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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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미래학자들이 내놓은 인류의 미래에 관한 책을 읽고 한층 부푼 마음도 잠시, 책<탐욕의 시대>으로 점칠 수 있는 미래는 지금보다 더욱 극명히 흑백논리로 분리된 처참한 장면을 목격해야 할 것 같았다. 결국 미래학자들의 꿈꾸며 지향하는 유토피아는 단지 60억 지구촌 가족 중 단지 10%을 위한 발전과 풍요일 뿐이다. 미래에는 현재보다 발전된 가상현실 속에서 교육을 받고 “사이버 나우”라는 옷을 입고 있으면 24시간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해준다고 한다. 더욱이 나노기술의 발전은 산업혁명 이후의 진정한 미래혁명을 가져와 식량부족과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나 이외의 환경오염을 해결할 수 있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왜 필자는 <탐욕의 시대>을 통해서 프랑스 혁명의 상황을 역설하며 그것에 버금가는 혁명의 필요성 또한 역설하는 걸까?

 <탐욕의 시대> 저자 장 지글러는 2000년부터 8년 동안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하면서 현재 인류가 직면한 환경오염으로 인해 늘어나는 자연 재해 만큼이나,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는 또 다른 재앙에 대한 이야기를 <탐욕의 시대>에 담았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자연재해는 엄밀히 말하면 인간들이 스스로 개발이라는 명목아래 무분별하게 자연을 훼손의 결과인 인재인 셈이다. 지금 인류의 80%의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는 인재가 있으니 그것은 가난으로 비롯된 기아로 인한 사망이다. “가난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제사정이 아니냐?” 라며 반문할 수 도 있다. 인류의 가난과 기아의 악순환은 봉건시대 절대 권력에 버금가는 500개의 거대 다국적 기업들의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탐욕으로 휘두르는 경제의 칼날 앞에서 그 골이 더욱 깊어지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거대 기업의 인류의 공동자산처럼 여겨져야 할 미래지향적인 생산의 발전과 학문적 발견들의 사유화와 독점화는 인류의 미래를 밝히기 보다는 크나큰 재앙을 낳아가고 있다. 책속에서 저자의 유엔기관에서 활동기간동안에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 몽골, 브라질 등의 극심한 가난과 기아의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 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고, 가난을 극복하여 옆에서 서서히 심장소리가 잦아드는 자식들에게는 더 큰 희망을 안겨 주려는 노력은 그야말로 처연하기만 하다. 방송을 통해서는 마치 거대 글로벌기업들이 인류애를 갖고 이들을 위한 자선기금을 선 듯 내놓는 듯 보인다. 그들은 결코 무료나 무상이란 생각을 잊은 지 오래다. 자선에도 역시 훗날의 그 보다 10배 100배의 대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챙기는 대가는 오늘 연명을 하게 된 가난한 사람들의 미래를 짓밟고, 마치 노예처럼 만든다. 암과 같은 질병도 아닌 기아가 인류의 가장 중요한 사망 원인이라는 사실도 충격인데, 각종 부채를 통해서 가난과 배고픔에 떨고 있는 지구촌 사람들을 죽음의 벼랑으로 떠밀며 경제적 논리만 생각하는 권력의 중심과 경제의 중심에 자리한 미국과 거대 기업들의 만행들을 드려다 보면서, “인간은 결국 악한 존재구나!” 라는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다.
 

 칸트는 프랑스 혁명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 논하며 이렇게 말을 맺었다.

“처음으로 자유를 추구했다는 사실이 지니는 가치까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은, 다른 민족들이 다른 상황에서라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음을 망각하거나 다시금 이와 같은 일을 시작하고 싶은 끓어오르는 흥분감을 억누르기엔 너무도 엄청나고 인류의 복지와 너무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세계 모든 분야에 너무도 큰 영향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p.327)

 과거 프랑스 혁명은 길고 긴 절대권력 앞의 인권유린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고,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그리고 인간으로 누려야 할 권리를 찾아 주었다. 기아와 부채라는 악순환방정식으로 신흥 봉건제후로 일컬어지는 거대 기업들과 북반구의 선진국들에 의해 또 다시 인류의 인권은 심하게 유린되었다. 그렇다면, 또다시 프랑스 혁명과 같은 역사의 마침표를 찍어줄 전기는 분명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그 마침표에 또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분명 탐욕의 권력 또한 순순히 칼을 내려놓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지금 우리가 <탐욕의 시대>에 눈을 돌려야하는 것은 서둘러 혁명의 주인공이 되어라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분명 5초에 1명씩 기아로 목숨을 잃어가고 있는 극한 상황이지만, 프랑스 혁명 당시 여론은 무지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무지는 독재를 부추긴다.” (p.331) 라는 마라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불길 속으로 뛰어들기보다는 적어도 불이 난 건물구조에 대해서 알고 들어가야 자신과 더불어 불길 속 위험에 처한 사람도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탐욕의 시대>를 통한 지금의 신봉건사회를 먼저 이해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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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맨
대니 월러스 지음, 오득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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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의 시작과 함께 핸드폰의 문자함과 메일의 스팸메일함과 일반메일함에는 익명의 광고성문자와 메일들은 또다시 삭제한 자리를 채워간다. 게다가 이러한 문자와 메일에 조금의 호의를 보일라치면 그 집요하고도 관심어린 반응은 더욱 증폭되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만든다. 하지만 가뜩이나 바쁜 현대인에게 이러한 것들은 이제 또 다른 공해가 되고, 가뜩이나 삭막한 세상을 살면서 더욱 냉소적인 NO!를 연호하게 만든다.

  오래전부터 동고동락하고 있는 친구 녀석은 다른 친구와의 약속과, 집에서 온라인 게임 즐기기를 두고 저울질하며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선뜻 시원한 답변을 던지지 못하는 모습에 나는 ‘오늘도 십중팔구 온라인 게임에 무게를 두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체념해버린다. 이미 그러한 행태는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왔고, 나 외의 다른 친구나 사람들까지도 짐작할만한 수준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이랬던 친구가 요즘은 달라졌다. 시답지 않은 핑계로 일관하던 그였는데, 구차한 핑계가 줄고 언제 만날 수 있지 하며, 오히려 먼저 선수치려는 생각을 내비친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나고, 친구는 정말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제발 좀 읽으라고 애원했던 책도 솔선수범해 읽기시작하고, 뭔가 맘속에서 큰 깨달음을 발견한 것일까?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죽을 수도 있다던데, 이제는 불안한 마음까지. 친구 녀석은 술자리에서 말한 변화의 원인은 이성 친구를 만들기 위한 자신만의 프로젝트라며 늘어놓았다. 그 프로젝트에는 헬스를 통한 몸 가꾸기도 들어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주변에 괜찮은 헬스장을 찾아다닌다. 나는 그런 친구의 변화 속에서 YES(예스)의 POWER(힘)를 느낄 수 있었다.

 책<예스맨>의 주인공 대니 역시 마치 대인기피증 환자처럼 친구들과 주변사람들과 보이지 않는 벽을 쌓아가며 살아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신사의 한마디에 그동안 가졌던 생각을 송두리째 접고 모든 자신의 반응은 YES(예스)로 통일시킨다. 하지만, 모든 일에 YES로 일관하기란 쉽지 않은 법, 그렇지만 대니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YES수위 규칙의 5단계까지도 서슴지 않고 도전한다. 지나친 YES로 생길 수 있는 일들의 경험을 스스로 체험하고 그때의 느낌들을 일기에 고스란히 담아 새로운 답을 찾아간다. 좌충우돌 연속적 YES로 야기되는 상황에 대처하는 대니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긍정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예스맨>은 단지 긍정의 메시지만을 전하는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YES와 긍정의 힘을 통해서 파생적으로 바꿀 수 있는 삶의 모습과 인생의 기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 책속에서 “너에게 기회가 없을 때란 오직 네가 기회를 잡지 않을 때뿐이다” (p.229) 라며 주인공 대니는 무엇보다 자신의 소극적인 행동으로 그동안 잃어버린 인생의 수많은 기회에 대해서 깨닫고, 기회를 만들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시도를 YES로 삼은 것이다. 로또 복권을 사는 사람들을 환상에 젖어 산다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 복권을 사는 게 마치 마약이나 도박중독과 같은 듯 말이다. 하지만 난 다르게 생각하고 싶다. 기회와 가능성은 머릿속에서는 절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단돈 1000원을 지불하고, 복권을 구입해야 뜻하지 않는 행운의 주인공으로서의 기회와 가능성을 모두 갖게 되는 것이다. 모든 긍정의 효과도 이러한 시도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 아닌가?

 <예스맨>은 많은 실천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더 자주 YES라고 말하세요.” 할 뿐이다. 그 YES에는 어떠한 허황된 욕심도 욕망도 담겨 있지 않다. 그저 자신이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윤활유를 자주 칠해주길 유도할 뿐이다.
“당신이 과거에 무엇인가에 YES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던 때들을 모두 기록해 보길. 그리고 그 YES가 당신의 삶을 어디로 이끌었을지 생각해 보길” (p.11) 이 주문은 또한 지난 YES부재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새로운 삶을 부활시켜준다. 그럼에 인생을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하게 만들어줄 YES의 마법같은 POWER(힘)로 앞으로 나의 일기 속 인생을 채워가고 싶은 마음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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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1 - 상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밀레니엄 (아르테)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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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의 나라임에도 왠지 머릿속엔 단지 백지 한 장만이 놓여있다. 소설<밀레니엄>은 그 하얀 공간에 독특한 색감으로 옷을 입힌다. 그럼으로 비록 귀에 익숙하지 않은 이름과 명칭으로 가득하지만 마치 내가 그 나라 안에 살고 있는 것처럼 나의 상상력에도 옷을 입혀간다. 미스터리 혹은 스릴러 소설의 극치는 색다른 예측불허의 반전을 통해서 독자들을 전율케 한다. 소설<밀레니엄>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반전은 바로 반전을 예측하고 있는 기대감에 허를 찌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어떠한 큰 화제 없이도 독자들의 오감을 집중하게 하는 힘이 바로 그것이다.

 여든두 번째 생일날에도 어김없이 발신인 불명의 압화 액자가 배달된다. 오늘로서 마흔네 번째 꽃이 된 셈이다. 이렇게 소설은 시작된다. 주인공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는 책 제목과 같은 월간 ‘밀레니엄’ 의 경제전문기자이자 주요주주이다. 그는 작성한 기사로 인한 베네르스트룀에 대한 명예훼손 행위가 유죄로 판결되어 ‘슈퍼 블롬크비스트’ 라는 별명을 한동안 듣기 힘들게 된다. 자신의 유죄판결로 월간 ‘밀레니엄’ 마저 광고 격감으로 위기를 맞고 있어, 잠시 편집주간자리를 내놓고 베네르스크룀에 대한 복수의 날을 세우기 위해 다짐을 한다. 이때 헨리크 반예르의 뜻하지 않은 제안으로 헤데뷔마을에서의 생활이 시작되고, 반예르가의 복잡한 현재진행형인 가족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40여년전 실종되어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하리에트 반예르의 실종 또는 살해에 대한 다른 단서를 찾기 위한 미스터리의 여행은 계속된다.

 무엇보다 책속에 인쇄된 것 외에 반예르 가계도와 헤데뷔 마을의 약도, 그리고 간략하게 주요 등장인물들을 적혀 있는 붉은색 쪽지를 발견하고 이채롭다고 느꼈다. 이건 분명 생각보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관계의 복잡성에 대한 예견이었던 것이다. 그 예상을 그대로 적중, 5대에 걸친 반예르 가문의 치밀한 구성의 이야기들은 가히 필자의 상상력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흐름 중간에 스웨덴이란 나라가 갖고 있는 제도적 모순점이나 문제점들을 이야기를 통해서 드러내 보여줌으로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시키고 더불어 마치 자국민들에게 강한 자성과 비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했다. 가령스웨덴 여성의 18퍼센트는 살면서 남성의 위협을 한 번 이상 받은 적이 있다.”(p.15) 로 시작해 “성폭행을 당한 스웨덴 여성 중 92퍼센트가 고소를 하지 않았다.”(p.175)로 마무리 되는 이야기의 마디마디에 볼 수 있었던 스웨덴 여성의 학대와 성폭행의 실태를 고발하는 메시지 또한 그러한 의식의 표명중 하나로 보였다.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보편적인 생각으로 이해하는 정도에 그치긴 했지만, “자기 보존 본능의 결여상태” 나 “내향적”, “사회성 결여”, “공감 능력 부족”, “자기중심적”, “정신병적, 비사회적 행동”, “협조 능력 및 학습 능력 부족”등의 단정적인 어휘들에 내몰려 리스베트 실란데르가 겪게 되는 후견인제도나 사회적 판단의 모순은 사회복지나 교육정책이 아직까지 취약한 우리의 현실속에서 시사하는 바를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의 제목 ‘밀레니엄’이란 단어의 의미는 왠지 저자의 무한한 상상력으로 다가올 새천년동안 소설에 지평을 열겠다는 열정과 열망이 담겨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낳게 했다. 그러한 열정과 열망이 무색하게 애초의 계획한 10부중 3부만을 남기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지만, 이 3부를 통해서 그 열정과 열망을 이어갈 독자들과 다른 작가들에게까지 정신적 혼을 불어 넣어 주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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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1 - 하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밀레니엄 (아르테)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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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스웨덴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의 나라임에도 왠지 머릿속엔 단지 백지 한 장만이 놓여있다. 소설<밀레니엄>은 그 하얀 공간에 독특한 색감으로 옷을 입힌다. 그럼으로 비록 귀에 익숙하지 않은 이름과 명칭으로 가득하지만 마치 내가 그 나라 안에 살고 있는 것처럼 나의 상상력에도 옷을 입혀간다. 미스터리 혹은 스릴러 소설의 극치는 색다른 예측불허의 반전을 통해서 독자들을 전율케 한다. 소설<밀레니엄>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반전은 바로 반전을 예측하고 있는 기대감에 허를 찌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어떠한 큰 화제 없이도 독자들의 오감을 집중하게 하는 힘이 바로 그것이다.

 여든두 번째 생일날에도 어김없이 발신인 불명의 압화 액자가 배달된다. 오늘로서 마흔네 번째 꽃이 된 셈이다. 이렇게 소설은 시작된다. 주인공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는 책 제목과 같은 월간 ‘밀레니엄’ 의 경제전문기자이자 주요주주이다. 그는 작성한 기사로 인한 베네르스트룀에 대한 명예훼손 행위가 유죄로 판결되어 ‘슈퍼 블롬크비스트’ 라는 별명을 한동안 듣기 힘들게 된다. 자신의 유죄판결로 월간 ‘밀레니엄’ 마저 광고 격감으로 위기를 맞고 있어, 잠시 편집주간자리를 내놓고 베네르스크룀에 대한 복수의 날을 세우기 위해 다짐을 한다. 이때 헨리크 반예르의 뜻하지 않은 제안으로 헤데뷔마을에서의 생활이 시작되고, 반예르가의 복잡한 현재진행형인 가족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40여년전 실종되어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하리에트 반예르의 실종 또는 살해에 대한 다른 단서를 찾기 위한 미스터리의 여행은 계속된다.

 무엇보다 책속에 인쇄된 것 외에 반예르 가계도와 헤데뷔 마을의 약도, 그리고 간략하게 주요 등장인물들을 적혀 있는 붉은색 쪽지를 발견하고 이채롭다고 느꼈다. 이건 분명 생각보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관계의 복잡성에 대한 예견이었던 것이다. 그 예상을 그대로 적중, 5대에 걸친 반예르 가문의 치밀한 구성의 이야기들은 가히 필자의 상상력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흐름 중간에 스웨덴이란 나라가 갖고 있는 제도적 모순점이나 문제점들을 이야기를 통해서 드러내 보여줌으로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시키고 더불어 마치 자국민들에게 강한 자성과 비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했다. 가령스웨덴 여성의 18퍼센트는 살면서 남성의 위협을 한 번 이상 받은 적이 있다.”(p.15) 로 시작해 “성폭행을 당한 스웨덴 여성 중 92퍼센트가 고소를 하지 않았다.”(p.175)로 마무리 되는 이야기의 마디마디에 볼 수 있었던 스웨덴 여성의 학대와 성폭행의 실태를 고발하는 메시지 또한 그러한 의식의 표명중 하나로 보였다.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보편적인 생각으로 이해하는 정도에 그치긴 했지만, “자기 보존 본능의 결여상태” 나 “내향적”, “사회성 결여”, “공감 능력 부족”, “자기중심적”, “정신병적, 비사회적 행동”, “협조 능력 및 학습 능력 부족”등의 단정적인 어휘들에 내몰려 리스베트 실란데르가 겪게 되는 후견인제도나 사회적 판단의 모순은 사회복지나 교육정책이 아직까지 취약한 우리의 현실속에서 시사하는 바를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의 제목 ‘밀레니엄’이란 단어의 의미는 왠지 저자의 무한한 상상력으로 다가올 새천년동안 소설에 지평을 열겠다는 열정과 열망이 담겨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낳게 했다. 그러한 열정과 열망이 무색하게 애초의 계획한 10부중 3부만을 남기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지만, 이 3부를 통해서 그 열정과 열망을 이어갈 독자들과 다른 작가들에게까지 정신적 혼을 불어 넣어 주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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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묻고 답하다 - 세상을 읽는 119개의 키워드, 노교수의 핵심 강의 노트
니시베 스스무 지음, 정경진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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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떠한 일과 사물에 관하여 지식으로 받아들일 때와 학문으로 받아들여 이해할 때 심적인 차이를 경험한다. 가령 어떠한 자리에서 누군가 “경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 봅시다.” 라고 말할 때와 “경제학에 관해서 이야기 해 봅시다.” 라고 말할 때 비록 경제라는 단어에 “학(學)” 자가 더해졌을 뿐임에도 왠지 심오하게 접근해야할 것 같고, 전공자가 아니면서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 될 것 같은 막연한 거리감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식에 강한 것 같은데 학문 앞에서는 약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아마도 ‘개념정리’ 정리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한다. 며칠 전 독학으로 학업을 마치신 한 저자와의 만남에서 그는 독학의 비결을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중등검정고시에서 박사과정까지 독학을 통해서 마칠 수 있었던 나름 공부의 비결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나만의 확실한 개념정리가 선행되었을 때 쉽게 머릿속에 정리되고 지식으로 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처음’이란 단어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겠는가? 저자는 ‘처음“을 사전의 정의처럼 ‘시간적으로나 순서상으로 맨 앞’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앞에 일어나는 것이 없고 뒤에 일어난 것만 있는 것’ 이라 정의하고 중간과 끝도 이처럼 연관 지어 나름의 개념으로 정리했다는 것이다. 우리가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사이에서 그리고 정보를 통해서 보고 듣고는 학문적인 단어들은 무수히 많다. 하지만 자신이 그 학문의 전공자가 되지는 못할망정 그 학문적인 단어의 자신만의 나름의 개념정리는 원만한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필수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학문 묻고 답하다>는 바로 앞에서 말한 어떠한 보편적이고 사전적인 의미만으로 학문적인 단어들을 이해하기보다는 그 단어에 자신만의 색깔을 한 번 더 입혀서 이해하고자 했던 한 일본인 학자의 사유가 제대로 드러나 있는 책이다. 필자가 정리한 정치와 국제경제에서 역사, 삶, 그리고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폭넓고 분야의 세상을 읽는 119개 키워드들에 관한 개념정리는 보편적인 지식을 넘어서 독자들에게 나름 개성 있는 이해를 하게도 만든다. 가령 “평등” 이라는 단어에 대한 필자의 개념정리와 고찰은 단순히 프랑스 인권선언이 말하는 ‘인간이 나면서부터 자유로우며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보편적 개념을 넘어서 현재 우리가 느끼는 평등은 어떤 평등인가 고민해서 ‘결과의 평등’과 ‘능력의 불평등’의 함수관계를 통해서 “민주주의는 평등이라는 이름 아래 '수평화의 낫'을 휘두르고 있다”(p.305) 하고 정리한다. 덧붙여 기회의 평등에 무게중심을 둔다며 다음과 같이 평등을 다시 한 번 정리한다. 결과의 평등은 사회 시스템이 보장하는 딱 그만큼의 평등이다. 말하자면 최저 보장인 셈이다. 그 다음의 모든 활동은 각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에 맡겨진다.”(p.306) 필자가 일본인 학자이기에 119개의 키워드 중에는 지극히 일본인들만이 일본인적인 이성과 감성을 담아 도출해 낼 수밖에 없는 키워드들도 여러 번 눈에 띄었다. ‘천황’, ‘2.26사건’, ‘종전 기념일’ 등과 익숙지 않은 일본 학자들의 이름들을 핵심키워드로 정리한다. 일본은 좀 더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긴 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이 이 책을 접할 것에는 미리 염두해 두지 않은 듯 하다.
   

 정말 이 책 한 권을 제대로 마음으로 이해해서 119개의 키워드들에 스스로 나름의 개념정리를 덧붙일 수 있다면, 그 어떤 학문에 대한 질문에도 자신감이 붙을 거라 생각한다. 자신감을 떠나서 적어도 관심밖의 학문과 지식에 대한 자신만의 짧은 소견을 말할 수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전히 2차 대전을 경험한 노교수의 폭넓은 학문에 대한 핵심노트에 일본 군국주의의 여운이 느껴지는 것이 다소 씁쓸하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한 관점은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분분할 수 있기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무엇보다 119개의 키워드를 통해서 이미 귀에 익숙한 학문적인 단어들을 나름 개념 정리해본 것만으로도 지식의 폭이 크게 확장 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 다음은 이러한 지식의 틀에 경험이라는 살을 붙여가는 것이 앞으로 내가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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