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3통의 편지, 그리고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그 후
정철진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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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세계경제 분위기는 2007년을 고점으로 미국 발 모기지론의 부실, 그로 인한 여파는 마치 쓰나미처럼 금융위기와 경기불황의 거친 파도를 만들어 전 세계를 뒤덮어버렸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난 지금 세계 각국의 정말 치열한 전투를 치루 듯 금융을 포함한 경제 전반적인 분야에 대한 안정화 노력에 힘입어 진정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침체의 늪을 벗어나 경기회복을 위한 길에 완전히 들어선 것 같지는 않다. 더욱이 최근 북한의 계속된 도발은 회복국면에 들어선 세계경제와 제대로 발을 맞추기가 불안하다.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세계와 나라의 경제의 흐름도 크게 둔화되고 약화되었지만, 무엇보다 재테크 광풍으로 주식과 펀드 등에 투자한 개인들의 금전적인 자산의 감소와 더불어 따라 온 실망감은 앞으로의 재테크에 대한 희망까지 더욱 어둡게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개인들의 어두워진 희망의 그림자속을 다시금 잘 들여다보면 무언가 작은 허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수익추구의 성급함이며, 원칙의 무시, 통찰력의 부재 라는 허점들이다.

상속과 유산을 통해서, 급작스러운 개발로 인해 그야말로 돈벼락을 맞은 부자들과 꾸준하게 재테크를 연마해서 부를 축적한 부자들은 일단 마인드에서 차이가 있을 거란 생각이다. 벼락부자와는 달리 강인한 재테크로 무장한 부자들은 일단 큰 경제 위기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어쩌면 경제 위기는 그들에게 나름의 큰 베팅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책 <1,013통의 편지, 그리고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기 전 저자는 약 3년전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를 통해서 다양한 재테크의 노하우를 공개함으로서 큰 호응으로 20대의 재테크를 이끌어 내는 데 작은 영향을 미쳤던 것도 사실이다. 이후 1년이 지난 시점에 찾아온 경제위기로 인한 주가폭락과 불황을 겪으며 재테크를 부축인 저자를 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테크 서적을 접하면서 우리가 늘 주의하면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책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자신의 경제적인 여건과 상황에 맞추어 재구성내지는 재설계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맞춤형재테크의 틀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분명 각종 재테크의 유형과 투자방법과 더불어 지켜야 할 원칙들을 달고 있는데, 대부분은 수익성이 높은 재테크의 유형과 투자비결에 집착한 나머지 투자원칙은 무시될 때가 많다. 무시된 투자원칙의 중요성은 아마도 형편없는 떨어진 자신의 투자수익을 보면서 깨닫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1,013통의 편지, 그리고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평생을 이어갈 재테크 요령에 대한 복습과 더불어 원칙을 지킴으로서 경제공황의 위기 상황에서도 무던하게 버티며, 다른 부자들처럼 오히려 기회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로움 마인드까지 키울 수 있도록 충고하고 있다.

나도 그동안 재테크에 부단히 관심은 갖고 있었지만 늘 독단적인 판단과 주위의 부추김을 따라서 투자하다보니 뚜렷한 수익률에는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며, 큰 경기의 흐름에 남들처럼 크게 손해내지는 흔들림을 경험했다. 하지만 <1,013통의 편지, 그리고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보다 지난 다른 실패자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재테크 노력 중에서 빠져 있었던 투자의 성급함, 그리고 원칙의 무시, 꾸준한 정보 수집을 통해 키웠어야 할 통찰력 부재에 대한 새로운 일깨움 얻을 수 있어, 어두운 희망의 그림자에 다시금 불꽃이 일어나게끔 입김을 불어넣어 주었다. 투자를 인생의 즐거움으로 여겼던 앙드레 코스톨라니가 말한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라는 말이 생각난다. 새로움의 기회를 열어 줄 수 있는 돈의 가치, 그리고 그 가치와 가까워지기 위해선 때론 자신의 차갑고도 눈물 나는 노력이 필요하며, 그 이룬 가치를 세상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여유를 내면에 가졌을 때 그 희망은 온전한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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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스타일 - 우리 시대 모든 프로페셔널의 롤모델
진희정 지음 / 토네이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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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른 아침의 출근길, 조금은 덜 깬 정신을 추스르려 차창을 열어 들어오는 공기의 신선함 에 리듬을 심기 위해 라디오의 전원을 켠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발랄하면서도 톡톡 튀는 DJ의 굿모닝 멘트는 지친 어제의 피곤함을 잊고 새 출발하듯 하루의 문을 상쾌하게 열어준다. 그리곤 돌려보는 또 다른 주파수, 언뜻 들으면 고요한 아침안개를 가르는 듯 한 낭랑한 기운이 느껴지지만 왠지 확신에 가득 찬 듯 하면서도 절제된 차분함의 아나운서 톤이 남아있는 목소리는 바로 손석희의 목소리다. 차를 갖고 출근하는 길엔 손석희의 목소리가 아침신문을 대신한다. 이렇게 어제오늘의 주요뉴스정리와 함께 이슈가 되는 뉴스에 관련된 인터뷰이와 나누는 인터뷰를 듣고 나면 아침에 만나는 이와 나눌 수 있는 화제거리를 머릿속에 담을 수 있다. 무엇보다 매일 매일의 새로운 인물들과 나누는 인터뷰 내용은 그동안 <100분토론>의 진행경험으로 축적된 패널들을 의견을 조절능력과 새로운 의견을 이끌어내는 그만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라디오를 듣고 있는 대중들로 하여금 돌아가는 세상사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과 시선 이끌어낸다..

그리고 목요일 늦은 밤 역시 최근 국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슈를 놓고 상반된 의견이 오고가는 토론이 열리는 이곳에서도 마치 포청천과 같은 판결자로서의 역할은 아니지만, 한 가지 견해를 가지고 갈라선 양 진영의 중심에서 서로의 의견 조율과 추가 질문을 통한 또 다른 문제제기, 때론 지나친 대립선상의 중재자 역할을 하며 시청자들에게 보다 객관적인 사실판단을 위한 밑그림을 제시해 주는 이 또한 바로 손석희다. 한때는 토론을 지켜보며 지나치게 패널들을 몰아세우듯 한 인상과 더불어 의견 표현에 있어 다소 차갑게 느껴져, 파워풀한 진행은 좋지만 방송인이 줄 수 있는 친근감은 포기한 듯 느꼈다. 하지만, 그러한 느낌은 토론이 진행되는 100분을 지켜보며 나 스스로 나름의 어떠한 견해에 대한 가치적 판단 머릿속에 그림으로써 사라지게 되고, 오히려 손석희의 독특한 그 만의 스타일 속에 매료된다.

<손석희 스타일>에서 분석되고, 정리된 스타일은 분명 그동안 방송을 통해서 우리가 보고 듣고 느꼈던 손석희에 대한 객관화된 모습들의 정리라고 볼 숭 있다. 책속에서 필자가 말했듯 많은 대중들이 주시하고 있는 한 인물의 스타일 분석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그동안 단지 피상적으로 좋아했던 인물에 대한 객관화된 스타일을 통해서 그 인물의 존재적인 가치를 도출하고, 이를 또 나름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하는데 벤치마킹의 기회로 삼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필자는 방송작가다운 글터치로 손석희 하면 떠올릴 수 있는 27가지의 키워드로 일단 정리하고, 각각의 키워드에 추가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인물들의 예시를 통해서 보다 쉬운 접근을 유도한다. 이러한 접근은 바로 한 사회의 대중으로서, 한 조직의 구성원이자 때로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기 위해 필요한 덕목들에도 한 발짝 다가서게 한다. 대중들의 눈과 귀에서 손석희를 빛나게 하는 27가지의 스타일 분석 키워드 중 내가 가장 무게중심에 둔 것은 “변화하는 패러다임”이다. 지금은 방송인으로서의 신분뿐만 아니라, 대학의 강단에서 또한 지성인의 양성을 위한 지식 전달자로서의 손석희가, 손석희의 스타일이 시청취자로 하여금 주목하게 만드는 이유는 바로 시대의 변화에 역행하지 않으려 끊임없이 새로움에 대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새로움을 추구하는 열정과 변화의 노력들은 그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든 그만의 스타일을 완성시켜가고, 우리는 그를 주목하며, 또 그의 말과 행동을 따라함으로써, 이 시대의 성공 롤모델로써까지 마음속에 자리하게 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영웅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이끌어왔던 리더들은 수없이 많았지만, 우리들의 마음에 보편적인 세상의 아름다움을 심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쉬운 생각 같지만, 그 보편적인 세상의 아름다움을 이끌어내고, 보여주기 위해서 그 누군가는 먼저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야한다. 먼저 행동하는 삶을 살아가야한다.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등을 두드리며 가슴으로 소통을 이끌어 가야한다. 이렇듯 맘속에서 꺼져가는 작은 희망의 불씨에 신선한 입김을 불어넣어 줄 가슴 따뜻한 영웅을 우리는 찾고 있다. <손석희 스타일>은 바로 이러한 영웅을 자신의 마음속에 키울 수 있는 작은 공간을 열어주며, 그 공간은 또한 자신의 존재적인 가치를 키우고 넓혀 갈 수 있는 스타일의 장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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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노믹스 - 상상력이 만드는 거대한 부의 세상
수잔 기넬리우스 지음, 윤성호 옮김 / 미래의창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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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STORYTELLING)에 이은 스토리노믹스(STORINOMICS) 등 스토리와 다른 산업이나 학문과 연결되는 신조어들이 재탄생되는 것으로 보아, 앞으로 세상에는 스토리 즉 이야기를 덧씌우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품과 광고는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러한 현상이 비단 오늘에 이르러 급속하게 확산되어 가는 현상으로 발전한 것을 아니지만, 매체의 다양성과 파급적인 확산속도의 발전을 통해서 좋은 상품으로써 갖게 되는 이야기의 경제적 가치는 이제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가고 있다.

그 가장 좋은 예는 바로 가난과 무명의 조앤 롤링에게 막대한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준 해리포터 시리즈이다. 조앤 롤링의 처녀작인 어린이 판타지 소설은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어른들까지도 환상적인 마법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 마법이야기는 책뿐만 아니라 영화 등으로 확장되어 다양한 라이선스 상품을 통해 세계를 동시다발적인 해리포터 현상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스토리노믹스>에서는 ‘살면서 가장 순수한 영감’ 에서 비롯된 저자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의 탄생과 더불어 성공신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꼼꼼하게 짚어보고, 그 과정에서 볼 수 있었던 예전의 문화적인 현상과의 차이점을 분석해보고, 앞으로 제2의 해리포터 탄생을 위한 새로운 모색도 함께 담고 있다.

정말 감명 깊은 책이나 영화를 접하고 나면 다른 사람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대한 나름의 예감이나 예측과 같은 기대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나의 해리포터 시리즈 첫 대면 때의 느낌이 그랬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예감이나 예측이 눈과 귀로 확인되었을 때 비로소 나만의 생각이나 느낌이 아니었구나! 라며 그 느낌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사이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는 공감대 형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해리포터의 성공은 그동안 끊어질 대로 끊어져 있는 사람들 간의 공감대를 확실한 한 편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터넷과 각 매체공간으로까지 끌어들여 하나로 연결시켜 준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책<스토리노믹스>에서 제시한 ‘우수한 제품’, ‘소비자의 감정이입’, ‘입소문 마케팅과 온라인 버즈’, ‘티저 및 지속적 마케팅’, ‘브랜드의 일관성과 확산의 자제’ 라는 성공의 5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었기에 예상을 크게 초월한 성공과 앞으로의 예측 불허한 수익까지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의 어떠한 현상까지도 이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로 지어진 책과 영화 등은 이제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 한가지만으로는 파급적인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것을 <스토리노믹스>의 다양한 비교분석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의 이야기가 갖고 있는 힘과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다는 것 또한 다시금 절감하게 되었다. 21세기는 ‘문화의 전쟁’으로도 일컫는다. 무엇보다 상상력에서 비롯된 단 한 편의 이야기는 한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번져갈 수 있는 판로가 다양하게 열려있으며, 그 루트들은 바로 거대한 부로 직결되는 모세혈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세상에서 남들의 이야기에 흥분만 할 것이 아니고, 우리 나름의 참신한 상상력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을 우리의 문화적 공감대로 모여들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토리노믹스>를 통해서 전하는 한 편의 이야기가 사회의 현상으로까지 발전해가는 성공적인 과정을 한 번쯤 바라보는 것은 제2의 해리포터의 탄생을 위한 둥지를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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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을 들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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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웃고, 맘껏 울고, 마음속엔 푸른 희망을 풍선을...”

 

누구나 한 번쯤은 꾸는 꿈, 그것은 이 세상에서 일인자로 거듭나는 꿈이다. 올림픽금메달, 금메달은 바로 이러한 세상의 일인자로의 꿈이 실현됨을 상징한다. 하지만 금메달의 영광보다 우리로 하여금 아낌없는 격려를 필요로 하는 이들은 바로 은메달과 동메달에 머문 선수와 노메달의 역경을 앞으로도 이어갈 선수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느덧 세계인의 이목을 한 달 동안 한자리로 모아놓고, 화려하게 시작과 끝은 장식했던 2008년 북경올림픽의 환희의 순간들도 일 년 이라는 나이를 먹었다. 북경올림픽에서 확실한 금메달 유망종목 중 하나가 바로 역도이다. 보기에는 그저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릴만한 근력과 힘만 있으면 되는 것 같지만, 역도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순발력과 유연성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역도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힘과 순발력, 유연성의 3박자를 갖춰야하는 어려운 운동임에도 화려한 시선을 끌만큼 화려한 몸짓이 없어서인지 여전히 비인기종목의 서러움은 오래된 명찰처럼 붙어 다닌다.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 금메달 영광의 주역들은 대부분 어려운 경제적 여건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불굴의 의지가 좋은 결과를 낳았다. 물론 지금은 오히려 올림픽 금메달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더더욱 뼈를 깎는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스포츠에는 과학적인 트레이닝 열풍으로 뛰어난 기록 향상을 위해서는 선수의 노력과 더불어 철저한 관리로 뒷받침해줄 경제력 또한 필요하게 된다. 이는 결국 스포츠의 상업성과 결부되고, 스포츠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도전정신만으로 세계 정상에 오르는 길은 요원한 꿈처럼 되어버렸다.

 



 

영화<킹콩을 들다>에서 첫 번째로 우리가 공감하게 되는 부분은 바로 이렇듯 버림받고 있는 스포츠에 대한 순순한 열정과 도전정신이다. 새로 창단된 6명의 보성여중 소녀들이 역도를 시작하게 되는 계기를 각기 다르다. 어머니가 타고 다니시는 휠체어를 들기 위한 근력을 키우기 위해서, 미국 유학과 더불어 FBI요원이 되기 위한 체력단련, 심지어 딱 달라붙는 유니폼의 매력에 끌려서, 그리고 주인공 영자는 가족의 부재와 가난으로 인한 배고픔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거운 바벨을 잡기로 마음먹는다. 이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재미없어 보이는 운동이었지만, 그 소녀들의 희망의 장작에 순수한 열정과 도전정신의 불꽃이 붙여지는 순간 역도는 그들의 추구하는 유일한 가치가 되고, 희망이 되며, 인생의 꿈을 펼쳐 볼 수 있는 장이 된다. 이러한 장에 선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뜨겁게 달아오르는 열정이 꺼지지 않고 더욱 활활 타오르도록 굵은 심지와 더불어 기름 역할까지 자처하는 지도자가 있기 마련이다.

 



 

평생 1인자가 못된 한을 갖고 고통스러워 할 뻔했던 올림픽 동메달 리스트, 그는 결국 금메달의 화려한 영광 못지않은 동메달의 값진 가치를 아이들을 가르치며 깨닫고, 자신이 못 다 이룬 꿈과 희망의 풍선을 아이들의 어깨위에 하나 둘 씩 달아준다. 이것이 바로 6명 소녀들이 가슴속에 깊이 품고 있는 순수한 열정과 도전정신이 타오르데 꼭 필요한 부싯돌이 되어준다.

 

 

 



영화 내내 실컷 웃고, 맘껏 울고, 가슴속에 푸른 희망의 풍선을 달고 자리를 일어설 수 있었다. 지금 내가 마음속에 키우고 있는 희망의 풍선에 나는 매일매일 어떠한 열정을 불어넣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니 너무 정신없고 바쁘다는 핑계로 자신의 현재를 제대로 돌아보지도 못한 체 자신과는 무관한 풍선을 잡겠다고 따라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문을 해보게도 된다. 결국 자신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행복이란 단어를 얼마만큼 하루라는 시간 속에 담아 낼 수 있고, 그려나갈 수 있느냐는 꼭 1인자의 삶을 통해서가 아니라 1인자가 되기 위한 도전의 과정을 얼마만큼 사랑할 수 있느냐 라고 생각한다. 바로 동메달 또는 노메달에 그치더라도 끊임없이 정상을 향한 무한한 열정과 도전의 가치를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핸드볼 영화<우.생.순>이후 이번엔 역도로 비인기종목의 서러움을 달래는 영화정도겠지 하는 나의 예감은 오만했다고까지 할 정도로 영화<킹콩의 들다>이 전해주는 웃음과 감동의 눈물에는 어느 화려한 스포츠를 통해서 전할 수 없으며,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웃음과 감동을 장착하고 있었다. 이 특별한 웃음과 감동바이러스가 퍼져 많은 청소년들과 어른들이 이 영화를 통해서 킹콩만큼 커다란 희망의 풍선을 자신의 어깨위에 있음을 깨닫고, 그 희망과 단 1cm라고 가까게 도약했으면 하는 바람도 함께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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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위, 맞다와 무답이 담쟁이 문고
최성각 지음, 이상훈 그림 / 실천문학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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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자라며 보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낄 때가 있다.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운 모습을 눈으로 보고, 나무들이 내뿜는 신선한 공기를 맘껏 가슴으로 호흡하고, 또 직접 손으로 만져보며 느끼는 자연은 마치 언제든 지친 심신을 포근히 감싸 안아 줄 어머니 품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머니가 둘인 셈이다. 늘 나를 무한한 사랑으로 가슴으로 감싸주시는 낳아주신 어머니, 어머니와 같은 개별적인 관계가 아닌 공통적 관계로 나의 생로병사와 더불어 삶의 장을 끊임없이 제공해 주는 역할로서의 어머니인 대자연, 공통점은 역시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는 희생정신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학창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어 늘 마음으로 몇 번씩 보답해야지 생각을 반복하지만 쉽지 않은 것이 바로 어머니의 아낌없는 사랑에 대한 보답이다. 물론 그 사랑은 어쩌면 부모가 되어서 자식에게 받은 사랑을 배품으로서 그 숭고함의 연속성을 이어가는 것으로서도 나름의 보답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부모님의 사랑에는 보답해야한다는 전제를 두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자연은 어떠한가? 자연도 부모님의 사랑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비롯한 자연을 이루는 모든 생명체가 공생하며 유지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인간들은 대자연의 공생관계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들이 독보적인 존재인 냥 다른 생명체를 군림하려 하고, 파괴를 일삼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 결과 자연은 더 이상 인간에게 순수한 자연을 허락하지 않는다. 더욱이 파괴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려 한다. 아마도 그 좋은 예가 지구온난화로 인한 극지방의 빙하들의 해빙과 그로인한 기후와 생태의 변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거위, 맞다와 무답이>를 통해서 우리는 순수한 자연을 대변하는 한 쌍의 거위와 그리고 인간들이 함께 보내는 사계절을 볼 수 있다. 다행히도 ‘맞다’‘무답이’ 라 이름 붙여진 거위 한 쌍은 자연의 소중한 가치에 대해서 조금은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는 분들의 손아래 키워졌기 때문에 나날이 인간들과 또 다른 동물들과의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그렇다고 여전히 그동안 몸에 익은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벗어날 수 없어, 거위와 더불어 주변의 동식물들에게 신속한 대응을 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 가지씩 제자리를 찾기 가기 위한 노력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참 남녀의 만남도 사람들과의 만남도 지속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생각이다. 아무래도 예전 같지 않게 개인적인 생각과 삶을 중요시하는 세태풍토가 만연되어 있는 것을 원인으로 찾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내심이 많이 약해진 탓 같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만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남녀의 만남과 이별의 기간이 보통은 3개월에서 6개월을 넘기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러한 지금의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제안을 하고 싶다. 연예를 목적으로 만나는 이성이든. 모든 대하는 사람들을 적어도 사계절 동안만은 지켜보라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바쁜 세상에 뭘 그렇게 오랫동안 시간낭비를 하며 지켜봐야하냐며 반문할 것을 안다. 하지만, 술이나 장도 본연의 제대로 된 맛은 보기위해서 1년 이상 묵혀야 하는 법, 한 길 물속을 모르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1년은 결코 긴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야기 속에서 거위 ‘맞다’‘무답이’ 는 쇠뜨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마치 “한번 좋아하게 된 것은 끝까지 좋아하자!” (p.56)라는 철칙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순수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이러한 순수함이 비효율적이라며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경제논리 앞에서 멍청함으로 보이지만, 자연과 삶이라는 무한한 가치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이 순수함 이야말로 가장 큰 가치를 갖지 않나 생각해본다.

짧은 2년 동안 거위 한 쌍을 키우며 인간을 제외한 자연을 이루는 다른 생명체들을 몸소 접하며 터득하는 자연의 순리와, 또 함께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키워가는 희망들을 바라보며 자연이라는 어머니에게 지금까지 얼마나 커다란 불효를 하고 있는지는 크게 깨닫게 됐다. 거창하게 현수막 들고 1년에 몇 번 하천청소에 참가하는 것만이 환경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필요한 음식물을 줄이고, 자연을 숨 쉬지 못하게 하는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하는 생활습관에서 환경운동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거위, 맞다와 무답이>에서는 분명 인간과 대자연의 순수성을 대변한 한 쌍의 거위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가는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서 보여준다. 그 모습을 아름답게 느끼며 동경하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속에 그러한 순수함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인간들이 자연을 지배하고 군림하는 존재가 아닌 함께 공생관계를 이끌어가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하며 이용하고 파괴한 것들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때 아마도 ‘맞다’ 라고 답하며, 자연재해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대자연의 순리와 어긋난 인간들의 행보에 자연은 ‘무답’ 으로 인간의 위대함을 손을 들어주는 듯하지만, 그 잘못된 판단의 대가는 또 소리 없는 재앙을 통해서 깨닫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들이 접하게 될 생태소설에 스스로 지나치게 깊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나의 느낌처럼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이 이렇게 순수함의 가치를 지닌 자연을 다룬 이야기들을 통해서 자연의 소중함을 마음으로 깨닫고, 자연이 주는 풍요로운 안식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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