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제자도 - 내 안에 충만하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
마이클 웰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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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제자도
마이클 웰즈 지음/두란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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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왜' 따르고 있는가
예수를 '어떻게' 따르고 있는가

목회를 하며 한번씩 넘게 되는 고비는 주로 성도들의 믿음에 관한 것이 많은 듯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까지, 공동체를 통해 그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기까지, 그리고 그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잘 자라가기까지의 여정은 참 어려운 길임에 분명하다. 이 책의 제목과도 같이 '하늘의 제자도'를 따라 살아내기가 초대교회 순교의 삶보다 더 힘든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내야할 우리의 사명은 여전히 변함이 없음을 확신한다. 어떻게 복음을 가르쳐야하며, 어떻게 목양해야 할지의 잠 못드는 번뇌 중에 이 책을 만나 더욱 반갑고 갈급한 마음으로 읽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독자들에게 '예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사랑'을 놓치지 않기를 바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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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도는 세상적인 제자도와 하늘의 제자도로 나뉜다. 예수를 믿고 가졌지만 삶에 여전히 뭔가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듯 세상적인 제자도는 성과의 크기 즉, 개인 회심자의 숫자, 예배당 건물의 규모와 화려함, 헌금 액수, 출석 교인 숫자 등으로 가늠한다. 또 개인 차원에서는 성경 암송, 율법 준수, 교회에 대한 순종, 삶의 질서가 되기도 한다. 반면 하늘의 제자는 자신 안에 충만하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을 산다. 새생명을 얻은 자라면 옛 사람을  벗어버린 자이며, 옛 사람이 남긴 짐이 우리를 힘겹게 하지만 제자는 그것에 굴복 당하지 않는 훈련을 함으로써 우리의 마음과 믿음을 지켜야 한다고 한다. 저자의 교훈대로라면 믿는 데도 삶의 기쁨이 없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해 봐야할 것이다.

생명은 공식이 아니라 인격적인 존재, 그리고 그분과의 관계에 있다.
아마존의 깊은 정글에는 길도, 그 길을 보여 주는 지도도 없다. 그래서 반드시 인도자가 필요하다. 인도자가 곧 길이 된다. 제자들은 가르침을 잊어버리거나 모임에 빠지거나 충분히 노력하지 않아서 넘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에게서 시선을 떼기 때문에 넘어진다.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하면 그분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 된다. p.63

 

또한 우리는 제자에게 걸맞지 않는 것들을 끊어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한다. 거기엔 냉담함, 두려움, 결정 미루기, 원한, 비관주의, 무능력, 중독, 걱정, 자기 정당화가 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만족을 좇지않고 이타적인 삶을 사는 하나의 목표와 바른 성, 겸손 등이 필요함을 가르쳐준다.

잘못된 세상의 제자도와 달리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방식'으로 돌아가야하는데 그것은 바로 '생명과 진리를 누리는 제자도'이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믿고 따르던 자들이 한순간에 하나님을 의심하게 된다. 하나님이 못 미덥다. 저자는 그 이유가 우리가 가만히 앉아 하나님이 최종 결과물을 주시기만을 기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종 결과물이 아닌 목적지로 가는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는데도 말이다. 저자가 할아버지와의 일화를 통해 전해준 한 문장이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온갖 실패를 경험했고, 실망스러운 사건도 얼마나 많이 일어났는가!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하나님은 그래도 우리를 좋아하신다.
(p.121)

책을 읽으며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로 생각하지 않고 죄의 문제를 돌이키기엔 너무 멀어졌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주로 '자기 의'와 '불신'에 빠져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죄의식은 그리스도께 집중하게 만든다.
반면, 사탄이 일으키는 정죄감은 죄에 집중하게 만든다.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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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도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와 더불어 믿음이 중요한데, 우리는 '매일' 믿어야 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었던 것처럼, 믿는 바를 노래하고 선포해야하며 예수님을 말하면 말할수록 믿음도 자람을 강조한다. '믿음과 제자도' 파트를 읽으면서 믿음은 거듭 강조하고 강조해도 부족하구나 싶었다. 믿음의 경주는 장기전인데 우리는 일희일비하는 실수를 범하고 마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제자도의 결국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예수님께 끝까지 붙어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결론에 다다라 본다. 예수님 안에 있을 때에라야 풍파 중에도 믿음 잃지 않으며, 죄의 문제로 넘어지고 행함이 부족하다할지라도 겸손히 주님께 용서를 구하게 되며, 고난도 생명을 낳는 축복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하늘의 제자는 매일 매일 고난 중에, 성경을 통해, 사람들을 통해 한걸음씩 더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됨을 깨닫는다.

'평생, 날마다 예수님을 더 배워 가라'는 저자의 마지막 부탁을 읽으며 눈물이 왈칵 났다. 아, 평생 배워가야하는 것이구나! 그래서 오늘도 주님이 고난과 성경말씀, 사람을 통해 나를 하늘의 제자로 만들어가길 원하시는구나 깨닫게 되었다. 그 누군가가 아닌 나 자신이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야함을 소망하는 책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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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중국을 만나다 - 중국의 눈으로 바라본 마이클 샌델의 ‘정의’
마이클 샌델.폴 담브로시오 지음, 김선욱.강명신.김시천 옮김 / 와이즈베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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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철학의 새로운 만남
《정의란 무엇인가》로 담아내지 못한 중국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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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중국을 만나다/와이즈베리



27세의 최연소 하버드대 교수, 세계적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의 이력은 이 두 가지 만으로도 참 화려하다. 연세대학교 야외 원형극장에서 강의하며 학생들과 함께 토론하며 대화했던 시간을 뜻깊게 기억하며, 자신의 저술들에 비판적 태도로 참여한 중국 철학 전공자들과 나눈 대화에서 탄생한 결과물이 이 책이라고 하니 철학함의 넓은 포용력 또한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하버드대학 정치철학 교수로 재직하며 '정의'라는 강좌명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니 '정의'에 대한 고민과 답을 책을 통해 대화하듯 읽어보고 싶어졌다.

목차를 보면 알수있듯 이 책은 중국 철학을 전공한 학자들과 마이클 샌델의 대화를 다루고 있다. 마이클 샌델은 이런 대화를 자신의 학습의 기회로 삼았다고 한다. 그만큼 문화적 전통과 철학적 전통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나는 중국 철학을 통찰해보는 것에 도전이 필요했을 듯하다. '유교', '유가', '유학'으로 번역된 'Confucianism'에 대한 학문적 배경없이 이 책을 읽어내는 게 쉽지 만은 않았지만 동양철학이라는 점에서 좀더 공감대를 가지고 읽을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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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중국을 만나다/와이즈베리



유가적 관점에서 예와 인은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맺게 한다. 이러한 덕목들을 통해 사람들은 강력한 공동체 소속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러한 공동체에서 최고의 덕은 정의보다도 조화로운 관계다. 유학자들이 샌델의 자아와 공동체 개념에서 중요한 결함이 있다고 한 것은 바로 이와 관련된다. 샌델의 공동체관에는 조화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p.32 (리첸양)



마이클 샌델의 지난 저서를 기반으로 소수집단우대정책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유가적 견해에서는 사회적 조화란 좋은 삶의 본질이 된다는 것, 즉 사회적 조화 그 자체가 좋은 삶이라고 말하는 리첸양 교수. 그렇기에 샌델의 공동체주의 철학은, 그 논의에 조화를 적절하게 포함시켜야 훨씬 더 강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모든 챕터는 마이클 샌델의 주장에 대한 유가적 입장에서의 비판 및 보충의 형식을 띠는 구성이다.

우리 정부도 얼마전 제주도 예멘 난민 신청자 중 소수를 받아들였다는 기사를 보았다. 정의의 문제는 가족과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중국 등에서는 어떻게 적용될까! 바이통동은 이런 논쟁들을 샌델의 전작 《정의란 무엇인가》와 존 롤스가 쓴 고전 《정의》를 함께 검토하면서 자유주의 사상가들과 유학자들, 그리고 샌델과 같은 공동체주의자들을 비교해준다.

또, 유가(유교,유학)에서의 덕의 정의는 무엇인지 시민의 덕에 관한 샌델의 관점, 샌델의 저서 《민주주의의 불만》에서 다각적으로 반성했던 미국 정치사에 대해서도 유가적 관점에서 논하고 있다.



유덕한 사람은 포상하고 악덕한 사람은 벌하는 것이 아니라 악덕한 사람들이 자신의 악덕을 극복하여 유덕한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것이 바로 유가가 말하는 덕의 정의다. 이는 곧 덕을 평등하게 분배하는 정의다. 그렇다고 덕의 정의가 우리가 나쁜 행동에 관대하거나 나쁜 행동을 용서하라는 뜻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p.90



이전에도 물론 그랬지만 '중국'이라는 나라가 점점 힘있게 다가오는 때인 듯하다. 그동안 읽어보았던 책들은 주로 중국의 경제정치분야를 주제로 만나보았다면 이 책은 중국 사람들의 의식 변화와 전통 사상의 모습을 새롭게 대하는 기회가 되었다. 처음엔 마이클 샐던의 철학에 빠져보고 싶은 마음이 컸었는데 상당 부분 샌델의 저서를 연구한 학자들의 논지를 학문적으로 정리해준 내용이 많이 아쉬움도 있었다. 하지만 앞서 자신의 주장에 대한 문제제기에 배우려는 겸손한 태도로 간명하게 답한 샌델의 마지막 챕터 글에서 자신이 비판받은 부분들을 솔직하게 밝히고 자신의 의견과 상반되는 부분은 명확하게 답하는 부분은 역시나 좋았다. 결국 샌델 자신도 서양 철학과 중국 철학의 대비가 아닌 그 안에 숨겨신 풍부한 복합성을 말하고 싶어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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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중국을 만나다/와이즈베리


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동안 이 책을 읽으면서 각기 대비되는 사상과 철학을 담아낸 정치.사회 구조를 띈 남한과 북한 생각을 많이 했다. 샌델이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공동체주의와 공동체가 가진 도덕적.정치적 주장에 대한 존중을 동시에 중요시한 것처럼 한국 독자들도 비록 중국 철학과 서양 철학의 토론을 다룬 내용이지만 이 책을 통해 배우는 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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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에게 기독교가 필요한가 - 100년의 지혜, 老 철학자가 말하는 기독교
김형석 지음 / 두란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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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류에게 희망 있는가?
기독교가 그 희망이 되어야 한다."

본받고 싶은 스승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미래도 밝은 것일 게다. 그 스승으로부터 따끔한 질책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행운이 아닐까. 기독교계에 바른 소리를 해주시는 어른이 얼마나 필요한 시점인가? 어수선한 이때에, 부끄러운 이때에 100세를 바라보는 노 철학자가 말하는 '기독교', 그 절절한 부탁의 메시지에 귀기울여 본 책이었다.

1920년 평안남도 대동 출생으로,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와 함께해온 교수님의 인생사와 삶의 지혜를 듣고 있자니 참 존경스러웠다. 책 전반에서 나라와 민족을 얼마나 아끼며, 기독교가 유일한 희망이 되어줘야함을 간절히 소망함이 느껴졌다. 명절에 찾아뵌 할아버지 앞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한가지 말씀을 새겨듣는 손주가 된 기분이랄까?

교수님은 교회 다니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것의 가치를 분명히 다르게 보았다. 진짜배기인지 점검하라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가치관과 목표가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 가이사를 위한 것인지 스스로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내 소유와 명예를 위해서 사는 인생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내 인생의 가치를 그리스도께 두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인의 가치는 축복받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명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대목에서는 유약해진 교회와 사명을 잊어버린 기독교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요컨대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큰 책임을 맡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사명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인의 인생입니다. 그렇게 사명을 받아들이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p.72


책 전체가 기승전결  쭉 이어지는 구성이라기 보다는 하나 하나의 짤막한 강의를 듣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비슷한 인물 이야기, 비슷한 주제 이야기가 조금씩 중복되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하나하나 마음에 새겨들을 만한, 밑줄 쳐가며 읽을 수 밖에 없는 책이었다. 특히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에 대한 고민들은 꼭 필요한 교훈이 되어주었다.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역사적 사명을 중시하는 신앙, 성전은 교회라는 그릇을 싸는 보자기일 뿐이라는 것,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 교회는 사회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 준비처...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참 감동이 된 것은 주일에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이 죄라는 분위기 속에서 어릴적 신앙을 배워왔음에도 잘못된 가르침 안에 머무르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강화되지 않고 바른 신앙이 무엇일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할까? 교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타종교와 기독교는 무엇이 다를까?...를 일평생 고민하고 학문함에 성실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한참 더 젊은 나 자신도 아직 잘못된 틀에 박혀 쉽게 바꾸지 못하는 신앙의 체질, 모습이 참 많은 걸 보며 부끄러워졌다. 

얼마전부터 교회 식구들과 함께 신약성경 통독을 하고있는데 서로 질문하며 고민하며 말씀을 읽고 있다. 평생 고민과 질문함, 철학함을 통해 우리에게 유일한 희망이 되어줄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기독교 뿐임을 고백하는 교수님 같이 존경 받는 분들이 우리 교회에서도 세워지길 기도해 본다. 특히 나라와 민족에 봉사할, 자신의 직업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감당해야할 청년들, 다음세대들에게 도전과 희망이 되어줄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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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죽재전보 클래식그림씨리즈 4
호정언 지음, 김상환 옮김, 윤철규 해설 / 그림씨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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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고의 걸작 시선지
십죽재전보
호정언 지음/ 그림씨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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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낯설고 어려워 보이는 이 책은 출판사 <그림씨>에서 펴내고 있는 클래식그림씨리즈 4권으로 출간된 책이다. 그림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교과서로 배운 게 고작이고 중국 예술분야는 더더욱 어렵게 느껴지지만 요런 해설집을 통해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 걸로 기대하며 펼쳐든 책이다.

먼저는 <십죽재전보十竹齋箋譜>에 대한 궁금증부터 풀어야겠다. 십죽재전보는 그 장르가 시선지라고 한다.

전(箋)은 편지나 시를 적는 데 쓰는 작은 종이를 말한다. 고대에 책갈피 사이에 끼워 다른 의견이나 주석을 적은 종이에서 시작 됐다. 그 뒤 종이에 편지를 적어 보내기도 하고, 짧은 내용의 시를 적기도 하였다. 시를 적어 쓸 무렵부터는 장식이 더해졌다. 종이를 물들이거나 문양을 찍어 쓴 것이다. 이것이 시선지이다. (해설 윤철규)

 

이름이 참 예쁘다. 시선지... 중국에서 시선지의 역사는 매우 오래 되었다고 한다. 천년이 넘는 오랜 시선지 역사 가운데 가장 정교하고 출판 인쇄 기법 상으로도 탁월했던 것이 명나라(1368~1644) 말에 나온 《십죽재전보》의 시선지라고 한다. 이런 역사깊은 고서를 해설과 함께 곁들어 만날볼 수 있게 되었다니, 멋진 일이다. 십죽재전보를 펴낸 호정언은 출판업자이기 전에 재주 있는 문인이자 문인 화가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글과 그림을 함께 겸비했던 여러 문인들이 있는데 아마도 그런 분위기가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첫 번째 그림부터 감상에 푹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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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훌륭한 그림과 글과 더불어 십죽재전보가 찬사를 받는 이유는 인쇄 기술 때문이라고 한다. 다양한 계층의 독서 인구가 생겨나면서 통속문학이 발전했고 더불어 출판도 더욱 활기를 띄었다고 한다. 그때 바로 호정언은 당시만해도 파격적인 출판 인쇄 기술인 두판기법과 공화기법을 구사했다고 한다. 이런 역사와 기술적인 면까지는 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제 책의 글과 그림을 감상하는 시간은 해설을 들으며 박물관을 거니는 느낌이었다.

이런 배경  지식을 미리 듣고 십죽재전보에 실린 호정언이 정리해준 261점의 시선지를 해설과 함께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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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 머리말
 
머리말을 읽어보니 호정언 스스로도 책을 다 엮고는 감동의 물결이었던 것 같다.

마침내 일을 마친 작품을 보니, 옛날과 지금의 전제(典制)를 온 세상에서 새로 만들어 빼어난 무리와 이름난 곳 속속들이 기쁘게 받들 꽃과 나무, 펄펄 나는 새와 벌레 등이 참된 자연에서 벗어남이 없으니, 자못 새긴 뜻에서 벗어난 표현이기는 하나 풍류와 운치를 닦음에 깊은 정이 한 번 더하니 섬등(剡藤)과 옥판(玉版)의 빛을 윤택하게 하고 아계(鵝溪)와 설도(薛濤)의 아름다운 글을 모은 것이다. (십죽재전보 머리말 中)

 

십죽재전보는 총 4권, 33개의 다양한 주제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시선지에는 그림 내용을 알려주거나 혹은 짐작케 하는 말들이 함께 적혀 있어 그림을 통해 문학과 역사를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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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니 역시 그 옛날 중국 대중들이 많이 사랑했을 법한 책 같다. 몇몇 작품들을 함께 감상해보면 좋겠다.

 

 


 

십죽재진장
호정언이 자신의 수집품을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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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
호정언이 오래 교우했던 고삼익 선생의 필치를 본떠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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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림
구름을 가득  대나무의 늠름한 품격이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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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증
절증은 가지를 꺽어보낸다는 말인데

이별할 때 흔히 꽃가지를 꺽어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꽃잎의 색이 점점 옅게 줄어드는 두판기법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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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우
먹색의 농담 변화가 멋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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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구
"경개는 마차 덮개를 기울인다는 말이다.
공자가 길에서 우연히 정자를 만나게 되자 수레 덮개를 젖히고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눈 고사에서 유래한다.
잠시 만나도 진심으로 남을 대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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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등에 쓰거나 그렸던 작품들이라 그런지 화려하지 않고 고즈넉한 느낌이 많이 난다. 그리고 함께 기록한 글귀를 통해 배울 바, 생각할 바가 많았다. 바람부는 정자에서 한 소절씩 읽어보면 옛 문인들의 향취를 느껴볼수 있지 않을까! 책 좋아하는 독서가들이라면 요런 그림들 코팅해서 책갈피로 쓰면 딱 좋아할 만한 그런 느낌이다.



이번 클래식그림씨리즈 <십죽재전보>를 읽으면서 사실 숨겨둔 설레임이 또 따로 있었다. 바로 <누드제본> 책이라는 거!! 전자책에게 밀리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끊이지 않는 종이책의 이런 매력~ 처음 느껴보았다. 책등을 보면 누드제본의 매력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고, 종이책만이 줄 수 있는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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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본 뿐 아니라 낯선 중국의 문학예술 장르를 더 친근하게 만나볼 수 있는 책! 아쉬운 점이라면 한자 공부를 좀더 열심히 했더라면 좀더 쉽게 이런 장르의 책도 소화할 수 있었을텐데라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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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걸어도 나 혼자
데라치 하루나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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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 한편을 보는 느낌이었다. '같이 걸어도 나 혼자'라는 제목과 표지 그림에서는 처음 쓸쓸함을 느꼈다. 실제 소설 전반에서 그런 '쓸쓸함'을 떼놓을 수는 없지만 '쓸쓸한 나 혼자'가 아닌 '씩씩한 나 혼자' 로 성장하는 두 주인공의 모습을 보는 건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방음도 안되는 헐값의 아파트 메종 드 리버, 그곳에서 이웃으로 만난 유미코와 키에데가 사연을 안고 어느 시골 섬으로 여행을 떠난 이야기다.

두 주인공은 참 다르면서도 같은 색깔이 느껴진다. 전처와 딸이 있는 남편과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채 결혼한 유미코는 시어머니 미츠에 씨와 같은 연애인을 좋아하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친구처럼 지낸다. 어린 시절 엄마의 폭력과 자살이라는 아픔이 있음에도 차분한 성격에 요리를 잘하는 모습이 예쁘다. 유미코 같은 여자라면 히로키가 아니라도 '나 혼자' 잘 걸어갈꺼라 기대한다.

반면 남자를 사귀는 스타일이 자유로운 키에데는 유미코와는 역시 많이 다른 듯하다. 예쁜 옷과 화장으로 꾸미기를 좋아한다. 덕분에 근무했던 회사의 젊은 사장이었던 요코지에게 끈질지게 괴롭힘 당하지만 말이다. 

서로 좋아하고 배려해주면서도 또 부딪히는 유미코와 키에데, 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지만 소소한 일들을 읽어내고 반응하는 두 주인공의 심리묘사를 읽어내려가는 대목들이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편견을 굳게 믿는 사람이 이따금 있다. 겉으로는 사이좋게 지내지만 속으로는 헐뜯고 깎아내릴 것이라는 소리도 종종 듣는다. 아줌마는 젊은 여자를 질투한다고 믿는 사람 역시 꽤 있다. 대체 그런 편견이 왜 있는걸까? (p.71)

"왜, 왜 놓친 거야."
엄마는 날이 선 목소리로 아이를 혼냈다. 나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소중한 것을 손에서 놓으면 안 된다는 것쯤 누구나 안다. 그런데도 놓칠 때가 있다. (p.98)


커다란 바위가 보이는 곳을 가리켰다. 카에데 씨가 자기도 가겠다면서 옆에서 따라왔다. 걸어. 머릿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내 목소리였다. 천천히 한 걸음을 내디뎠다. (p.259)

작가는 '여자', '이혼남과 결혼한 여자', '남자 관계가 복잡한 여자'가 아닌 '나'를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나'를 찾아 걸어가도록 독자를 이끌어내준다. 두 여주인공의 우정이 예쁜, 그래서 같은 또래 같은 여성으로서 더 많이 공감하며 읽은 소설이었다. 

"삶이 버겁고 힘들어 이리저리 휘둘리지만
곁에서 묵묵히 함께 걸어주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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