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 길을 찾다 - 새로운 시대를 꿈꾼 13인과 그들의 선택
임용한 지음 / 시공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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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소개해드린 바 있는 <조선국왕 이야기>의 저자 임용한 박사의 책입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어지러운 시대에 개혁의 기치를 내걸었으나 여러 이유로 실패한 인물들을 살펴보는, 일종의 미니 평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궁예, 조광조, 흥선대원군 처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물부터 고려 광종, 이제현, 황현처럼 이름만 간신히 들어본 인물까지 삼국시대부터 구한말까지 등장했던 개혁가들을 분석합니다.

임용한 박사는 개혁이 실패하는 이유로 다음 세 가지를 꼽습니다. 시대로부터 일탈한 무모한 열정, 세계를 향한 인식의 전환,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개혁이 그것입니다. 하나씩 살펴볼까요?


1. 시대로부터 일탈한 무모한 열정, 그리고 그 결과

의자왕의 사치와 나태가 백제가 멸망한 이유라고 우리는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백제의 정치체제는 지역호족의 연합체 형태였습니다. 백제 성왕이 팽창을 꾀하다 신라의 복병에 전사하며 한강 유역에서 쫓겨난 이후로, 한강 유역을 기반으로 하는 백제 왕족과 충청 지역의 호족들과의 갈등이 심해졌습니다. 강력한 백제를 꿈꾸던 의자왕은 왕을 구심점으로 한 국가의 통합이 그 무엇보다 필요했고, 의자왕은 호족들을 설득하고 협조를 구하기보다 대대적인 숙청을 통해 해결하려 했습니다. 일시적으로는 의자왕이 원하던 대로 왕권이 강화되는 결과를 낳았지만, 결국 나당연합군이 침공해오자 지방 호족들이 협조하지 않아 왕실 친위대였던 계백의 결사대로만 전쟁을 치러야 했고 그 결과는 다들 아시는대로 백제의 멸망이었습니다. 이후 호족을 중심으로 한 백제의 부흥운동이 나당연합군의 큰 골칫거리였던 점을 감안하면 의자왕이 열정만으로 무모하게 개혁을 추진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을 해보게 됩니다.


2. 세계를 향한 인식의 전환

사람은 누구나 자기 시대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그 속에 갖혀 살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시대를 개혁하고자 하는 이들 중 너무나 시대를 앞서나간 나머지, 미처 동시대인들이 그 인식의 전환을 따라가지 못해 개혁에 실패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특히 폐쇄적인 사회일수록 새로운 세계를 소개하여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죠.

병자호란 이후 소현세자는 청의 수도 심양으로 끌려가 볼모가 됩니다. 흔히 상상하듯 구금되어있거나 그랬던 것은 아니고, 다른 왕족들과 교류도 많이 하고 청 황실 행사에 참석도 잦았다고 합니다. 자연히 영향력이 커져 소현세자의 숙소 심관(숙소라고는 하지만 수행원과 노비가 500명이나 되는 곳이었다고 하네요)에는 조선의 귀중품을 구하고자 하는 청의 고관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당시 조선은 청과의 무역을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청의 요구는 소현세자는 물론 조선 조정에도 큰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왕족의 정치 참여가 금지된 조선과 달리, 청은 왕족이 적극적으로 황실과 조정의 업무를 볼 수 있도록 직책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청은 지속적으로 소현세자를 통해 조선과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고, 인조는 소현세자가 자기 몰래 힘을 키우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됩니다.

당시 조선은 청나라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후, 전체적인 현실 인식이 엉망이 된 상태입니다.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를 넘어 `우리가 성리학의 정통을 잇고 있다`는 비뚤어진 자부심으로 가득 차 청의 문물은 그것이 얼마나 효용이 있더라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상태가 구한말까지 쭉 지속되죠. 이런 분위기에서 청의 발달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상업의 효력을 체감한 소현세자가 이런 것들을 조선에 도입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조선은 불안해합니다. 특히 인조는 소현세자가 역모를 꾀하는게 아니냐는 극심한 불안을 갖게 됩니다. 자기가 반정을 통해 집권했으니 그런 불안에 시달리는 거겠죠. 결국 소현세자는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사망하고(독살설도 있습니다) 세자빈 강비는 이듬해 역모죄로 처형됩니다. 이처럼 꽉 막힌 사회였던 조선은 소현세자가 보여줬던 인식의 전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3.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개혁

2번과는 정확히 반대인 케이스입니다. 개혁의 의지도 충분하고 능력도 있으나, 그 시대의 갇힌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실패한 경우입니다.

<반계수록>으로 유명한 유형원은 과거에 여러 차례 응시하였으나 실패(유형원의 아버지가 인조반정 때 반대편에 섰다 죽는 바람에 출세길이 꽉 막혔습니다)한 후, 부안 우반동으로 낙향하여 학문 연구에 몰두하게 됩니다. 실학자 1세대로 꼽히는 사람이지요. 그는 직접 농민들의 참상을 목도하고 사회개혁과 경제력 양성을 부르짖었습니다. <반계수록>은 유형원의 제세구민론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죠.

여기까지만 보면 그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개혁가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골수까지 성리학자였습니다. 효종이 북벌을 주창하자, 그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군민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고 준마를 길렀으며 좋은 조총과 활을 준비했습니다. 그 자신 무예의 달인이기도 했구요. 소현세자처럼 청의 문물을 받아들인다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었지요. 사실 <반계수록>에 들어있는 개혁안도 중국에서는 주나라 때부터 주장되고 있던 것이라 과연 이걸 개혁안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시대 사회모순의 해결 방안을 성리학 안에서만 찾고자 한 `성리학 원리주의자`였던 그. 그가 권력을 얻었더라도 저물어가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개혁할 순 없었겠죠.


어느 시대나 개혁은 사회의 주요한 화두였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개혁을 바라고 개혁을 외치는 자를 따르죠. 하지만 역사는 개혁이 그리 녹록치 않음을 보여줍니다. 매우 복합적인 요소들이 알맞게 화학작용을 일으켜야 성공할 수 있는 게 개혁이죠. 그래도 우리는 항상 개혁을 꿈꿉니다. 그것이 우리의 힘겨운 일상을 지탱해줄 수 있는 꿈이요, 희망이니까요.

세상에는 자신이 운이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오랫동안 고대하던 기회가 찾아오거나 무언가를 이루려는 순간에 꼭 의외의 불운이 닥쳐 일을 망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큰 성공을 이룬 사람을 향해 "하늘이 도왔다"거나 "성공에는 천운이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천운 역시 혼자 찾아오는 법은 없다. 천운과 불운은 언제나 같이 온다. 그리고 언제나 성공의 마지막 한고비에는 가장 악한 불운과 방해 세력이 매복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불운이 아니다. 산은 정상 부분이 가장 좁고 가파르다. 왜냐하면 그곳이 정상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불운과 운명을 한탄하는 사람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운명은 도전하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운명에 도전하는 사람은 설사 실패한다고 해도 운명과 싸워보는 귀중한 경험이 남는다. 그리고 그것은 재도전과 성공을 위한 자산이 된다. 하지만 운명을 한탄하는 사람은 경험이라는 소득도 얻지 못하고 불안감만 커져간다. 다시 도전의 기회가 왔을 때 그는 이전보다 더욱 강하게 엄습하는 불안감과 불길한 예감에 휘둘릴 것이고, 따라서 성공할 확률은 더욱 낮아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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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남경태 옮김 / 예지(Wisdom)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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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장은 간단합니다. 제목 그대로 기후를 역사 변동의 주요 팩터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인류 문명은 빙하기 같은 기후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전해 왔으며, 문명이 발전하면서 기후 변화를 극복하는 것 처럼 보였으나, 어느 한계점 이상으로 문명이 발달하고 인구가 증가하면 오히려 기후 변화로 인한 대재앙에 취약해진다는 것입니다. 인구가 몇 백명 단위로 적을 때야 가뭄이나 홍수 같은 기후 재앙이 일어나면 다른 지역으로 떠나면 되지만, 몇 만명 단위가 되면 멀쩡한 땅을 찾아 떠날 수도 없고(멀쩡한 땅은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만약 이주를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원주민들과 전쟁을 할 수 밖에 없는 결과를 얻게 됩니다.

전 지구적으로 소빙하기가 오면서 수렵채집생활 만으로는 인구 부양이 불가능해지자 농경 사회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라든가, 고대 이집트에서 가뭄으로 더 이상 나일강이 범람하지 않게 되자 관개 시설이 발달하게 된 것이라든가 하는 사실은 기후 변화에 대한 인류의 대처가 문명을 발전시켜 왔음을 증명합니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점에서,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기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프랑스에 기근이 발생하고 이것이 프랑스 혁명을 불러 온 원인이라는 분석은 감탄을 불러일으킵니다.

로마 제국과 마야 제국은 지나치게 문명의 규모를 키우면서 농업이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서는 바람에 몇 년 간 가뭄이 지속되자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되었다고 저자는 분석합니다. 기존의 역사관과는 매우 다른 해석이죠. 저자는 이런 모든 주장에 기후학과 지질학적 분석을 깔고 갑니다.

그런 까닭에 책이 좀 지루합니다. 호수 바닥에 침전된 토양과 꽃가루로 기후를 분석하고, 그 시대의 식생을 끊임없이 탐색하기 때문에 읽다 보면 숨이 턱턱 막히는 부분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명료합니다. 현대 문명의 힘으로도 기후 대재앙은 막을 수 없고, 아니 오히려 더 취약하고 지금의 지구 온난화 현상은 분명 환경오염에 대한 인류의 책임도 있지만 몇 만년 간 지속되는 지구의 거대한 기후 변동 주기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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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롱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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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메롱>은 지난 번 소개해드린 바 있는 미미 여사의 <얼간이>, <하루살이> 처럼 에도 시대 후카가와 지역을 무대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소설입니다. 위 두 작품과는 다른 주인공이 등장하는데요. 이제 막 요릿집 `후네야`를 개업한 주인 부부의 딸, 열 두살 먹은 오린이 그 주인공입니다. 오린은 열병을 호되게 앓고 난 후 `후네야`에 살고 있는 다섯 귀신 - 메롱만 할 줄 아는 꼬마 오우메, 한량같은 무사 겐노스케, 아름다운 여인 오미쓰, 실력좋은 맹인 안마사 와라이보 영감,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기 십상인 덥수룩이 - 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오직 오린만.

귀신이라고는 하지만 그리 무섭지 않은 존재들입니다. 자기들이 왜 죽었는지, 왜 귀신이 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며,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고(덥수룩이는 좀 다릅니다. 후네야의 손님들을 칼을 휘둘러 내쫓아버리기 일쑤죠.), 오히려 오린을 도와주려 애씁니다.

오린은 궁금해집니다. `이 사람들은 왜 귀신이 되어 우리 집에 붙어 있을까? 성불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러다 그들의 죽음에 공통된 사건 하나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30년 전, `후네야` 자리에 있던 `고간지`라는 절의 주지가 덕망높은 스님인 척하면서 사실은 수많은 사람을 죽여 온 살인마였던 것입니다. 그러다 주지는 절에 불을 지르고 도망쳐 종적을 감추었고, 불타 없어진 고간지 자리에 공동주택이 들어섰다가 후네야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오린은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난 `후네야`를 구하기 위해, 다섯 귀신들을 성불시키기 위해,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갑니다.

미미 여사의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 뒤통수를 탁 치는 반전이 있거나, 시원하게 사건이 해결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작품 중간중간 남긴 복선도 전부 해결하지는 못하구요. 하지만 역시나 미미 여사 작품 답게 인간의 마음 속 어둠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풀어내는 솜씨가 대단합니다. 유쾌하다가도 서글프고, 때로는 섬뜩한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가 펼쳐지죠. 이 책을 괴담소설이나 추리소설로 보지 않고 `평범한 인간에 대한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로 읽는다면 대단히 매력있는 소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미미 여사의 에도 시대 이야기를 전부 읽어봐야 겠습니다.

부모란 아무리 현명한 존재라 해도 부모의 입장으로서 그에 상응하는 어둠을 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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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c2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민희 옮김, 한창우 감수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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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 그대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공식인 E=mc² 에 대한 전기입니다. E=mc²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전제가 되는 공식으로, 에너지는 질량 곱하기 빛의 속도의 제곱과 같다는 것이지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집중력 보조기구 엠씨스퀘어도 이 공식에서 이름을 따왔지요.

이 책의 구조는 좀 특이합니다. 기본적으로 상대성이론을 다루는 책이지만, E=mc² 공식을 이루는 모든 문자와 부호(E, =, m, c, ²) 하나하나의 기원을 전부 분석하고 상대성이론의 배경이 되는 수많은 과학적 발견과 과학자를 소개하여 상대성이론이 어느 날 갑자기 아인슈타인의 머릿속에서 뿅~하고 나타난 것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E=mc² 공식이 위대한 발견인 이유는 에너지와 물질이 동일한 것이고 상호 변환될 수 있다는, 패러다임의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에너지와 물질은 각각 다른 영역이고, 서로 결코 치환될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과학계를 지배했었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이 공식에 따라 원자폭탄이 만들어질 수 있었고, 원자력발전소도 만들어졌고, 세상은 극적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중학생 때 상대성이론에 대한 책을 읽다 `작은 감자 하나의 질량이 전부 에너지로 변환되면 뉴욕을 지구상에서 없애버릴 수 있다`는 문구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 역시 E=mc² 에 따른 것이지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도 우라늄 질량의 1%만을 에너지로 변환시킨 것인데도 그처럼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왔구요. 태양이 매순간 지구로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도, 그로 인해 지구상의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모두 이 공식 덕분입니다.

E=mc² 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원자폭탄 개발에 대한 이야기도 상세히 소개됩니다. `불확정성의 원리`로 유명한 하이젠베르그가 나치즘의 열렬한 신봉자였으며 독일 원폭 개발의 총책임자였다는 사실은 꽤 충격이었습니다. 순수한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자라고 해도 정치적으로 반드시 중립이어야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과학자`의 이미지와는 크게 어울리지 않는 건 사실이죠.

이 책이 갖는 또 하나의 미덕은 과학사에서 조명받지 못한 여성과학자와 제3세계 과학자를 자세히 소개한다는 것입니다. 에밀리 뒤 샤틀레, 리제 마이트너, 세실리아 페인의 이름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찬드라세카르는요? 에밀리 뒤 샤틀레는 유명한 사상가 볼테르의 연인으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자였습니다. 리제 마이트너는 나치에 의해 독일에서 쫓겨난 유태인 과학자로, 핵분열의 원리를 알아낸 여성이었습니다. 세실리아 페인은 캠브리지에서 남성들의 편견과 싸우며 태양이 어떻게 끊임없이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지 - 지금이야 태양의 구성물질이 수소와 헬륨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지만, 이때만 해도 태양의 2/3는 철로 되어 있다는 게 정설이었습니다 - 밝혀낸 인물입니다. 찬드라세카르는 백색왜성이 붕괴하여 블랙홀로 변한다는 이론을 처음 주장한 인도 과학자입니다. 이들 중 찬드라세카르를 제외한 세 명의 과학자들은 결국 죽을 때까지 제대로 된 학계의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과학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정말 재미있게 읽어보실 수 있는, 대중과학서적의 걸작입니다. 이토록 많은 내용이 400쪽 내외의 책 한 권에 우아하게 실릴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의 책이라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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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열린책들 세계문학 46
존 르 카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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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르카레의 첫 번째 히트작입니다. 방금 소개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이전에 나온 작품이구요. 조지 스마일리도 잠깐 나오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리머스라는 영국 스파이 입니다. 그는 동독 지역 첩보망을 담당하던 책임자였으나, 동독 정보부의 수장인 문트라는 인물에 의해 관리하던 첩보망이 궤멸되어 버립니다. 리머스는 영국으로 소환되어 한직으로 문책성 인사를 당하더니, 문제를 일으켜 퇴직한 후 동네 도서관에서 일하게 됩니다. 도서관에서 같이 일하던 영국 공산당원 리즈와 사랑에 빠지지만, 연금도 못 받는 처지라 빚에 쪼들리는 피폐한 삶을 살다 폭행 사건을 일으켜 감옥에 가게 됩니다. 감옥에서 나온 그는 이전까지 적이었던 동독 정보부에 포섭되어 영국의 기밀을 넘겨주게 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영국 정보부에 큰 타격을 입힌 문트를 제거하기 위한 MI6의 수장 컨트롤과 리머스의 거대한 계획이었습니다(본작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컨트롤이 쫓겨나기 몇 년 전 이야기입니다). 리머스는 거짓 투항을 한 것이죠. 그가 동독 정보부의 간부 피들러(문트와 적대관계인 인물입니다)에게 넘긴 정보도 문트를 영국의 이중 스파이로 몰아가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동독 정보부는 리머스에게서 확실한 진술을 얻기 위해 동베를린으로 리머스를 데려옵니다. 문트의 반격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리머스. 그는 피들러와 함께 문트를 모함했다는 죄목으로 동독 법정에 서게 되고, 그는 문득 이 모든 사건을 둘러싼 더욱 거대한, 그리고 충격적인 진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소설의 분량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절반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작품성은 훨씬 뛰어나지 않나 싶습니다. 제목만큼이나 건조하고 냉철한 문체, 스파이 세계의 배신과 암투, 숨막히게 빠른 전개,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추리소설적 반전, 연민과 서글픔을 느끼게 하는 결말까지.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진짜 걸작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보다 이 책을 더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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