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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골든아워 1~2 세트 - 전2권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8 ㅣ 골든아워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국종 교수의 이름을 처음 안 건
아덴만 여명 작전 중 총격을 입은 석해균 선장의 치료 뉴스를 통해서였던 것 같다. 1권 후반에는 당시의 과정을 생생히 전해주기도 한다. 그 이후
방송 매체를 통해 간간히 관련 영상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참 필요한 분이구나, 목숨걸고 일하는 이런 분들이 있음이 희망이 되었었다. 올 초에는
교수님의 추천 책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를 읽기도 했었는데 이번에 흐름출판을 통해 중증외상센터의 기록을 직접 읽어보게 되다니
감개무량이었다. 칼의 노래가 담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면모, 또 김훈 작가의 필체의 매력이 이 책에서도 언뜻 언뜻 느껴졌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피터지는 의료 현장의 생생한 리포터임에도 문단과 문단 사이, 마치 소설가처럼, 수필가처럼 삶과 철학을 담아내준 글귀들이 이 가을 책을 읽는
기쁨을 더해주었다.
사실 '중증외상'이라는 분야 자체가
낯설었다. 외과, 정형외과와 달리 외상외과, 중증외상센터는 무엇이 다른지 알아야할 것 같았다. '중증외상'은 생명이 위독할 수 있는 외상으로
반드시 '수술적 치료' 및 집중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 한다. 그만큼 위급한 상황이기 때문에 신속한 이송과 적절한 처치, 빠른 진단과 수술,
집중치료와 수술방, 중환자실, 혈액은행 등을 모두 필요로 하는데 책을 읽어보면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열악한 우리나라의 실태를 보게 된다.
중증외상 환자들은 버스나 택시 운전, 오토바이 배달,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참 안타까웠다. 중증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막대한 비용에 비해 병원에 지급되는 진료비는 일반 환자 기준에 맞춰져 있으니 병원에서는 손실을 무릎쓰면서 환자를 수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국종 교수는 개인의 능력의 문제를 벗어난 이런 심각한 '시스템'의 문제를 현장에서 절감했다. 모두 '예방 가능한 사망' 이라는
점에서 더욱 안타까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지가 으스러지고 내장이 터져나간 환자에게 시간은 곧 생명이며, 사고 직후 한 시간 이내에 환자는
전문 의료진과 장비가 있는 병원으로 가야하는데 그것이 곧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골든아워(golden hour)'이다. 이 골든아워 때문에
텔레비전 광고에서도 나왔던 헬리콥터를 이용한 이송 체계가 너무나 중요했던 것이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환자들을 살려준 것만도 정말 대단하고 고마운데, 그런 의사가 초과 사용한
약품과 장치들의 비용 청구 때문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사정하는 글을 써보내야했다는 이야기는 참 화가 나는 대목이었다. 스스로를 연간 8억원이
넘는 적자의 원흉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국종 교수가 이끈 아주대학교 외상외과 의료팀의 2002년부터 2018년의 기록을
읽어내려가는 내내 안타까움, 답답함, 화남, 눈물이 반복된다. 그럼에도 외상외과를 지원한 인턴이 있을 때 함께 기뻐해주는 동료 교수들 마음처럼
소소한 기쁨과 감사가 묻어나는 기록들도 많았다.
'상이군인' 아버지가
차별 받던 의료 진료, 고등학교 동창의 아주대학 의과대학 진학과 외과 선택 등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중증외상 환자들의 수술 과정, 환자들의 삶을
기록한 대목들을 읽어내려가며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났다. 삶이란 무엇일까. 현장노동자, 취업을 앞둔 젊은이, 폭력조직원의 수술, 또 수술후에
사망한 환자들과 남은 가족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여러 마음이 교차했다.
내과와 외과를 구분 짓는 이유가 무엇이든, 외과를 업으로 삼는 우리의 일상은 갈라지고 짓이겨진 살과 부서진 뼈와
장기들, 끊어진 신경과 어긋난 조직, 솟구치는 핏물 속에 있었다.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았다. 삶은 평범함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수술이 좋았고 수술방에 감도는 서늘한 감촉을 사랑했다... 1권 p.33
5월에 정경원이, 9월에
김지영이 오면서 팀의 전력은 향상됐으나 앞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가진 것이 몸뿐인 환자들은 몸을 써서 밥벌이를 하다 으스러져 밀물같이
밀려왔고, 우리는 밀어닥치는 파도에 숨 돌릴 틈이 없었다. 새로 합류한 팀원들과 내가 열심히 일해서 살려낸 환자의 수가 늘어갈수록 적자는
정비례해 커졌다. 괴이한 일이었다. 우리는 '의료진'으로서 최선을 다해 환자를 살려야 했고 '조직원'으로서 병원의 이윤을 도모해야 했으나,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상 '외상외과'에 적을 두고서는 그 둘 모두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나를 향한 따가운 눈초리와 뒷말은 여전히 무성했다.
팀원들이 있어서 혼자 버티던 날보다는 나았으나 여전히 무참한 날들이었다. 팀원들마저 나와 마찬가지로 허리를 굽히고 사정하며 버텼다. 일상이
핏물과 비난의 파도 속에 있었다. (1권, p.146)
이국종 교수는 스스로를 생계형
의사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어떤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외상외과에 몸담았던 것이 아니었단 것이다. 그를 돕는 이들, 격려해주는 이들이 힘이
되었고, 병원 재정에 도움이 안되지만 그럼에도 살려야만 하는 환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중증외상센터를 지켜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은
소명이나 사명으로의 직업을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어쩌면 정말 솔직해보이는 대목이었다. 반면에 책을 읽고 있는 나는 소명과 사명인으로 지금의
길을 간다고 생각했고, 말했던 사람인데... 나는 조직과 시스템을 넘어서 '생명' 그 자체를 위해 싸우고 땀흘리고 있는가 물어보게 된
책이다.
2권의 세월호 침몰 당시의 기록 부분에서는 의료계뿐만이 아닌 나라 전체에 대한 답답함이 커진다. 그 후 점점 희망이
없어져가는 한국의 중증외상센터의 상황에 대해서 '침몰'이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세월호 침몰을 두고 '드물게' 발생한 국가적 재난이라며 모두가 흥분했다. 나는 그것이 진정 드물게 발생한 재난인지,
드물게 발생한 일이라 국가의 대응이 이따위였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이든 국가든 진정한 내공은 위기 때 발휘되기 마련이다. 내가 아는 한 한국은
갈 길이 멀어 보였고, 당분간은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에 힘이 빠졌다. (2권, p.93)
이 책은 이국종 교수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의 동료들의 이야기였다. 동료들의 피와 희생을 이렇게나마 세상에 알리고, 조직의 책임자로서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과 애정을
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마지막 부록지를 읽어보면 더욱 그 마음을 알수 있다. 동료 김지영 간호사에 대해서는 "나는 김지영이 지금의 외상센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까지 했으니 말이다. 2권 말미 즈음
김지영 간호사가 했던 말이 잊혀지질 않는다. 그 말을 우리 모두가 새겨들어야겠다. "이젠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습니다."
이국종 교수님과 그 외에 의료 현장에서 오늘도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료종사자 분들께 고마움의 마음을 전하며 저들이 버틸 수 있도록 제발 시스템이 개선되길 함께
바램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