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묻고 답하다 - 세상을 읽는 119개의 키워드, 노교수의 핵심 강의 노트
니시베 스스무 지음, 정경진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어떠한 일과 사물에 관하여 지식으로 받아들일 때와 학문으로 받아들여 이해할 때 심적인 차이를 경험한다. 가령 어떠한 자리에서 누군가 “경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 봅시다.” 라고 말할 때와 “경제학에 관해서 이야기 해 봅시다.” 라고 말할 때 비록 경제라는 단어에 “학(學)” 자가 더해졌을 뿐임에도 왠지 심오하게 접근해야할 것 같고, 전공자가 아니면서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 될 것 같은 막연한 거리감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식에 강한 것 같은데 학문 앞에서는 약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아마도 ‘개념정리’ 정리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한다. 며칠 전 독학으로 학업을 마치신 한 저자와의 만남에서 그는 독학의 비결을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중등검정고시에서 박사과정까지 독학을 통해서 마칠 수 있었던 나름 공부의 비결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나만의 확실한 개념정리가 선행되었을 때 쉽게 머릿속에 정리되고 지식으로 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처음’이란 단어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겠는가? 저자는 ‘처음“을 사전의 정의처럼 ‘시간적으로나 순서상으로 맨 앞’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앞에 일어나는 것이 없고 뒤에 일어난 것만 있는 것’ 이라 정의하고 중간과 끝도 이처럼 연관 지어 나름의 개념으로 정리했다는 것이다. 우리가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사이에서 그리고 정보를 통해서 보고 듣고는 학문적인 단어들은 무수히 많다. 하지만 자신이 그 학문의 전공자가 되지는 못할망정 그 학문적인 단어의 자신만의 나름의 개념정리는 원만한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필수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학문 묻고 답하다>는 바로 앞에서 말한 어떠한 보편적이고 사전적인 의미만으로 학문적인 단어들을 이해하기보다는 그 단어에 자신만의 색깔을 한 번 더 입혀서 이해하고자 했던 한 일본인 학자의 사유가 제대로 드러나 있는 책이다. 필자가 정리한 정치와 국제경제에서 역사, 삶, 그리고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폭넓고 분야의 세상을 읽는 119개 키워드들에 관한 개념정리는 보편적인 지식을 넘어서 독자들에게 나름 개성 있는 이해를 하게도 만든다. 가령 “평등” 이라는 단어에 대한 필자의 개념정리와 고찰은 단순히 프랑스 인권선언이 말하는 ‘인간이 나면서부터 자유로우며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보편적 개념을 넘어서 현재 우리가 느끼는 평등은 어떤 평등인가 고민해서 ‘결과의 평등’과 ‘능력의 불평등’의 함수관계를 통해서 “민주주의는 평등이라는 이름 아래 '수평화의 낫'을 휘두르고 있다”(p.305) 하고 정리한다. 덧붙여 기회의 평등에 무게중심을 둔다며 다음과 같이 평등을 다시 한 번 정리한다. 결과의 평등은 사회 시스템이 보장하는 딱 그만큼의 평등이다. 말하자면 최저 보장인 셈이다. 그 다음의 모든 활동은 각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에 맡겨진다.”(p.306) 필자가 일본인 학자이기에 119개의 키워드 중에는 지극히 일본인들만이 일본인적인 이성과 감성을 담아 도출해 낼 수밖에 없는 키워드들도 여러 번 눈에 띄었다. ‘천황’, ‘2.26사건’, ‘종전 기념일’ 등과 익숙지 않은 일본 학자들의 이름들을 핵심키워드로 정리한다. 일본은 좀 더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긴 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이 이 책을 접할 것에는 미리 염두해 두지 않은 듯 하다.
   

 정말 이 책 한 권을 제대로 마음으로 이해해서 119개의 키워드들에 스스로 나름의 개념정리를 덧붙일 수 있다면, 그 어떤 학문에 대한 질문에도 자신감이 붙을 거라 생각한다. 자신감을 떠나서 적어도 관심밖의 학문과 지식에 대한 자신만의 짧은 소견을 말할 수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전히 2차 대전을 경험한 노교수의 폭넓은 학문에 대한 핵심노트에 일본 군국주의의 여운이 느껴지는 것이 다소 씁쓸하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한 관점은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분분할 수 있기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무엇보다 119개의 키워드를 통해서 이미 귀에 익숙한 학문적인 단어들을 나름 개념 정리해본 것만으로도 지식의 폭이 크게 확장 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 다음은 이러한 지식의 틀에 경험이라는 살을 붙여가는 것이 앞으로 내가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