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딸이 와서 안아주고, 친구들이 와서 안아준다.

울어도 괜찮다고 할 때 더 크게 우는 것보다 오히려 멈추게 된다.

앞으로 누군가를 위로하게 될 때 그냥 울려야겠다.

시원하게 울어버리고 나면 개운하게 웃을 수 있으니까..

<다시 읽고 싶은 글귀>

넘어지는 건 울 일이 아니야.

누군가 그랬다. '사는 게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더 곤두박질쳐 버리는 것, 그레 바로, 인생이라고.

그 사람의 인생은 그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던 게 틀림없다.

물론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걸 얻지 못할 때,

세상이 내게서 등을 돌린 것 같을 때,

사랑했지만 깊은 상처만 받게 될 때,

그래서 매일, 불면으로 밤을 지새울 때,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

무명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

그럴 땐 그냥, 고개를 깊숙이 파묻고 주저앉고 싶어진다.

누군가 일으켜 세워 줄 때까지.

엄마는 땀에 젖은 딸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넘어지는 건, 울 일이 아니야. 지금처럼 그냥 일어나면 돼."

그때 엄마는 인생에 대한 깊은 뜻을 담아서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도 넘어질 때마다 곁에서 잡아 줄 수 없다는 것,

사람은 결국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어떤 곳을 잘 아는 방법은 길을 잃어 보는 것이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사람들은 헤매면서 배우고, 조금씩 알아간다.

가끔 우리는 혼잣말이 아니라 서로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데도, 외로울 때가 있어.

내 말이 어딘가에 부딪혔다가 메아리처럼 그냥 돌아오는 느낌이지.

서로의 말이 너무 넘쳐서 상대방의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는 걸까?

아니면 우리 마음에 어떤 소음이 있어서 정말로 듣지 못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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