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새롭게 읽는 러시아 고전 1
막심 고리키 지음, 최은미 옮김 / 써네스트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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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당당한지 좀 봐요. 믿음직 스럽지 않소? 남작이니 백작이니 하는 이들이 저만하겠냐고요?"

증인들의 무미건조한 증언이 이어졌고 판사들은 마지못해 질문을 던지고는 있지만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살찐 판사는 가끔 포동포동한 손으로 웃음을 감추듯 입을 가리고 하품을 했고, 붉은 수염의 판사는 더욱 창백해져서 손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는가 하면 졸음을 쫓느라 눈을 부릅뜨기도 했다. ... 시장은 발을 꼬고 앉아서 소리 없이 무릎을 마주 치거나 손가락 관절을 꺾었다. 진술들을 경청하는 지방 원로를 제외하면 대부분 아무생각없이 자리만 지키고 앉아 있는듯 했다. 지방원로는 고개를 처들고 앉아서 불룩한 배를 무릎으로  받쳐 들고 있었고, 재판장은 의자에 깊숙이 박혀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 p. 481


판사들 또한 아주 귀찮다는 듯 논고를 듣고 있었다. 생기없고 누렇거나 희뿌연 얼굴들에서는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 없었다. ... 늙은 재판장은 의자에 그냥 얼어붙어 있는 듯 했다. 이따금 안경 너머로 보이는 허연 사마귀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 얼굴 전체로 퍼지는 듯했다. 

어머니는 죽음과도 같은 무관심과 냉담함을 보면서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재판 중인가?"

- p.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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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새롭게 읽는 러시아 고전 1
막심 고리키 지음, 최은미 옮김 / 써네스트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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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이 다시 뿌려지니까 이 늙은이도 몸수색을 하더구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또 그 얘기시네!"

간수가 화를 벌컥 내며 끼어들었다.

"안된다고 아가 얘기했잖소! 자유를 박탈한 이유가 뭔데, 그건 아무것도 알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오." - p.161


삶이 좀 고단하다 싶으면 그들은 민중을 부추겨 황제에게 맞서게 하고, 막상 민중이 권력을 빼앗으면 온갖 감언이설로 권력을 강탈하여 민중을 개집으로 내쫓는 것이다. 의중을 알고 민중이 들고 일어나면 그들은 조금도 주저함 없이 수천수만의 민중을 학살했다. -p.185


"나도 처음엔 겁이 났었지만, 보시구려, 저기 앞장서 걸어가는 게 내 아들이라오. 깃발을 들고 가는 애가 바로 내 아들이란 말이오."

...

'이건 성스러운 일이라오. 한번 생각해 보시오. 만약에 그리스도가 사람들을 위해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면 어디 그리스도가 존재할 수 있었겠소!' -p. 244


"그런데 내가 사제에게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한결 진정된 말투로 리빈이 말을 이었다.

"마을 집회가 끝나고 그 놈이 농부들과 길거리에 빙 둘러앉아 하는 말이, 사람들이란 가축의 무리와 같아서 늘 목동이 있어야 한다는 거요. 내가 그래서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끼어들었지. 여우를 숲의 우두머리로 삼으면 새는 한 마리도 안남고 깃털만 널려 있게 되겠지,라고요. 그러자 그 작자가 날 힐끔 째려보더니 하는 말이, 민중들은 참아야만 하고 또 그럴 수 있는 인내심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나 올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다시 그 말을 받아서 민중들은 기도를 많이 하지만 하나님은 바빠서 그 기도를 제대로 듣지 못한다고 대답해주었죠...." -p.308


그리고 어머니는 없는 것 없는 이 세상에서 부의 주변을 맴돌며 겨우 목숨 부지할 정도로 배를 채우며 살고 있는 민중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도시들마다 정작 하나님에게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금은보화로 가득한 교회들이 세워져 있지만 바로 그 입구에는 동전 한 닢이라도 얻어 보려고 바둥대는 거지들이 바글거렸다. 전에도 돈 많은 교회들과 금실로 박은 사제복, 그런가 하면 구차한 민중들의 판잣집이나 웃음이 절로 나오는 누더기 옷들을 보아왔지만 그때는 그서이 당연한 줄 알았다. - p.339


"... 솔직해지고 성실해졌어요. 또 일에 대한 열정도 느껴지고요, 자신을 발견한 겁니다. 자신의 힘을 깨닫고 자신에게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중요한 건 그의 안에 진정 동지를 사랑하는 감정이 싹 트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p.364


리빈은 턱수염을 쓸어내리고 피투성이가 된 손을 다시 위로 들어올렸다.

"나의 핍니다. 진실을 위해 흘린 피란 말입니다!"

...

"여러분, 책을 찾아 읽어야 합니다.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신을 믿지 않는 폭도라고 매도하는 정부와 사제들을 절대 믿지 마세요. 진실은 은밀하게 퍼져 민중안에 보금자리를 마련 중입니다. 정부에겐 진실은 칼이자 불길일 뿐입니다. ... " - 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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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회주의자들입니다"

이런 말을 들은 어머니는 할 말을 잃고 그저 놀란 눈으로 처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사회주의자들이 황제를 암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젊은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지주들은 황제가 농노를 해방한 데에 앙심을 품고 황제를 암살하기 전까지는 머리를 자르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 이 때문에 그들을 사회주의자라고 불렀다는 말도 떠돌았었다. 그런데 지금 아들과 그의 동료들이 자신들을 사회주의자라고 말하는 이유를 그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 p. 51


"자네에 대한 말들이 나돌기 시작하더군. 고용주들은 자네를 이단이라고 불러. 교회에도 다니지 않는다며. 나도 교회에 다니지 않는 건 마찬가지야. 얼마가 지나 전단이 나돌았어. 자네가 생각해 낸 거 맞지?" 

"맞아요, 접니다." 파벨이 대답했다. -p.81


"내 지난 삶을 돌아보면 언제나, 오, 예수 그리스도란 말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아. 그런데도 왜 살았을까? 매질, 노동, 남편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두려움 외에는 그 어느 것도 아는게 없었어. ... 나의 관심, 나의 생각은 오로지 하나, 어떻게 하면 짐승만도 못한 이 몸뚱이 배를 채울까, 어떻게 하면 남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매질의 위협에서 벗어날까, 어떻게 하면 남편의 비위를 잘 맞춰 단 한번이라도 나를 가엽게 생각하게 만들까 하는 것이었어. ... 나의 영혼은 틈하나 없는 어떤 곳에 갇힌 듯한 느낌이야. 장님이 다 되어서 하나도 볼 수 있는게 없어."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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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는 어머니를 보며 귀찮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직 울때가 아니오, 할멈. 눈물을 아끼란 말이야. 나중엔 울고 싶어도 흘릴 눈물이 없어 못 울수가 있어."


다시 복받치는 설움과 울분을 참지 못하고 그녀가 말했다.


"이 세상 어미의 눈물은 결코 마르지 않아! 네 놈도 어미가 있다면 이쯤은 알거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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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새롭게 읽는 러시아 고전 1
막심 고리키 지음, 최은미 옮김 / 써네스트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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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금서를 읽고 있어요. 우리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씌어 있다는 이유로 읽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책들이예요. 다 은밀히 몰래 인쇄된 것이어서 만약에라도 발각되는 날엔 전 감옥에 가요. 제가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는 이유로 감옥에 간다고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어요?”

그녀는 갑자기 숨이 콱콱 막혀왔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아들을 쳐다 보니 왠지 낯설게만 보였다. 목소리마저 한결 낮고 우렁차서 꼭 딴 사람 목소리 같았다. 그녀는 아들에 대한 두려움과 측은함으로 가슴이 아팠다.

 

왜 그런짓을 하는 거니, 파샤?”

진실을 알고 싶어섭니다.”

   - p.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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