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 - 전생 체험은 깨달음을 위한 것일 뿐
박윤미 외 지음 / 양우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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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직장안밖에서 직장상사든, 거래처 사람들과 어떤 의견마찰이나 충돌로  적지않은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면 자연스레 "전생에 무슨 원수간이었기에 이러나?" 하면서 넋두리를 하게 된다. 전생을 운운할때 대개는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로 자신을 짓누를때가 많다. 우리는 흔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 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인연이 있다는 것 또한 지난 생에서 수십 수백번의 전생동안 만들어 놓은 관계의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부부의 연을 그 깊이가 어떤 인연보다 깊다고 한다. 뿐만이랴, 부모 자식간의 인연 역시 전생의 큰 보은의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 내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전생의 좋은 인연이든 악연이든 알게 된다면 앞으로 그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서 좀 더 신중해 질 것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일반적인 사람들은 전생에 대해 막연히 관계의 고리쯤으로 단정지으며 살아간다. 결국 전생을 체험해보지도, 할 수 없는 처지라는 생각때문이다. 그렇지만, 책<전생>을 통해서 직간접적으로 느끼는 전생 이야기를 통해서 경험하지 못한는 자들이 늘 마음 한 구석에 새기고 살아가야 할 삶의 교훈 한 자락을 건네준다.

책<전생>이 전하는 한 자락의 가르침에 대해서 살펴보자.
부처님께서 중생들이 깨달음을 얻지 못함은 네가지의 상(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때문이라신다. 그 중 학력,재산,권력등의 세상속 허망함으로 자신을 매고 있다는 아상(我相). 자신을 마음의 거울에 드리워 허망함을 버리는 것이 아상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한다. 이는 어찌보면 '인생무상'을 역설하는 것인지도, 결국 허망함으로 다가올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가르침인듯 싶다.
인과(因果), 지금의 고(苦)와 락(樂), 이미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것임에 되풀이 될 악업의 씨앗을 만들지 말라는 가르침을 전한다. 이는 현세에 우리가 왜 태어나서 살고 있는지에 대한 삶의 의미와도 같다. 이런 인과의 과정속에서 내가 받은 은혜에 보은하고, 저질러 놓았던 악행을 추스림으로써 보은은 쌓아가돼 악행으로 인한 악업의 씨앗을 계속 뿌리지 말아야한다는 마치 삶의 의무감처럼 들린다.
인식(認識), 자신을 속박하는 것에서 벗어나보려 하나 각자의 생각의 틀때문에 결국 주체를 고립시키고 매이게 한다는 조금 어려운 가르침인데, 결국은 자비와 사랑보다는 진정한 무심으로 돌아갔을때, 나의 인식을 깨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스스로 만들어 놓은 그럴싸한 생각과 행동의 틀이 전부인냥 자기 생각대로 살지말고, 지혜롭게 차별을 포용할줄도 알아야한다는 가르침으로 들린다.
인욕(忍辱), 인욕은 아마도 인과에 연결되는 가르침이다. 전생에서 비롯된 악연의 고리를 벗어나기 위한 행동강령이라고나 할까? 노여움,살생,탐욕등으로부터 자유워짐로써 악연의 불씨를 만들지말라는 그런 가르침이 아닌가 싶다.
허망(虛忘), 인간들의 괴로움의 원천은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됨이다. 그 집착을 놓아야만 백년의 괴로운 나날보다 값진 하루의 삶을 살 수 있다는, 이또한 괴로운 윤회의 틀속에 자유롭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
해원(解寃), 해원을 통한 가르침은 그런것이다. 마치 벽에 공을 던지면 튀어 제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이니, 좋은 마음이건 나쁜 마음이건 받아들여 좀 더 헤아릴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으라는 것이다. 이 또한 되풀이 될 악연의 고리를 만들지 않게 하고, 이미 만들어진 고리도 고쳐 맬 수 있게 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습(習), 말그대로 자신의 본 모습을 그려가는 것이 습관인데, 몸과 영혼에 깃들어 있는 인식의 습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좀 더 자신을 갈고 닦으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정법(正法), 결국 진리만이 괴로움을 타파할 수 있는 참된 도리라는 것! 자칫 우리가 진리라 생각할 수 있는 종교도 결국은 진리가 아닌 것이다. 진리란 참된 인생의 수행을 통해서 미묘한 마음으로 전달되는 것이고, 결국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이 앞에 내가 서술한 것처럼 어떤 개별적으로 이론적인 설명을 늘어놓은 것만은 아니다. 두 저자가 실제 생활속 체험을 바탕으로 단지 불교의 가르침중에 일맥상통하는 부분과 매치시켜 놓은것 뿐이다. 두 저자의 체험담은 정말 생생하게 전해진다. 하지만, 비체험자로써는 그저 설득력있는 가르침의 밑그림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우리가 막연히 인간관계에서 전생을 떠올리기때문에, 전생 체험에 귀기울고, 이 이야기들을 교훈삼아, 자신의 수없이 많은 전생으로 비롯된 인연을 잘 이어가고, 악연을 끊어버릴 수 있는 마음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깊이 새겨봐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책<전생>은 아마도 나의 지난 과거에서 또 다른 삶의 교훈이나 가르침을 주었던것처럼 지금 나의 책상앞에 놓여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동안 나의 삶속에서 나를 짓누르고 있었던 악연들은 인연으로 다시 태어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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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사랑학
구사카 기민도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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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해진 날씨탓에 아침이나 저녁에 샤워를 할때면, 곧바로 따뜻한 물이 나오면 좋으련만, 따뜻한 물을 기다리며, 앞의 찬물은 무심코 흘려버린다. 그것은 지금 내가 피부를 통해서 느끼고 싶은 것은 물의 시원함이 아닌 데워진 물의 따스함이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동안에 나의 몸을 시원하게 식혀준 찬물은 지금은 천덕구러기가 되어 무심천으로 흘려보내지만, 내년 여름의 반가움과 고마움으로 대할 것이다. 문득 경제사랑학을 읽고 나서 이러한 생각을 해본것은 이렇게 현재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나쳐버리는 나의 경제감각을 일깨워줄 것들이 우리의 일상생활속에 숨은그림처럼 산재되어 있다는 사실때문이다. 늘 출퇴근길의 지하철안의 풍경과 오가며 수없이 지나치는 다양한 업소들이 걸어놓은 번잡스럽기까지한 간판들의 문구들, 그리고 회사안 사람들의 움직임, 취미생활과 가정 또한 나의 경제감각을 키울 수 있는 재료들이다. 

<경제사랑학>은 종래의 딱딱한 이론적인 경제학 내용을 다룬것이 아닌, 서두에 던진 경제감각을 키울 수 있는 일상의 재료들을 통한 현재의 경제동향과 앞으로의 달라질 것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아가는 방법들을 제시함으로서 손쉽게 뒤쳐진 자신의 실질 경제감을 배가시켜준다.
그럼 <경제사랑학>이 전하는 생활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감각 기법들을 살펴보자.
첫번째는 우리가 늘상 거니는 거리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거리에서의 핵심포인트는 아무래도 간판광고가 아닌가 싶다. 하루가 다르게 거리의 간판들도 옷을 갈아입는다. 이는 유행하는 상품에 따라서 업종또한 변화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거리에 나가면 한눈에 늘어난 간판들은 아마도 일본식 주점이 아닐까 싶다. 여러 일본문화와 더불어 외식문화가 우리의 생활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다음은 지하철 안의 수많은 사람들이 손안에 들고 가방안에 들려있는 PMP며 MP3 PLAYER와 같은 휴대용 디지털기기들이다. 이런 것들이 지금 우리의 실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경제물품들이다. 책에서는 새로운 간판을 통한 틈새전략도 전한다. 애완용 사료가 아닌 애완용 음료수의 개발로 한 여성이 몇개월만에 수십억원을 벌었다는 것이다. 이런예로 트렌스지방 논란이 있었던 팝콘의 건강상품화 또한 색다른 틈새전략으로 성공한 케이스란다. 거리의 유행물결속에서 연관성 있는 틈새를 찾아본다는 점이 역시 이론이 넘지 못하는 한계와 아이디어 창출이라는 점에 새롭다.
두번째는 우리가 일하는 회사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여기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닌 발전성 있는 회사 구조와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업계와 업계사이의 경계에 있는 주변인의 역할, 매너리즘에 빠진 베테랑에 대한 비판과 자칫 반역자로 여겨질 수 있는 도전정신이 강한 사원대한 생각, 동업타사의 위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메리트, 남자의 허세로 인해 대중화를 기대할 수 있는 유력산업의 발굴등이 요지이다.
세번째는 신문, 잡지를 통해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볼수록 새로운 경제용어들의 넘쳐남에 등안시 하게 되는 경제신문, 잡지 기사에 조금씩 길들이는 방법들이 나열되어 있다. 가령 경제지는 대강 여러번 훑어보라는 점. 비록 짧은 시간의 접촉이지만 반복하면 친근감으로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이나 아는 사람을 통한 관련지식의 대화를 통해서 스스로 자연스럽게 정보를 넓혀갈 수 있고, WHY?라는 질문을 통해서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끝에서는 경제지 중독증에 대한 당부와 더불어 휴식을 통해 오른쪽 뇌의 잠재적으로 축적된 정보를 양성화시키는 것의 중요성도 달았다.
네번째다섯번째는 취미와 가정생활를 통한 경제감각을 키우는 방법인데, 아마도 저자가 <경제사랑학>으로 책명을 택한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이 아니였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취미활동이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유연한 발상능력을 키워주며, 직장내 계급을 타파하는 순수한 인간관계를 쌓아 갈 수 있으며, 유희감을 통해 다음 업무에 대한 생동감과 자신감을 찾을 수 있으며, 살아있는 경제관련 지식과 정보들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가정생활패턴을 통해서 짐작해내고 배울 수 있는 경제가 관련된 것들도 무수히 많았다. 주부들의 소비심리라든가, 대형쓰레기 양의 변화, 패밀리레스토랑의 증가와 메뉴의 변화를 통해서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경기를 예측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늘 이론을 통해서 분석하며, 배우려 생각했던 어렵게 느꼈던 경제가 거리를 거닐면서 직장동료들과의 이야기속에서, 취미와 가정생활속에서 손쉽게 배울 수 있고, 감각을 넓혀나갈 수 있가는 것이 새로운 이 책<경제사랑학>이다. 저자가 일본인인 만큼 내용의 대부분은 일본의 과거와 현재에 관점에 맞추어져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제문화 또한 일본과 비슷하게 발전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과거 부동산폭락과 긴 경기침체를 겪으면서도 성장하고 있는 일본의 경제이면을 통한 공부는 분명 피가 되고 살이 될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으로는 따뜻한 물을 기다리며 무심코 흘려버렸던 찬물의 의미를 생각하듯 가까이에 펼쳐져 있는 경제의 장들을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면 경제공부가 따로 필요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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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소년이 서 있다 민음의 시 149
허연 지음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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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나쁜 소년이 서 있다>의 첫 느낌은 표지를 가득 메운 무한의 사색 공간 중심에 자리한 진한 자주빛 보라의 정사각형과 한 점이 가져다주는 왠지 단촐한 이미지지만, 詩가 가져다주는 절제미를 먼저 보여주는 듯 하다. 하지만, 시를 다 읽고나서의 느낌은 달랐다. 왠지 무한의 사색공간이 존재함에도 닫혀진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정사각형의 테두리에 갖혀진 삶이 현실의 삶이며, 이를 탈피한 한 개의 점은 아마도 현실을 넓은 세상으로 빠져 나온 유일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지친 삶속에서 화려하고 아름답게 그려진 노래와 춤을 통해서 또다시 오늘의 작은 행복을 찾고, 내일의 희망이라는 꿈을 그려낸다.하지만, 희망의 빛이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와 화려한 몸짓의 활기찬 춤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그러한 것에 익숙해서 집착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루 하루 살아가는 이 세상이 아름다움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詩 또한 노래와 춤처럼 정제된 짧은 단어의 미학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때론 소설보다 벅찬 감동의 물결과 더불어 또 다른 희망에 대한 메시지를 심어 마음속 감정의 종소리로 울려 퍼진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는 결코 아름다움이 아닌 반항과 쓸쓸한 자기반성의 고독을 통해서 새로운 희망의 빛을 볼 수 있게 한다. 시에 사용된 대부분의 단어들은 그리 따뜻함이 묻어나지 않는다. 
‘추하다’ ‘난분분하다’ ‘잡놈’ ‘비루하다’ 와 같은 어두운 표현과 함께 사용된 단어들은 슬픔과 고통과 좌절이 담겨져 있는 것들의 집합체처럼 다가온다. 

“호명되지 않는 자의 슬픔을 아시는지요. 대답하지 못하는 자의 비애를 아시는지요. 늘 그랬습니다. 이젠 투신하지 못한 자의 고통이 내 몫입니다. 내게 세상은 빙하시대입니다.”

(p16 - ‘슬픈빙하시대 1’ 중에서)   

“이놈의 비정한 삶의 주기. 일찌감치 천주학을 믿었던 불우한 조상들과 그 자식 놈 어느 누구도 벗어나지 못했던 주기. 내 삶이 글러 먹은 대로, 또 가난한 연극으로 버티게 하는 힘. 내가 둘러업고 가는, 나를 둘러업고 가는 영 더러운 삶의 주기.”

(p53 - ‘더러운 주기’ 중에서)

이처럼 시 구절들은 허무함이나 패배의식마저 묻어나 보인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이 느끼는 현실에 대한 비참함을 반항적으로 구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허무감이나 패배의식으로 인한 반항감은 또 다른 삶속에서 갈구하는 희망의 빛을 보기 위해 끊임없이 진행하는 자기반성이 동반된 도전이며, 희망의 화살을 쏘기 위해 활시위를 당기는 손끝의 힘이기도 하다.
희망의 빛은 매번 아름다운 세상에서만 기인되는 것 만은 아니다. 이렇듯 척박하고 쓸쓸함이 묻어있는 메마름속에서 자란 난 한 송이의 들꽃의 숭고함이 진정한 희망의 꽃이 되고 또 씨앗이 되는 것이다.
고운 선율 속 사랑만이 아닌 삶의 고뇌와 고독한 현실이 담긴 노래를 통해서도 우리는 아름다운 세상을 그려 나간다. 춤 또한 마치 혼이 빠져나간 듯 몸으로 내면의 진심을 하나의 몸짓으로 토로할 때 우리는 그 춤사위 안에서 비록 보여주는 이가 내놓은 혼과 호흡하게 된다. 
오늘은 시집<나쁜 소년이 서 있다>를 통해 현실에 대한 거친 반항감이 전하는 도전과 도전으로 일구어갈 수 있는 삶의 희망을 발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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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 다시 태어나는 나 -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20가지 생존 법칙
김현태 지음 / 북포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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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아마도 꿈의 실현과정에 겪는 마지막 전환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마다 품고 지향하는 꿈과 희망의 크기와 깊이는 다르겠지만, 유년기와 성장기를 거쳐 사회에 첫발을 내딛어 자신의 입지를 다짐으로써 품고 있던 꿈과 희망을 가시권에 가져다 놓은 시기가 아닌가 생각 한다. 서른 즈음 나또한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면서 자아성취의 꿈을 본격적으로 그려보았던 때가 생각난다. 서른 즈음에 내가 마음속에 그려보았던 꿈은 지극히 보통의 삶 이었다. 누가 시켜서 그렇게 마음속에 그렸던것도 아닌데 지금 생각하면 꿈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초라한 생각이다. 그것은 아마도 사회에 입문을 하기 전 가졌던 방대한 꿈과 현실에서 현재의 내가 이룰 수 있는 꿈과의 절충점을 찾고 가시밭길보다는 평탄한 길을 가려는 무사안일주의가 어느새 나를 물들여서 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서른이 지나서 읽는 <서른 즈음, 다시 태어나는 나>는 무사안일과 타협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하루하루 평범한 삶을 지향한 나에게 강한 채찍질로 다가왔다. ‘왜? 그렇게 욕심도 없고,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했었냐며 아직 세상에는 너의 생각과 실천으로 이룰 수 있는 꿈과 희망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쌓여 너의 손길마을 기다리고 있는데...왜?’ 냐며 채찍질을 한다.

<서른 즈음, 다시 태어나는 나>는 저자 자신의 경험과 끊임없이 꿈을 향한 도전를 계속했고, 계속하고 있는 이들의 경험을 토대로 한 정제된 20가지의 생존법칙을 통해서 그 채찍질의 의미를 달아 준다. “새로운 나를 만나기 위한 산고를 즐겨라” 며 끊임없는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한 첫 번째 ‘재탄생의 법칙’에서 “소나기는 언제라도 내릴 수 있다, 미리미리 우산을 준비하라” 며 미래에 대한 착실한 준비의식을 깨우쳐 주는 마지막 ‘준비의 법칙’까지 20가지의 법칙들은 긴 시간 우려내어 담백하고 깊은 맛을 전하는 사골국물의 맛처럼 깊이 있게 나의 생각 속에서 동화되고 녹아든다.
이렇게 녹아든 20가지의 생존법칙들은 아마도 내 자신을 다시 서른 즈음의 그때 품지 못한 꿈과 희망에 대한 꺼져가는 불꽃들에 커다란 입김을 불어넣는 듯한 느낌이다. 가슴이 다시금 뜨거워지는 듯 하고 오늘하고 있는 일에 대한 열정도 좀 더 불타오르게 한다.
책속에 많은 일화와 말들 중에서 이런 말들이 마음속 깊이 다가왔다.
“자신이 하는 일이나 주어진 일이 작다고 그 일을 소홀히 한다면 그건 스스로 큰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작고 하찮은 일이라도 그 일에 열정을 쏟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P 134)
어찌보면 평범한 글처럼 느껴지만, 이 말은 내가 다시금 서른 즈음의 꿈과 희망을 향한 발걸음에 첫 이정표를 들이우는 말이다.
그리고, “작은 것으로 호기심을 유발하여 위대함으로 결말을 내라!”는 저자가 준비했다던 신춘문예 당선노하우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곧 이 책을 읽고  사람들의 깊은 호기심으로 시작될 위대한 결말에 대한 희망을 더욱 불어넣는 말인 듯 하다.
내가 받은 느낌처럼 요즘의 좋지 않은 경제사정과 사회적인 불안으로 신음하고 있는 젊은이들과 새로운 변신과 더불어 좀 더 큰 희망에 도전을 꿈꾸는 사람들이 보고,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자신의 서른 즈음의 희망에 대한 포부와 자아성취에 큰 물고를 터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함께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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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션 - 고단한 삶을 자유롭게 하는
조신영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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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같은 이름을 가진 두 개의 다른 쿠션이 있다. 이 두 개의 쿠션은 나의 몸과 마음의 완충제 역할을 한다. 하나의 쿠션은 책읽기를 취미로 나의 생활에 자리를 굳혀가는 습관에 묻어난 산물이다.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을 때는 가슴을 받쳐주고, 의자에 앉아서 책을 볼 때도 책상과 내 무릎사이에서 책을 받쳐주고 손목에 푹신함을 주어서 편안한 책읽기에 완충역할을 해주는 쿠션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쿠션은 이 책 <쿠션>이다. 책표지에서부터 파스텔 톤의 따뜻함이 묻어나는 일러스트가 읽기전의 마음부터 진정시켜준다. 표지의 책 속 주인공인 한바로의 모습은 책을 읽기전의 느낌과 읽고 나서의 느낌은 전혀 다르게 다가 온다. 짧은 머리와 넥타이는 한껏 바람에 휘날린다. 이것은 아마도 밖으로부터 우리가 늘상 받는 자극들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런 세찬 돌풍과 같은 자극 앞에서 한바로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가슴속에는 한가로이 떠가는 희망의 조각배를 띄운다. 바로 이것이 쿠션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마음의 완충이다.

소설일까...? 아니면 책표지와는 조금은 다른 심오한 의미를 전하는 자기 계발서일까...? 궁금증에 책을 열었다. 정제된 ‘스토리텔링’ 이다. 아무리 좋은 교훈도 이야기에 달려있지 않으면 금새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을 통한 글들이 주는 매력은 이야기와 더불어 전하려는 메시지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머릿속에 박혀 잊어버리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가 주는 마법을 갖게 된다.  주인공 한바로를 통해서 그려지는 어찌보면 냉엄하게도 느껴지는 일상생활들, 수많은 사람들과 만남과 일이 가져다주는 삶의 걱정과 고민들은 한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져서 오감을 집중할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삶의 고락 끝에 희망의 빛처럼 등장한 생면부지의 할아버지가 남기신 유산을 둘러싼 이야기는 스릴러물 이상의 긴장감으로 더욱더 몸과 마음을 졸이게 만든다. 진정 이야기를 통해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의 뚜렷한 각인을 위해서 저자는 책의 중간 중간에 네 번의 지혜를 따로 담아, TV프로그램의 마디마디에 광고로 인한 휴식시간을 주듯 좀 더 차분하게 이야기와 더불어 전달하고 푼 메시지들을 다시금 곱씹어 보게 한다.

<쿠션>을 통해서 우리는 삶의 10%인 객관적인 사실에 더해지는 90%의 자신이 갖는 반응에 대한 선택의 자유를 찾게 되며, 괴롭게 느껴졌던 자신을 향한 자극들과 반응사이에 존재하는 불순물과 같은 상처와 분노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독서와 기도,묵상)에 자연스럽게 다가가게 하며, 좌지우지 통제할 수 없었던 감정에 대해서 독립적인 생각의 선택으로 진정한 자유로운 삶에 대한 용기를 찾을 수 있으며, 끝으로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책속의 수많은 메시지들과 더불어 가슴 깊이 담고 생각하게 하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온유(meekness)”이다.
뜻은 ‘자신보다 훨씬 더 크고 위대한 존재 앞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차분히 내려놓고 잠잠히 그분의 뜻에 따르는 반응을 선택하는 힘’ ‘온유는 결코 약함이 아니며, 진정한 자유는 온유함에서 비롯되는 긍정을 선택하는 반응 능력으로부터 오게 되지’(P.172) 라며 한바로에게 전해지는 할아버지의 메시지는 마음의 쿠션을 통해서 가질 수 있는 내면의 진정한 자유로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오늘의 평화로움이 내일의 고통으로 어느새 바뀔지 모르는 쉴 새없고 변화무쌍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아마도 이러한 마음의 쿠션만 가슴속에 간직할 수 있다면, 책표지의 한바로의 모습처럼 아무리 휘몰아치는 풍파에서도 품고 있는 마음속 완충지대 안에 한가로이 떠가는 조각배를 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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