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 환경과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유전체에 관한 행동 후성유전학의 놀라운 발견
데이비드 무어 지음, 정지인 옮김 / 아몬드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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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바다에서 오랜만에 허우적 거리면서 헤엄치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책장을 넘기는 내내 의무교육과정에 국영수처럼 과학도 필수과목으로 지정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분개와 내 처참한 교양과학 지식 수준에 대한 절망이 번갈아 찾아왔다. 


유전자에 대한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이기적 유전자'였으니 말 다했지... 그동안 매체를 통해 가볍게 유전자를 접하면서 나는 은연중에 키가 크게 하는 유전자, 공부를 잘하게 하는 유전자 같은 것들이 거의 일대일 매칭으로 존재하는 줄 알았다. 거기에 더해 '표현형'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해보아서 그제서야 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다음 책이 '확장된 표현형'이었는지 간신히 이해하기도 했다. (그전까지는 생물학자 치고 책 제목을 감성적으로 잘 짓는군, 하고 생각했었다.) 


이 책의 한장 한장이 내 무지를 깨주는 지식의 불빛이었으며 확실히 이 책을 읽기 전 나와 읽은 후의 나는 같다고 할 수 없다. 이번 독서를 통해 DNA의 메틸화, 히스톤의 아세틸화 등 새로운 용어를 배운 것도 큰 수확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유전자가 사람의 표현형에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가장 유익한 부분이었다. 유전자의 발달은 굉장히 복잡한 매커니즘이며 처한 맥락과 경험에 많은 영향을 받는 다는 것... 사실 우리는 모든 것을 간략화 해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생물과 마찬가지로 사회도 그렇지 않다. 사건을 간략화 해서 보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그것이 초래하는 현실의 왜곡도 상당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투브에서 유전에 대한 한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아들을 낳은 일부 모체의 뇌에서 y 염색체가 발견 된 것에 대한 내용이었고 그것은 임신을 하게 될 경우 남편의 염색체가 모종의 매커니즘을 통해 임신한 산모의 bbb를 뚫고 산모의 신체에 염색체가 일부 남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회수를 뽑기 위함이었겠지만 제목도 제목이거니와 해당 분야 교수가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래서 남자를 잘 만나야 된다는 등, 이래서 아들을 낳은 엄마가 남자처럼 변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전의 생물학적 지식이 전무한 멍청한 나였다면 그 이야기에 십분 공감하며 무비판적으로 수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기본적인 유전자의 작동에 대해 이해하게 된, 이제는 약간의 상식을 갖춘 나로선 고작 염색체 하나로 인해 표현형을 넘어선 사람의 가치관이 바뀐다는 이야기가 너무 경악스럽게 다가왔다. 아무리 대중이 멍청하기로서니 저렇게 약을 팔아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그 우매한 대중 중 하나였는데! 심지여 아직도 상식의 많은 부분에 구멍이 나 있어 나도 모르는 새 경도당하고 있는 것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다시금 값진 책은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을 전해줄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겸손하게 만들고 돌아보게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살면서 이런 책들을 마주치는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지은이 데이비드 무어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수월하게 한국어로 습득할 수 있게 해 주신 정지인 님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만약 우리가 염색체를 이루는 DNA 뭉치에서 끄트머리를 붙잡고 한 가닥 뽑아 올린다면, 이 가닥은 엉켜 있는 털실 뭉치에서 뽑아 올린 2합사 털실처럼 미끈한 일직선 모양이 아닐 것이다. 뽑혀 나온 DNA 가닥은 실패 같은 것에 단단히 감겨 있는 것처럼 뭉친 마디가 보이고, 그런 다음 이어지다가 다시 또 그런 꼬이고 뭉친 마디가 수없이 반복되는 형태일 것이다. 이 ‘실패‘는 다른 커다란 분자들 몇 개가 모여서 만들어진다. - P82

DNA 가닥이 둘둘 감겨 있는 이 ‘실패‘는 히스톤이라는 큰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히스톤 역시 단백질이며, 여덟 개의 히스톤이 모여 하나의 ‘실패‘를 이룬다. - P83

염색체가 DNA만으로 구성되는 건 아니다. 염색체 안에는 DNA 외에 히스톤이 함께 존재한다. 실제로 염색체를 이루는 ‘물질‘, 즉 염색질에는 DNA보다 두 배 많은 단백질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 단백질은 주로 히스톤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리고 행동 후성유전학 연구가 초점을 맞추는 대상은 염색질 중에서도 DNA가 아닌 이 분자들이다. 염색체의 비DNA 요소들은 실제로 우리의 DNA, 다시 말해 유전자와 물리적으로 접촉하고 있으므로, 글자 그대로 ‘유전자 위에 있다‘라는 의미에서 후성 유전적이다.
- P83

몇몇 종류의 경험은 사람에게 분명히 후성유전적 영향을 준다. 아동 학대 경험은 GR 촉진유전자와 세로토닌 수송체 촉진유전자의 메틸화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태내에 있을 때 가정폭력에 노출된 것은 GR 촉진유전자의 메틸화 증가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중략) 이 모두를 종합해볼 때 드러나는 증거는 다양한 사회적 스트레스 요인이 우리의 후성유전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그 영향이 때로는 수년간 지속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 P196

이러한 부계 연구에서는 경험의 효과가 아비의 정자를 통해서만 새끼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포유류 수컷은 태아를 배고 있지 않고 따라서 태아에게 출생 전 환경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연구가 몇 건 이루어졌는데, 그중 한 연구에서 실험자들은 교배하기 전 달에 수컷 생쥐에게 특정 음식을 뺀 먹이를 먹였다. 이 먹이 조작은 새끼들의 혈당 수치가 비정삭적으로 낮아진 결과로 이어졌는데, 이 발견은 아비의 영양 경험이 정자의 후성유전적 리프로그래밍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그에 따라 새끼의 태아기 환경과 관계없이 새끼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 P327

특히 언론은 환경적 요인이 유전자의 스위치를 켰다 껐다 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특정 질병 상태나 작은 키 같은 표현형을 독자적으로 초래할 수 있다고 암시함으로써 후성유전적 결정론으로 슬그머니 빠져드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식의 글은 수십 년 동안 생물학에 들러붙어 있던 "한 표현형을 담당하는 유전자"라는 식의 착각, 즉 특정 표현형을 지시하는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잘못된 가정과 똑같은 착각을 영속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글들의 유일한 차이는 ‘유전자‘ 대신 후성유전적 성격이 가미된 ‘유전자 스위치‘라는 단어를 쓴다는 점뿐이다. 하지만 키 같은 특정 표현형이나 질병은 유전자나 유전자 스위치 같은 단 하나의 요인으로 초래되는 것이 아니라, 매우 복잡한 시스템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 간 상호작용을 통해 단계적으로 발생한다...(중략) 표현형의 발달은 후성유전적 표지가 (물론 다른 발달 관련 요인들과 함께) 속해 있는 맥락에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 P363

교훈1: DNA 혼자 형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형질들은 유전과 후성유전, 환경이라는 다양한 요인들이 통합된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작동하며 상호작용한 결과 발달한다. 형질은 단 한 가지 요인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 이상의 존재다. 발달과학자들은 수십년 전부터 유전자 결정론이 발달의 현실을 포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잇었다. 오히려 우리가 현재와 같은 존재인 것은 우리의 발달기 동안 조상에게 물려받은 다양한 자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 때문이며, 발달이 일어나는 맥락도 그 자원의 일부다. 맥락에는 우리가 수정될 당시 부모에게서 받은 유전자 이외의 생물학적 요인들 그리고 삶을 영위하는 문화적 환경과 물리적 환경도 포함된다. 이 메시지가 중요한 이유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스스로 전혀 통제할 수 없다는 착각을 몰아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이다. - P407

우리는 모두 자신이 발달하는 동안 속해 있는 맥락에서 심층적인 영향을 받으며, 어느 정도는 그 맥락을 통제할 힘도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공감할 줄 알고 깨어 있으며 성취하는 개인으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 후성유전학의 위상이 높아지면 모든 이에게 이런 메시지가 전해질 것이다. ‘당신이 생물학의 올가미에 걸려 있다고는 생각하지 말라. 분투하라. 아이들을 주의 깊게 보살피고 돌보아라. 환경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구축하며, 지속적인 건강과 발달을 증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살아가라. 중요한 건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 P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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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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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까지 발현되는 인간중심 사고방식과 상상력의 한계



SF장르로 분류된 콘텐츠를 가만히 보다보면, 약간의 상상력만 가미되어 있어도 SF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안에는 정말 한 범주에 묶을 수 없는 다양한 작품들이 있어서 그 중에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고르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 기본적으로 흥분하지만, 이런 류의 작품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작품이냐 하면, 인간을 닮은 지적인 외계생명체가 등장하는 종류이다.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뚜렷하다. 나는 그 인간의 시혜적인 마인드가 싫다. 이미 일상 생활속에서, 수많은 매체에서 접하고 있는데 그걸 내가 좋아하는 장르에서까지 그 기만적인 모습을 굳이 보고 싶지 않다. 한편으로는 작가의 한계가 뚜렷이 보여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구체적으로 따져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외계 지적인 생명체가 인간을 웃도는 지적능력 또는 인간은 가늠할 수 없는 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발전수준이 인간보다 뒤쳐졌다는 설정이 너무 웃기고 기만적으로 보인다. 작중에서 오필리아는 <종족>의 말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지만 <종족>의 파란망토는 오필리아가 놀랄 정도로 정확히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고, 그들 <종족>은 인간의 발명품을 이해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별다른 가르침 없이 그들은 기계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소통하고, 습득한다. 이것부터가 굉장히 모순적이지 않은가? 지적인 능력은 인간을 상회하고, 인간은 알 수 없는 자기들끼리 거의 초능력에 가까운 소통능력을 지녔는데 인간보다 발전 수준이 낮다는 사실이?? 굉장히 기만적이라 할 수 있다. 참으로 웃긴 점은 대개 이런 지적생명체를 구상해내는 작가들은 그들에게 뭔가 인간이 가지지 못한 가치를 부여한다는 거다. 예를 들어 평등이나 존중이나.. 뭐 그런 가치들 말이다. 이런 가치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내말은, 이렇게 이상적이고 능력도 인간을 상회하는 외계생명체가 어떻게!! 인간보다 발전 속도가 더뎌서 더 우매한 생명체인 인간이 이들에게 가르침을 선사하는 그런 우스꽝스런 그림이 그려지냐 이말이다. 우리로 치환해서 보자면, 우리보다 추론능력이 떨어지는 침팬지가 발명해낸 뛰어난 문명을 우리가 감탄하며 침팬지들로부터 문명을 배우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얼추 그림이 비슷할것이다. 우습지 않은가? 

이런 면에서 나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을 때도 약간의 조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누구냐 그... 갑각류를 닮은 외계생명체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결국 눈이 보이지 않고 방사선인가...할튼 우주의 필수 요소를 이해하지 못해 그들의 우주발전 기술에 결함을 보였다. 그걸 주인공은 보완해주며 가르쳐줬고. 이렇게 우주에서조차 우리가 최고로 발전했을거란 그 근거없는 자신감에 나는 상당히 거부감이 든다. '지구에서도 우리가 최고의 지적 생명체이니 우주에서도 마찬가지일거야! ' 하는 생각이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드러나는게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외계지적생명체의 등장이 아닐까 한다. 웃기는 점은 이런 그 인간 스스로에 대한 오만함에 대한 보완책인지 뭔지 작가들은 대체로 이런 외계생명체에게 우리에게 없는 특수한 능력과 사상적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작품이 더 우스꽝스러워지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금 말하지만 인간보다 지적능력이 우수한데 인간보다 발전이 더디다고 상상할 수 있는가? 이건 마치 아이큐 50인 사람으로부터 아이큐200인 사람이 가르침을 받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큼이나 어이없고 모순적인 상황과 다름없는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이 아무런 울림이 없었던 것은 아니긴 했다. 결국 작가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가치, 늙고 나이든 여자를 천대하는 것에 대한 반박과 그 후세대를 양육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 등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외계생명체를 도입한 부분이 썩 내키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좀더 아쉬운 부분도 있다. 작가들은 대체로 SF란 장르를 통해서 소외된 계층에 대한 가치와 이들에 대한 환기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가치의 중요성에 비해서 그닥 내용이 신선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도는 좋았다고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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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들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1
정소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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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집살이는 대물림된다는 얘기가 있다. 시집살이를 호되게 당한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었을 때, 똑같이 새로 들어온 며느리를 못살게 군다는 얘기이다. 이는 비단 시집살이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긴 하다. 가정폭력을 당하며 자라온 아이가 커서 부모가 되었을 때, 똑같이 폭력적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거나, 아니면 어느 집단에서건 끊기지 않는 '군기문화' 등도 맥락을 같이한다. 재미있는 점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 이러한 상황 속에 속한 개인에게 본인의 이야기를 하라고 한다면, 백이면 백 본인은 결백한 피해자라 호소할 것이며, 그 스스로도 스스로가 억울한 피해자라고 굳건히 믿어 의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작중 윤서의 어머니는 밝고 싹싹하며 애딸린 이혼남하고도 결혼하는 것도 모자라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산 아주 비범한 인물이지만 결국엔 시어머니의 냉대와 남편의 무관심에 견디다 못해 병을 얻고 만다. 들리지 않는 소음에 시달리는 불치병이다. 이 병은 자신 스스로를 갉아 먹는 것도 모자라 주변인들까지 좀먹어버리고 마는데, 자세히 보면 그들은 하나같이 외로움에 시달리던 이들이다. 


책에는 가해자이지만 알고보면 그도 피해자였던, 가슴답답하고 외로운 이야기를 지닌 인물들이 계속 등장한다. 시발점이었던 1111호 윤서 엄마는 애딸린 이혼남과 결혼하는것도 모자라 시어머니도 모시고 살았지만 수년 간 시어머니의 냉대와 남편의 무관심에 점점 병들어갔다. 1112호 옆짚 여자는? 육아오 가사에 동참하지 않고 싱글때처럼 저 편한대로 사려는 이기적인 남편때문에 홀로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육아하다가 결국 1111호처럼 병이 생기고 말았다. 그렇다면 소름끼치던 1111호 남편의 엄마, 그러니까 1111호 며느리를 냉대하던 시어머니는? 작중에서는 소름끼치고 이기적이고 무정한 인간으로 나왔지만 그가 그렇게 된 데에는 그 또한 젊었을 시절, 모진 시집살이를 겪고 남편의 냉대에 속앓이를 했을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쯤되면 여성의 삶이란 무엇인가, 반문하게 된다. 


내가 겪은 것을 꼭 되갚아 주어야만 하는가. 



나는 집에 혼자 남았다. 이렇게 되고 보니 엄마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외로움이 만들어낸 실체도 없는 소리가 엄마의 삶을 잡아먹었다. 나도 머지않아 그것에 먹힐 거다. 옆집 아줌마는 무슨 소리를 듣는 건지 엄마처럼 계속 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 P112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했다.
이상하게도 가해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상황이 무서워 그곳을 영영 떠났다.
- 작가의 말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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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ife Upstairs (Paperback) - 『기척』원서
Rachel Hawkins / HarperCollins Publishers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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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ead this book in Korean version at first, but as story goes on I felt the need of reading it in its original language so I lend "The Wife Upstairs" from the library.


I can't let of of the book until i reach the very last page. Didn't even notice the time ticking since the story was very fast-paced and irresistibly interesting. However I still did not get it is a retelling of Jane Eyre. Is it because the girl's name in the story is Jane? Just kidding. 


I can't help myself becoming very realistic in some points such as, how Jane, I mean how Helen can keep pretending she's Jane and can be engaged and even get the fortune of Bea's? Is society system in the U.S.A. is that loose? Even though the book says Helen got away with Jane's ID card, but when real Jane died, they probably did some autopsy and confirmed that it is she, aren't they? This thing kept me uneasy till the very last part of the book. 


Anyway, all those things went well for Jane, but it would be good if the author had tell more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Jane and Helen. Helen love Jane, and Jane is the only friend she ever got, but there's not much story of it. If author showed more of their friendship - which probably about solidarity and love- then it would be a good contrast to the relationship that Bea and Blanche had. 


Anyway, overall I truly enjoyed the reading. It was a very gripping novel, and I really appreciate it that good novels help me forget the hardness of the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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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사랑한다 - 나를 잃지 않고 타인을 사랑하기 위하여
이숙명 지음 / 북로망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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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들의 기가 줄곧 사경을 헤메고 있다는 구절을 트위터에서 보고 흥미가 생겨 읽게되었다. 

아무래도 에세이다 보니 읽기가 수월하고, 전반적으로 2030 한국 여성이라면 충분히 동의할 만한 그런 상식적인 이야기들이 적혀있다.(비록 작가는 마흔인 것 같지만 말이다.)


머릿말에서 제시한 "전통적이고 낭만적인 로맨스는 페미니즘과 양립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꽤나 신선했고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깊은 문장이 아닐까 싶다. 


로맨스... 여자에게 로맨스란 참으로 가슴설레면서도 위험한 단어가 아닐까. 여성작가가 여성의 취향에 맞 예도록리하게 가공해 낸 로맨스 드라마를 보고 자란 우리 순진한 여성들은 나이불문 픽션에 등장한 상상 속의 남자 주인공이 현실에도 있으리라 헛된 희망에 젖는 순간들이 있는데 이때야말로 여성의 생존과 앞으로의 남은 삶, 그리고 그의 인격이 명재경각에 달려 있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를 어떻게 넘어가느냐가 앞으로 그 여성의 삶을 좌지우지 한대도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닐 것이다. 남자 하나 잘못 만나 인생이 뒤엉켜버린 여자의 이야기는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사실 '뒤엉켰다'는 굉장히 순화된 것으로 현실에서는 폭행, 성폭행을 넘어 본인의 목숨 뿐만이 아니라 가족의 목숨까지도 위협받기 일쑤다. 하루에도 수십 건씩 남자에 의해 살해당한 여자들의 뉴스가 쏟아지는 이 순간에도 로맨스를 담은 콘텐츠는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소비되고 또 그렇게 순진한 여자들을 잔인하고 끔찍한 현실로부터 눈감게 만든다.


모친이 항상 남자를 만나라고 할 때, 그래서 남자를 만나야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사과바구니였다. 독사과가 가득 든 사과 바구니. 연애할 남자를 고른다는 것은 그 안에서 독이 들지 않은 사과를 찾는 것이었다. 겉모양만 보고 말이다.


여전히 나는 연애와 결혼이 여자의 인생에서, 아니 여자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견고한 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혐오가 만연한 이 사회에서 남자를 만나 연애와 결혼을 하고 정상가정을 만든다는 것은 내 안의 자아와 신념을 꺾고 굴종을 맛본다는 것을 뜻한다. 꺾이는 자아와 굴종의 정도는 내가 함께하기로 고른 남자의 수준에 달려있다. 그렇기에 신중하고도 신중해야 할 이 순간에 여자가 그릇되고 섣부른 판단을 하도록 유혹하는 것은 도처에 깔려있다. 로맨스로 한껏 포장한 매체 뿐만이 아니다. 여자와 남자의 관계에서 위계를 상정하는 모든 것들, 남자의 실수와 폭력을 용인하는 주변인의 말들(예를 들어 남자는 애 아니면 개 라던가, 남자는 커도 애 라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유독 남자에게 관대한 사회분위기와 여자 스스로를 과도하게 검열하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 가부장적인 가치에 사로잡힌 부모님과 친인척들 그리고 인터넷에 떠다니는 온갖 여성혐오 콘텐츠 등... 수를 세자면 끝이 없다.


그래서 나는 애초에 이 게임을 시작도 하지 않는 방법 또한 삶을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 많은 여자들이 나와 같이 생각하기에 연애를 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는 것이리라.


어쨌든, 삶은 혼자든 둘이든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외로움은 내 자신이 지성체라는 것에 대한 방증이다. 공허함으로 느껴지는 그 구멍을 무엇으로든 막고자 한들, 결국엔 혼자라는 사실만 더 뚜렷이 깨달을 뿐이다. 그러니 그것을 헛된 로맨스로 채우느니, 오히려 인생의 동반자로 끌어안는 것이 이 지겹고도 고독한 삶을 헤쳐나가는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싶다.

"그가 원하는 전통적이고 낭만적인 로맨스는 페미니즘과 양립할 수 있는가?" 이것은 오늘날 꽤나 보편적인 고민이다. 또한 오랫동안 나 스스로에게 던지고 해답을 찾으려 노력한 이런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어떻게 나를 잃지 않고 타인을 사랑할 것인가.‘ - P13

여자들이 이성애와 자기애 사이에서 최소한 15년은 고민을 해 왔다는 건 슬픈 현실이다. 어째서 타인을 사랑한다는 게 나 자신을 잃는 일이어야 하는가. <어쩌다 로맨스>는 자기애를 열렬히 응원하는 것으로 이 질문에 답한다. 그것이 시대의 요구이기 때문이다. - P81

나는 자라면서 "남자 기 죽인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우리 세대 여자들은 동네 친구들끼리 뛰어놀다가 싸움이 나도, 시험 성적이 좋아도, 친척 앞에서 남동생의 잘못을 지적해도, 놀이 집단에서건 회사에서건 같은 성별이 삼삼오오 모여서 큰소리로 웃기만 해도 "남자 기죽인다"는 말을 들었다. 한국 남자의 기는 내가 기억하는 지난 40여 년간 줄곧 사경을 헤메고 있었다. 가정의 여자들이 온 힘을 다해 반짝 살려 놓아도 밖에 나가서 다른 남자들한테 치이면 금세 다시 죽어 버리기 때문에 항시 신경 써 돌봐야 했고, 어머니들은 아들이 결혼을 해서 분가를 할 때면 조선시대 아궁이 불씨 맡기듯 며느리에게 그 의무를 물려주었다. - P85

"남자는 밖에 나가서 큰일해야 되니까 집에서라도 편하게 해 주라"는 어머니 세대의 덕목은 여성의 사회 진출과 자아실현 추세에 발맞춰 "남자는 단순하고 아이 같으니까 잘 구슬려서 이용하는 게 여자의 지혜"라거나 "남자는 스스로 자기 정서를 돌보지 못하니까 여자가 도와줘야 한다"등으로 변형됐지만 내용은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오냐오냐해 주라는 거다. 한편으로 남자의 성욕, 분노, 폭력, 미숙함 등은 본능이라면서 반쯤 눈감아 주는 사회 분위기가 여자들을 더욱 조심하게 만들었다. 남자의 눈치를 살피고 그들이 부정적 기분을 품을 만한 표현을 삼가는 것은 여자들의 생존술이요, 법 대신 이 사회가 채택한 안전장치였다. - P86

언제까지 성공한 여자들이 남편 눈치를 보고, 남자는 불필요한 경쟁심과 열등감에 시달리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애초부터 이 문제의 원인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도 불평등한 위계 관계를 맺도록 강요하는 이 사회에 있지 파트너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추지 않는 여자들에게 있는 게 아니다. (중략) 여자는 남자를 위한 자존감 자판기가 아니다. - P90

인간의 성격에는 국적, 인종, 성별, 직업에 따른 차이보다 개인차가 더 크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누굴 만나도 진정한 소통은 불가능하다. 대상의 카테고리를 크게 나눠 보편화할수록 실체에서는 멀어지기 마련이다. - P137

투블럭이나 버즈컷을 안 어울려서 안 하는게 아니라 당장 탕비실 생수통에 독약을 풀 불만분자처럼 보일까 봐 못 하는 여자들도 있다.(중략) 하지만 데이트를 할 때도 남녀가 다른 강도의 꾸밈 노동을 강요받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거리에 나가 보면 공들여 기른 긴 머리에 색조까지 들어간 풀메이크업, 컬러 렌즈를 끼고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들이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야구 모자를 쓴 남자들과 팔짱을 낀 채 돌아다닌다. 남자들은 곱슬머리에 안경을 끼고 배를 내밀고 다니면서도 연애를 꿈꾸는데 여자들은 안경조차 끼지 않고 365일 다이어트 얘기를 하고 자꾸만 더 예뻐져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 P155

나는 화이트칼라라곤 농협과 수협 직원, 공무원, 교사 뿐인 도시에서 자랐다. 그 지방 남자들은 일단 공부를 해 보고, 안 되면 장사를 하거나 배를 타고,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아내에게 빌붙었다. 반면 일하지 않는 성인 여성은 없었다. 그들은 논밭, 식당, 공장, 노래방, 상점에서 닥치는 대로 일하며 가정을 건사했다. 그럼에도 남편은 물론 여자들 자신도 아내의 일이 가계의 주 수입원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남자는 큰일을 해야 한다‘는 믿음 떄문에 남편들의 빈둥거림은 언제까지나 미래를 위한 유예 기간으로 여겨졌다. 그리하여 여자가 아이를 낳고 기르고 먹여 살리는 동안 남편들은 변변히 한 일도 없이 가부장의 지위를 차지했다. 물려줄 만큼 명예로운 가문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자기 성씨를 이어받을 아들을 낳으라 아내를 구박하고, 차례마다 제 조상을 먹이기 위해 온 가족을 부려먹고, ‘계집‘과 ‘사내‘를 엄격히 구분하여 집안일 따위는 깔끔하게 거부했다. - P188

나는, 여자는, 살아남아 자신을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 불편한 남자들의 기분을 맞춰주고, 순진한 척하고, 거절을 에둘러 말하는 등의 감정 노동을 해야 한다. 이미 여자들은 충분히 조심하고 있다. 그러니까 괜히 피해자 말버릇 걱정할 시간에 폭력은 나쁜 거라고 잠재적 가해자들이나 제대로 가르치길 바란다. 친절하게 굴면 관심 있는 줄 알고 팬티 바람으로 덤비고, 단호하게 말하면 분해서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들에게 대체 어떻게 거절을 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난단 말인가. 과연 답이 있기는 한 문제인가? - P250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여자들이 No라고 말할 권리를 위해 인생을 걸고 싸우고 있다. 싫다, 하지 마라, 불편하다, 사과하라, 이 단순한 단어들을 이해하는 게 왜 누군가에겐 그토록 힘든 일인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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