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1 - 하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밀레니엄 (아르테)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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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스웨덴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의 나라임에도 왠지 머릿속엔 단지 백지 한 장만이 놓여있다. 소설<밀레니엄>은 그 하얀 공간에 독특한 색감으로 옷을 입힌다. 그럼으로 비록 귀에 익숙하지 않은 이름과 명칭으로 가득하지만 마치 내가 그 나라 안에 살고 있는 것처럼 나의 상상력에도 옷을 입혀간다. 미스터리 혹은 스릴러 소설의 극치는 색다른 예측불허의 반전을 통해서 독자들을 전율케 한다. 소설<밀레니엄>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반전은 바로 반전을 예측하고 있는 기대감에 허를 찌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어떠한 큰 화제 없이도 독자들의 오감을 집중하게 하는 힘이 바로 그것이다.

 여든두 번째 생일날에도 어김없이 발신인 불명의 압화 액자가 배달된다. 오늘로서 마흔네 번째 꽃이 된 셈이다. 이렇게 소설은 시작된다. 주인공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는 책 제목과 같은 월간 ‘밀레니엄’ 의 경제전문기자이자 주요주주이다. 그는 작성한 기사로 인한 베네르스트룀에 대한 명예훼손 행위가 유죄로 판결되어 ‘슈퍼 블롬크비스트’ 라는 별명을 한동안 듣기 힘들게 된다. 자신의 유죄판결로 월간 ‘밀레니엄’ 마저 광고 격감으로 위기를 맞고 있어, 잠시 편집주간자리를 내놓고 베네르스크룀에 대한 복수의 날을 세우기 위해 다짐을 한다. 이때 헨리크 반예르의 뜻하지 않은 제안으로 헤데뷔마을에서의 생활이 시작되고, 반예르가의 복잡한 현재진행형인 가족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40여년전 실종되어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하리에트 반예르의 실종 또는 살해에 대한 다른 단서를 찾기 위한 미스터리의 여행은 계속된다.

 무엇보다 책속에 인쇄된 것 외에 반예르 가계도와 헤데뷔 마을의 약도, 그리고 간략하게 주요 등장인물들을 적혀 있는 붉은색 쪽지를 발견하고 이채롭다고 느꼈다. 이건 분명 생각보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관계의 복잡성에 대한 예견이었던 것이다. 그 예상을 그대로 적중, 5대에 걸친 반예르 가문의 치밀한 구성의 이야기들은 가히 필자의 상상력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흐름 중간에 스웨덴이란 나라가 갖고 있는 제도적 모순점이나 문제점들을 이야기를 통해서 드러내 보여줌으로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시키고 더불어 마치 자국민들에게 강한 자성과 비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했다. 가령스웨덴 여성의 18퍼센트는 살면서 남성의 위협을 한 번 이상 받은 적이 있다.”(p.15) 로 시작해 “성폭행을 당한 스웨덴 여성 중 92퍼센트가 고소를 하지 않았다.”(p.175)로 마무리 되는 이야기의 마디마디에 볼 수 있었던 스웨덴 여성의 학대와 성폭행의 실태를 고발하는 메시지 또한 그러한 의식의 표명중 하나로 보였다.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보편적인 생각으로 이해하는 정도에 그치긴 했지만, “자기 보존 본능의 결여상태” 나 “내향적”, “사회성 결여”, “공감 능력 부족”, “자기중심적”, “정신병적, 비사회적 행동”, “협조 능력 및 학습 능력 부족”등의 단정적인 어휘들에 내몰려 리스베트 실란데르가 겪게 되는 후견인제도나 사회적 판단의 모순은 사회복지나 교육정책이 아직까지 취약한 우리의 현실속에서 시사하는 바를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의 제목 ‘밀레니엄’이란 단어의 의미는 왠지 저자의 무한한 상상력으로 다가올 새천년동안 소설에 지평을 열겠다는 열정과 열망이 담겨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낳게 했다. 그러한 열정과 열망이 무색하게 애초의 계획한 10부중 3부만을 남기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지만, 이 3부를 통해서 그 열정과 열망을 이어갈 독자들과 다른 작가들에게까지 정신적 혼을 불어 넣어 주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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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묻고 답하다 - 세상을 읽는 119개의 키워드, 노교수의 핵심 강의 노트
니시베 스스무 지음, 정경진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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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떠한 일과 사물에 관하여 지식으로 받아들일 때와 학문으로 받아들여 이해할 때 심적인 차이를 경험한다. 가령 어떠한 자리에서 누군가 “경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 봅시다.” 라고 말할 때와 “경제학에 관해서 이야기 해 봅시다.” 라고 말할 때 비록 경제라는 단어에 “학(學)” 자가 더해졌을 뿐임에도 왠지 심오하게 접근해야할 것 같고, 전공자가 아니면서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 될 것 같은 막연한 거리감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식에 강한 것 같은데 학문 앞에서는 약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아마도 ‘개념정리’ 정리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한다. 며칠 전 독학으로 학업을 마치신 한 저자와의 만남에서 그는 독학의 비결을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중등검정고시에서 박사과정까지 독학을 통해서 마칠 수 있었던 나름 공부의 비결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나만의 확실한 개념정리가 선행되었을 때 쉽게 머릿속에 정리되고 지식으로 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처음’이란 단어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겠는가? 저자는 ‘처음“을 사전의 정의처럼 ‘시간적으로나 순서상으로 맨 앞’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앞에 일어나는 것이 없고 뒤에 일어난 것만 있는 것’ 이라 정의하고 중간과 끝도 이처럼 연관 지어 나름의 개념으로 정리했다는 것이다. 우리가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사이에서 그리고 정보를 통해서 보고 듣고는 학문적인 단어들은 무수히 많다. 하지만 자신이 그 학문의 전공자가 되지는 못할망정 그 학문적인 단어의 자신만의 나름의 개념정리는 원만한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필수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학문 묻고 답하다>는 바로 앞에서 말한 어떠한 보편적이고 사전적인 의미만으로 학문적인 단어들을 이해하기보다는 그 단어에 자신만의 색깔을 한 번 더 입혀서 이해하고자 했던 한 일본인 학자의 사유가 제대로 드러나 있는 책이다. 필자가 정리한 정치와 국제경제에서 역사, 삶, 그리고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폭넓고 분야의 세상을 읽는 119개 키워드들에 관한 개념정리는 보편적인 지식을 넘어서 독자들에게 나름 개성 있는 이해를 하게도 만든다. 가령 “평등” 이라는 단어에 대한 필자의 개념정리와 고찰은 단순히 프랑스 인권선언이 말하는 ‘인간이 나면서부터 자유로우며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보편적 개념을 넘어서 현재 우리가 느끼는 평등은 어떤 평등인가 고민해서 ‘결과의 평등’과 ‘능력의 불평등’의 함수관계를 통해서 “민주주의는 평등이라는 이름 아래 '수평화의 낫'을 휘두르고 있다”(p.305) 하고 정리한다. 덧붙여 기회의 평등에 무게중심을 둔다며 다음과 같이 평등을 다시 한 번 정리한다. 결과의 평등은 사회 시스템이 보장하는 딱 그만큼의 평등이다. 말하자면 최저 보장인 셈이다. 그 다음의 모든 활동은 각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에 맡겨진다.”(p.306) 필자가 일본인 학자이기에 119개의 키워드 중에는 지극히 일본인들만이 일본인적인 이성과 감성을 담아 도출해 낼 수밖에 없는 키워드들도 여러 번 눈에 띄었다. ‘천황’, ‘2.26사건’, ‘종전 기념일’ 등과 익숙지 않은 일본 학자들의 이름들을 핵심키워드로 정리한다. 일본은 좀 더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긴 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이 이 책을 접할 것에는 미리 염두해 두지 않은 듯 하다.
   

 정말 이 책 한 권을 제대로 마음으로 이해해서 119개의 키워드들에 스스로 나름의 개념정리를 덧붙일 수 있다면, 그 어떤 학문에 대한 질문에도 자신감이 붙을 거라 생각한다. 자신감을 떠나서 적어도 관심밖의 학문과 지식에 대한 자신만의 짧은 소견을 말할 수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전히 2차 대전을 경험한 노교수의 폭넓은 학문에 대한 핵심노트에 일본 군국주의의 여운이 느껴지는 것이 다소 씁쓸하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한 관점은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분분할 수 있기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무엇보다 119개의 키워드를 통해서 이미 귀에 익숙한 학문적인 단어들을 나름 개념 정리해본 것만으로도 지식의 폭이 크게 확장 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 다음은 이러한 지식의 틀에 경험이라는 살을 붙여가는 것이 앞으로 내가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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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세계사 - 지금의 세계지도와 역사를 결정한 59가지 전쟁 이야기
김성남 지음, 진선규 그림 / 뜨인돌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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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지구촌의 곳곳에서는 포성과 총성의 소리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민간인들의 무고한 희생이 방송을 통해서 연일 보도되고 있다. 그 뿐인가 지난해 미국에서 촉발한 세계의 경제위기상황은 여전히 매섭게 우리의 호주머니를 위협하고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지금의 세계는 여전히 무력을 사용한 전쟁이 보편적이지만, 그보다 마치 아침의 안개처럼 조용히 국가를 위협할 수 있는 경제 전쟁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여기에 이제는 사이버상에서 해킹을 통한 도발도 전쟁의 새로운 수단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이런 관점으로 생각이라면, 지구촌은 온통 전쟁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얼마전 50대의 어르신과 대화하던 중 최근 이스라엘 공격으로 인해 무고한 희생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살아온 50년 동안에 한번도 전쟁을 겪지 않은 것만으로도 참 다행스럽고 행복하다는 말씀을 들을 때 크게 공감이 갔다. 비록 어찌 보면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힘든 경제상황속에서 하루하루를 전쟁과 같이 살아가고 있지만, 갑자기 마른 하늘의 날벼락과 같은 폭격과 총성의 공포감이 없다는 것만으로 행복을 찾을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든다.

 책<전쟁세계사>의 서문에서는 전쟁을 이렇게 말하며 시작한다. “전쟁속에는 인간사의 모든 면이 들어있다. 전쟁은 문학(文學)이자 사학(史學)이다. 전쟁은 연극이자 총천연색 영화다. 전쟁은 과학이자 예술이다. 무엇보다 전쟁은 인간의 모든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p.7) 사실 인류의 역사의 대부분은 이러한 전쟁의 역사가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한다. 전쟁은 원시시대의 먹을거리 쟁탈로부터 인종과 종교, 이념 그리고, 때로는 정말 사소한 일 때문에 촉발되어 수많은 군인들이 동원되어 치열한 전투를 벌여서 자웅을 가리려 한다. <전쟁세계사>는 이러한 세계의 역사에 전쟁을 통해서 일대혁신을 가져다 준 주요 전투와 그 전투를 빛나게 한 전쟁영웅 그리고, 전쟁무기의 발달과정, 전쟁 중 졸병들의 일기까지 담아서 마치 이야기를 통해서 과거의 전쟁을 즐기게 해 준다. 그렇다고 전쟁에 대한 미화만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제3장 전쟁하는 법에서 전하는 “중국 ‘목공의 시조’ 공수반과 겸애사상가이자 수비전의 대가였던 묵적의 한판 승부” 라는 이야기를 통해서 전쟁은 겸애(兼愛)로 스스로 자제하고, 반전은 단지 말뿐이 아닌 오히려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전쟁에 대한 앞선 연구와 개발로 준비해야한다는 묵자의 깊이 있는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어떻게 이런 기록이 남아있을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전쟁 중 졸병일기는 영웅중심의 전쟁사를 지금껏 보아온 사람들에게 색다른 묘미를 제공한다. 그 중 율리우스 발렌스 라는 로마군단병의 키레나이카 군단에서의 열흘간의 잡무 끝에 얻은 생각, ‘줄을 잘 서라’ 는 군에 갔다 온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공감하고 역시 군대와 같은 조직에서는 역시 줄 잘 서는 것도 필요함을 위트있게 담고 있다. 또 옥포해전을 앞둔 조선수병의 일기에서는 임진왜란 당시의 이순신 장군의 지휘관의 냉철함과 백성과 가족을 위한 가슴 따뜻한 의지를 한 수군졸병의 눈과 귀을 통해서 다시금 느껴볼 수 있다.

 인류 역사상 전쟁에 있어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역사의 지난 역사의 흐름이 증명을 하고 있다. 그러한 흐름의 증명에도 여전히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답답해져 온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기 위해 총칼을 들이 댄다는 것, 이것 역시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이념, 종교, 경제적 이윤 등 모두가 인간들의 몸과 마음을 통해서 만들고, 발전시켜 온 문화의 일부인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의 문화에 반목하고, 이해를 접어버린다면 불 보듯 ‘약육강식’ 이라는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인 탐욕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 전쟁은 계속시작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늘 세상에는 음지와 양지가 공존하는 법, 이런 음지의 세상도 좀 더 지구촌사람들이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할 수 있는 소통하는 장을 계속 만들어 갈 때 지구촌 곳곳의 총성이 잦아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먼전 지난 인류 역사 속의 전쟁들을 고찰해봐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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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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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자신의 눈앞에 그려진 사실을 바탕으로 그 사실을 만든 사람이며 사물과 소통하려 한다. 추운 겨울에도 베란다에 피어난 선인장 꽃을 바라봄으로써 식물이 내품는 생명력과 그 안에 품은 고결한 아름다움을 오감과 마음으로 소통한다. 이런 가식없는 소통의 근원적 대상은 아마도 자연이다. 자연은 지극히 사실만으로 인간과 소통한다. 하지만, 마치 사실을 자연이 내비치는 의견으로 생각하여 소통의 장애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소설<칼의 노래>,<현의 노래>로 유명한 작가 김훈은 본 에세이집 <바다의 기별>의 13편의 마치 서사시적인 에세이와 강의내용을 통해서 자연과 인간사이, 인간과 인간사이에 무차별적으로 생겨나는 불편한 소통을 바로 잡고 싶은 마음을 전한다. 그렇다고 어떠한 일들에 이념이나 사상을 투영시켜서 주장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의 삶속에 존재하는 무수한 사실과 의견의 차이에 대한 고찰과 사유를 통해서 생겨난 과거의 불균형적인 소통을 바로 잡고, 제대로 된 소통을 길을 열었으면 하는 희망의 바람을 적고 있다. 책속에서 필자는 사실과 의견의 차이는 구분해야하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필요성과 함께 역설한다.

[“꽃이 피었다”는 꽃이 핀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인 사실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주관적 정서를 섞어 넣은 것이죠.(p.141)]

[사실에 입각한다는 것은 인간이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p.134)]

[사람들은 왜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지 않고 의견을 사실처럼 말해버리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해버리는가. 아마도 그들이 당파성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p.135)]

[사람이 말을 하거나 언어를 사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을 잘 쓰고 세련된 수사학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여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p.147)]

[언어는 소통을 위해서만 존재합니다. 시나 소설들도 다 소통을 꿈꾸면서 존재하는 예술입니다. 소통이 목적이 아니라면 언어는 이 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p.148)] 

 위에 적은 필자의 관념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언어를 통한 소통의 의지는 책안의 에세이들을 천천히 음미하듯 읽다 보면 사실과 의견의 차이를 인식시키려는 마음을 여러 곳에서 만나 볼 수 있다. 특히‘고향과 타향’에서는 현대인의 고향과 타향을 혼동을 지적하며, 자신에 앞에 닥친 불쾌한 사실을 의견으로 들여 불상사에 이르게 하는 예를 그려주기도 한다. 13편의 에세이들이 모두 이런 사실과 의견의 차이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광야를 달리는 말’을 통해서는 자상함도 가정적이지도 않으며 그저 거칠고 가난했지만, 없는 광야를 내달린 아버지의 인간으로서의 울분과 열정을 단지 핏줄로 이해하려는 마음을 엿볼 수 있고,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에서는 사위인 시인 김지하의 출소일에 영등포 교도소 앞에서 거의 꼬박 하루를 손자를 등에 업고 기다리는 박경리 선생의 묘사를 통해서 마치 박경리선생의 일대기중 단편을 짧은 영화화면을 통해서 보는 듯 한 생생함을 전달한다, 그 초라함과 눈속에서 빛을 발하는 시대의 지성이 전하는 정신을 다시금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칠장사 기행’에 담아낸 칠장사와 임꺽정에 얽힌 이야기와 안성의 산하에 대한 표현 묘사는 고향이 안성인 나의 눈앞에서도 멋들어지게 그려져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지나지게 뒤돌아볼 틈도 없이 바쁘게 달리다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기본적인 것에서일 때가 많다. 가령 불규칙한 식생활이 가져오는 질병이다. 인간은 결국 자연의 일부이기에 자연에 순응하고, 다른 인간과 제대로 소통할 때 인간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모든 일은 돌 하나로부터 시작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첫 번째돌의 위치와 방향에 따라서 그 다음에 이어질 돌의 크기와 모습과 위치가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늘 매사에 가장 기본에 충실해야 기본이 없이 쌓여진 탑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바다의 기별>을 통해서 필자가 전하고 하는 메시지 중의 하나는 바로 인생의 큰의미는 생로병사와 같은 자연의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실과 의견의 차이를 시작부터 깊이 사유함을 통한 내면의 기본을 다짐으로써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을 전해들은 것 만으로도 2009년을 시작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며, 진정한 소통을 위한 내면을 다지는 한 해로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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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미래가 온다 - 세계의 지도를 바꾸는
박영숙 지음 / 경향미디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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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절친한 친구과 나누는 미래속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메뉴로 등장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현재 미혼이고 사귀는 사람이 없다면 자신의 Dream girl(이상형)에 대한 이야기나 다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결국 뭐니뭐니해도 Money(돈)! 경제력 구축이나 재테크에 관한 얘기들이다. 그런데 오늘 친구와 미래에 대한 생각을 나누면서 모두가 생각해봐야할 중요한 점을 발견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보편적인 사고와 관심’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것도 한글을 제대로 뗌과 동시에 고스톱에 입문을 했다. 그리고 지금이야 집집마다 컴퓨터가 있지만, 약 20년 전, 그야말로 컴퓨터 광고가 TV전파를 타기 시작할 때부터 친구는 286,386,486 펜티엄으로 이어지는 컴퓨터 역사를 따라서 삼국지에서 WOW까지 자신의 게임역사를 써왔던 것이다. 이런 두 친구의 과거에서 비롯된 습관을 통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이미 조기에 어려서부터 고스톱이라는 사행성 놀이와 사이버 공간에서의 게임에 대한 내성을 갖은 탓에 지금에 이르러도 단지 즐길 뿐이지 자신의 삶을 망가뜨릴 정도로 그런 자신을 좌시하고만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어떠한 보편적인 가치관이 성립되어 있다면 고스톱이든 게임을 접한다고 해도 지나치게 현실을 무시한 체 빠져들지 않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오늘이라는 현재와 내일의 미래는 늘 연결선상에서 우리를 현재가치에 맞게 생각하게도, 아니면 때로는 현재에서도 미래지향적인 생각들을 많이 발산해낸다. 미래, 새로운 미래가 다가왔을 때 누가 주인노릇을 할 것인가...? 단지 컴퓨터에 익숙한 젊은 사람들이 아니면, 경제적인 여유를 등에 업고 새로운 트렌드에 쉽게 자신을 노출하고 동화시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는 단지 젊은이도 경제적인 여유를 갖은 이도 아닌 늘 미래에 대한 준비로 자신을 변화시켜 온 사람들이 미래의 주인공이 되지는 않을까 싶다. 책<새로운 미래가 온다> 에서 말하는 미래의 가상공간속 내가 할 수 있는, 적어도 그 안에서 나의 존재적 가치를 확신한다는 것은 어불성설과도 같다. 왜냐하면 그 미래의 가상공간자체도 가상이라는 허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첨단의 나노기술과 생명공학의 수혜자입장으로서 어떠한 선도자적인 입지나 지위를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현실상황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모두가 미래의 선도자가 되고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야말로 책속에 나열하며 기대되는 모든 일들은 현재가 아닌 미래의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새로운 미래가 온다>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필자가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어쩌면 펼쳐질 미래에 순응하고 적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편적인 사고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보통 미래학하면 앨빈 토플러 등의 미래학자가 내놓은 예언자적인 생각이 담긴 미래상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필자는 다가올 미래의 전반적인 시대상을 전하고 있다. 개인과 기업, 정치과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 교육의 변화와 그에 따른 시대 필요적 인재상과 유망 직종 및 직업, 인간관계까지 그야말로 한 개인으로서 크게 변화된 미래에서 성공하기 위한 근본적인 소스를 제공한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 이것은 어떠한 미래에 개인의 성공적인 삶을 위한다기보다 그저 변화된 미래에서도 잘 적응하며 살 수 있는 보편적인 사고로 정신무장을 시켜준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도 그랬던 것 처럼 개인이든 국가든 리더로서 조직과 세계를 지배하며 현재와 미래를 사느냐 아니면 매니저이하의 수동적인 삶을 사는냐는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선택과 더불어 부단한 노력의 수반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과거를 통한 현재의 내 모습이 그러하듯 미래의 나의 모습과 국가의 모습은 둘 다 리더가 되기 위한 역량을 얼마만큼 키워 가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최첨단의 나노기술로 물질의 풍요와 함께 의식주 전반적인 환경의 안정을 이루고, 사이버 나우 와 AI로봇을 통한 교육과 레저 등을 손쉽게 즐길 수 있음에도 관심조차 없다면 그건 사이버 나우는 편한 몸빼바지만도 못하고, AI로봇은 천덕꾸러기 바둑이만도 못해지는 것이다. 미래에는 집단이성이 강조된다고 한다. 그런 집단이성의 틀 안에서 왕따 당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미래를 공부하고, 이해하며,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즐기수 없는 미래를 탓하면 민속촌만 배외할 수 만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행복한 미래의 리더로서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책에서 전한 리더십 덕목 13계명을 다시금 읊조려본다.

 

*-리더십 덕목 13계명-*

1) 차이점 : 계획을 짜고 실행을 주도하는 사람이 지도자이고,
그 일에 목을 매고 허덕이면서 해내는 사람은 매니저이다.

2) 지도자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거나 새로운 상품을 선도하지만,
매니저는 관리만 한다.

3) 지도자는 새로운 것을 창작, 발명, 시작하지만
매니저는 누군가가 준 과제를 시작한다.

4) 지도자는 오리지널이고, 매니저는 카피이다.

5) 지도자는 개발하지만 매니저는 유지, 보수한다.

  6) 지도자는 인재에 초점을 맞추지만,매니저는 시스템이나 구조를 생각한다.

7) 지도자는 신뢰를 이끌어오려 하지만 매니저는 컨트롤을 중요시한다.

8) 지도자는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지만 매니저는 단기 목표에 집중한다.

9) 지도자는 무엇을, 왜라고 묻고 매니저는 어떻게, 언제라고 묻는다.

10) 지도자는 지평선에 눈을 맞추지만 매니저는 최소한의 기준에 눈을 맞춘다.

11) 지도자는 도전하지만 매니저는 현상 유지를 원한다.

12) 지도자는 개별 인간이지만 매니저는 전통적인 훌륭한 군인이다.

13) 지도자는 옳은 일을 하지만 매니저는 맞는 일을 한다.(p.10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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