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걸어도 나 혼자
데라치 하루나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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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 한편을 보는 느낌이었다. '같이 걸어도 나 혼자'라는 제목과 표지 그림에서는 처음 쓸쓸함을 느꼈다. 실제 소설 전반에서 그런 '쓸쓸함'을 떼놓을 수는 없지만 '쓸쓸한 나 혼자'가 아닌 '씩씩한 나 혼자' 로 성장하는 두 주인공의 모습을 보는 건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방음도 안되는 헐값의 아파트 메종 드 리버, 그곳에서 이웃으로 만난 유미코와 키에데가 사연을 안고 어느 시골 섬으로 여행을 떠난 이야기다.

두 주인공은 참 다르면서도 같은 색깔이 느껴진다. 전처와 딸이 있는 남편과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채 결혼한 유미코는 시어머니 미츠에 씨와 같은 연애인을 좋아하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친구처럼 지낸다. 어린 시절 엄마의 폭력과 자살이라는 아픔이 있음에도 차분한 성격에 요리를 잘하는 모습이 예쁘다. 유미코 같은 여자라면 히로키가 아니라도 '나 혼자' 잘 걸어갈꺼라 기대한다.

반면 남자를 사귀는 스타일이 자유로운 키에데는 유미코와는 역시 많이 다른 듯하다. 예쁜 옷과 화장으로 꾸미기를 좋아한다. 덕분에 근무했던 회사의 젊은 사장이었던 요코지에게 끈질지게 괴롭힘 당하지만 말이다. 

서로 좋아하고 배려해주면서도 또 부딪히는 유미코와 키에데, 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지만 소소한 일들을 읽어내고 반응하는 두 주인공의 심리묘사를 읽어내려가는 대목들이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편견을 굳게 믿는 사람이 이따금 있다. 겉으로는 사이좋게 지내지만 속으로는 헐뜯고 깎아내릴 것이라는 소리도 종종 듣는다. 아줌마는 젊은 여자를 질투한다고 믿는 사람 역시 꽤 있다. 대체 그런 편견이 왜 있는걸까? (p.71)

"왜, 왜 놓친 거야."
엄마는 날이 선 목소리로 아이를 혼냈다. 나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소중한 것을 손에서 놓으면 안 된다는 것쯤 누구나 안다. 그런데도 놓칠 때가 있다. (p.98)


커다란 바위가 보이는 곳을 가리켰다. 카에데 씨가 자기도 가겠다면서 옆에서 따라왔다. 걸어. 머릿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내 목소리였다. 천천히 한 걸음을 내디뎠다. (p.259)

작가는 '여자', '이혼남과 결혼한 여자', '남자 관계가 복잡한 여자'가 아닌 '나'를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나'를 찾아 걸어가도록 독자를 이끌어내준다. 두 여주인공의 우정이 예쁜, 그래서 같은 또래 같은 여성으로서 더 많이 공감하며 읽은 소설이었다. 

"삶이 버겁고 힘들어 이리저리 휘둘리지만
곁에서 묵묵히 함께 걸어주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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