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화 순례
최준식 지음 / 소나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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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나의 서울생활도 5년이란 나이를 먹는다. 예전에 서울에 오가며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느끼는 서울생활은 과히 비관적이었다. 무엇보다 비교적 공기 맑은 지역에서 20년 넘게 살아 온 나에게 서울의 공기는 답답함 자체다. 그리고 환경공해 이상의 스트레스를 주는 교통체증까지 그래서 서울은 나의 거주에 필요한 조건들을 충분히 채워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서울 하늘아래 살고 있다. 지금은 서울의 문화가 나의 채워주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조건들을 다르게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600년의 수도 서울은 그 오랜 기간 한반도의 중심축으로 자리한 만큼 수많은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체험을 통해서 얻었을까? 아니다 단지 일반적이고 단편적인 지식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실제로 서울 안에 널려 있는 역사의 현장을 지나고 문화재를 바라보면서도 그 현장과 문화재의 유래나 의미에 대해서는 몇마디 달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듯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1,000만명이 넘게 살고 있는 서울의 문화는 우리의 무관심속에서 그 뿌리를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는 바로 남대문 화재소실 등이 입증한 셈이다.

 사실 서울의 문화에 대한 나의 관심은 최근에 중국 상해여행을 다녀와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물론 운 좋게도 우리가 방문하는 곳마다에 담겨진 역사이야기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조선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의 역사나 문화에 연결 지어서까지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만약 외국인 친구가 있어 서울을 방문할 때 나는 어디를 데려가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각성을 했다. 적어도 외국인들이 서울에 왔을 때 가장 많이 찾는다는 경복궁이나 인사동, 창덕궁 등에 대해서만큼은 그 안에 담겨진 역사적인 이야기와 함께 설명할 수 도록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이 책 <서울문화순례>와의 인연이 된 셈이다.

 <서울문화순례>는 애초에 외국인을 위한 관광서적을 재구성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동경로를 무척 자세하게 담고 있다. 소위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하는 생 생각을 많이 하며 살고 있는 나 같은‘서울 촌놈’들에게는 안성마춤이다. 그리고 책의 구성은 네 갈래의 길로 구성, 첫 길에서는 서울의 풍수지리와 더불어 남산안의 유적들과 얽힌 이야기들을 담고 있고, 두 번째 길에서는 서울의 심장부에 위치한 경복궁과 북촌 한옥, 그리고 창덕궁을 다양한 사진을 통한 설명으로 만날 수 있어 서둘러 가서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세 번째 길은 국사당과 종묘, 성균관, 조계사 등을 돌아보며 서울 안에 간직된 한국인의 민간신앙을 포함한 종교 유적의 뿌리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길에서는 옛 것과 새 것의 교차점이라 할 수 있는 인사동과 홍대 앞의 문화들을 돌아보며 앞으로 옛 것을 지키는 마음과 새로운 것을 접목시켜 발전 시켜야 하는 우리의 남은 숙제들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바라보는 보존되어 있는 서울의 유적과 문화들은 우리들의 작지 않은 무관심으로 묻혀버리고 변색되거나 퇴색해 버린 것도 있으며, 신구의 조화를 이룬 것이 있는 반면 전통이 무시한 체 새로움을 추구한 부분도 발견할 수 있다. 저자 역시도 책의 중간 중간에서 현재의 유적과 문화재 관리 실태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처음엔 좀 지나치게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해석하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했지만, 이러한 정책방향과 의식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은 분명 앞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간직한 소중한 문화 유적들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과정에 있어 전환적인 각성의 필요성을 역설한다고 생각한다.

 왠지 앞으로 서울 안에서의 문화생활이 풍성해 질것에 대한 기대감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한 달에 하루 이틀 아니 많게 일주일에 하루정도는 문화의 날로 정해 놓고 잠시 지나든 그곳에 머물러 보다 자세히 음미하든 서울의 살아있는 문화들을 찾아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겨볼 생각이다. 그러다보면 나만의 맞춤형 서울문화순례 지도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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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 - 누가 감히 '한다면 하는' 나라 미국을 막아서는가
아브람 노엄 촘스키 지음, 장영준 옮김, 데이비드 버사미언 인터뷰 / 시대의창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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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촘스키와의 대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그 이름은 귀에 익숙하다. 무엇보다 세상의 진실을 대변하는 듯 한, 그동안 나 이외에 수많은 사람들의 이성과 감성을 깊이 자극한 인상이 나에게도 어렴풋이 여운으로는 남아 있었다. 나는 먼저 책의 몇 장을 앞서 뒤적거렸다. 인터뷰형식의 구성으로 된 책의 내용은 왠지 첫인상이 좋지는 못했다.

그리고, 본격으로 “촘스키의 책이 필요 없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옮긴이의 글로부터 촘스키를 나의 머릿속에 각인해갈 준비를 했다. 목차를 지나 8개의 PART중 1개를 읽었을 때 이미 촘스키가 나의 심장 근처에서 대화를 걸고 있었다. 그는 무엇보다 “자유”라는 단어로 내 마음을 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촘스키의 글을 통해서 내가 느끼는 자유는 결국 이데올로기적 자유였다. 세상의 권력의 중심에 서있는 사람이건, 하루살이에 힘겨운 노동자나 여전히 줄 듯 늘어나는 노숙자들이건, 사람들은 모두가 좋은 세상을 갈망한다. 모두의 좋은 세상에 가장 중요한 조건은 자유다.

우리는 한동안은 자유에 목말라했었다. 그리고 완전한 자유는 아니었지만, 조금의 자유를 누리며, 바로 풍요에 눈을 돌렸다. 그리고 완전한 풍요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 사이 권력자들은 풍요와 안전이란 눈앞의 가림막으로 자유를 억압하며, 유린한다. 결국 제자리 인 셈이다. 물론 눈에 보이는 세상은 크게 변화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저변에서 우리의 자유를 조금씩 빼앗다가 어느새 송두리째 빼앗아버릴지 모르는 비도덕은 여전히 깊은 뿌리를 뻗어가고 있었다.

촘스키와의 대화는 바로 이러한 진실을 왜곡하며 인권을 유린하는 인간의 사악함에서 비롯된 비도덕적인 뿌리에 제초제를 가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이런 경험들을 갖고 있다. 그동안 진실인줄 알았던 일들에 대한 새로운 진실을 접했을 때의 배신감과 더불어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말이다. 촘스키가 바라보고 끊임없이 진실을 향한 열정은 바로 이러한 카타르시스의 발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에서도 촘스키는 우리를 까맣게 속이려 했던 진실의 왜곡에 메스를 드리워 새로운 카타르시스의 발로를 열어 주었다. 그동안 외신의 체로 걸러진 기사로 잘 알고 있던 미국, 그리고 그들과 동조하는 국가와 무리들의 계획된 음모, 그 치밀한 각본처럼 짜여진 듯 한 일들의 진실들을 바라보며, 배신감은 조용히 비장한 미소로 입가에 남게 되고, 무엇보다 진정한 자유까지도 권력에 의해 공격받고 짓밟혀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워갔다.

촘스키와의 대화를 통해서 지난 사실과 역사의 진정성을 깨닫는 것은 중요일이다. 진정 필요한 생각과 일은 우리가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역사적 사실의 진정성을 보호하는 작업이다. 물론 그 작업이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무엇보다 자유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 자유의 필요성과 의지를 나는 촘스키의 대화를 통해서 발견한다. 자유 없이 비롯된 변화의 미래는 더욱 큰 시련의 미래로 다가올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의 큰 변화의 물줄기에 자유를 심지 못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행복한 돼지로 살 수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다. 촘스키의 이 책은 우리가 여전히 누리지 못한 자유의 소중함을 목이 터져라 외친다. 다음 세대에 나타날 촘스키를 기대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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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귀신 동문선 문예신서 34
무라야마 지쥰 지음, 김희경 옮김 / 동문선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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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젊은 세대들은 귀신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무엇을 떠올릴까? 예전의 동양적인 귀신보다는 뱀파이어 등과 같은 서양 악귀들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귀신하면 어렸을 적 화장실에 가는 일까지 공포스럽게 만들었던 “전설의 고향”이 떠오른다. 여기에는 한국의 전형적인 옛 풍습들도 담겨 있기에 최근에 좀 더 현대적으로 리메이크 된 “전설의 고향”도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귀신, 존재를 믿으며 봤다는 사람도 있고, 아직도 그런 미신을 믿느냐는 사람들도 있고, 귀신의 존재에 대한 찬반론은 여전히 혼재하지만,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귀신의 존재를 마치 신앙처럼 받아들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명맥은 오늘에도 이어진다. 그 대표적인 명맥은 아마도 신내림을 통해서 신 즉 귀신과 교감을 할 수 있다는 무당과 같은 무속인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역시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되기 때문에 귀신의 속성도 천차만별인 것 같다. 애기귀신에서 장군귀신에 이르기까지. 일단 나 역시 귀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찬성을 택한다.

 내가 책으로 만나 본, 일본인 무라야마 지쥰이 저술한 책 <조선의 귀신>은 마치 귀신의 백과사전처럼 조선시대 뿐만 아니라 그 이전시대부터 전해내려 온 전설이나 설화속의 귀신에서부터 민간인들 입담 속에 살아있는 귀신들까지 정말 상세한 조사를 바탕으로 기술하고 있다. 비록 이 책의 목적은 일본 식민사관의 일환인 우리 민족의 역사 말살 정책 중 하나였다고는 하나,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에게 소중한 증언적 사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제1편 귀신편 에서는 귀신의 역사를 나열해 놓듯 고래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귀신들뿐만 아니라 구전되는 귀신에 이르기까지 귀신의 선악과 음양, 저주, 주거지, 생성 등 한마디로 우리 역사와 문화에 뿌리 박혀있는 귀신들을 총망라하여 기술하고 있으며, 제2편 양귀편 에서는 좋은 귀신이야 도움을 주어서 좋다고 하지만, 해가 될 수 있는 귀신, 그리고 귀신과 결부시켜 생각했던 각종 질병들에 대한 여러 퇴치 방법들을 담고 있다. 다분히 비현실적이고, 비의학적이고, 비과학적인 측면도 있지만,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 소포에 붙인 낡은 우표를 떼낸 후 둥글고 작게 만들어 입안에 삼키면 전치한다” (p.366) “천연두가 유행할 때 개를 살해하여 그 생피를 문에 바르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 “난산일 때 남편의 하의나 허리띠를 산부의 배에 감아주면 순산한다. 또는 남편의 이름을 써서 태운 재를 마시면 순산한다” (p.367) 등과 같은 차력법(借力法)과 “소화불량에는 돼지똥을 먹이면 좋다”“사체에 생긴 구더기를 건조시켜 나환자에게 복용시키면 특효가 있다” (p.380)등의 음식법(飮食法), 그리고 음양법(陰陽法)과 각기 다른 귀신을 퇴치하기 위한 다양한 부적들은 우리 민족의 순수함과 슬기로움이 담겨진 문화의 한 단편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 지난 식민사관에 의해 현재의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진 역사와 또 사라질 위기에서 다시 살아난 역사들을 우리는 요즘 다시 찾고 있다. 과학적인 증거 부재로 미신으로 치부할 수 있는 한민족의 귀신의 역사 또한 사라질 위기에 있어던 역사인 셈이다. 비록 우리 손으로 직접 조사해서 정리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다소의 의구심을 가질 수는 있지만, 오랫동안 폭넓게 한반도를 전역을 아우르며 조사한 자료들이기에 그 가치는 충분이 있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폭넓은 옛 문화체험의 시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를 바탕으로 우리 조상들의 얼이 살아 숨 쉬는 조선의 귀신을 우리들의 귀신으로 받아들여 나름의 좋은 문화로 발전시켜가는 것이 우리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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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몸 만들기 4주 혁명
마츠모토 히토시 지음, 박재현 옮김, 한동길 감수 / 아우름(Aurum)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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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하루가 멀다 하고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 크고 작은 변화들 중에서 우리가 혁명이라 부르는 것들이 탄생하게 된다. 그렇다면 요즘의 우리의 생활에 큰 변화가 가져다 준 혁명들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산업혁명이후 인간을 정보의 바다 한가운데 빠뜨린 “인터넷”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다음은 바로 인터넷과 더불어 개인 간의 소통에 있어 시공간의 벽을 크게 무너뜨린“핸드폰”이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인터넷이나 핸드폰처럼 인류의 생활에 큰 변화를 일으킬 만한 것은 뭐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난 지체 없이 “자전거”라 말하고 싶다.

산업혁명이후 지구는 화석연료의 무제한적인 사용으로 인한 환경공해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삼림훼손으로 인해 지구온난화라는 위협에 휩싸여 있다. 그 동안 대자연을 크게 혹사시킨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인간은 친환경으로 발전과 변화의 패턴을 바꿔나가야 한다. 그 친환경적인 지구 만들기의 선봉은 바로 자전거 타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벌써부터 도심의 도로는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통해서 자동차을 갖고 이동하는 것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그동안 자동차로 망가진 몸 또한 자연스럽게 운동하게 되어 보다 신선한 자연에 노출시킬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앞으로의 자전거는 유원지에서 잠시 즐기는 놀이도구가 아닌 일상생활의 일부로 자리 매김하게 된다. 그로인해 자전거와 함께 하는 시간 역시 크게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예전에 인터넷이나 핸드폰을 첫 경험할 때의 낯선 기분을 자전거에서도 느끼게 될 거라 생각한다. 물론 그리 타는 데 자동차처럼 면허가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냥 즐기듯 타면 되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효과적인 자전거이용은 현대인의 유행병과 같은 비만에 탁월한 효능을 주는 다이어트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자전거를 이용한 다이어트의 교과서가 바로 <자전거로 몸 만들기 4주 혁명>이다. 나 역시 자전거로 얼마만큼의 체계적인 운동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으로 책장을 넘겨 갔다. 책의 내용은 전문가와 자전거로 운동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기본적인 설명과 함께 평소에 일반인들이 다이어트와 자전거에 대한 궁금증이나 잘못 알고 있는 점에 대한 물음에 시원한 답을 제시해준다. 두 사람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다이어트를 위해 시작한 운동의 허와 실, 그리고 운동 강도에 따른 효과차이, 자전거 타기를 통해 발달시킬 수 있는 근육이나, 적절한 트레이닝 방법까지 어느새 자전거를 통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개인트레이너가 된다.

얼마 전 돌아오는 나의 생일선물로 자전거를 사주겠다는 친구의 제안을 묵살했었다. 도심에서 자전거 여전히 매연도 심하고, 자전거 도로가 충분치 않아서 위험도 하고 등등의 이유를 들어서 였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도중 다시 친구에게 전화해서 지난 제안이 유효한지를 물었다. 친구는 흔쾌히 유효하다고 했다. 물론 그깟 자전거를 타는데 무슨 책까지 봐야하나? 하며 비아냥거리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전거도 분명 스포츠의 한 분야이며, 스포츠의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기본기에 있다. 단지 기술적, 체력적 트레이닝을 통해서는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효율적인 동작학습이 더해진다면 비약적인 향상이라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게 된다. 그 차이는 아마와 프로의 차이쯤이 된다. 모두가 프로가 되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프로페셔널을 지향하는 것은 결코 나쁘지는 않은 일이다. 또 아마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도 가장 기본적이면 효율적인 동작학습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곧 생일선물로 자전거가 도착한다. 벌써 마음은 스트레칭으로 시작해 4주 동안의 규칙적인 자전거 타기로 몸과 마음의 혁명을 겪고 있는 듯 한 설레임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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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과학과 사회 5
파스칼 피크 외 지음, 배영란 옮김 / 알마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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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어린 시절 초등학교 사회과목 시간 선생님의 물음으로 시작된다. 그 정답에 다가서는 가장 쉬운 방법 중의 한 가지는 동물과의 비교이다. 결국 인간의 우월성을 기초로 인간의 본질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기도 하다. 또 이것이 내가 지금까지 인간으로 살아오면서 갖고 있던 인간의 본질에 대해 묻는 질문의 답이기도 하다. 사실 이렇게 내가 내놓은 답은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단지 다른 동물과의 구분선일 뿐이다. 그렇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정답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올해로 다윈의 진화론도 200년이란 나이를 먹었다. 그 진화론은 종교적인 반론과는 다르게 꾸준히 다윈의 후학들에 의해 새로운 의문과 연구를 반복하며 인간의 생물학적인 의미를 보다 굳혀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질에 대한 고찰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의미에 그치지 않고 사회학과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분야의 접근도 가져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서 우리는 각기 다른 분야의 학문적인 접근을 통한 인간의 본질 탐구를 하게 된다. 신경생물학자와 고인류학자, 그리고, 철학자가 고찰한 인간의 본질에 대한 보고를 접하게 된다. 이 세 학자들의 인간의 본성이나 본질에 대한 접근방법과 해석은 다른 듯 했지만, 결국 크게 생각해 볼 때 내가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받은 질문과 답에 기초함을 느낀다. 한 필자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연구가 인간과 거의 유사한 동물들과의 간격을 유지하기 위한 공통분모 없애기에 초점이 맞춰줘 있다는 말까지도 한다.

이 책에 주목해서 봤던 부분은 이렇다. 신경생물학자 장 디디에 뱅상의 인간의 본질에 대한 연구는 보다 과학적이며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파헤쳐 갔다. 하지만, 마지막 물음표에 영혼이란 답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또한 마지막 철학자 미셸 세르는 인간의 탁월한 존재감에 대한 표현으로 시간을 뛰어넘는 존재로 말하며, 문화와 역사를 이끄는 자가 진화하는 존재로까지 말을 하는 점이다. 그런데, 결국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의미는 자연과의 연계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는 거였다. 마치 자연을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어떤 지식과 기술의 발전 역시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이며, 받은 것은 곧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이치를 말하는 것 같다.

인간이 이루어 놓은 세상은 오늘도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안에 거주하는 한 생명체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생각에 앞서 “인간이 갖고 있는 자연 안에서의 진정한 역할은 무엇인가?” 에 대해 깊은 성찰이 우리 인간이 자연의 품안에서 지니고 있는 본성과 본질을 찾아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고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나의 마지막 생각은 이렇게 남기고 싶다.“인간이란 자연에 순응하며, 소통할 때 그 위대한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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