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곳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우리가 모여 놀던 그곳을 뭐라고 불렀던까요?

이름이 잊혀졌다면 이 그림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아마 내 안에서 어린 입말로 불쑥 그 이름을 기억해 낼 것입니다.

 

    매리안은 그곳을 록사벅슨이라고 불렀어요. 그곳은 특별한 곳이었어요. 길 건너편 흔한 바위언덕, 모래와 바위가 있고, 낡은 나무 상자들이 있고, 선인장과 덤불, 그리고 가시가 많은 오코틸로가 자라는 곳이었어요. 매리안, 애나 메이, 프랜시스, 꼬맹이 진, 찰스, 엘리노어........ 많은 아이들이 날마다 모여서 놀았어요. 까만 돌은 돈이 되고, 낡은 나무 상자는 선반도 되었다가 탁자도 되었다가 했어요. 접시로 쓸 사금파리 조각들 중에는 둥근 것이 최고였죠. 하얀 돌로 길을 만들고 집을 나누고, 시청도 생기고, 빵집도 생기고, 아이스크림 가게도 생겼어요.  부끄럼쟁이 애나 메이는 늘 자동차  속도 위반을 해서는 감옥에 갇히기를 잘 했어요. 아이들은 요새를 만들어서 두 편으로 나눈 뒤 긴 막대기에 끈을 묶은 말을 타고 말발굽 소리를 내며 따가닥 따가닥 달렸어요. 록사벅슨에는 묘지도 있었는데 무덤이라고는 죽은 도마뱀을 묻은 것 하나 뿐이었어요. 하지만 해마다 아이들은 선인장 꽃으로 예쁘게 꾸몄어요. 날씨가 안 좋거나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있을 때면 몇 주가 지나도록 아무도 록사벅슨에 가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록사벅슨은 늘 거기에 그대로 있었어요.

세월이 흐르고 흘러 그 옛날 록사벅슨에서 뛰놀았던 매리안은 어른이 되었어요. 매리안의 어린 아이들은 록사벅슨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이 들곤 했어요. 프랜시스도 50년도 더 지난 뒤에 록사벅슨에 가 보았어요. 그때까지도 록사벅슨은 그 곳에 그대로 있었어요. 프랜시스가 집을 지었던 자리에는 여전히 사막 유리돌들이 반짝이고 있었어요.

 

눈을 감고 내 안의 록사벅슨을 찾아 떠나봅니다.

 그 록사벅슨에서 꿈꾸고 뛰어노는 어린 나와 내 친구들의 모습을 찾아봅니다.

햇빛에 빛나는 사금파리같은 어린 날의 기억을 따라 들어가 그 모두를 만나보고 싶습니다.

손톱 밑에 까맣게 때가 낀 어린 나를 찾아내어 두 손을 꼬옥 쥐어보고 싶습니다.

잠깐 놀이를 멈추고 까만 눈을 반짝거리며 나를 응시할 어린 나의 모습을 보게 되겠지요.

이제 가만히 손을 놓고 멀찍히 떨어져서 바라보기만 할겁니다.

그 아이는 잠깐 수줍은 듯 하다가 이내 하던 놀이에 빠져들겠지요.

눈을 뜨면 그 새 그 아이가 자라나와 마흔을 훌쩍 넘어 여기 이러고 있다니요. 참 기가 막힌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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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밥 안 먹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이 밥을 안 먹는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지. 괴물이거나 귀신이거나 ...  사람을 잘 만나도 잘 만난지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예나 지금이나 많은가보다. 입이 함지박만 한 여자를 색시로 얻은 이 남자는 어디에 이런 색시복이 들어있었을까? 생긴 걸로 보면 좀스럽기 그지 없는데 말이다. 입이 큰 색시는 손도 크고 풍째도 좋고 얼굴에는 인심이 줄줄 흐른다. 쑨풍쑨풍 아이도 잘 낳게 생긴 전형적인 부잣집 맏며느리감이다.

남자가 문제다. 쫌스럽게 색시가 밥을 많이 먹는다고 눈이 등잔만해져서 곡식 줄어드는 생각만 한다. 연애결혼이 아니어서 이러 사단이 난 걸까? 서로 암것도 모르고 결혼을 했으니 ...  그 복스럽게 밥을 먹는 색시가 왜 안 이뻤을까? 우선 내가 많이 먹으니 할 말은 없지만 여튼 먹는 일로 타박하는 사람치고 멀쩡한 사람은 없다고 본다. 색시가 먹성도 좋으니 힘도 세고, 일도 잘 하고, 밥도 잘 하고, 성격도 시원시원하다. 들에 해나간 밥을 다 먹어치우는 색시를 보고 기암을 하는 이 남자, 결국 일을 내고야 말 줄 알았다. 집에 돌아가 콩을 볶아 먹고 있는 색시 배를 손가락으로 쿡 찔러서 죽게 만들었다. 나쁜 놈!  예전 먹을 거리가 귀하던 시절, 배터지게 실컷 먹고 죽어도 원이 없겠다라는 말의 한을 보는 듯 하다. 먹는 것 앞에서 늘 환하게 웃는 색시의 모습이 짜안하다. 우리 조상의 여인네들의 삶의 고초를 보는 듯도 하고.

 많이 먹는 일에 여전히 질려 있는 쫌팽이 남자가 이번에는 잘 한다고 입이 개미구멍만한 색시를 얻었다. 색시는 밥알 세 알을 입에 넣고 쫄쫄 빨아 먹고는 "아유, 배부르네, 배불러."한다. 그러니 남자는 입을 헤벌리고 좋아라 한다. 그러면서 밥을 더 적게 먹기를 바란다. 이번에는 밥알 두 알을 쫄쫄 빨아먹고는 색시가 하는 말이, "견딜 만하네, 그럭저럭."한다. 남자가 또 요구하자 이번에는 밥알 한 알을 쫄쫄쫄 오래 빨아먹으며 하는 말, "모자라네, 모자라."라고 한다. 그런데 날마다 곳간의 쌀은 쌓이기는 커녕 점점 줄어들어가기만 한다.

치사함이 하늘을 찌르는 이 남자가 그냥 있을 리가 없지. 언덕 너머에 숨어서 집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색시가 곳간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쌀가마니를 번쩍 들고 나온다.  그러더니 썩썩 쌀을 씻어서 커다란 가마솥에 밥을 짓는다. 그러더니 마당에 문을 훌떡 벗겨 척 깔아 놓고 그 위에 밥을 똘똘 뭉쳐서 주욱 늘어 놓는다. 개미만한 입으로 "참 맛있겠다."~

먹는 데에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옛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었다. 먹다가 배터져 죽은 전 색시의 원한이 그냥 묻힐 리가 없다. 허억!! 남자는 입 작은 색시의 정체를 알고는 새카맣게 질려서 죽자사자 꽁지 빠지게 멀리멀리 도망을 쳐버리네. 곱게 빗어 뭉친 머리카락 속에 커다란 입을 숨기고 있는 색시의 정체~ 반전이 세다. 

사람 사는 일은 다 먹자고 하는 짓이라는데 먹는 일로 어쩐지 유난히 야박스럽다 했다.

그러고보면 예나 지금이나 먹는 걸로 치사하게 구는 일이 제일 못할 짓이다. 먹는 데에 복이 든다는 말도 있으니 잘 먹는 일, 잘 먹게 만드는 일에 모두 사랑을 퍼부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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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한차례 지나가고 어디서 툭 튀어나온 햇볕이 종일 창가에서 논다.

열감기 앓고 나온 아이 같다. 앓고 나면 맑아질 수 있어서 사람도 자연도 살아남았겠지.

진로문제로 열병을 앓고 있는 둘째아이는 오늘은 아예 학교에도 나가지 않았다.

어미인 나도 덩달아 같이 앓느라 얼굴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창가의 햇살이 더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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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림 그리는 엠마를 좋아해요. 그래서 내 별칭도 그림 그리는 엠마라고 지었어요. 오늘 아침에 바꿨어요. 원래는 푸른개였는데 어떤 사람들이 무섭대요. 내 생각도 비슷해요.  난 천성적으로 푸른 기운, 그러니까 신비주의는 아니라는 거죠. 숨어있으면 그게 더 무서워요. 잊혀질까봐요. 그래서 그림 그리는 엠마에 게 붙기로 했어요.

 나는 그림책도 좋아하고 연애도 좋아해요. 그림책은 내 눈과 내 가슴이 좋아하구요. 연애는 내 심장이 펄쩍 뛸 정도로 좋아해요.  우리집은 그림책으로 둘러친 동굴이에요. 나는 그 안에 눌러붙은 곰이구요. 겨울잠도 잊고 벌써 몇 해 겨울을 그냥 뜬눈으로 났는 걸요. 나는 연애도 그렇게 해요. 심장을 뛰게 하려면 어쩔 수 없어요. 나는 살아 있어야 하거든요. 그것도 심장이 벌렁벌렁하게요. 연애는 내가 살아야하는 이유에요.

 나는 요즘 양다리랍니다. 그래서 피곤해요. 그런데 양 손 떡이 다 말랑말랑하고 찰진 것이라 어쩌지 못하고 있어요. 그림책은 오래된 애인이구요. 요즘새로 사귄 애인은 시예요. 이 친구는 참 까칠해요. 그래서 전율 덩어리예요. 한번씩 엎어치기할 때마다 온몸이 쩌릿쩌릿하답니다.

 엠마 아세요?

 난 조금 알아요. 엠마는 내가 그림책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을 때 만난 나의 이웃이에요. 고양이도 좋아하고, 나무 오르기도 잘 하고, 주말이면 자식들이 몰려와 풍성한 저녁 만찬을 즐기고 돌아간답니다. 엠마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고향 이야기를 들려 주려고 애를 썼어요. 왜 그럴 때 있잖아요.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음 하는 때 말이에요. 엠마는 혼자 살아요. 그러니까 누군가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싶을 거 아니에요. 엠마 생일날 가족들이 엠마에게 고향 이야기가 담긴 그림을 선물했어요. 하지만 그 그림은 엠마가 말하고 싶어하던 고향 마을이 아니었어요. 엠마는 새로운 생각을 해냈어요. 왜 여지껏 그 생각을 못 했나 몰라요.

 엠마는 시내에 나가 가장 좋은 그림도구를 사왔어요. 그리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엠마 가슴 속에 오래 오래 남아있는 고향 마을의 그림을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렸어요. 그리고는 그 고향 그림을 선물받은 그림과 바꾸어 달았죠. 엠마는 그 그림을 들여다보며 행복하기 그지없었어요. 어느 날, 그림을 미처 바꾸어 달지 않아서 가족들에게 엠마의 그림이 알려지게 되었어요.

엠마의 다 큰 아들이 엠마에게 그림을 계속 그리면 어떻겠느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엠마가 하는 말이 "이미 여러 장 그렸어."라고 말하며 벽장 문을 열었는데, 글쎄 그 안에 엠마가 그린 그림이 가득히 있는 거예요. 차라리 잘 되었죠. 이제는 숨기면서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 다음 어떻게 되었는지 아세요? 엠마의 집 벽에는 온통 엠마가 그린 그림이 걸렸어요. 사람들이 엠마의 그림을 보기 위해 찾아왔어요. 엠마와 차를 마시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엠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사실, 엠마는 그림 그리기 전에는 무지하게 외롭고 쓸쓸했거든요. 아마 엠마는 그림 전시회도 했을 걸요. 보세요. 세상에 누가 엠마를 퉁퉁하고 나이 먹은 할머니라고 하겠어요. 엠마는 그냥 엠마예요. 엠마 할머니가 아니라요. 고백하는데요. 사실 저도 엠마처럼 살고 싶답니다. 앞으로 몇 십년 뒤에요. 꼭요.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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