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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았다
케네스 배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6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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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았다>라는 제목은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펼쳐들게 했다. 무엇을 잊지 않았다는 것일까?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여러 가지 의미를 말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는 북한에 억류된 케네스 배를 잊지 않으신 하나님, 항상 붙잡고 계시고 말씀으로 일으켜 세우시고, 순간순간 기적을 베푸신 그 하나님이 자신을 잊지 않으셨음을 말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는 그를 잊지 않은 가족들, 주변 많은 사람들에 대한 <잊지 않았다>이기도 했다. 서명, 호소문, 방송인터뷰 등을 통해 그를 잊지 않고 석방을 위해 애써준 많은 이들도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잊지 않았다>는 하나님께서 북한을 <잊지 않으셨음>을 뜻한다. 저자는 사실 이 마지막 의미를 위해서 이 책을 쓴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책의 저자 케네스 배 선교사는 중국 선교, 북한 선교의 사명을 가지고 관광업을 통해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사역들을 해왔다. 그렇게 열 일곱 번을 북한을 다녀오면서도 아무일이 없었던 그가 열 여덟째 방문 때 자신의 노트북 외장하드에 담긴 자료들을 옮겨놓지 않은 채 입국하다가 국경 세관에서 자료들이 다 발견되고 만다. 이 일로 그는 북한 체제를 전복시키려 했다는 죄목으로 15년 노동교화령을 선고 받고 만 2년의 시간을 노동교화소와 병원을 오가며 육체적.정신적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책은 그 과정에서 저자가 겪은 고통과 심경, 북한의 실태, 당시 미국과 북한의 정세 등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모든 과정에서 자신을 잊지 않으셨던 하나님, 자신을 북한의 감옥으로 선교사로 보내신 하나님, 여전히 북한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전하고 싶어한다.
케네스 배가 처했던 북한의 상황과 사상을 보면서 여전히 요지부동인 김일성 주체사상이 안타깝기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사들, 간수들, 보초들과의 관계 속에서 뿌린 그의 진심어린 대화들과 북한 밖 소식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희망의 불씨가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하루 속히 북한 억류에서 풀려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만을 손꼽아 고대하던 저자는 "하나님, 저를 구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멈추고, "하나님, 저를 사용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드린 순간, 비로소 평안을 찾고 날아갈 것 같은 자유를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선교사다. 주님, 저는 선교사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당신이 제게 주신 선교지입니다. 저를 사용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게 된다. 억류된 735일을 통해 하나님이 그에게 새롭게 부어주신 마음은 북한을 향한 연민과 사랑이었던 것이다.
잘못된 체제를 비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자신의 할아버지가 살던 그 북한 땅의 같은 후손이라는 것을 공감하는 것... 그 사실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잊고 있었던 <북한>을 케네스 배를 통해 다시 기억하도록, 변함없이 그 땅을 위해 기도하도록 요청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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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위해 감옥에 갇혔던 사도 바울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났다.
힘든 순간순간 그를 살리는 기적이 되었던 한 말씀, 한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는 선교지에서는 말씀이 살아역사하는 기적을 보기가 더 쉬움을 나 또한 경험했었다. 그래서 오늘도 아무 제반시설이 없는 오지로도 부르심 따라 떠나는 선교사님들이 계실 수 있는 게 아닐까.
찬양의 힘으로 어려운 순간들을 이겨내고, 먹고 싶은 음식 하나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은 손길에도 기적으로 믿고 고백하는 감사의 신앙이 뭉클하였다.
책을 읽는 동안 가장 도전이 되었던 것은 자신의 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을 전하고자 시시로 지혜를 구하고 기도했던 모습이다.
"하나님이 비와 햇볕을 비롯해서 풍성한 수확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내 주셔야 합니다."
'주님은 정말 유머러스하시군요. 당신이 참 하나님이심을 똑똑히 보여 주셨군요.'
(p.242, 243 중에서)
"하나님이 당신을 그토록 사랑한다면 왜 당신은 아직까지 집에 가지 못하고 여기에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거야?"
"하나님은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조선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저를 여기 두신 거예요. 선생님이 하나님과 그분의 깊은 사랑을 알기를 원하셔서요."
(p.304, 노동교화소에서 간수와의 대화)
반면, 석방을 앞둔 2014년 10월에는 극심한 영적 정체기를 겪었다. 체포된 이후 처음으로 기도도 안하고, 성경도 읽지 않고, 낙심과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그가 '미스터 실망'이라고 불렀던 담당 검사가 했던 반복된 말은... "아무도 당신을 신경 쓰지 않아. 아무도 당신을 기억하지 않아. 당신은 집에 돌아갈 수 없어" 였다.
케네스 배 선교사는 책을 내게 된 이유를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어려움을 이야기함이 아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동일하시며, 북한에서도 한국에서도 또 내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하신다. 이 책은 나의 북한 억류 기간뿐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함께 하시고 역사하신 하나님의 기록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 나오게 되었다."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그들은 외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자주 잊어버린다. 하지만 하나님만큼은 억류 기간 동안 나를 잊지 않으셨던 것처럼 그들도 잊지 않고 계신다. 하나님은 내게 긍휼을 베풀어주셨던 것처럼 북한을 향해서도 긍휼을 품고 계신다."
(p. 361, 닫는 글 중에서)
책을 통해 나 또한 북한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다시금 품는다. 정치적인 문제를 넘어서 복음을 마음껏 듣지 못하는 그 하나만으로 북한은 그리스도인들의 아픔이요, 눈물이다. 더 이상 <억류된 땅>, <잊혀진 땅>이 되지 않기를, 하나님께서 북한 땅을 긍휼히 여겨 주시길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