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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어록청상 ㅣ 푸르메 어록
정민 지음 / 푸르메 / 2007년 9월
평점 :
현재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모든 것들이 새롭게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단지 형체를 달리한 세월의 흔적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수백 수천 년을 거듭했어도 태양빛 말고 지구 밖에서 안으로 들인 것이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모든 만물이 지구 안에 품고 있던 것이 사멸의 수레바퀴를 돌다 만들어진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그러한데 이것들을 보며 살고 있는 인간들의 생각이라고 다를 것이 있을까? 인간의 생각 또한 이러한 만물의 이치처럼 사물이 형체를 달리하는 것처럼 단지 육신을 달리하여 전이될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이 변했으니 생각 또한 달라져야 한다고 안달을 부린다. 단지 변한 것은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 것을 말이다.
가령 우리가 즐겨보는 TV사극 속에서 임금과 신하들, 스승과 제자, 또는 집에서 아버지와 가족들이 나누는 대화를 보면 비록 시대를 달리하고, 말의 형식을 조금 달리하였을 뿐 지금의 우리의 생각과 대부분 일치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시대의 말을 차용하여 사용하고, 변화된 세상의 형식을 무시하면서까지 따르자는 얘기는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하는 것은 바로 예부터 변함없이 전해지는 인간의 도리와 세상의 이치를 헤아리는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들 세상인심이 무척이나 각박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변함없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자신을 헌신하며 사는 이들을 맞이하곤 한다. 이는 단지 내 자신이 변한 것이지 세상인심이 변한 것이 아니라는 반증인 셈이다. 겉으로 화려해보이지만 타락한 일들은 추종하며, 좋은 인습에는 남들도 그러니까 나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스스로 등 돌리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지 못한 까닭이다. 세상을 올바르게 잡아가든, 잘못된 세상에 엉켜 매어 따라가든 결국은 모두가 자기 잘잘못인 것을 우리는 너무 늦게 깨우치는 것 같다.
세상 모든 이들을 향한 꾸지람처럼도 들리는 다산 정약용의 어록을 정리한 <다산어록청상>을 읽으며,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비록 오랜 인생을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다산의 한마디 한마디는 지난 나의 삶의 흔적을 깊게 돌아보게 하고, 지난 과오의 원인과 결과, 얽히는 과정까지도 마치 명의의 진맥을 보고 몸의 상태를 자기 몸인 듯 상세하게 주지시키듯 짚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러한 꾸지람을 들을 수 있다는 것 또한 나에게는 큰 복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산어록청상>에 나열한 애정 어린 꾸지람은 무릇 인간으로 태어나 지녔어야 할 소임과 도리와 더불어 세상을 돌보는 이치까지도 마음 깊이 전달해주었기 때문이다.
비록 혼자의 몸으로 세상에 태어나지만 결코 혼자의 몸으로 살아가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가깝게 가정의 만사에 자신이 관여할 것이 있으며,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작은 부품이지만 제 할 역할이 있는 법이다. 따라서 수신(修身)을 통해 자신을 가꾸는 것 뿐만 아니라 적절한 치학(治學)으로 독서(讀書)와 문예(文藝), 학문(學問)을 익혀, 자신의 처지에 걸맞은 치산(治産)과 경제(經濟)를 도모하여 경세(警世)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필자는 비록 <다산어록청상>에 담고 있는 말씀들이 유병(遺秉) 즉 추수하고 남은 이삭들을 추슬러 엮어 놓았다고 하지만, 어떠한 필요나 절실함에 따라서는 유병이 제때 거둔 알곡보다 더욱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것처럼 그동안의 말과 행동에 있어 많은 부덕함을 가진 내 자신과 더불어 많은 이들에게 이 유병은 그 어떤 알곡보다 값진 마음의 양식이 되고 안식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받아들인 마음은 앞으로의 삶에 있어 작은 초막집을 짓더라도 기둥을 튼튼히 하게 만들며, 부족한 삶속에서도 나보다 남을 걱정할 수 있는 너그러움과 무엇보다 자신을 가장 잘 돌아볼 줄 아는 자아를 일깨워 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