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노래의 숲을 거닐다 - 향가 고려가요 시조 가사 민요 등으로 만나는 우리의 고전 시가
김용찬 지음 / 리더스가이드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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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맞는다면 단출한 카페에서 생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를 포함해 서넛 정도였는데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교수님은 분명히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카페에는 음악 대신 낭랑한 목소리의 시 낭송 테이프가 돌고 있었고, 낭송되는 시는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였다. 조용히 낭송되는 시를 따라 ‘사평역에서’를 읊조리던 교수님의 모습이 아직 선명하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개인적으로 난 글쓴이와 친분이 있다. 오랜 시간동안 만나거나 연락을 하지는 못했지만 오래전 시에 흠뻑 취한 저자의 모습은 내게 생생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내가 생각하는 지은이는 시와 시조, 아니 우리 가락과 한 몸이었다. 그래서 그의 글은 노래 그 자체이다.

 

고전문학에 대한 학창시절의 기억이 유쾌하고 즐거운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 또한 고전이라면 고답적이고 어렵다는 선입관이 가득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통의 노래들을 현대의 감각으로 쉽게 해석해 놓은 지은이의 책들은 다르다. 글쓴이의 능력은 이미 전작『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시조가 재밌다는 사실과 더불어 언어를 통해 자유자재로 풍성한 유희를 즐겼던 우리 조상들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을 내게 주었기 때문이다.『옛 노래의 숲을 거닐다』는 전작에 이어 우리 전통의 노래들이 얼마나 재밌을 수 있는지 재차 확인해 주는 고마운 책이다.

 

시조에 국한되었던 전작의 한계를 뛰어넘은 이번 책은 향가에서 시작해 고려가요와 가사 그리고 시조로 이어져 조선 후기 문학의 꽃인 사설시조까지 두루 아우른다. 때로는 삶의 애환을 때론 사랑을 그리고 자연과 충절을 읊은 우리의 노래를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 놓았다. 특히 나를 포함해 고전문학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분(?)들을 위한 친절한 전문적인 보충 설명들이 책 곳곳에 포진돼 있다. 무엇보다 저자의 맛깔스럽고 군더더기 없는 글 솜씨는 전작에 이어 더욱 진일보한 듯 느껴진다.

 

시대가 뒤숭숭해서 그런지 온 사방에 위로 받아야 할 사람들이 천지에 깔려 있다. 상처를 주는 존재의 확실성은 부재한 가운데 열에 아홉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고 그래서 상처를 치유한다는 책들이 넘쳐흐른다. 타인의 조언이나 격려로 마음의 상처가 쉽게 치유된다면 참 편한 일일 테지만 그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다. 완벽한 위로는 스스로의 마음가짐에 달렸다. 차라리 누군가에게 내 고통과 상처를 이야기하며 치유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노래가 아닐까 싶다. 글쓴이가 강조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마음속에 쌓인 시름을 풀기위해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기보다는 스스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것이 치유의 최선책이라는 사실. 우리 조상들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쉽게 살아낼 인생은 없다. 누구의 삶이든 그 삶은 고통과 슬픔이 씨줄과 날줄로 켜켜이 짜여 있는 법이다. 그래도 살아야 할 삶이라면 그 깊은 시름을 털고 위안을 얻기 위해 노래를 불러봄은 어떠한가?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낸 조상들의 노래를 읊조리는 건 또 어떨까? 만약 그러고 싶다면 어서 옛 노래의 숲을 거닐어 보자. 책을 펼치는 순간 시름이 반으로 줄어들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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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홍수 - 에릭 드루커의 다른만화 시리즈 4
에릭 드루커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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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


 책『대홍수』가 표현한 것은 소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거대 도시 뉴욕은 인간 소외의 거대한 표본이다.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이나 힘과 권력이 없는 자들은 도시의 맨 아랫부분에 소외되어 있다. 그들은 집안에서도 소외됐고, 집 밖 도시에서도 소외되어 있다. 작가 에릭 드루커의 그림은 현대 문명 속에서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기막히게 표현한다. 거친 스크래치로 표현된 인간들, 뼈가 훤히 보이는 인간들, 눅눅하고 축축하고 어둡기 만한 얼굴들과 도시 풍경들. 처진 어깨에 고개 숙인 타락한 군상. 드루커의 그림에서 인간과 도시는 소외라는 공통된 쓸쓸함 젖어 있었고 그는 이런 현실을 스크래치 하여 그림으로 표현했다.

기술이 진보하여 다양한 미디어가 속출하고, 개인 휴대 단말기들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현실. 하지만 그렇듯 발달된 현실에서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이 과거 보다 훨씬 어려워졌다는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기술적 진보는 인간의 이성적 진보를 가로막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라는 존재자체가 기술의 목적이 되어 인간의 순수함이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드루커의 그림에서 보이는 엑스레이 양식(뼈가 드러나 보이도록 사람들을 투명하게 그리는 양식)때문인지 몰라도 책을 보는 내내 그가 표현한 뼈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고민해 보았다. 결국 인간의 본질이 파괴되면 문명도 파괴되는 것인지 모를 일이지만 대홍수로 인해 뉴욕이 잠기는 드루커의 그림은 의미심장하다.

 소외된 인간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영혼이 없는 인간들의 공간이 될 것이다. 드루커는 자신의 그림에서 문자를 배제시켰다. 소통과 대화가 사라진 현대인의 비인간적 공간 즉 도시. 드루커는 그림에서 글자와 소통이 사라진 대도시 뉴욕을 표현하고 있었다. 소외된 인간이 가득한 도시를 말이다. 그리고 그는 도시를 파멸시킨다. 대홍수로 말이다. 신이 존재한다면 세상을 깨끗이 하기 위해 인간들에게 분명 거대한 홍수를 내리리라는 확신을 갖고 말이다.

 몇 달 전 도스또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었다. 이성과 합리성으로 무장한 도끼 살인자 라스꼴리니꼬프는 문명의 진보가 만들어낸 희생양이었다. 「죄와 벌」이 문자를 통해 말해주는 교훈은 드루커의 『대홍수』가 그림을 통해 보여주는 교훈과 다르지 않다. 이성과 합리성을 통한 기술의 진보가 만들어 낸 문명. 그리고 그 문명이 만든 인간 소외는 결국 파국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합리성이 만든 변증법의 세상을 뒤로 하고 우리는 진지한 인간 본연의 삶을 고민해야 한다. 드루커의 그림 곳곳에서 발견되는 과거 오래된 문명의 흔적들, 이누이트들, 다양한 고대 형상들은 문명이 만들어 내는 참혹한 소외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다.

 그림이라는 소통 장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매혹적이다. 하지만 짧디 짧은 나의 얇은 지식으로 드루커의 작품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은 진보의 비인간성과 소외 그리고 파국이었다. 인간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면 현대 문명이 만들어 낸 많은 문제들도 해결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나는 이야기 하고 싶다. 뼈로 상징되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야 말로 소외된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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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 제국 - 헤로도토스, 사마천, 김부식이 숨긴 역사
박용숙 지음 / 소동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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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까?

좀 난감하긴 하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고등학교 국사책을 뒤져 봐야했다. 그리고 검색 창에 부여니 옥저니 동예니 하는 고대 국가들도 검색해야 했다. 어떤 책에서 본 듯한 미트라교도 찾아보고 조두(俎豆)가 뭔지 사전도 뒤적였다. 그래도 아직 뭔가 많이 부족한 느낌이다. 책의 마지막장을 넘기면서도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하다. 난감하고 혼란스럽다고해야하나. 역사란 것이 이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철저히 자료를 뒤지고 유적을 답사하고 유물을 연구해서 빙고라고 외치기 어려운 뭐 그런 거 말이다. 그것 참.

우리의 시조 고조선의 단군은 수메르어의 태양신 ‘딩기르’ ‘다곤’을 이두로 옮긴 글자로 환웅의 이야기가 사르곤의 이야기와 대응된단다. 해모수는 메디아의 영웅인 프라오르테스이고 해모수와 함께 사르디스를 공격한 기비(cambi)는 《일본서기》의 인물 스사노오 미코토란다. 국사책에 만주 길림성 일대 송화강 유역에 존재했다던 부여는 페르시아 제국이었고, 신라는 아르메니아의 카파도키아에 있던 나라였단다. 춘추전국시대의 초나라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첨예하게 맞서는 현재의 가자지구에 있던 나라고, 중국의 통일제국 진(秦)나라는 마케도니아에 있던 나라였다는 뭐 그런 이야기. 보너스로 현재 아르메니아가 있는 곳에 차탈휘위크 지역이 우리 고조선이 있던 장소였단다. 고조선은 만주와 북한지역에 있었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것 참.

내가 알고 있는 역사지식라고 해도 지금 중, 고등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딱 그 정도 지식이 전부인 나에게 『샤먼제국』은 어려운 책이었다. 달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 문자(한자, 영어, 이두 등)에 무식하고 식견이 뒤떨어지며 상식도 모자랐기에 《산해경》,《사기》,《환단고기》에다가 헤로도토스며 박제상이며 일연이며 김부식이며 그밖에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책들과 문헌들과 인물들까지, 책이 전하는 정보의 절반에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의 이해능력의 한계를 절감했다. 한 구절 인용해보겠다.(타이핑도 만만치 않을 듯싶다) 그것 참.

그렇다면 촉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등장했는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여기에서 다시 꼼꼼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헤로도토스의 세계지도에는 소그디아나가 sogdi로 표기되고, 그리스인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에는 소그디아나가 사카sakas와 구별되지 않는 지역에 있다. 이 지역이 스키타이scythie인 것이다. sog, sak, scy와 같은 두음은 수메르어에서 신의 정령을 의미하는 풍경(風磬)이라는 말과 관련이 있다. 풍경을 saka라도 하기때문이다. 풍경은 바람과 뿔이 달린 물고기(정령)라는 의미이다.
중국은 촉을 고촉, 파촉, 전촉, 후촉등으로 매우 다양하게 부른다. 《자전》에서 ‘촉’을 ‘벌레의 총칭’이라고 하고 굼벵이를 예로든다. 이것이 조두와 관련되는 일이라는 것은 이 용례에서 알 수 있다. 예컨대 묘당에 모시는 신성한 그릇이거나, 홀로 격리되어 있는 귀[耳]라고도 한 것 등은 의심의 여지없이 흉노의 조두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 무속에서 말하는 ‘신주단지’이다. -본문 517, 518쪽

어떠신가? 대단하지 않은가? 600페이지를 넘는 두꺼운 책의 상당부분에 걸쳐 위와 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뭘 좀 알고 읽는다면 뭐가 어떻다고 칭찬도 하고 비판도 하겠지만 난 그저 읽고 신기해했을 뿐이다. 또 즐거움도 나름 있었다. 하지만 읽은 내용에 대해 뭔가 글로 남기려니 그것 참이라는 말이 튀어 나올 뿐이다. 그것 참.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고대사의 거의 대부분이 지중해와 서남아시아 그리고 멀리 동유럽까지도 포함된 거대한 지역에 걸쳐 형성되었다는 것이 책의 주장이다. 지은이는 유물과 유적을 포함한 다양한 자료들을 토대로 여러 지역의 지명과 고유 명사들의 이두식 발음에 착안하여 다소 황당하게 느껴질 수 있는 주장들을 피력하고 있다. 지적 능력이 미천한 나로서는 무엇이 어떠하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책을 통해 역사적 상상력의 깊이만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 책을 쓴 지은이가 터무니없이 역사에 대한 비약을 너무 심하게 서술했다는 평가도 걱정스럽지만 나름 재미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 참. 

국가주의를 바탕으로 엮어지는 국사(國史)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는 현실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하나 더 늘어났다고 하면 나 또한 너무 비약이 심한걸까?
태양을 숭배하고 천문학에 능통한 사제들의 지배를 받았던, 지중해에서 출발해 서남아시아를 거쳐 동남아시아와 중국 그리고 한반도와 일본을 아우르는 거대 고대제국에 존재했다는 주장과 그 근거에 대해 어쩌면 어느 정도 가공되고 왜곡된 승자의 역사만 배우고 공부하는 우리 학생들과 이야기 하고 싶다. 그냥 외우는 것만으로 끝나는 역사가 아니라 상상력으로 똘똘 뭉친 생생한 역사 뒤집기를 말이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공부해야하지 않는가? 그것 참. 이것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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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출판사 2010-09-07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강연이 있어 소개드리고자 방문했습니다.

진정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는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이 진실인지, 저자의 방대한 사료 및 문헌의 연구와 분석을 통해, 여러분이 가지고있는 의구심을 해소하고 역사관을 재정립해 볼 수있는 시간을 마련하였습니다.
관심있으신분들은 강연장에오셔서 토론의 장을 만들어보는 것 또한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에 대한 관점을 진일보 시키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초청강연]와우북페스티벌 저자와의 만남 - [샤먼제국] - 박용숙

와우북 페스티벌에서 저자와의 만남을 준비하였습니다.
http://blog.daum.net/sodongbook/12
http://blog.daum.net/sodongbook/9


샤먼제국은 지중해에서 시작된 샤먼 제국의 중심세력이 점점 동쪽으로 이동해온 경로와, 그리스 민주주의 이후 헤로도토스, 사마천, 김부식 등이 각국의 이익에 따라 역사를 어떻게 왜곡 서술했는가를 추적한다. 이 책한권으로 동서양 고대사의 얼개를 잡을 수 있음은 몰론, <사기>와<삼국사기> 등 고전도섭렵할 수 있다. 우리 역사와 중국사, 세계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함께 끝을 알 수 없는 저자의 학문적 깊이, 인문적 상상의 힘을 보여준다.


"한반도 반만년의 역사는 허구다!"
* 샤머니즘, 동서양 고대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

* 책 : 샤먼제국

* 강연 : 박용숙(샤먼제국 저자)

* 강연일시 : 9월11일(토) 오후 5시 30분

* 강연장소 : 마포평생학습관(마포도서관) 4실

* 초대인원 : 25명



*** 알라딘 [문화초대석] 참가 신청

*** http://blog.aladin.co.kr/culture/category/25330380?communitytype=My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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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반만년 역사는 허구다!-샤먼제국, 동서양 고대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



이번 9월 10일부터 열리는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서

<샤먼제국>의 저자 박용숙선생님의 초청강연(9월11일 오후 5시30분 마포평생학습관)이 있습니다.



책을 읽고 꼭 한번 저자를 만나고 싶었던 분,

책 내용을 묻고 싶었던 분,

책 내용을 항의하고 싶었던 분,

사마천과 김부식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궁금한 분,

샤머니즘에 관심이 있는 분,

환단고기에 대해 할 말 많은 분

그리하여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많은 분!!

모두 환영합니다.



<샤먼제국>은 단군은 시리아의 왕?

진시황제와 알렉산드로스가 같은 인물?

신라의 왕관은 사람이 쓴 것이 아니었다?

아시아의 역사가 세계사이고 서양사는 변두리 역사?

샤머니즘은 미신이 아니라 제국의 통치 이념?

만리장성을 쌓은 것은 진시황이 아니라 흉노가 쌓았다?



<샤먼제국>은 광범위한 동서양의 역사적 유물을 바탕으로 사마천과 김부식의 방대한 역사서를 재분석과 검증합니다.

그리고 오류를 되짚어가는 과정에서 세계사 속에서 호흡하는 우리 역사를 되살립니다.

그렇지만, 민족 중심의 사관을 지양합니다.



박용숙 선생님과의 만남은 9월 11일 오후 5시 30분, 마포평생학급관 강연실 4실에서 있으며,

참가 신청은 아래와 같이 와우북페스티벌 카페로 가셔서 신청하셔도 되고,

sodongbook@naver.com 으로 심청하셔도 됩니다.

연락처와 이름은 꼭 적어주시고요!



성공회대 교수이자 신학자인 김민웅 선생님이 경이롭다고 한 책, <샤먼제국>의 저자,

박용숙선생님과의 만남에서 젊은 역사관을 호흡해 보세요.~~ ^^



참고로 인터넷서점과 알라딘의 대표적인 서평 두 개를 링크해놓습니다요~~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277890#MyReview



http://www.yes24.com/24/goods/3713072?scode=032&srank=1#ReviewTop1



와우북페스티벌과 강연에 오시면 <샤먼제국>을 축제 특별할인가로 구입할 수 있습니다.

강연현장 및 축제 부스(인문사회과학 출판인협의회 부스 A-2 소동출판사에서 거리도서전 위치 : http://blog.naver.com/sodongbook/90094707344


 
드림 위버 - 소설로 읽는 유쾌한 철학 오디세이
잭 보웬 지음, 박이문.하정임 옮김 / 다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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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생각이라는 걸 한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해야하는 존재다. 이를 게을리 한다거나 귀찮아한다면 인간이길 포기해야 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개인적으로 나는 존재에 대한 깊은 탐구,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세계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지식과 이성, 종교와 과학, 윤리와 도덕 그 외 이른바 철학이라는 이름아래에 고민해야하는 문제들 앞에 과감하게 자신을 던져보는 일은 가늠하기 힘든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단연코 먼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무릇 인간으로 살아간다면 스스로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과 해답을 찾아내는 의미 있는 작업을 해보지 않는다면 인간이 누릴 삶의 풍성함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정의하고 발견하는 일은 타인과 세계를 이해하는 초석이 됨은 두 말하면 잔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한 소년을 따라 철학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제시하고 그 문제들을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 가는 과정을 그린 『드림위버』는 읽는 이로 하여금 삶과 인간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책은 방대한 양의 지식을 포함하고 있다. 동서고금의 내노라하는 철학자가 거의 대부분 직, 간접적으로 등장하며, 사회사상가와 인문학자, 심리학자 게다가 과학자들도 등장한다. 소설의 형식으로 전개되는 소년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편집을 다시 한다면 두 권의 책으로 묶을 수 있을 정도로 페이지마다 첨가된 흥미로운 설명이 풍성하다. 철학자들의 잠언을 비롯해, 뉴스기사, 영화대사, 통계자료 등등. 한 권의 책으로 소설과 철학 에세이 그리고 재밌는 이야기꺼리를 동시에 읽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기존의 철학관련 서적들은 너무 어렵거나, 혹은 수박 겉만 핥다가 끝나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관련된 몇 권의 책을 이것저것 섭렵해야 어느 정도 감이 잡히는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읽은 내용들도 실상 나 자신의 실생활과는 동떨어져 있는 관념적인 허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드림위버』는 다르다. 소설로 씌여진 탓에 쉽게 읽히고, 내용은 재미있고 흥미롭다. 그러면서도 자꾸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것도 끊임없이 밀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이유는 책의 구성에 있었다. 책은 마치 아이들이 수학 공부할 때 사용하는 자습서와 유사한 구조를 지녔다. 소년과 할아버지의 대화가 자습서의 개념원리와 설명에 해당하는 부분이라면, 소년과 부모님의 대화는 예제풀이, 다시 소년과 다른 사람들과의 에피소드가 유제풀이 단계, 마지막으로 독자들을 위한 토론 주제는 연습문제로 실력 다지기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각 소주제들이 모두 이러한 구성을 따르고 있기 때문인지 읽어 나가면서 사고의 폭이 넓어짐과 동시에 깊어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자습서와 완전히 동일하지만도 않다. 정답이 정해진 자습서의 답지와는 달리 『드림위버』는 정답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읽는 이 스스로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정답지를 만들어 간다는 측면에서 무척 매력적이다.  


 책을 읽는 내내 속이 꽉 찬 철학 통조림을 숟가락으로 퍼 먹는 기분이 들었다. 먹을수록 뉴런이 활성화되고 대뇌의 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는데 통조림은 아직 그대로다. 먹어도 먹어도 생각할 것들이, 고민해야 할 것들이 다시 통조림을 가득 채운다. 허공에 떠있는 관념적인 지식이 아닌 현실성이라는 생명력을 지닌 성찰로 자신의 두뇌를 채우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드림위버』는 분명 살아있는 철학 소설이자 자습서이다. 책이 두꺼운만큼 얻는 것도 무척이나 두텁다. 무엇보다도 직접 읽어보지 못한다면 책의 매력을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어떤가? 『드림위버』와 함께 지(知)의 향연으로 빠져들어 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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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계급사회 우리시대의 논리 11
손낙구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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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꼭 필요한 필요조건은 무엇인가?

입고, 먹고, 자는 것.

입는 것은 그렇다 쳐도 먹고 잔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그 어떤 이상(理想)과 가치로도 환원될 수 없는 생물학적인 생존 조건일 것이다. 근래에 먹는 것에 대한 요란함이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혹자는 건강을 위해 또 다른 사람은 생존을 위해서 말이다. 먹을 것이 남아도는 소위 선진국 사람들은 건강 때문에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면, 가난한 빈곤국에서는 먹는 것이 바로 생존인 시대가 되었다. 생존과 건강이라는 양극단의 원인에서 발생되는 식량문제가 시장제일주의와 효율과 성장이라는 허울을 둘러싼 신자유주의의 망령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도 이젠 지친다. 게다가 부동산 왕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에서는 먹는 문제 말고도 훨씬 심각한 문제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집 문제, 토지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 집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면 없이 사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자포자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나 또한 먹고 자야만 하는 인간이고, 먹고 자는 것에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 또한 나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게 같은 인간이기에 현실 속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문제 중 한 가지인 우리나라 부동산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아버려선 안 되는 것이다. 먹는 문제만큼이나 거주할 수 있는 집에 관한 문제도 그 어떤 가치보다 신성하기 때문이다.

책의 뒤표지에는 자신의 부동산 계급을 알아 볼 수 있는 도표가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 가구의 30%에 해당하는 5계급이란다.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이다. 우리 국민이 100명이라면 4명은 지하나 옥탑방, 움막이나 비닐집 최악의 경우 동굴에서 거주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살면서 내 집을 장만하겠다는 당찬 희망을 꺽은 지 오래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도저히 우리나라에서 집을 장만할 자신이 없었다. 구조적인 문제, 사회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를 떠나 사실은 포기하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서 비겁하지만 운 좋으면 전세나 한번 살아봤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집 문제가 단순히 집 없는 사람들의 경제적 무능력에서만 그 원인을 찾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게 됐기 때문이다. 또 없으면 전세나 월세에 살아야 한다는 지독한 시장논리 뒤에는 엄청난 불평등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 것이다. 돈이 돈을 벌고, 집이 집을 벌고 땅이 땅을 버는 말도 안되는 현실이 몇몇 부자들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없는 사람을 보호해줘야 할 국가의 정책과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다면 이는 분명 가만히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될 상황인 것이다.

이 책은 많은 양의 도표와 통계자료를 통해 객관적으로 우리나라의 부동산 문제를 조목조목 따지고 있다. 저자의 집요한 관심과 열정이 녹아든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아파트 투기와 땅 투기로 발생하는 단순한 소득 불균형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소유와 명문대 진학과의 상관관계, 또 땅값 상승과 생존율의 비교와 같은 신선한 통계도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얼마나 극소수의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집과 토지를 독점하고 있는지, 역대 정부를 비롯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지니는 허와 실을 잘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부동산을 둘러싼 금융기관들의 행태도 통계자료를 통해 명백히 보여준다.(미국 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벌어진 현재 금융위기를 생각하면 부동산과 금융의 유착이 얼마나 심각한 경제 위기를 촉발시키는지 그저 가슴만 답답할 뿐이다)

기존의 사회운동이 이데올로기 중심이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또한 앞으로 사회운동의 방향이 서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방향으로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감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념과 이상이라는 것은 공허한 헛소리일 뿐이다. 엄청난 희생으로 얻어낸 민주화가 서민 생활의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해야한다는 저자의 말을 가슴깊이 새겨본다.

사족

후마니타스의 책들은 항상 나의 나태함을 꾸짖는다. 그리고 내 속의 무언가가 꿈틀거리게 만든다.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책들이 계속 출판되길 희망해본다. 끝으로 나를 일깨워준 지은이와 가슴에 와 닿는 삽화를 그린 지은이의 딸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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