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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노래의 숲을 거닐다 - 향가 고려가요 시조 가사 민요 등으로 만나는 우리의 고전 시가
김용찬 지음 / 리더스가이드 / 2013년 7월
평점 :
기억이 맞는다면 단출한 카페에서 생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를 포함해 서넛 정도였는데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교수님은 분명히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카페에는 음악 대신 낭랑한 목소리의 시 낭송 테이프가 돌고 있었고, 낭송되는 시는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였다. 조용히 낭송되는 시를 따라 ‘사평역에서’를 읊조리던 교수님의 모습이 아직 선명하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개인적으로 난 글쓴이와 친분이 있다. 오랜 시간동안 만나거나 연락을 하지는 못했지만 오래전 시에 흠뻑 취한 저자의 모습은 내게 생생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내가 생각하는 지은이는 시와 시조, 아니 우리 가락과 한 몸이었다. 그래서 그의 글은 노래 그 자체이다.
고전문학에 대한 학창시절의 기억이 유쾌하고 즐거운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 또한 고전이라면 고답적이고 어렵다는 선입관이 가득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통의 노래들을 현대의 감각으로 쉽게 해석해 놓은 지은이의 책들은 다르다. 글쓴이의 능력은 이미 전작『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시조가 재밌다는 사실과 더불어 언어를 통해 자유자재로 풍성한 유희를 즐겼던 우리 조상들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을 내게 주었기 때문이다.『옛 노래의 숲을 거닐다』는 전작에 이어 우리 전통의 노래들이 얼마나 재밌을 수 있는지 재차 확인해 주는 고마운 책이다.
시조에 국한되었던 전작의 한계를 뛰어넘은 이번 책은 향가에서 시작해 고려가요와 가사 그리고 시조로 이어져 조선 후기 문학의 꽃인 사설시조까지 두루 아우른다. 때로는 삶의 애환을 때론 사랑을 그리고 자연과 충절을 읊은 우리의 노래를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 놓았다. 특히 나를 포함해 고전문학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분(?)들을 위한 친절한 전문적인 보충 설명들이 책 곳곳에 포진돼 있다. 무엇보다 저자의 맛깔스럽고 군더더기 없는 글 솜씨는 전작에 이어 더욱 진일보한 듯 느껴진다.
시대가 뒤숭숭해서 그런지 온 사방에 위로 받아야 할 사람들이 천지에 깔려 있다. 상처를 주는 존재의 확실성은 부재한 가운데 열에 아홉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고 그래서 상처를 치유한다는 책들이 넘쳐흐른다. 타인의 조언이나 격려로 마음의 상처가 쉽게 치유된다면 참 편한 일일 테지만 그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다. 완벽한 위로는 스스로의 마음가짐에 달렸다. 차라리 누군가에게 내 고통과 상처를 이야기하며 치유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노래가 아닐까 싶다. 글쓴이가 강조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마음속에 쌓인 시름을 풀기위해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기보다는 스스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것이 치유의 최선책이라는 사실. 우리 조상들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쉽게 살아낼 인생은 없다. 누구의 삶이든 그 삶은 고통과 슬픔이 씨줄과 날줄로 켜켜이 짜여 있는 법이다. 그래도 살아야 할 삶이라면 그 깊은 시름을 털고 위안을 얻기 위해 노래를 불러봄은 어떠한가?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낸 조상들의 노래를 읊조리는 건 또 어떨까? 만약 그러고 싶다면 어서 옛 노래의 숲을 거닐어 보자. 책을 펼치는 순간 시름이 반으로 줄어들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