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이전에는 ‘왜‘ 나는 책을 읽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책 외에 지식의 원천은 없었고 더 재미있는 것도 없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결계를 친 듯 전혀 다른 세계에 가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나에게 더 중요한 건 그런 느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책 읽기는 취미라기 보다 집착에 가깝다. 나이가 드니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내 것이라고 할 게 없고 언젠가는 모두 놔야 할 때가 온다는 것도 알겠다. 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쉽지 않다. 나의 변명은 나를 둘러 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는 거다. 급하게 변화하는 세계는 때로 낯설고 이해 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니편내편 나뉘어 싸우는 이들을 보면 이해가 잘 안 가지만 내편의 주장도 반드시 딱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럴 때 책을 읽는다. 읽었다고 해서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에 나설 수는 없지만 최소한 옳고 그름에 대한 스스로의 기준을 세우고 다른 사람의 주장에 휩쓸려들지 않을 만큼의 줏대는 세울 수 있다.

<오십, 나는 이제 다르게 읽는다>를 읽었다. 책을 쓴 박균호 선생은 교사이자 북 칼럼니스트로 고전을 널리 알리는 일에 몰두하면서 책도 여러 권 썼다.

오십이라는 나이는 급하게 삼켰던 청춘의 독서를 되새김질하기에 좋은 시절이다. 새로운 책을 만나는 것도 즐겁지만 빛바래고 홑이불처럼 사각거리는 옛 소설을 꺼내놓고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설렘과 감동을 추억하는 것은 더욱 행복한 일이다....... 소설은 이야기를 누리는 즐거움과 함께 역사, 사회, 법, 종교, 그리고 한 시대를 관통한 문화를 읽는 즐거움도 누리게 해 준다. 좋은 소설 한 권을 읽는다는 것은 뛰어 난 인문학 서적 여러 권을 읽는 것과 같다. 나는 이런 경험을 ‘소설 인문학‘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ㅡ저자 서문에서ㅡ

과연 그런 이유로 책은 소설 한 권과 그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인문 서적 한 권을 짝 지어 함께 해설 해 놓았다. 수록 해 놓은 소설 가운데는 내가 이미 읽은 책도 있고 못 읽어 본 책도 있다. 아무렇거나 실린 글들 한 편 한 편이 모두 흥미롭다. 도스토옙스키의 도박 중독과 그의 슬기로운 아내 이야기, 보봐리 부인 시대의 요리 이야기는 요리에 진심인 내 맘을 흔들었다. 다른 이의 독후감을 읽는 것은 여행기를 읽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가 보지 못 한 곳을 좋은 여행기를 읽으면서 간접체험을 하듯, 다른 이가 읽은 책에 대해 남긴 글을 읽으면서 내가 아직 읽어보지 못 한 책의 세계를 슬쩍 엿볼 수 있다.

박균호 선생은 훌륭한 독서가이면서 재밌는 이야깃꾼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글들 속에 저자 자신의 일상 이야기를 적절히 섞어 넣어 재미를 더 한다. 반드시 책과 관련이 있을 법한 짧은 얘기들이 자연스럽게 섞여드는데 과하지 않으면서도 진지한 가운데 풋, 하고 웃게 만드는 즐거움이 있다. 이런 유머는 여유에서 나온다. 같은 얘기라도 쉽고 재밌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박균호 선생도 그런 사람인 거 같다.

책을 읽고 나니 소설을 더 읽고 싶어졌다. 그 동안 마음만 있고 읽지는 못 했던 고전들을 많이 찾아 읽어야겠다. 박균호 선생처럼 느긋하고 여유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을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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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22-10-21 11: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호우님 따뜻하고 다정한 서평 정말 감사합니다. 호우님이 써주신 서평으로 제 글쓰기를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되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따뜻하고 평온한 주말 보내시길 바래요 .

호우 2022-10-21 12:01   좋아요 3 | URL
읽어 주시고 댓글도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촘촘하게 쓰고 싶었는데 그만한 능력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의 책 읽기에 큰 보탬이 될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바람돌이 2022-10-21 16: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보면 보고싶은 책이 또 한가득 쌓이는 문제가.... ㅎㅎ

호우 2022-10-21 20:29   좋아요 0 | URL
아닌 게 아니라 그런 문제가 있더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