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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자신의 눈앞에 그려진 사실을 바탕으로 그 사실을 만든 사람이며 사물과 소통하려 한다. 추운 겨울에도 베란다에 피어난 선인장 꽃을 바라봄으로써 식물이 내품는 생명력과 그 안에 품은 고결한 아름다움을 오감과 마음으로 소통한다. 이런 가식없는 소통의 근원적 대상은 아마도 자연이다. 자연은 지극히 사실만으로 인간과 소통한다. 하지만, 마치 사실을 자연이 내비치는 의견으로 생각하여 소통의 장애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소설<칼의 노래>,<현의 노래>로 유명한 작가 김훈은 본 에세이집 <바다의 기별>의 13편의 마치 서사시적인 에세이와 강의내용을 통해서 자연과 인간사이, 인간과 인간사이에 무차별적으로 생겨나는 불편한 소통을 바로 잡고 싶은 마음을 전한다. 그렇다고 어떠한 일들에 이념이나 사상을 투영시켜서 주장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의 삶속에 존재하는 무수한 사실과 의견의 차이에 대한 고찰과 사유를 통해서 생겨난 과거의 불균형적인 소통을 바로 잡고, 제대로 된 소통을 길을 열었으면 하는 희망의 바람을 적고 있다. 책속에서 필자는 사실과 의견의 차이는 구분해야하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필요성과 함께 역설한다.
[“꽃이 피었다”는 꽃이 핀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인 사실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주관적 정서를 섞어 넣은 것이죠.(p.141)]
[사실에 입각한다는 것은 인간이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p.134)]
[사람들은 왜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지 않고 의견을 사실처럼 말해버리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해버리는가. 아마도 그들이 당파성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p.135)]
[사람이 말을 하거나 언어를 사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을 잘 쓰고 세련된 수사학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여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p.147)]
[언어는 소통을 위해서만 존재합니다. 시나 소설들도 다 소통을 꿈꾸면서 존재하는 예술입니다. 소통이 목적이 아니라면 언어는 이 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p.148)]
위에 적은 필자의 관념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언어를 통한 소통의 의지는 책안의 에세이들을 천천히 음미하듯 읽다 보면 사실과 의견의 차이를 인식시키려는 마음을 여러 곳에서 만나 볼 수 있다. 특히‘고향과 타향’에서는 현대인의 고향과 타향을 혼동을 지적하며, 자신에 앞에 닥친 불쾌한 사실을 의견으로 들여 불상사에 이르게 하는 예를 그려주기도 한다. 13편의 에세이들이 모두 이런 사실과 의견의 차이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광야를 달리는 말’을 통해서는 자상함도 가정적이지도 않으며 그저 거칠고 가난했지만, 없는 광야를 내달린 아버지의 인간으로서의 울분과 열정을 단지 핏줄로 이해하려는 마음을 엿볼 수 있고,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에서는 사위인 시인 김지하의 출소일에 영등포 교도소 앞에서 거의 꼬박 하루를 손자를 등에 업고 기다리는 박경리 선생의 묘사를 통해서 마치 박경리선생의 일대기중 단편을 짧은 영화화면을 통해서 보는 듯 한 생생함을 전달한다, 그 초라함과 눈속에서 빛을 발하는 시대의 지성이 전하는 정신을 다시금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칠장사 기행’에 담아낸 칠장사와 임꺽정에 얽힌 이야기와 안성의 산하에 대한 표현 묘사는 고향이 안성인 나의 눈앞에서도 멋들어지게 그려져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지나지게 뒤돌아볼 틈도 없이 바쁘게 달리다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기본적인 것에서일 때가 많다. 가령 불규칙한 식생활이 가져오는 질병이다. 인간은 결국 자연의 일부이기에 자연에 순응하고, 다른 인간과 제대로 소통할 때 인간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모든 일은 돌 하나로부터 시작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첫 번째돌의 위치와 방향에 따라서 그 다음에 이어질 돌의 크기와 모습과 위치가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늘 매사에 가장 기본에 충실해야 기본이 없이 쌓여진 탑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바다의 기별>을 통해서 필자가 전하고 하는 메시지 중의 하나는 바로 인생의 큰의미는 생로병사와 같은 자연의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실과 의견의 차이를 시작부터 깊이 사유함을 통한 내면의 기본을 다짐으로써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을 전해들은 것 만으로도 2009년을 시작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며, 진정한 소통을 위한 내면을 다지는 한 해로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