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 그리는 엠마를 좋아해요. 그래서 내 별칭도 그림 그리는 엠마라고 지었어요. 오늘 아침에 바꿨어요. 원래는 푸른개였는데 어떤 사람들이 무섭대요. 내 생각도 비슷해요. 난 천성적으로 푸른 기운, 그러니까 신비주의는 아니라는 거죠. 숨어있으면 그게 더 무서워요. 잊혀질까봐요. 그래서 그림 그리는 엠마에 게 붙기로 했어요.
나는 그림책도 좋아하고 연애도 좋아해요. 그림책은 내 눈과 내 가슴이 좋아하구요. 연애는 내 심장이 펄쩍 뛸 정도로 좋아해요. 우리집은 그림책으로 둘러친 동굴이에요. 나는 그 안에 눌러붙은 곰이구요. 겨울잠도 잊고 벌써 몇 해 겨울을 그냥 뜬눈으로 났는 걸요. 나는 연애도 그렇게 해요. 심장을 뛰게 하려면 어쩔 수 없어요. 나는 살아 있어야 하거든요. 그것도 심장이 벌렁벌렁하게요. 연애는 내가 살아야하는 이유에요.
나는 요즘 양다리랍니다. 그래서 피곤해요. 그런데 양 손 떡이 다 말랑말랑하고 찰진 것이라 어쩌지 못하고 있어요. 그림책은 오래된 애인이구요. 요즘새로 사귄 애인은 시예요. 이 친구는 참 까칠해요. 그래서 전율 덩어리예요. 한번씩 엎어치기할 때마다 온몸이 쩌릿쩌릿하답니다.
엠마 아세요?
난 조금 알아요. 엠마는 내가 그림책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을 때 만난 나의 이웃이에요. 고양이도 좋아하고, 나무 오르기도 잘 하고, 주말이면 자식들이 몰려와 풍성한 저녁 만찬을 즐기고 돌아간답니다. 엠마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고향 이야기를 들려 주려고 애를 썼어요. 왜 그럴 때 있잖아요.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음 하는 때 말이에요. 엠마는 혼자 살아요. 그러니까 누군가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싶을 거 아니에요. 엠마 생일날 가족들이 엠마에게 고향 이야기가 담긴 그림을 선물했어요. 하지만 그 그림은 엠마가 말하고 싶어하던 고향 마을이 아니었어요. 엠마는 새로운 생각을 해냈어요. 왜 여지껏 그 생각을 못 했나 몰라요.
엠마는 시내에 나가 가장 좋은 그림도구를 사왔어요. 그리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엠마 가슴 속에 오래 오래 남아있는 고향 마을의 그림을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렸어요. 그리고는 그 고향 그림을 선물받은 그림과 바꾸어 달았죠. 엠마는 그 그림을 들여다보며 행복하기 그지없었어요. 어느 날, 그림을 미처 바꾸어 달지 않아서 가족들에게 엠마의 그림이 알려지게 되었어요.
엠마의 다 큰 아들이 엠마에게 그림을 계속 그리면 어떻겠느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엠마가 하는 말이 "이미 여러 장 그렸어."라고 말하며 벽장 문을 열었는데, 글쎄 그 안에 엠마가 그린 그림이 가득히 있는 거예요. 차라리 잘 되었죠. 이제는 숨기면서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 다음 어떻게 되었는지 아세요? 엠마의 집 벽에는 온통 엠마가 그린 그림이 걸렸어요. 사람들이 엠마의 그림을 보기 위해 찾아왔어요. 엠마와 차를 마시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엠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사실, 엠마는 그림 그리기 전에는 무지하게 외롭고 쓸쓸했거든요. 아마 엠마는 그림 전시회도 했을 걸요. 보세요. 세상에 누가 엠마를 퉁퉁하고 나이 먹은 할머니라고 하겠어요. 엠마는 그냥 엠마예요. 엠마 할머니가 아니라요. 고백하는데요. 사실 저도 엠마처럼 살고 싶답니다. 앞으로 몇 십년 뒤에요. 꼭요.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