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무엇을 공부하는가 - "하버드의 생각수업" 후쿠하라 마사히로의 신작 세계 최고 인재들의 생각법 2
후쿠하라 마사히로 지음, 김정환 옮김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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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인인 저자는 해외에서 배우며 일하며 느낀 점들을 고국에 돌아와 인재양성에 힘쓰고 있는 사람이다.

이 책의 내용이 나에게는 크게 와닿진 않았지만 자신의 나라를 비판하고 힘써야 할 부분에 대해서 얘기하는 저자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낸다.

저자는 우리나라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제주도에 있는 국제학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영어도 우리나라가 낫다고 얘기한다. ?

한중일이 갖고 있는 주입식 공부에 대해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더 나아가 지식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얘기한다.

두 가지를 잘 절충한 나라로 인도를 꼽고 있다.

 

 

 

난 주입식을 반대하는 편은 아니다. 아무런 사전 지식없이 토론해봤자 짜증날뿐이다.

공부가 재미없는건 내가 배운 이 지식이 현실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응용될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런수업이 가능하다면 학생들의 눈은 반짝이고, 내가 배운 지식을 어떻게 써먹지? 란 생각으로 가득할 것 같은데...우리나라는 정녕 멀었단 말인가??

여튼 저자는 자기가 배웠던 수업들에서 그리고  막상 현실에서는 지식 자체로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내가 만난 인도인 엘리트들에게 인도 약진의 비결을 물었을 때 크게 인상적이었던 점은 모두 입이라도 맞춘 듯이 '주가드' 라는 말로 설명한 것이었다. 주가드는 힌두어로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면서 필요한 것을 만들어낸다' 는 의미다. 이처럼 현재 우리가 가진 강점이 무엇인지를 냉정히 분석하고 그것을 어떤 능력과 결합 했을 때 더 강해질지를 고민할 때라고 생각한다. "

 

 

 

"일본의 다도나 무도에서는 '수파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수파리는 기예나 무공을 닦는 3단계 과정을 말한다. 이 수파리에 따르면 독자적인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기존의 '틀'을 충분히 연습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그 틀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있게 되면 다음에는 그 틀을 '파괴할 ' 방법을 생각한다. 전통 예능에서 중요한 일은 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틀을 부수고 틀에서 벗어나 '기 技' 를 발전시키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전통 자체를 계속 지켜나갈 수가 없다.

 '먼저 지금 있는 이론이나 프레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라고 주장하면 '그런건 그저 이론이잖아?' 또는 '이론보다 현장의 현실이 더 중요해'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토론을 벌이면 과연 어느쪽이 이길까? 틀림없이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승리할 것이다. 프레임은 바꿔 말하면 어떤 매뉴얼처럼 외부로 표출되어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인 형식지다. 유난히 아시아는 겉으로 표현하거나 명문화하기 어려운 지식, 암묵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널리 퍼뜨리고 알리기 위해 형식지로 만드는 데는 매우 서투르다. 그래서 아시아의 풍부한 암묵지를 이론화해 형식지로 만들어온 사람들은 전부 외국인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요컨대 나는 우리가 가진 풍부한 암묵지를 확실한 강점으로 바꿔 나가는 것도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프레임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않은 사람이 토론을 하면 가진 사람이 반드시 이긴다고 썼는데, 그렇다면 서로가 같은 프레임을 가지고 토론을 할 경우는 어떻게 될까? 더 풍부한 암묵지를 가진 쪽이 당연히 유리하다. 여기까지 왔을 때 비로소 우리가 지닌 강점이 진정한 의미에서 활용되는 토양이 갖춰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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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의 아주 특별한 별자리 상담소
사마리아 지음 / 나무의철학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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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 혈액형, 심리테스트. 중학교때 목을 맸던 것들이다. ㅋㅋㅋ

나를 알고 싶어서, 내가 누군지, 어떤 인간인지 궁금해서 미친듯 찾아 헤맸던.

이책은 내가 본 별자리 책 중 별자리에 대한 설명이 가장 풍부한것 같다.

저자는 별자리를 정말 학 의 위치까지 끌어올린 것 같다.

별자리를 철학적으로 풀어놓아 심오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반갑다.

단순히 12개로만 분리하지 않고 출생 차트를 통해 아주 세분화된 별자리를 만날 수 있었다.

역학과 비슷한 면이다.

저자는 책 초반에는 자신이 갖고 있는 인생을 보는 관점, 대하는 자세, 철학에 대해 풀어놓았고 두번째에선 출생 차트를 통해 별자리를 보는 방법에 대해 잠깐 엿보기를 할 수있다. (내 출생 차트를 보고 찬찬히 읽어보았지만 어려웠다.)

세번째에선 각 별자리에 대한 상세 설명.

난 쌍둥이 자리인데 내가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들을, 나도 애매했던 것들을 써놓아 저자의 깊이에 감탄했다.



단순히 이 책을 내 별자리가 궁금해서 보았던 나도 저자의 심오함에 다시한번 운명에 대해, 역학에 대해, 점에 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확실성만 추구할게 아니라 뭔가 불확실한, 항상 유동적인, 역동적인 세계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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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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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한다면 난 이 책에서 감동을 받지 못했다.

물론 읽는 내내 무언가 생각하게 하는, 위대한 작품에서 보이는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되는 멋진 책이긴 하지만, 나 자신 자체가 허무주의와 염세주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고 이 늪을 건너고자 애쓰고 있는 중인데, 이 책 한권 읽었다고 해서 카뮈가 얘기하는, 주인공 뫼르소와 같은 심정을 느낄수는 없었다.

느꼈다면 난 이 늪을 건넌거다.

그러나 책을 몇번이나 읽어도 나에겐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살아있다는 확신. 나 자신에 대한 확신. 모든것에 대한 확신이 나에겐 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죽음을 직시 해본적이 없기 때문인거 같다.

뫼로소처럼 나도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돌아가실때 눈물 한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뫼르소의 경우엔 어머니였지만.)

물론 그분들에 대한 추억이 많지 않아서일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양로원에서 엄청 울었다. 인간이 이렇게 약해질수 있구나, 그렇게 정정하셨는데 라는 생각으로), 이상하게 돌아가시면  별 생각이 들지 않는거였다. 죽음 자체를 회피하거나 받아들이지 않거나 그냥 무시하고 싶은 것 같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죽음 이라는게 무섭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강아지나 고양이 키우는 것도 무섭다. 언젠가는 나를 떠날 그들, 소멸해버리고 말 무언가를 갖는다는것이, 상실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너무 비통하게 다가와, 애써 모르는척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이런 내 모습은 마치 모든것에 무감각한 주인공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주인공 뫼르소는 상당히 독특한 인물이다. 무미건조한건지, 의욕이 없는건지는 몰라도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도 흘리지 않았고, 다음날 마리를 만나 수영을 했으며 결국 달라진건 없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무언가에 열정적이지도 않은 이 사람이 늘상 하는 말은 '의미가 없다' 는 것이다. 마리가 사랑하냐고 묻는데 주인공은 그런 말은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답한다. 난 문득 '아니, 이 사람에게 의미있는것이란 무엇일까?' 란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뭔가 무감각한 제 3자의 시선으로 영혼없이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건 나만 그런건 아니겠지????

그러던 차에  뫼르소는 우연하게(?) 아랍인을 쏘게 되고 2부는 법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나오며 결국 주인공은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이 책을 읽는동안  내내 신경이 쓰인 단어가  "태양" 이었다.  

이 이야기속의 태양이란 단어의 뉘앙스는  그리 밝아보이지 않았고 주인공을 숨막히게 하고 더위먹게 하는,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뫼르소가 아랍인에게 총을 쏠때도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보았던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뜨거운 햇볕에 뺨이 타는 듯했고 땀방울들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것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특히 그날과 똑같이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대가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지끈거렸다. -p.69- "

 


"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여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 본댔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p.69-

 

 

난 태양이 뭘 의미하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그런데 위의 문장들을 여러번 읽고 나니  태양이 "죽음"을 의미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이유는 죽음 이란 실체가 확실히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내 눈에 뫼르소는 본질에 다가가기를 거부한, 무감각해지고 싶어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1부에서는 말이다.

그는 다만 피부로, 무의식적으로 죽음에 대한 냄새를, 감각을 느낀것이다. 사람들이 의식하지 않을뿐  죽음은 우리 삶과 언제나 함께한다.  

아랍인을 보고 그때와 같은 태양을 보고 본능적으로 죽음에 대한 거부감, 원초적인 두려움 등을 느끼고 그것을 이겨내고자, 벗어나고자 총을 쏘았던것은 아닐까?

 

 

  

"그때, 왜 그랬는지 몰라도, 내 속에서 그 무엇인가가 툭 터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목이 터지도록 고함치기 시작했고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기도를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의 사제복을 움켜잡았다. 기쁨과 분노가 뒤섞인 채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에게 마음속을 송두리째 쏟아 버렸다. 그는 어지간히도 자신만만한 태도다. 그렇지 않고 뭐냐? 그러나 그의 신념이란 건 모두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 한 가치도 없어. 그는 축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그에게는 없지 않으냐? 보기에는 내가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들고 있다..."

 

  

2부에서 뫼로소는 죽음후의 하늘 나라에 대해 얘기하는 사제의 멱살을 잡으며 이렇게 얘기한다.

어느것에도 집착하지 않아 초연해보였던 그가 처음으로 감정을, 그의 생각을 드러낸것이다.

삶의 본질에 관한 생각말이다.

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종교로 피하지 않는다. 그냥 직시한다.  죽음 자체, 생 자체를 말이다.

감옥에 갇혀 자유를 빼앗기고난 후, 사형 선고를 받고 난 후 그는 때때로 자신이 자유의 몸이 된걸 상상하며  그 때 비로소 생의 환희에 몸을 떤다.

뫼르소는 인생이란 의미없고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죽음이 눈 앞에 닥치자 역설적으로 생이 무엇인가 알게 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직시 없이는 생에 대한 환희도 없다....죽음을 이해한 자 만이 비로소 삶에 대한 열정으로 빛날 수 있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로 자신의 두려움을 피한자는 죽어 있는 자. 살아있다는 확신조차 없는 자. ?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슬러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었다. "



한줄기 어두운 바람은 죽음이다. 죽음은 모든것을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주인공은 모든 것이 의미없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난  이 책에서 허무의 기운을 느꼈다. 그러나 다행히도 알베르카뮈는  어떤 긍정의 씨앗을 던져준거 같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 엄마는 거기서 해방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마음이 내켰을 것임이 틀림없다.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것이다. "

 

 

처음에 책을 다 읽고 덮었을때  이건 뭐지? 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몇번 읽다보니 뫼르소의 변화가 보이고,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고, 정의되지 않고, 존재 자체로 자신을 확신하는 뫼르소를 보며, 죽음을 다르게 보고 있구나. 죽음을 통해 존재를 느끼고 있구나, 뭔가 긍정적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알베르 카뮈에 대해 찾아보니 '부조리' 란 말이 많이 보였다. 부조리한 인간이란 뜻이 아니라 삶이 부조리한걸 매순간 인식하는 인간이라는 뜻에서 부조리한 인간 이라고 했다고 하던데, 알베르 카뮈는 우리가 눈을 크게 뜨고 죽음이 항시 옆에 있음을 기억하란 말을 하고 싶었나부다.

나조차도 삶이 영원할것이라는 생각을, 내가 늙어가고 있음을, 죽음을 향해 가고 있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곧바로 이런 의문이 든다.

내가 부조리를 의식하는 인간이 된다면 어떤게 달라질까? 왜 우리는 감은 눈을 떠야하는가?

문득 죽음에 대한 공포가 나를 옥죄며 역으로 생에 대한 열의를 느끼게 된다면 나는 죽지않고 깨어있는 정신이 되는건데 그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아니, 왜 깨어 있어야 하는가?

허울좋은 정답은 알고 있다. 단지 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이 듣고 싶다.

정말 이방인이 되고 싶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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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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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연한 경로를 통해 읽게 되었는데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내가 읽기에는 난해한 면이 없지 않았으나 무지한 나라도 이 책이, 이 저자가 시대를 통찰했다는 생각을 금할수가 없었다.

왜 이  사회가 우울한지에 대해 깊이 있는 진단을 내린것 같다.




난 그닥 긍정적인 인간상은 아니고 무조건 네라고하는 인간들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정확히 말하면 무한긍정을 말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그러나 사회가 점차 사람을 호감, 비호감으로 나누고 부정적인 말들을 하는 사람에 대한 불편함, 거부감을 나타내서 뭔가 비판적인 말을 할 때 눈치를 보고 해야 한다.

비난이 아니라 비판이고, 단지 yes 가 아닌 no 로 했다고 해서 당장 나를 뭔가 대하기 힘든 사람, 부정적인 사람으로 대하는데 난 정말 진저리나게 익숙하다.

적당히, 내 신념(?)을 건드리는 선이 아니라면 이젠 유유자적 웃고 넘어갈 나이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난 저자의 "긍정성의 강요"를 이런식으로 받아들였다.

no 라고 할 수 없는 사회, 뭐든 할수 있다고 해야 할것 같은 사회, 그래서 다들 비슷해지는 사회말이다.

부정이 존재하지 않으니 나와 너가 다름이 없다. 누구든 yes 라고 외치니 왠지 나도 그래야 할 것 같은 묘한 압박감이 존재하는 사회.

그래서 피곤한 사회.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일과 능력의 피로이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전쟁 상태에 있다.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서,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간을 반영한다."




'깊은 심심함 '이라는 챕터에서 멀티태스킹이 인류의 퇴보라는 말이 나온다.

학생들을 보더라도, 내 주변을 보더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사람은 많다. 멀티태스킹이 만연하고, 진중하고 사색적인게 이상한 사회.

우리는 분명 멍청해지고 있고 하류로 가고 있다.




책이 어렵기 때문에 책 자체에 대해 말하기엔 배경지식이 얇은듯하다.

내가 이 책을 나의  best 안에 꼽은 이유는 이 책이 시대를 읽었기 때문이다.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진입. 면역학적 시대에서 긍정성을 강요하는 시대로의 변화.

타자가 사라져 버린 사회.

긍정성의 강요.  

왜 우울한 이가 그토록 많은가에 대한 답을 준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해결책을 줬나? 싶다.

면역학적 시대가 낫다는 말을 하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

무위의 피로가 답인가????

책 제목인 '피로사회'는 탈진의 피로사회가 아니고 무위의 피로사회인가????



"...무위를 향해 영감을 불어놓는 저 '오순절의 모임'은 활동사회의 반대편에 놓여 있다. 한트케는 거기 모인 사람들이 '언제나 피로한 상태' 라고 상상한다. 그것은 특별한 의미에서 피로한 자들의 사회이다. '오순절 -사회' 가 미래사회의 동의어라고 한다면, 도래할 사회 또한 피로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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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훈련, 시키지 않아도 됩니다
김세화 지음 / 북랩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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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을 키우는데 있어서 가장 난점이 훈련을 시켜야 한다는거였다.

난 훈련 시키는데 재주도 없고 그런거 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주변에서 자꾸 훈련 시켜야 한다고 해서 난감했다.

그 결과 우리 애들은 거의 한살이 되는데도 내가 '앉아 ' 이래도 앉지 않는다. ㅋㅋㅋㅋ

이리오라고 해도 이리 안오고 가끔씩 자기가 오고 싶을 때만 온다.

난 집에 가면 애들 마당에 풀어놓고 걔네 감시해야 하니깐 보통 책을 읽는다.

각자 할꺼 하자란 생각으로 ㅋㅋㅋ

같이 놀아줄 때도 있다. 근데 산책을 가야 하는것도 이미 부담이라 체력을 비축해 둔다.

그래도 가끔씩 내 친구들 오고하면 개들이 어찌나 좋아하는지 거부감이 없다.

친구들이 우리 개들이 구김살이 없어보인다고 했다. 건강해 보인다고. ㅋㅋ

그런데 묶인 상태인데 밤이 되면 짖는다.

지금 우리 작은놈의 문제 행동은 새벽 5시만 되면 어김없이 짖는다는 사실.  그때 다른 개들이 산책을 시작한다. 그래서 겁이 나서 짖는거 같다.

훈련없이 개들을 볼 수 있단 생각에 이 책을 봤다.



이 책의 요지는 거의 정답이 된 개들을 훈련시켜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개들을 훈련한답시고 하는 괴롭히는 훈련들이 잘못되어 있다는 저자의 생각을 두꺼운 책으로 주장한다.

책은 꽤 두껍지만  요점은 하나다. 훈련 시키지 말라. 필요없다. 개들을 우리와 같은 권리를 가진 생물체로 생각하고 대하라.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라. 안된다고만 하지말고.

무지하고 편견으로 가득찬 인간들이 불쌍한 개들을 문제견으로 만들고 있다. 라고 말한다.

 

 

사실 난 개들이 불쌍하다.

어떤 주인을 만나는지에 따라 그들의 인생이 한참을 달라질수 있는 수동적인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인간은 정말 잔인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저 가만히 묶여 있어야 하는 개들 보면 진짜 얼마나 달리고 싶을까, 이 생각을 제일 많이 한다.

이 책 읽다보면 개들 마음을 조금은 알수 있다.  참 무지했구나 내가... 이런 생각이 든다.

사실 다른 종을 데리고 사는건데 우리는 그런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자세가 너무 가볍다는 생각이 든다.

자고로 말못하는 짐승은 함부로 대하는게 아니다.

 

이 책의 큰 단점은 저자가 구체적으로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것이다.

사실 한두마디 말이나 제안으로 복잡한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게 어렵고, 전문가를 불러야 하는게 낫다는 생각에서 저자는 구체적인 방법을 써놓지 않은듯 보이나 이 책을 구매한 많은 사람들은 사실 저자의 감상적인 말들로만 한권을 채운 책을 기대하진 않았을 것 같다.

훈련 시키지 말라는 말은 알겠다. 그런데 그 다음은 책에 안나온다.  개들을 가르치는 구체적인 방법말이다.

 

 

강제적인 훈련을 제시하는 책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런 따뜻한 책이 나온 것은 좋은 일인 것 같다.

강아지들입장에서는 말이다.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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