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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계급사회 ㅣ 우리시대의 논리 11
손낙구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8월
평점 :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꼭 필요한 필요조건은 무엇인가?
입고, 먹고, 자는 것.
입는 것은 그렇다 쳐도 먹고 잔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그 어떤 이상(理想)과 가치로도 환원될 수 없는 생물학적인 생존 조건일 것이다. 근래에 먹는 것에 대한 요란함이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혹자는 건강을 위해 또 다른 사람은 생존을 위해서 말이다. 먹을 것이 남아도는 소위 선진국 사람들은 건강 때문에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면, 가난한 빈곤국에서는 먹는 것이 바로 생존인 시대가 되었다. 생존과 건강이라는 양극단의 원인에서 발생되는 식량문제가 시장제일주의와 효율과 성장이라는 허울을 둘러싼 신자유주의의 망령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도 이젠 지친다. 게다가 부동산 왕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에서는 먹는 문제 말고도 훨씬 심각한 문제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집 문제, 토지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 집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면 없이 사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자포자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나 또한 먹고 자야만 하는 인간이고, 먹고 자는 것에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 또한 나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게 같은 인간이기에 현실 속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문제 중 한 가지인 우리나라 부동산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아버려선 안 되는 것이다. 먹는 문제만큼이나 거주할 수 있는 집에 관한 문제도 그 어떤 가치보다 신성하기 때문이다.
책의 뒤표지에는 자신의 부동산 계급을 알아 볼 수 있는 도표가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 가구의 30%에 해당하는 5계급이란다.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이다. 우리 국민이 100명이라면 4명은 지하나 옥탑방, 움막이나 비닐집 최악의 경우 동굴에서 거주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살면서 내 집을 장만하겠다는 당찬 희망을 꺽은 지 오래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도저히 우리나라에서 집을 장만할 자신이 없었다. 구조적인 문제, 사회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를 떠나 사실은 포기하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서 비겁하지만 운 좋으면 전세나 한번 살아봤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집 문제가 단순히 집 없는 사람들의 경제적 무능력에서만 그 원인을 찾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게 됐기 때문이다. 또 없으면 전세나 월세에 살아야 한다는 지독한 시장논리 뒤에는 엄청난 불평등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 것이다. 돈이 돈을 벌고, 집이 집을 벌고 땅이 땅을 버는 말도 안되는 현실이 몇몇 부자들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없는 사람을 보호해줘야 할 국가의 정책과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다면 이는 분명 가만히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될 상황인 것이다.
이 책은 많은 양의 도표와 통계자료를 통해 객관적으로 우리나라의 부동산 문제를 조목조목 따지고 있다. 저자의 집요한 관심과 열정이 녹아든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아파트 투기와 땅 투기로 발생하는 단순한 소득 불균형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소유와 명문대 진학과의 상관관계, 또 땅값 상승과 생존율의 비교와 같은 신선한 통계도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얼마나 극소수의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집과 토지를 독점하고 있는지, 역대 정부를 비롯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지니는 허와 실을 잘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부동산을 둘러싼 금융기관들의 행태도 통계자료를 통해 명백히 보여준다.(미국 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벌어진 현재 금융위기를 생각하면 부동산과 금융의 유착이 얼마나 심각한 경제 위기를 촉발시키는지 그저 가슴만 답답할 뿐이다)
기존의 사회운동이 이데올로기 중심이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또한 앞으로 사회운동의 방향이 서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방향으로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감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념과 이상이라는 것은 공허한 헛소리일 뿐이다. 엄청난 희생으로 얻어낸 민주화가 서민 생활의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해야한다는 저자의 말을 가슴깊이 새겨본다.
사족
후마니타스의 책들은 항상 나의 나태함을 꾸짖는다. 그리고 내 속의 무언가가 꿈틀거리게 만든다.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책들이 계속 출판되길 희망해본다. 끝으로 나를 일깨워준 지은이와 가슴에 와 닿는 삽화를 그린 지은이의 딸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