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박스 -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
토니 포터 지음, 김영진 옮김 / 한빛비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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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7.1. 연수원 첫날


남작가가 남독자에게 전하는 이야기이며, 그가 설명하는 미국남자들은 놀라리만치 한국남자들과 닮아있다.

남작가임에도 불구 성차별 문제를 굉장히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어서 책을 읽으면서도 이런 남자가 실제로 존재하긴 하는구나 하고 놀라웠다.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이 90퍼 이상이지만 이를 남자의 시각에서 풀어낸 것이 나름 신선했다. 이전에는 성차별 문제를 마주하면 분노하기 바빴는데 아무래도 남작가가 남독자들에게 특별히 '애정어린' 마음을 담아 전달하고 있어서 감정소모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읽다보면 여성차별의 문제를 깨닫고 나아가 변화하는 남자들이 등장하는데 솔직히 정말 이런 남자들이 한국에는 있을까 싶다. 과연 역사깊은 여성차별과 여성혐오에 대해 제대로 된 생각을 갖고 있는 한국 남자들이 있기는 할까..?


책이 나에게 남겨준 것은 분노와 비난으로는 그남들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하긴 입장바꿔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본인이 잘못한건 하나도 없는데, 난 살면서 혜택은 커녕 군대까지 끌려가서 희생당한거 밖에 없는데 세상의 절반이 저에게 손가락질하며 비난하니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마치 어른이 애를 달래듯 그렇게 조심스럽게 '애정을 담아' 조금씩 현실을 알려주는 수밖에... 분노가 묻어 있는 주장은, 최소 이 분야에서는 남자들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가녀리고 연약한 영혼을 가진 그들의 정신이 받아들일 수 있게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선 '애정을 담아' 해야 하는 것이다..


아래는 책 구절 발췌.


...폭력적인 남성은 우리 같은 평범한 남자들로부터 자신이 저지른 나쁜 행동에 대한 면죄부를 받는다. 남자들이 '나쁜 놈'들을 용서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간섭하지 않고 자기 일에나 신경쓰는 것이 이에 속한다. 남자들이 남의 가정폭력 문제에 개입하기를 거부하는 저변에는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그 사람의 아내 혹은 여자 친구)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남성들이 침묵을 지킬 때 그 침묵은 폭력적인 남성에 대한 면죄부로 작용하고 결과적으로는 남성들이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방해물로 작용한다...



...여성들은 맨박스에서 비롯된 남자들의 허세가 이런 갈등 상황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여성들은 남성들의 안전과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들이 겪은 상황들을 말하지 않고 속에 담아둔다. 심지어 여성들이 내게 털어놓기로는 만약 자신들이 성적 대상으로 취급된 경험을 전부 다 고백하면 자신의 남자 친구나 남편의 절친한 친구들조차 이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한다...



...남성성의 규범을 엮어놓은 맨박스를 단단하게 고정하는 접착제는 호모포비아라고 할 수 있다. 여자들과 어울려 다니는 게이처럼 행동하지 말고 성적을 끌리는 여자를 제외하고는 관심 갖지 말라는 논리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남자다움의 정의란 '여자들이 할 법한, 여자 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여자들과 최대한 다르게 보일 수 있는 방법은 전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예외적으로 관심을 허용하는 건 오직 성적인 목표가 걸려 있을 때로 한정된다..



...남성의 손으로 자행되는 여성 폭력을 여성들 스스로가 초래한 면이 있다는 주장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종종 들려온다. 여성이라면 남성의 마음을 이해하고 남자의 자존심이 상처 입지 않도록 맞춰서 행동해야 한다는 발상은 남성들이 매우 자주 언급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지배적 위치에 있는 집단이 힘없는 피해 집단에 강압적 관계를 유지하려고 강요하는 방식이다. 이는 여성들이 강압적인 처사에 반기를 들거나 평등을 주장한다면 그 결과로 발생하는 반작용(폭력)은 스스로 불러온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잘못된 시각을 반영한다...


*여성들을 학대하는 발언이나 폭력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남성들이 사회에 전달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이 방법은 남성이 저지른 폭력에 대처할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한다는 점이다. 대처할 책임을 여성들이 져야 할 뿐만 아니라 안전을 도모한다는 미명 하에 여성들의 행동을 제약하고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대응책이었다. 남성들의 삶에는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은 채 말이다...


...우리의 의도는 이번 강간 사건을 비롯한 각종 교내 성폭력 문제를 남성들의 문제로 인식시키는 것이었다. 결국 초점은 여성들이 아니라 남성들에게 맞춰졌다. 셔틀 차량으로 이동하게 된 남학생들은 더는 피해 여학생이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왜 그녀가 그 시간에 거기 있었는지, 그녀가 강간당했을 때 어떻게 행동했는지 꼬치꼬치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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