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어록청상 푸르메 어록
정민 지음 / 푸르메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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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모든 것들이 새롭게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단지 형체를 달리한 세월의 흔적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수백 수천 년을 거듭했어도 태양빛 말고 지구 밖에서 안으로 들인 것이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모든 만물이 지구 안에 품고 있던 것이 사멸의 수레바퀴를 돌다 만들어진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그러한데 이것들을 보며 살고 있는 인간들의 생각이라고 다를 것이 있을까? 인간의 생각 또한 이러한 만물의 이치처럼 사물이 형체를 달리하는 것처럼 단지 육신을 달리하여 전이될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이 변했으니 생각 또한 달라져야 한다고 안달을 부린다. 단지 변한 것은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 것을 말이다.

가령 우리가 즐겨보는 TV사극 속에서 임금과 신하들, 스승과 제자, 또는 집에서 아버지와 가족들이 나누는 대화를 보면 비록 시대를 달리하고, 말의 형식을 조금 달리하였을 뿐 지금의 우리의 생각과 대부분 일치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시대의 말을 차용하여 사용하고, 변화된 세상의 형식을 무시하면서까지 따르자는 얘기는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하는 것은 바로 예부터 변함없이 전해지는 인간의 도리와 세상의 이치를 헤아리는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들 세상인심이 무척이나 각박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변함없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자신을 헌신하며 사는 이들을 맞이하곤 한다. 이는 단지 내 자신이 변한 것이지 세상인심이 변한 것이 아니라는 반증인 셈이다. 겉으로 화려해보이지만 타락한 일들은 추종하며, 좋은 인습에는 남들도 그러니까 나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스스로 등 돌리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지 못한 까닭이다. 세상을 올바르게 잡아가든, 잘못된 세상에 엉켜 매어 따라가든 결국은 모두가 자기 잘잘못인 것을 우리는 너무 늦게 깨우치는 것 같다.

세상 모든 이들을 향한 꾸지람처럼도 들리는 다산 정약용의 어록을 정리한 <다산어록청상>을 읽으며,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비록 오랜 인생을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다산의 한마디 한마디는 지난 나의 삶의 흔적을 깊게 돌아보게 하고, 지난 과오의 원인과 결과, 얽히는 과정까지도 마치 명의의 진맥을 보고 몸의 상태를 자기 몸인 듯 상세하게 주지시키듯 짚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러한 꾸지람을 들을 수 있다는 것 또한 나에게는 큰 복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산어록청상>에 나열한 애정 어린 꾸지람은 무릇 인간으로 태어나 지녔어야 할 소임과 도리와 더불어 세상을 돌보는 이치까지도 마음 깊이 전달해주었기 때문이다.

비록 혼자의 몸으로 세상에 태어나지만 결코 혼자의 몸으로 살아가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가깝게 가정의 만사에 자신이 관여할 것이 있으며,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작은 부품이지만 제 할 역할이 있는 법이다. 따라서 수신(修身)을 통해 자신을 가꾸는 것 뿐만 아니라 적절한 치학(治學)으로 독서(讀書)와 문예(文藝), 학문(學問)을 익혀, 자신의 처지에 걸맞은 치산(治産)과 경제(經濟)를 도모하여 경세(警世)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필자는 비록 <다산어록청상>에 담고 있는 말씀들이 유병(遺秉) 즉 추수하고 남은 이삭들을 추슬러 엮어 놓았다고 하지만, 어떠한 필요나 절실함에 따라서는 유병이 제때 거둔 알곡보다 더욱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것처럼 그동안의 말과 행동에 있어 많은 부덕함을 가진 내 자신과 더불어 많은 이들에게 이 유병은 그 어떤 알곡보다 값진 마음의 양식이 되고 안식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받아들인 마음은 앞으로의 삶에 있어 작은 초막집을 짓더라도 기둥을 튼튼히 하게 만들며, 부족한 삶속에서도 나보다 남을 걱정할 수 있는 너그러움과 무엇보다 자신을 가장 잘 돌아볼 줄 아는 자아를 일깨워 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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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쇼 - 진화가 펼쳐낸 경이롭고 찬란한 생명의 역사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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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밤하늘을 가득 메운 체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 볼 때면 이런 생각에 빠지곤 한다. ‘우주라는 헤아릴 수 없는 방대한 공간에 자리한 지구라는 작은 별 안에서 살고 있는 나의 존재적 의미는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곧 유일무이한 신의 존재와 동일시하는 나의 존재에 대한 유일함 일깨워 스스로를 위로하게 만들곤 한다. 그런 생각에까지 이르지 못한다면 어쩌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심각한 우울증이나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 스스로 겪어보지 못한 일이나 느낌에 찬동한다는 것이 꽤 위험한 우매함속에 자신을 몰아넣을 수 있다는 생각한다. 그로 인한 나의 의견과 행위는 나만 혼자 볼 수 있는 일기장에 적어 내려가는 일상의 반성이 아닌 또 다른 영향력을 낳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필요이상의 영향력을 타인에게 공격적으로 강요함으로서 동시다발적이면서도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의 무지로 몰아가고 있는 모습을 지금도 우리는 보고 경험한다.

문자로 기록되면서 전해진 인류의 문화적인 역사는 지구와 인간의 기원역사에 비하면 어쩌면 사막의 모래알과 같은 지극히 짧은 역사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인간의 위대함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신비를 꿰뚫을 만한 심미안적 재능과 가능성에 대한 끝없는 도전을 통해서 만물의 으뜸자리에 이르게 만들어 놓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이 깨우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우주의 진리라기보다는 자신의 걸어온 길에 대한 자각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욱이 최근 급증하는 지진과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앞에서 속수무책인 인간들의 처참한 모습 속에서 만물위에 군림하는 인간이 아닌 더불어 조화를 이루며 순응하는 인간으로 제자리를 찾아갈 때 보다 평온을 찾을 수 있다는 자각의 시급함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말한 진화론에서 한 단계 더 발전된 진화를 설명하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의 <지상 최대의 쇼>는 지속된 무지함속에서 키워온 인간의 파괴적인 본능에 대한 자각과 반성의 장을 마련해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지상 최대의 쇼>안에 펼쳐진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화려한 흔적들, 지구의 역사와 더불어 진행된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분열로 증식하는 박테리아에서부터 꽃과 곤충 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의 변화무쌍하면서도 지극히 자연스럽게 환경에 순응한 변화들은 그야말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화려한 쇼를 보는 것과 같다. 더욱이 이 쇼는 생물학적인 지식의 바탕의 유무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을 특징으로 삼을 수 있다. 이는 도킨스가 준비한 이 화려한 진화의 쇼는 단지 종교적인 창조론에 맞장을 놓기 위해 준비한 것이 아닌 서두에서 말한 창조론에 대한 필요이상의 영향력에 강요당한 이들을 일깨우기 위한 나름의 역작이기 때문이다. <지상 최대의 쇼>를 접하기 전 다윈의 진화론을 섭렵하고 즐긴다면 보다 흥미롭고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학창시절에 배운 진화론의 개념만을 담고 새롭게 접근한다 해도 생명의 역사에 충분히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종교에서 말하는 창조의 힘을 절대로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살아가고 있는 우주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지구의 신비로운 탄생을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탄생 이후에 마치 작은 모래알갱이로 시작된 지구와 인류가 지닌 생명의 역사는 분명 끊임없이 거듭된 자연선택적인 진화의 과정을 겪어 이 자리에 와있다고 생각을 <지상 최대의 쇼>는 선물하고 있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으로 비롯된 진화역사는 200여 년간 숫한 논쟁에 휩싸이며, 오늘 리처드 도킨스의 <지상 최대의 쇼>라는 간이역에서 보다 진화한 모습을 확인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가 살아있는 한 그 진화의 역사 역시 꾸준히 새롭게 진화하리라 기대한다. 지금보다 더 멋진 쇼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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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과 원리가 있는 실전 외환 투자 - 레버리지를 축소하고 증거금을 확대시킨 최근 정책 반영
마포강변(윤석천) 지음 / 호두나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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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전쯤 알고 있던 일본인 친구와의 저녁식사자리에서 함께 온 20대 후반의 일본인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녀의 가방 안에는 최근 읽고 있던 책 한 권을 꺼내는 것을 보았는데, 외환투자에 관련한 일본서적이었다. 분명 그녀의 직업은 인터넷백신 관련 A/S콜센터에 근무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외환을 다루는 은행에 근무하고 있는 게 아니기에 외환투자에 관련한 책을 보고 있다는 것이 왠지 어색하게 보였다. 보통 우리가 경험하는 외환거래는 주로 해외로 출장이나 여행을 갈 때 또는 외국에 유학생을 둔 부모가 학비나 생활비등을 보낼 때 현지화폐로 교환하는 수준이다. 이 또한 거래이긴 하지만 어떠한 금전적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거래는 결코 아니었다. 더욱이 금전적 수익을 목적으로 외환을 보유하고 거래에 나서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금력이 필요할 것 이라는 것이 보통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그 일본인 여성을 상당한 자금력을 갖고 있었을까? 아마 내가 알기로는 한국에서 평범한 직장생활로 꾸준히 저축을 해서 5,000만원 이하의 여유자금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5,000만원이면 1달러에 1,000원으로 환산해도 50,000달러정도인데, 금융위기 상황 때처럼 환율이 크게 오르지 않는 이상 상대적으로 그 변동 폭이 크지 않고, 부동산처럼 장기적인 투자로 인한 상승요인도 요원한데 굳이 외환에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뭔가 색다른 외환거래의 방식이 있다는 것인데, 그 답은 바로 소위 ‘지렛대 효과’로 불리는 레버리지(Leverage)를 이용한, 즉 증거금을 통해 적은 자본으로 훨씬 큰 자본을 움직일 수 있는 거래방식이다. 그렇다면 보통 주식거래에서도 편차는 있지만 30~40%의 증거금으로 증거금의 두 배 정도의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데, 외환거래에 사용되는 레버리지는 어느 정도이고, 거래방식 등 주식거래와는 다른 특별한 차이는 어떤 것들이 있는 것인가?

스포츠에서 격투기 종목에도 여러 가지로 나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K-1과 UFC는 룰도 다르지만 상대방을 제압하는 방법에 있어 나름의 그 종목에 걸맞은 기술이 필요하다. 주식시장에도 현물과 선물거래는 분명 다르며, 따라서 분석을 통한 예측기법 또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생소한 외환거래 역시 거래방식은 주식거래와 비슷하겠지만 수익을 위한 예측과 분석기법은 달리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다면 마치 젖 땐 아기가 첫걸음마를 배우는 자세로 외환거래도 배워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이미 주식거래를 경험해서 알 만큼 아는데 굳이 올챙이적의 상기시키냐 하며 조바심을 부릴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학문이든, 스포츠든, 모든 일은 기초를 튼튼히 다져놓을 때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법이다. 따라서 잠시 올챙이때의 경험을 초석 삼아 튼튼한 집을 짓는다는 각오로 임한다면 행하는 모든 일에 있어 실패를 줄여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념과 원리가 있는 실전 외환 투자>에서도 그동안 수많은 주식거래관련 책에서 볼 수 있었던 고수익을 실현을 위한 나름의 지침들을 먼저 소개하고 있다. 특히 지나친 욕망을 버리고, 손절매를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진정한 고수로 거듭날 수 있다는 대목은 주식거래를 접해본 사람이라면 읽을 때마다 통감하는 부분일 것으로 생각한다. 이 책은 약 3천2000조원이라는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의 거래규모를 가진 외환거래시장을 이해하고, 주식시장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이 거대한 시장에 뛰어들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첫 걸음마를 위한 트레이닝 강사라고 할 수 있다. FX시장은 아직 우리에게 생소한 시장이다.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외환거래관련법의 개정을 통해서 일반인들에게 문호가 개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장이다. 따라서 접근하기에 두려움이 앞설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접한 이들은 어쩌면 행운의 여신이 내린 빛을 받았다고도 생각한다. <개념과 원리가 있는 실전 외환 투자>에서는 필명 마포강변(윤석천)님의 투자 경험을 통한 노하우로 투자에 임하는 심리적인 자세와 외환거래의 ABC로 시작해 수익의 극대화 내지는 손실의 최소화하기 위한 기술적인 분석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 또한 세계적인 경제흐름과 무관하지 않지만, 특히 성공적인 외환거래를 위해서는 세계경제를 폭넓게 보고 분석하고 대처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비록 외환거래를 통한 투자 수익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경제공황에 가까운 외환위기를 두 차례나 경험했듯이 세계의 경제흐름을 좌우할 수 있는 외환거래의 흐름과 가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다면 결국 우리는 늘 남의 손에 휘둘리는 꼴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가 세계 경제의 흐름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는 <개념과 원리가 있는 실전 외환 투자>을 통해서 외환거래(FX)를 경험해 보는 것도 경제 공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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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을 말하다
탕윈 지음, 이문호 옮김 / 청홍(지상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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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신종플루로 세상은 극심한 공포감속에 하루하루를 보내야했다. 비록 즉각적인 치료제와 백신에 대한 연구와 공급으로 잦아들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감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더욱이 초기에 면역기능이 약한 사람들에게 치명적이라던 것과는 달리 건강한 사람들의 감염에 이은 사망 소식은 결코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서양의학이 보편된 지금의 시대에 한의학은 마치 우리가 몸이 피곤하다고 느낄 때 자주 찾게 되는 비타민처럼 다소 보조적인 의학쯤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 생활 속의 한의학은 보통 침술이나 보약정도로 생각된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한의학의 폭과 깊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갖는 소견에 불과하다. 서양의학이 들어오기 전 우리는 수백 년 동안에는 한의학에 의존했을 테니까 말이다.

한의원에서 한번이라도 진맥을 받고 보약이나 첩약을 지어 먹어본 사람은 한번쯤 이러한 생각을 가져보게 마련이다. 어떻게 손목으로 전해오는 심장박동의 울림만으로 몸의 상태를 진단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진단은 정말 맞는 걸까? 하지만 청진기를 통해서 심장박동소리와 장기의 소리를 감청해 병을 진단하던 의사와 별반 다를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현대의학은 꾸준히 늘고 있는 신종 질병들을 정복하기 위한 사투를 오늘도 게을리 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복되지 않은 질병들 역시 산적해 있다.

보통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고 차에 대한 수습과 수리가 서양의약이라면, 한의학은 어쩌면 선험적인 경험에 바탕을 두고 사고 차량 운전자에게 평소 안전수칙을 준수하며 운전하는 습관을 들이게 하는 예방적인 치료를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서양의학은 개별적인 사실을 중요시하는 서양사상을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한 부분을 고치는데 주력한다면, 관계를 중요시하는 동양사상이 바탕이 된 한의학은 신체뿐만 아니라 평소의 생활습관등과 질병의 연관성을 찾아 고쳐나가는데 주력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한의학을 말하다>에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의 질병의 원인을 꼭 외부로부터 유입된 세균이나 바이러스로만 보지 않고, 일차적으로 ‘정체-평형’의 파괴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그 정체평형의 깨진 부분과 정도를 판단하여 회복시키는데 이 과정을 ‘변증시치(辨證施治)’라 말한다. 바로 이 책에서 변증시치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한의학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의학을 말하다>에서는 변증시치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담고 있다. ‘생명’편에서는 원음과 원양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는 생명활동에 필요한 원동력에 대해서, ‘진단’편은 현대의학의 첨단기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내재한 동태 평형의 상황을 진단해 정확하고 객관적인 증상과 질병을 파악하는 한의학에 대해서, ‘치료’편은 질병의 원인을 진단해 파괴된 동태평형을 정상으로 회복시키는 치료와 원리에 대해서, 그리고 ‘팔법’편에서는 한의학의 모든 치법은 ‘외부로부터 들어온 사기(邪氣)’를 몰아내고, 자신의 정기(正氣)를 보충한다‘는 원칙을 중심으로 운용되며, 보허(補虛)와 거사(祛邪)의 원칙을 통해 다채로운 치법을 연출할 수 있는 한의학의 한법(汗法), 토법(吐法), 하법(下法), 화법(和法), 온법(溫法)과 청법(淸法), 소법(消法), 보법(補法)등의 질병치료 준칙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갈수록 늘어가는 신종 세균과 바이러스의 공포감속에서 살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의 신체를 이루는 세포며 장기들이 따로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고 부단히 상호작용을 주고 받는 관계의 결정체라는 점을 깊이 이해하고, 먼저 자신의 몸의 성질을 잘 알고 특히 음식 등 평소 생활 중에서 접하는 것들이 내 몸과 순행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인다면 보다 건강한 몸과 정신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한의학을 말하다>는 내 몸의 평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질병치료의 방법이며, 건강수칙임을 일깨워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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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2 정진홍의 인문경영 시리즈 2
정진홍 지음 / 21세기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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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감동이나 지식이 나열된 영화나 책은 스크린의 스탭들의 이름이 나열된 자막이 올라가고, 마지막장에 적힌 가격을 다시금 확인하고 덮는 순간부터 서서히 기억에 대열에서 조금씩 뒤로 밀려가기 시작한다. 일주일에도 수십 편의 영화와 수십 수백 권의 책들이 관객과 독자들을 향해 이성과 감성의 손짓을 한다. 그 중 일 년에 단 한편의 영화와 단 한권의 책이 주는 진한 감동과 감성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가끔씩 꺼내볼 수 있다면 일상의 큰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연말이나 명절특집으로 TV에서 의지와는 상관없이 방영되어 재탕, 삼탕 해가며 봐야했던 영화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두 번 이상 스크린을 통해서건 아님 집에서 DVD등을 통해서 봤던 영화들을 손에 꼽아봤다. 스크린을 통해서는 지난해 영화 “다빈치 코드”의 2편이라 할 수 있는 종교와 과학 사이에서의 끊임없는 진실공방을 그린 톰 행크스 주연의 “천사와 악마”였다. 그리고 그동안 5회 이상 봤고, 언제고 내 스스로 감성이 메말라있다고 느낄 때나 시원한 카타르시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는 영화가 있다. 바로 “노트북”이라는 영화다. 영화의 내용은 노년의 신사(가너)는 같은 양로원에 있는 한 여인(롤랜즈)에게 낡은 공책 속에 담겨져 있는 오래된 사랑이야기를 정기적으로 읽어준다. 신분의 차로 헤어졌다가 7년이 지나 재회해서 다시 나누었던 자신들의 사랑이야기를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치매증상으로 기억을 못하던 여인(롤랜스)이 기억을 잠시 되찾고, 둘은 같은 침대위에서 두 손을 꼭 잡은 채 생을 마감한다. 지금도 다시금 줄거리를 적다보니 왠지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짐을 느낀다. 어쩌면 이 영화를 통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가슴 저리게 느껴서인 것 같다.

이렇게 그동안 볼 때마다 잔잔한 감정을 일으켜주는 영화가 있었다면, 지금 소개할 책은 영화 “노트북”이 메마른 감정을 일깨워 주었다면, 펼쳐볼 때마다 일상에 지쳐 다소 흐릿해진 이성적인 판단과 감성을 일깨주곤 했다. 1권의 명쾌함에 끌려 기다렸던 책이었기에, 단숨에 읽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지만, 구입 후 1년이 넘도록 천천히 곱씹으며 읽었던 책이다. 바로 저자 정진홍의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2>이다.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2>에 대한 발간의지는 1차적으로는 그동안 기업이 지나치게 양적인 팽창에만 힘써온 나머지 상실된 인본사상을 일깨우기 위해 CEO들의 경영마인드를 재무장시키기 위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나와 같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인문이라는 다소 낯선 학문과 친숙해질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2권에서는 1편에 이어 치세, 자조, 문화, 소통, 권력, 징비 등 11가지의 주제로 경영전선에 첫발을 내딛는 새내기 사장님들부터 미래의 CEO를 꿈꾸며 밑에서 경주하고 있는 모든 직장인들이 쉽게 보고 마음으로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해, 그동안 물질적가치의 추앙으로 경시된 인본주의적인 경영마인드의 뿌리의 만들어 준다. 비록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2> 역시 1편에서와 마찬가지로 여러 양서들 속에서 사상적 뿌리를 이끌어 냈지만, 이 또한 같은 책을 읽고도 분분한 해석을 늘어놓을 수 있는바, 저자의 명쾌한 분석적인 해설은 인문경영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는 이들에게 정확한 가늠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2편에서는 아무래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대내외적인 정세 때문일까 ‘정관의 치’라 불리는 당태종의 정치담이 담긴 “정관정요”를 해석한 ‘치세’편과 아무리 어려운 세상을 살더라도 무릇 모든 일은 자신으로 비롯됨에 무엇보다 자신을 일깨워 일신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선사한 새뮤얼 스마일스의 “자조론”을 해석한 ‘자조’편은 눈길을 자주 오래 머물게 했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은 관련도서에 대한 궁금증과 섭렵하고 싶은 욕심으로 이어져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버튼을 과감하게 누르게 만들기도 했다.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이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갖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통찰력이 꼭 특별한 비법이 가해지거나, 오래된 기풍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문을 통한 통한 통찰력은 가깝게는 오늘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 주고받는 행동이나 말속에서도 충분히 고민해보고 생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발로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다. 하지만 어제 읽었고, 오늘 읽으며, 내일 또다시 읽어야 할 이 책은 읽을 때마다 인문이나 경영이라는 학문적인 깊이보다는 아주 평범한 배려를 마음에 담아, 함께하고 있는 이들에게 가볍지만 따뜻한 악수로 다가설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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