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 - 장애를 축복으로 만든 사람 강영우 박사 유고작
강영우 지음 / 두란노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작년에 강영우 박사의 원동력을 읽고서 얼마 되지 않아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무척 서운하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책을 통해 만난 한 사람이, 그리고 그 책이 어떤 이론이나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환갑이 넘은 사람의 긴 시간 동안의 시행착오와 그 안에서 얻은 깨달음들을 인생의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것이었기에 그 섭섭함은 생각보다 컸다. 그렇게 세상에 태어나서 책을 통해 만나게 된 스승을 떠나보내는 슬픔은 그를 이제 막 알기 시작했기 때문에 더 컸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그가 살았던 발자취는 남긴 책,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뒤좇아 가고 싶었다. 여러 유명교회 목사들의 추천글이 가득한 표지를 보면서 마음이 끌렸던 것이 아니다. 그의 성공이 부러워서도 아니다. 그가 솔직하게 자신의 처지를, 앞을 못 보면 이 나라에서는 안마시술을 익히며 인간대접 받지 못하며 살았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가 고아로서 평생을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의 보호 속에 살지 못했음에도 미움과 한탄, 원망을 털어 놓기보다 다리는 멀쩡하니 일어서서 걸었다는 점에 나와는 다른 큰 차이를 느꼈기 때문이다.

 

내용 가운데 자신이 시각장애를 갖고 있으면서 그 축구공에 맞아 실명을 하게 된 불운을 떨쳐 버린 것이 가장 놀라웠다.그리고 그 장애를 저주가 아닌, 축복이라고 처음엔 의지적으로 그렇게 이해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시력을 잃고서 그 상실에 매달려 있지 않고 자신을 평생 존중하며 보호하며 자신의 눈이 되어 옆에 있어 준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마움과 사랑을 느꼈고 그것을 대중 앞에서 스스럼 없이 표현했다. 고마운 것을, 미안한 것을 마음으로만 간직하지 않고 공공연한 장소에서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은 그만큼 아내에 대한 뼈 속 깊은 감사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이 책의 감동이 있다. 시력을 잃었기에 다른 감각이 발달했음은 물론이고 사소한 것, 일상적인 것, 반복적인 것의 가치를 그는 누구보다 잘 알게 된 것이다. 말을 다듬어서 상대방의 마음에 편안하게 전달되도록 노력한 것도 그 중의 한 예다. 명령적인 말, 강압적이고 분노를 담은 말, 거칠고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을 스스로가 차단하고 긍정적이며 부드러운 말을 하려도 자신을 훈련시킨 점이 그의 인격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고 나 또한 그 점에 작지만 강여우란 사람을 있게 한 시작이라 생각한다.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미국이란 대국에서 고위직에 오르고 두 아들을 모두 유명대학에 입학시켜 전문직을 갖게 한 성공이 대단해서 그것을 따라하고자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붙잡을 것이 없는 암담한 현실 가운데 눈 먼 고아소년의 불우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순응하지 않았고 모험과도 같았던 미국으로 건너가 살면서 현재의 자신이 있게 해 준 미국의 시스템과 문화,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던 그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흔히들 미천했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조차 하기 싫어 어려운 시절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을 모른체 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그는 정직했다. 미국에 살면서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동등한 인격으로 대접받게 하기 위한 일에 힘을 기울였고 자신과 같은 장애를 갖은 사람들이 각각 다른 분야에서 장애인인권을 위해 어떠한 씨알도 먹히지 않는 노력들을 강하게 해 오고 있었는지에 대해 알리는데 노력했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점은 그가 장애를 어떻게 인식하는가였는데 장애를 극복의 대상, 싸워서 없애야 하는 대상, 혹은 불쌍해서 적선을 해 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장애를 우리가 늘 숨을 쉬는 공기와 같이 일상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는 것에 놀랐다. 정말 대단한 자신감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조금은 아쉬움과 열등감이 남아 있을 것이라 여겼던 나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아무리 다른 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해 앞장서는 대장의 자리에 있더라도 남들처럼 눈으로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며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의 얼굴을 보며 평범한 가장으로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까! 그런 생각을 여전히 갖은 채 읽고 있던 나에게 내 장애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깊은지를 단적으로 깨닫게 해 준 것이다. 내게 있어서 여전히 장애란 없으면 좋은 것이고 생기면 당황스럽고 불안하고 두려운 것, 불편한 것이다. 그의 말대로 65세 이후의 인구 가운데 장애가 발생하는 비율이 50&가 넘는다는 것도 맞다. 앞으로 선척적 장애인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후천적 장애, 노인성 장애에 대한 인식과 연구, 그리고 받아들임에 대해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강여우가 보여주는 희망은 작지만 씨앗같이 그 성장이 무한한 것이라 생각한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면 앞을 보지 못한 채로 일생을 마감한 그의 곁에서 평생을 살아 온 가족들의 진솔한 심정이다. 그의 아내, 그리고 두 아들의 입장을 듣고 싶다. 장애인으로서 그 신체적 불편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힌 인간으로서,아버지로서 , 남편으로서 자신의 몫을 다 하고 간 그를 직접 보며 겪은 사람들의 감회를 듣고 싶다. 실제 노인성 장애를 겪고 계신 분들과 생활을 같이 하게 된 것은 1년 여 남짓이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이 든다. 걸어가다가도 한숨이 깊게, 그것도 아주 길게 나오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고 간단한 음식을 드려도 입으로 들어가는 것과 밖으로 흘러 나오는 것의 양이 만만치 않으니 챙겨 드리고 나면 그것을 치우느라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걷는 것도 대소변을 해결하는 것도 결코 정상인들, 아니 대여섯 살짜리 아이보다 더 힘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눈물이 많아졌다. 같이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나에게 점점 의지해가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자꾸만 약해져서 장애인과 함께 살아 온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를 듣고 싶어지게 된 것이다.  

 

내 옆에 있는, 내가 대신해 주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어려운 장애를 갖고 있는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 늘 마음에 짐스러움과 어려움이 끊이질 않았다. 피하고 싶고 보지 않으면 모른 척 할 수 있다고, 편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회피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무지해서 나온 것인지를 이 책을 통해 깨달았다. 앞으로 눈물이 더 많아지게 될지, 아니면 그래도 웃음을 따스한 격려와 사랑의 말이 더 많아질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강영우박사가 내게 남겨 준 것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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