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라도 그랬을 거야 - 이수네 집 와글와글 행복 탐험기
김나윤 지음 / 김영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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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작가라 그런지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동화 한 권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냥 아름다웠다. 순수함이 아름답고,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참 감사했다. 그리고 그녀가 자주 말한 '내가 너라도 그랬을 거야'라는 말. 그 말이 참 마음에 와닿았다.

엄마가 아이에게 "내가 너라도 그랬을 거야."라는 말을 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수 엄마 김나윤 작가는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하는 것 같다.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 그냥 옆에서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면서 "내가 너라도 그랬을 거야."라는 그 말을 해 준다. 그러면 아이들은 엄마를 안아준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엄마는 진심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한 말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엄마의 마음을 읽은 것이다.

유정이라는 장애아를 입양하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아이 때문에 다른 아이들까지 피해 입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적으로도 무척이나 강한 사람이었다. 그 이유를 보니 소록도에서 1년간 봉사한 이력도 있다. 그 일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진심으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곳에 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곳에서 1년 동안의 삶이 김나윤 작가님의 삶을 바꿔놓은 것 같다. 세상을 바로 볼 줄 알고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남들과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것이 그대로 육아에도 적용되었다. 아이들에게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아이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어떤 모습이건 아이들에게 맡겼고, 아이들을 통해서 엄마도 함께 성장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수 같은 영재가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 나인데, 정말로 우연히 이수라는 아이가 나올 때 '영재발굴단'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그래서 작가님의 생활과 이수라는 아이를 텔레비전을 통해서도 보게 되었다. 이수라는 아이는 마음이 정말로 아름다운 아이다. 남다른 재주가 있다. 그것이 글로서 그림으로서 표현된다. 어린아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깊이가 있고, 성숙한 생각을 할 줄 안다. 그 모든 것이 김나윤 작가님 같은 엄마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에필로그 부분에 이수가 엄마에게 쓴 편지가 있다. 그 모든 것이 감동이다. 읽는 사람에게 '이런 아들 하나 있었으면...'하는 질투를 불러일으킨다. 아이를 참 잘 키웠다. 그리고 엄마로서도 잘 성장한 것 같다. 그녀가 참 아름다워 보인다. 그녀의 마음이...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아이들에게 '싸우지 마라. 하지 마라.'라는 말보다는 그렇게 되기까지 자기 마음이 어땠는지를 들여다보게 하고 대화로 풀다 보면 어느새 싸움은 끝나고 마음도 평온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나도 누군가로 인해 화가 나고 속상할 때에 다른 누군가가 가까이 와서 같이 화내주고 마음을 알아주기만 해도 속이 다 풀리고, 더 나아가 '내가 못돼서 그런가'하며 자기반성도 하게 된다. 심지어 그 사람의 마음이 이해되고, 미안해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해결하고 마무리되는 일들이 많다. 아이들도 어른들과 다르지 않다.

다양한 책을 읽어주면서 아이들 표정을 살펴보면 생각보다 눈을 반짝이며 집중도 잘하고 나름대로 알아듣는다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아이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고, 읽어주는 그때에는 듣기만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한참 뒤에도 잊지 않고 그 글들을 기억하며 이해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해를 하든 못하든 많은 책을 읽어준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기로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ㄴ생각을 솔직하게 아이와 나누고, 어떤 정답을 찾기보다는 우리 서로의 마음을 한 번만 더 읽어보자고 마음속으로 약속했다.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 아이를 잘 키우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남편은 조금씩 달라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지금도 이수의 핀잔을 가끔 듣는다. "아빠! 그렇게 무언가를 해결하려고 말을 많이 하지 마. 그냥 한마디만 하면 돼. 내가 너라도 그럴 것 같다고."

훗날 선생님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어떤 교사가 되고 어떤 대통령이 되는지가 중요할 텐데, 결과만이 아니라 그 과정이 공부가 되고 그것이 삶의 목표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삶의 목표는 어떤 '것'(thing)이 아니라 '함'(doing)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롯이 열매만 맺겠다는 목표로 씨를 뿌려야 한다면 그 즐거움은 어디에 있을까? 나의 삶의 과정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야 모든 것이 즐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수야, 엄마는 이수가 인사를 하지 않게 된 점에 대해 조금 슬픈 생각이 들어. 왜냐하면 너의 인사가 누군가에겐 하루 동안 행복한 마음이 들게도 하는 일이거든. 그 작은 일 하나가 큰 선물이 되는 거야. 친구들이 매일매일 인사를 받아주지 않아서 마음이 상했을지도 몰라. 엄마라도 그럴 것 같아. 그렇지만 그것으로 네가 금방 변했어. 반대로 친구들이 변화가 된다면 어떨까. 한번 시도해보는 것도 너에겐 큰 경험이 될 것 같아 너 혼자라 할지라도, 좋은 일이라면 네가 하는 작은 행동 하나로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켜보는 거야. 그러면 세상도 바뀔 수가 있어. 아주 천천히 변화가 오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틀림없이 넌 후회하지 않을 거야."

난 아이들에게 일찍부터 배웠으면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느낌'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 '느낌'은 마음이 얼어붙지 않는 것이다.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처럼 우물로 기어가는 한 아이가 툭 굴러떨어지는 것을 보고 돌이 굴러가나 보다 하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내가 일부러 생각하려 하지 않아도 마음에서 '앗'하고 입이 머저 벌어지고 놀란 가슴을 쥐고 있어야 사람ㄹ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게 무소유가 아니라, 내가 필요한 만큼 쓰다가 미련 없이 놓아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난 지금도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미련이 없다. 내가 당장 필요할지라도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주기도 하고많은 것들을 나눈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무어라 비웃든 간에.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틀리고 바보 같은 일일지라도 사도를 해봐야 해. 너만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 힘써야 해. 왜냐하면 더 오래 기다릴수록 더 찾기 힘들어질 테니까.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의 신념이 독특하고 나 자신의 소유임을 믿어야 한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부터 여러분도 자신만의 길을 찾길 바란다. 자신만의 걸음걸이와 속도로 어떤 방향이든지 무엇을 원하든지 그것이 자랑스럽든지 어리석든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현재를 즐겨라. 인생을 독특하게 살아라.

그 후로도 선생님은 가끔 이렇게 내게 영화를 보여주셨는데 커서 보니 다 명화였다. 살면서 어떤 책을 접하고, 어떤 영화를 접하느냐에 따라 내가 살아가는 길이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 나의 생각이 변하기 때문이다. 꼭 책과 영화가 아니라도 누군가를 만나느냐에 따라 어떤 말을 듣고 어떤 상황을 보는 냐에 따라서도 인생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어보니 어릴 때 접하게 되는 모든 것들의 중요성을 더욱더 깨닫게 된다.

몇 살에 첫아이를 낳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첫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새롭게 한 살씩 먹어가는 엄마로서의 나이가 중요한 것 같다. 그렇게 보면 둘째는 엄마 나이 3살에 셋째는 엄마 나이 5살에 육아를 시작하게 되었다. 둘째, 셋째에게는 조금이나마 성숙해진 엄마로서의 출발인 데 반해 이수는 나랑 똑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같이 자라났다. 그래서인지 난 첫째 이수에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부분이 많다. 엄마로서의 시행착오를 이수를 통해 알게 된 것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아이들의 눈에 비치는 나의 모습이다. 내가 받은 교육을 아이들에게 답습하게 될까 봐 난 많은 것을 잊어야 하고, 나의 습관들을 바꾸어야 하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내가 만약 지금의 아이들처럼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고, 자유로이 공부하고 뒤어놀며 배우는 교육 속에서 자랐다면 난 지금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보다 더없이 자연스럽고 행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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