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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박태원」 -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성탄제 사피엔스 한국문학 중.단편소설 15
박태원 지음, 김병구 엮음 / 사피엔스21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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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의 소설『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하루 종일 정해진 일 없이 경성의 거리를 이리저리 다니는 주인공 구보가 관찰한 바를 이야기한 것이다. 구보는 일본까지 다녀온 지식인이지만 어머니가 원하는 바와는 달리 취직에도 결혼에도 생각이 없는 인물이다. 그는 정오쯤 되어 집을 나섰다가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온다. 그 밖에서 보내는 시간동안 구보는 아무 전차나 타서 예전에 선 봤던 여자를 보거나, 화신백화점에서 한 부부를 보거나, 서울역에서 가난해 보이는 노파를 멀리하는 한 신사를 보거나 한다. 소설은 이러한 이야기를 구보의 시선과 관찰, 그리고 이를 통한 연상의 방법으로 서술한다. 소설은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기보다는 주인공이 거리를 걸으며 관찰하는 것들의 이야기이다.

소설에서 주인공 구보는 만나는 사람들을 결혼과 돈으로 나누어 관찰한다. 결혼과 돈은 어머니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이고, 구보가 이루기를 바라는 것이다. 구보는 이 결혼 혹은 사랑과 돈의 두 범주 아래에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과연 그들이 행복한가를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에 맞춰 생각해 보고 과연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 소설에서는 이렇게 끊임없이 구보의 관찰과 과거 연상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독함을 토로하고 ‘행복’에 대한 고민이 나온다. 구보는 고독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중 속을 떠돌고 있다. 하지만 서울역에서 그는 오히려 군중 속에 고독함이 더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안다. 마지막 부분에서 두 번째로 만난 벗은 구보가 가진 고독함을 이해해 준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내일 또 만나자’고 하는 벗에게 구보는 앞으로는 생활을 갖고 집에서 창작을 하겠노라고 답한다. 소설 내내 생활에서는 멀어보였던 구보가 마지막에 생활을 갖기로 결심한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과 이어지는 것이 마치 절충된 무언가 같아서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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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날개, 봉별기(逢別記), 실화(失花)
이상 / 달시루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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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봉별기』와『날개』는 별개의 소설이지만 마치 하나의 소설처럼 흐름이 이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두 소설은 이상의 자전적 요소가 눈에 띈다. 『봉별기』의 ‘금홍’과 『날개』의 ‘아내’는 이상의 첫 여자로 알려져 있는 ‘금홍’을 떠올리게끔 한다.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분위기가 흡사하다. 알 수 없는 음울한 분위기가 그렇다. ‘나’는 유약하고 현실 감각 없는, 누워만 있는 생기 없는 남성이다. ‘나’의 아내는 둘 다 매춘의 일을 한다. 그리고 누워만 있는 ‘나’를 폭력으로든 약으로든 제어한다. ‘나’는 아내가 매춘을 하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한다. 그리고는 그저 방 안에 누워 무기력하게 있는 것이다. 매춘의 이유는 생계를 잇기 위해서였겠지만, 소설에서는 먹고사는 생활에 관한 고민은 없다.

맞는 아내가 나오는 소설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 맞는 남편이 나온 소설은 드물어서 독특했다. 특히 『날개』에서는 외출한 아내의 방에서 돋보기로 화장지를 태우거나, 화장품 향기를 맡거나 하며 시간을 보내는 ‘나’는 인간관계가 단절된 반사회적 인물이다. 현실에 패배한 패배자 느낌도 난다. 그러나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지성 인물 이다. 이러한 주인공이 가진 외롭고 나약하고 위태로운 정신이 문장에서 잘 느껴진다. 이상의 소설은 문장을 잘 읽기가 힘들다. 문장은 모순으로 이루어져있기도 하고, 읽다보면 난해해서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 때도 있다. 그러나 다른 소설에서는 책을 덮게 했을 이런 문장구조는 오히려 더 ‘나’의 마음을 잘 느껴지게 해 준다. 읽다보니 이상하게 우울해지고 질척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문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이었다면 이렇게 강렬한 느낌은 없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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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작품선 금 따는 콩밭 - 해설이 있는 현대소설, 보정판 현대소설 다시읽기 1
김유정 지음, 황택준 해설 / 새문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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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_『금 따는 콩밭』

콩 농사를 짓는 소작농인 영식이 금점을 돌아다니던 수재의 부추김으로 인해 금을 캐고자 멀쩡한 콩밭을 다 파헤치는 이야기이다. 영식은 지주에게 땅을 빌려 콩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었다. 자신이 농사짓고 있는 콩밭에 금줄이 흐른다는 수재의 말을 믿고 잘 자라고 있는 콩밭을 파헤치며 금줄을 찾는다. 땅을 헤집기를 망설이던 영식의 옆구리를 찔러가며 부인도 영식을 부추긴다. 몇날 며칠이나 콩밭을 파헤쳐도 금줄이 잡히지 않자 영식은 초조해진다. 수재가 죽이고 싶을 만큼 밉고, 함께 그 어둡고 축축한 굴에서 흙에 깔려 죽었으면 싶은 마음도 든다. 지주와 마름이 화가 났으니 내년부터는 더 이상 농사 지을 땅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영식에게는 콩밭을 헤집는 순간부터 금이 나오는 길 아니면 미래가 없어진 것과 다름없었다. 초조해진 영식은 날카로워지고 신경질적이 되어 집에서도 화를 내고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마지막 장면은 결국 수재가 황토를 금줄이라고 속인 후 도망가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으로 끝난다.

금점이란 칼 들고 뜀뛰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영식이 수재의 말에 넘어간 것은 소작농이라는 신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금을 캐서 이익을 본 다른 이웃들이 존재한다. 아무리해도 나아지지 않는 가난한 신세에서 주위의 이익은 얼마나 큰 부러움으로 다가왔을까. 금줄을 찾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유는 가난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주위 환경에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금 줄이었다. 금광이 성장하던 시기였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금 덕을 보았을 것이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금 때문에 절망했을 것이다. 영식의 가족은 후자이다. 금줄이 나왔으면 하고 보았지만 결국 도망가야겠다는 수재의 대목에서는 허탈하기까지 했다. 잘 자라던 콩을 뒤엎고 땅을 파던 영식이 하루하루 날카로워지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 특히 잘 보였다.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더욱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로 내몰린 영식이 안타까웠다. 실제로도 이런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까 싶다. 또, 소설을 읽으면서 사실 정확한 뜻을 모르겠는 단어들도 종종 보였지만 우리고유의 특유한 말들이 소설을 읽을 때 생동감 있게 느껴져 재미를 더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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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류 - 채만식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42
채만식 지음, 우찬제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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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의 『탁류』는 정 주사의 맏딸 초봉을 주인공으로 하여 초봉에게 닥친 시련들을 통해 식민지 시대의 사회 세태를 드러낸 소설이다. 정 주사는 학문에 밝아 군청에서 일하던 사람이었으나 당시 유행하던 미두라는 노름에 빠져 가산을 탕진한다. 그에게는 예쁘고 참한 ‘초봉’이라는 맏딸이 있는데, 모든 사내가 한 번 봤다하면 탐내는 그런 여성으로 나온다. 그리하여 『탁류』는 정 주사가 자신의 딸 초봉을 제물삼아 좀 편안하고 배부른 삶을 살아보려다가 딸의 인생을 망치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초봉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녀를 중심으로, 그녀와 얽힌 세 남자의 모습을 함께 그린다. 약방의 점원으로 일하는 초봉은 고태수와 남승재, 장형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장사 한 밑천 잡아보려는 부모의 계산적인 생각으로 인해 그녀는 난봉꾼인 고태수에게 시집가지만 장형보의 계략으로 인해 과부가 된다. 장형보에게 겁탈당한 초봉은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오른 서울길에서 박제호를 만나고 그의 첩이 된다. 그리고 아버지가 누군지 모를 딸 송희을 낳는다. 송희의 생부임을 주장하며 나타난 장형보 때문에 초봉의 삶은 다시 무너지고, 학대를 견디지 못한 초봉은 장형보를 살해한다. 소설은 그 후 계봉과 승재에게 설득당한 초봉이 자수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탁류』는 초봉에게 일어나는 막장과도 같은 비극적인 사건들의 연속을 통해 각 인물들의 생각과 그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자매이지만 초봉과 계봉의 생각의 차이가 뚜렷하게 제시되는 점이 눈에 띄었다. 초봉은 여자는 정조가 생명과도 같다고 생각하는 인물로 모든 일에 수동적이고 자신의 의지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반면 계봉은 정조의 순결성이란 건 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현대적이고 당찬 여성으로 나온다. 소설이 살인으로 끝나기 전까지 초봉은 순수하지만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밀려오는 탁류에 저항하거나 몸부림을 치지 못하고 그 물살에 몸을 내 맡기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했다.

밀려오는 탁류와 같은 삶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무기력하고 답답하고 유약하다.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견뎌내다가 지나보면, 그 물살에 휘말려서 돌이킬 수 없는 곳 까지 떠밀려와 있는 경우가 많다. 휩쓸린 자신은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는 경우도 많다. 『탁류』를 보며 초봉과는 반대로 깨어있는 생각을 지닌 새로운 인간상인 계봉의 모습보다, 오히려 한 없이 답답하고 속 터지는 모습의 초봉에게 마음이 더 많이 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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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 - 염상섭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3
염상섭 지음, 정호웅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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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의 장편소설『삼대』는 청년 조덕기를 중심으로 하여 그의 아버지 조상훈, 할아버지 조의관의 조씨 가문 3대의 갈등과 그 몰락을 다룬 소설이다. ‘마르크스보이’의 새로운 시대를 맞은 청년 세대인 조덕기와 구한말의 봉건적 가치와 신념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조의관 사이에는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 무엇도 제대로 갖지 못한 과도기적 인물인 조상훈이 있다. 『삼대』는 이 조씨 집안 ‘삼대’의 세대적 가치관에 따른 갈등과 함께, 조부가 죽고 난 후 돈을 둘러싸고 나타난 추악한 본질의 갈등을 다뤘다. 이와 함께 이념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는 진보주의자들과 돈에 얽매여있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소설을 읽으며 시대적 흐름을 말하고 있는 치밀한 구조가 놀라웠다. 소설은 조씨 가문을 중심으로 다른 사람들과 이어져 있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이 가문의 남자들을 통해, 이념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진보주의자들과 돈에 대한 열망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촘촘히 엮여있었다. 또한 다양한 등장인물은 모두 그들의 삶의 모습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어서 이념과 생활이 어떻게 이어져있는지 읽을 수 있었다.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시대의식, 계급의식, 사회의식 등 그들의 이념을 생활이라는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요소를 통해 드러냈다. 특히, 사상적 차이가 의외의 일치점을 찾아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사회주의자인 김병화가 사상의 차이가 있는 필순네 가족과 큰 충돌 없이 지내는 장면과 그 이유를 ‘굶주림’으로 답하는 장면에서 소설이 생활을 얼마나 잘 드러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인물은 과도기적 인물로 나타나는 조덕기의 아버지인 조상훈이었다. 밖에서는 종교적 신념이 있는 떳떳한 사람행색을 하지만, 그는 뒤에서는 술 담배는 물론 마약에 첩까지 거느리고 다닌다. 집안에서의 주장과 달리 그의 실제 삶은 기독교인의 교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개화시기를 지낸 사람으로,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으로 교육을 통한 개화의 뜻을 지녔던 사람이다. 그랬던 사람이 파락호로 묘사되는, 추락한 인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조상훈의 모습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겉으로 드러나는 가치관은 껍데기일 뿐이고, 실제로는 제대로 정립된 가치관을 갖지 못한 사람인 것이다. 가치관의 부재는 돈에 대한 욕망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조상훈의 모습은 오히려 더 현실적이어서 현대인에게 더 공감과 경각심을 주고, 내 자신을 빗대어 보게 할 인물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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