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메르헨 문지아이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김서정 옮김,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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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함을 넘어 꽤 무겁다는 느낌이 드는  이 책은 두께도 예사롭지 않았다. 제목부터가 예전의 평범한 안데르센동화와 달랐는데 메르헨의 사전적 뜻이 구전, 전래동화 등에 덧붙여 그림동화라는 의미가 있어 안데르센의 초기 작품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한 책이 아닐까 싶었는데 기대는 적중했다. 백조의 얼굴이 표지로 나온 것을 보면 누구나 안데르센의 동화집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안데르센의 실제 삶이 순탄지 못했다는 점, 이야기마다 퍼즐의 조각처럼 몇 개씩 맞추어 갈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였다.

 

작가가 작품을 쓸 때 어떤 절박함이나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벗어나서 밝은 희망의 빛을 찾아 공상에 젖어 상상력을 불어 넣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동화의 경우엔 장르상 현실성이 떨어져도, 조금은 말이 안 되어도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런 동화의 형식을 안데르센이야 말로 가장 잘 활용한 예라 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안데르센이 인식한 당시 덴마크의 현실에 대한 부정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인식을 상상의 옷을 입혀 세상에 내 놓을 수 있었으며 안데르센이 인식한 문제점은 세대를 넘어, 그리고 국경을 초월하여 지금까지도 많은 어른과 어린이들이 함께 보는 책이 된 것이다.

 

안데르센이 구두수선공인 아버지와 세탁부였던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널리 알려진 사실 이외에 그가 평생 결혼을 안 한채 한 부유한 가문의 후원을 받아 집필에 전념할 수 있었다는 것은 , 또 그 집의 둘째 아들에 대한 안데르센의 지나친 집착 때문에 결국 그 부자집의 후원이 끊겨 이 후 몹시 빈곤한 생활 가운데 외로운 시간들을 보내다 생을 마쳤다는 사실은 안타깝게도 숨겨져 있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은 안데르센이 유언으로 자신이 사랑하던 그 둘째아들의 묘 옆에 묻어 달라는 것이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그 가문에서 아들의 묘를 이장해 가 버린 사실이다. 어린이들에게 안데르센아저씨는 그저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후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작가로 성공한 입지전적인 영웅으로 만들고 싶었던 어른들의 지나친 배려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작가인 안데르센의 실제 자라 온 환경과 그의 주변 인물들에 대해 알고 동화를 읽는 것이 무엇보다 작품을 이해하는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안데르센은 가난했고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서 어머니와 할머니가 세탁부로 일하는 병원에 따라가서는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곤 했다.그의 문학적 자질은 빈곤함도 꺾을 수는 없었으나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어 자라나는 성장기에 마음껏 친구들과 교류하지 못한 채 외톨이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재능은 있지만 성장환경이 다른 안데르센을 진정 친구로 받아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던 까닭에 단 한 명, 안데르센의 후원자 집안의 둘째 아들이 자신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해주며 관심을 가져주자 그만 그에게 집착하게 된 것이다. 그런 사정들이 다른 외모 때문에 늘 무리에서 따돌림과 괴롭힘을 받는 못 생긴 아기 오리(미운 오리새끼)에 잘 녹아 있다. 어른이 읽어도 가슴 깊숙한 곳에서 오는 울림이 있는 이 못 생긴 아기 오리(미운 오리새끼)는 바로 안데르센이 후원자 가문에서 생활하면서 그 집안의 자제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늘 주눅들고 외롭게 산 경험들과 아픔들, 그 가운데에서도 언젠가 이들보다 훨씬 큰 날개로 저 높은 세상을 날아오르겠다라는 꿈을 가진 젊은 안데르센의 모습이 역력히 녹아 있다.

 

또 하나의 이야기인 성냥팔이소녀는 안데르센의 어머니를 떠 올리게 한다. 마음이 착하고 가족을 지극히 사랑했던 그녀였지만 늘 아무리 일을 해도, 발버둥을 쳐 보아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던 안데르센의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결국엔 이 험난하고 끝없는 고생만 가득한 땅을 떠나 성냥불을 켤 때  나온 환하고 따뜻한 불빛을 보며 하늘나라로 떠나는 이야기는 안데르센이 두고두고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을 갖고 있음을 잘 드러낸 이야기이다. 착하고 약한 어머니를 소녀로 각색한 안데르센의 창의력과 용기가 놀랍다.

 

그 이외에도 나이팅게일, 바보 한스, 임금님의 새옷, 엄지 아기 등 43편의 색깔이 다양한 이야기들이 기가 막힌 표현력과 상상력으로 재미있게 읽고 넘어갈 수 있으나 그 안에 담긴 안데르센의 아팠던 자신의 생활, 감정, 생각, 비판의식 등이 곳곳에 보물처럼 잘 숨겨져 있어서 그 이야기 속에 담긴 퍼즐조각들을 찾는 재미가 상당히 크다. 만약 안데르센이 자신이 몸소 겪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미웠던 것, 아팠던 것을 싣는 대신 무조건 미화시키거나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가서 무조건 아름답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썼더라면 후세에 이렇게 이름을 남길 수 있었을까!

 

그는 비참한 현실을 온 몸으로 견디며 그 속에서 글을 썼다. 자신이 처한 부조리한 상황을 동물세계에 빗대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며 그 아픔을 털어냈다. 그런 진실됨이 있었기에, 그런 용기와 지혜가 담긴 책이기에 지금도 안데르센이 전해 준 이야기들은 어린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다시 찾게 되는 것이다. 삶의 지혜와 진리가 담긴 책이기에 홀로 사람들의 따돌림과 가난 속에서도 글을 통해 세상에게 소리 칠 수 있었던 안데르센을 다시 만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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