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죽재전보 클래식그림씨리즈 4
호정언 지음, 김상환 옮김, 윤철규 해설 / 그림씨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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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고의 걸작 시선지
십죽재전보
호정언 지음/ 그림씨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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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낯설고 어려워 보이는 이 책은 출판사 <그림씨>에서 펴내고 있는 클래식그림씨리즈 4권으로 출간된 책이다. 그림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교과서로 배운 게 고작이고 중국 예술분야는 더더욱 어렵게 느껴지지만 요런 해설집을 통해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 걸로 기대하며 펼쳐든 책이다.

먼저는 <십죽재전보十竹齋箋譜>에 대한 궁금증부터 풀어야겠다. 십죽재전보는 그 장르가 시선지라고 한다.

전(箋)은 편지나 시를 적는 데 쓰는 작은 종이를 말한다. 고대에 책갈피 사이에 끼워 다른 의견이나 주석을 적은 종이에서 시작 됐다. 그 뒤 종이에 편지를 적어 보내기도 하고, 짧은 내용의 시를 적기도 하였다. 시를 적어 쓸 무렵부터는 장식이 더해졌다. 종이를 물들이거나 문양을 찍어 쓴 것이다. 이것이 시선지이다. (해설 윤철규)

 

이름이 참 예쁘다. 시선지... 중국에서 시선지의 역사는 매우 오래 되었다고 한다. 천년이 넘는 오랜 시선지 역사 가운데 가장 정교하고 출판 인쇄 기법 상으로도 탁월했던 것이 명나라(1368~1644) 말에 나온 《십죽재전보》의 시선지라고 한다. 이런 역사깊은 고서를 해설과 함께 곁들어 만날볼 수 있게 되었다니, 멋진 일이다. 십죽재전보를 펴낸 호정언은 출판업자이기 전에 재주 있는 문인이자 문인 화가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글과 그림을 함께 겸비했던 여러 문인들이 있는데 아마도 그런 분위기가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첫 번째 그림부터 감상에 푹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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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훌륭한 그림과 글과 더불어 십죽재전보가 찬사를 받는 이유는 인쇄 기술 때문이라고 한다. 다양한 계층의 독서 인구가 생겨나면서 통속문학이 발전했고 더불어 출판도 더욱 활기를 띄었다고 한다. 그때 바로 호정언은 당시만해도 파격적인 출판 인쇄 기술인 두판기법과 공화기법을 구사했다고 한다. 이런 역사와 기술적인 면까지는 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제 책의 글과 그림을 감상하는 시간은 해설을 들으며 박물관을 거니는 느낌이었다.

이런 배경  지식을 미리 듣고 십죽재전보에 실린 호정언이 정리해준 261점의 시선지를 해설과 함께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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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 머리말
 
머리말을 읽어보니 호정언 스스로도 책을 다 엮고는 감동의 물결이었던 것 같다.

마침내 일을 마친 작품을 보니, 옛날과 지금의 전제(典制)를 온 세상에서 새로 만들어 빼어난 무리와 이름난 곳 속속들이 기쁘게 받들 꽃과 나무, 펄펄 나는 새와 벌레 등이 참된 자연에서 벗어남이 없으니, 자못 새긴 뜻에서 벗어난 표현이기는 하나 풍류와 운치를 닦음에 깊은 정이 한 번 더하니 섬등(剡藤)과 옥판(玉版)의 빛을 윤택하게 하고 아계(鵝溪)와 설도(薛濤)의 아름다운 글을 모은 것이다. (십죽재전보 머리말 中)

 

십죽재전보는 총 4권, 33개의 다양한 주제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시선지에는 그림 내용을 알려주거나 혹은 짐작케 하는 말들이 함께 적혀 있어 그림을 통해 문학과 역사를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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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니 역시 그 옛날 중국 대중들이 많이 사랑했을 법한 책 같다. 몇몇 작품들을 함께 감상해보면 좋겠다.

 

 


 

십죽재진장
호정언이 자신의 수집품을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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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
호정언이 오래 교우했던 고삼익 선생의 필치를 본떠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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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림
구름을 가득  대나무의 늠름한 품격이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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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증
절증은 가지를 꺽어보낸다는 말인데

이별할 때 흔히 꽃가지를 꺽어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꽃잎의 색이 점점 옅게 줄어드는 두판기법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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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우
먹색의 농담 변화가 멋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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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구
"경개는 마차 덮개를 기울인다는 말이다.
공자가 길에서 우연히 정자를 만나게 되자 수레 덮개를 젖히고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눈 고사에서 유래한다.
잠시 만나도 진심으로 남을 대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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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등에 쓰거나 그렸던 작품들이라 그런지 화려하지 않고 고즈넉한 느낌이 많이 난다. 그리고 함께 기록한 글귀를 통해 배울 바, 생각할 바가 많았다. 바람부는 정자에서 한 소절씩 읽어보면 옛 문인들의 향취를 느껴볼수 있지 않을까! 책 좋아하는 독서가들이라면 요런 그림들 코팅해서 책갈피로 쓰면 딱 좋아할 만한 그런 느낌이다.



이번 클래식그림씨리즈 <십죽재전보>를 읽으면서 사실 숨겨둔 설레임이 또 따로 있었다. 바로 <누드제본> 책이라는 거!! 전자책에게 밀리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끊이지 않는 종이책의 이런 매력~ 처음 느껴보았다. 책등을 보면 누드제본의 매력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고, 종이책만이 줄 수 있는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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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본 뿐 아니라 낯선 중국의 문학예술 장르를 더 친근하게 만나볼 수 있는 책! 아쉬운 점이라면 한자 공부를 좀더 열심히 했더라면 좀더 쉽게 이런 장르의 책도 소화할 수 있었을텐데라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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