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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솔직히 말한다면 난 이 책에서 감동을 받지 못했다.
물론 읽는 내내 무언가 생각하게 하는, 위대한 작품에서 보이는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되는 멋진 책이긴 하지만, 나 자신 자체가 허무주의와 염세주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고 이 늪을 건너고자 애쓰고 있는 중인데, 이 책 한권 읽었다고 해서 카뮈가 얘기하는, 주인공 뫼르소와 같은 심정을 느낄수는 없었다.
느꼈다면 난 이 늪을 건넌거다.
그러나 책을 몇번이나 읽어도 나에겐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살아있다는 확신. 나 자신에 대한 확신. 모든것에 대한 확신이 나에겐 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죽음을 직시 해본적이 없기 때문인거 같다.
뫼로소처럼 나도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돌아가실때 눈물 한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뫼르소의 경우엔 어머니였지만.)
물론 그분들에 대한 추억이 많지 않아서일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양로원에서 엄청 울었다. 인간이 이렇게 약해질수 있구나, 그렇게 정정하셨는데 라는 생각으로), 이상하게 돌아가시면 별 생각이 들지 않는거였다. 죽음 자체를 회피하거나 받아들이지 않거나 그냥 무시하고 싶은 것 같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죽음 이라는게 무섭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강아지나 고양이 키우는 것도 무섭다. 언젠가는 나를 떠날 그들, 소멸해버리고 말 무언가를 갖는다는것이, 상실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너무 비통하게 다가와, 애써 모르는척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이런 내 모습은 마치 모든것에 무감각한 주인공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주인공 뫼르소는 상당히 독특한 인물이다. 무미건조한건지, 의욕이 없는건지는 몰라도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도 흘리지 않았고, 다음날 마리를 만나 수영을 했으며 결국 달라진건 없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무언가에 열정적이지도 않은 이 사람이 늘상 하는 말은 '의미가 없다' 는 것이다. 마리가 사랑하냐고 묻는데 주인공은 그런 말은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답한다. 난 문득 '아니, 이 사람에게 의미있는것이란 무엇일까?' 란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뭔가 무감각한 제 3자의 시선으로 영혼없이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건 나만 그런건 아니겠지????
그러던 차에 뫼르소는 우연하게(?) 아랍인을 쏘게 되고 2부는 법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나오며 결국 주인공은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이 책을 읽는동안 내내 신경이 쓰인 단어가 "태양" 이었다.
이 이야기속의 태양이란 단어의 뉘앙스는 그리 밝아보이지 않았고 주인공을 숨막히게 하고 더위먹게 하는,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뫼르소가 아랍인에게 총을 쏠때도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보았던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뜨거운 햇볕에 뺨이 타는 듯했고 땀방울들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것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특히 그날과 똑같이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대가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지끈거렸다. -p.69- "
"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여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 본댔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p.69-
난 태양이 뭘 의미하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그런데 위의 문장들을 여러번 읽고 나니 태양이 "죽음"을 의미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이유는 죽음 이란 실체가 확실히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내 눈에 뫼르소는 본질에 다가가기를 거부한, 무감각해지고 싶어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1부에서는 말이다.
그는 다만 피부로, 무의식적으로 죽음에 대한 냄새를, 감각을 느낀것이다. 사람들이 의식하지 않을뿐 죽음은 우리 삶과 언제나 함께한다.
아랍인을 보고 그때와 같은 태양을 보고 본능적으로 죽음에 대한 거부감, 원초적인 두려움 등을 느끼고 그것을 이겨내고자, 벗어나고자 총을 쏘았던것은 아닐까?
"그때, 왜 그랬는지 몰라도, 내 속에서 그 무엇인가가 툭 터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목이 터지도록 고함치기 시작했고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기도를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의 사제복을 움켜잡았다. 기쁨과 분노가 뒤섞인 채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에게 마음속을 송두리째 쏟아 버렸다. 그는 어지간히도 자신만만한 태도다. 그렇지 않고 뭐냐? 그러나 그의 신념이란 건 모두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 한 가치도 없어. 그는 축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그에게는 없지 않으냐? 보기에는 내가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들고 있다..."
2부에서 뫼로소는 죽음후의 하늘 나라에 대해 얘기하는 사제의 멱살을 잡으며 이렇게 얘기한다.
어느것에도 집착하지 않아 초연해보였던 그가 처음으로 감정을, 그의 생각을 드러낸것이다.
삶의 본질에 관한 생각말이다.
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종교로 피하지 않는다. 그냥 직시한다. 죽음 자체, 생 자체를 말이다.
감옥에 갇혀 자유를 빼앗기고난 후, 사형 선고를 받고 난 후 그는 때때로 자신이 자유의 몸이 된걸 상상하며 그 때 비로소 생의 환희에 몸을 떤다.
뫼르소는 인생이란 의미없고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죽음이 눈 앞에 닥치자 역설적으로 생이 무엇인가 알게 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직시 없이는 생에 대한 환희도 없다....죽음을 이해한 자 만이 비로소 삶에 대한 열정으로 빛날 수 있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로 자신의 두려움을 피한자는 죽어 있는 자. 살아있다는 확신조차 없는 자. ?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슬러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었다. "
한줄기 어두운 바람은 죽음이다. 죽음은 모든것을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주인공은 모든 것이 의미없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난 이 책에서 허무의 기운을 느꼈다. 그러나 다행히도 알베르카뮈는 어떤 긍정의 씨앗을 던져준거 같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 엄마는 거기서 해방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마음이 내켰을 것임이 틀림없다.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것이다. "
처음에 책을 다 읽고 덮었을때 이건 뭐지? 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몇번 읽다보니 뫼르소의 변화가 보이고,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고, 정의되지 않고, 존재 자체로 자신을 확신하는 뫼르소를 보며, 죽음을 다르게 보고 있구나. 죽음을 통해 존재를 느끼고 있구나, 뭔가 긍정적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알베르 카뮈에 대해 찾아보니 '부조리' 란 말이 많이 보였다. 부조리한 인간이란 뜻이 아니라 삶이 부조리한걸 매순간 인식하는 인간이라는 뜻에서 부조리한 인간 이라고 했다고 하던데, 알베르 카뮈는 우리가 눈을 크게 뜨고 죽음이 항시 옆에 있음을 기억하란 말을 하고 싶었나부다.
나조차도 삶이 영원할것이라는 생각을, 내가 늙어가고 있음을, 죽음을 향해 가고 있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곧바로 이런 의문이 든다.
내가 부조리를 의식하는 인간이 된다면 어떤게 달라질까? 왜 우리는 감은 눈을 떠야하는가?
문득 죽음에 대한 공포가 나를 옥죄며 역으로 생에 대한 열의를 느끼게 된다면 나는 죽지않고 깨어있는 정신이 되는건데 그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아니, 왜 깨어 있어야 하는가?
허울좋은 정답은 알고 있다. 단지 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이 듣고 싶다.
정말 이방인이 되고 싶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