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제12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단편 수상작품집
지다정 외 지음 / 북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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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제 12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단편 수상 작가 5명의 작품을 모은 책이다. 이 상은 추리, SF, 호러, 스릴러와 같은 장르문학을 대상으로 한다.

다섯 작품은 지다정의 <돈까스 망치 동충하초>, 최홍준의 <노인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 김지나의 <청소의 신>, 이건해의 <장어는 어디로 가고 어디서 오는가>, 이하서의 <톡>이다. 제목이 독특하고 참신하다. 각 작품은 아파트 스릴러, 고려장, 청소 노동자, 종교와 과학, 디스토피아를 다룬다.

간단한 줄거리를 살펴보자. <돈까스 망치 동충하초>는 재건축권을 얻기 위해 대신 월세로 살고 있는 나는 저녁만 되면 쿵쿵거리는 소리에 신경이 쓰인다. 소리의 원인을 알기 전 스릴과 호러가 긴장감을 높인다. <노인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진부해보이는 좀비 소재에 늙은 아버지를 갖다 버리는 이야기를 연결해 반전을 준다. 공포로 시작한 이야기는 자식의 도리에 대해 묻는다. <청소의 신>은 청소를 잘하고 부지런한 종수가 코로나 시국에도 모텔을 사수하지만, 고용주는 그를 이용할 뿐이다. <장어는 어디로 가고 어디서 오는가>는 장어가 알을 낳는 곳을 탐험하는 해저탐험대와 과학적 사실을 알아가는 것이 불편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자의 범죄가 흥미롭다. <톡>은 디스토피아적 미래 이야기로, 바다 속 잠수정에서 사는 인간들은 잠수정 밖 수중류를 탐색하기 위해 젊고 건강한 탐색조들을 보내지지만 한 명도 돌아오지 못한다.

<노인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구성이 치밀하다. 좀비들이 사는 야생좀비구역을 관리하는 대원 배지를 찬 덕환은 그 곳에 사는 노인을 만난다. 사실 덕환은 아버지를 버리고 오는 중이었고, 노인은 그런 사실을 눈치채고, 덕환이 가진 총과 자신이 만든 지도를 교환한다. 덕환은 지도 덕에 무사히 이 지역을 벗어나고 두 발의 총소리를 듣는다. 노인은 10년간 이 구역을 헤맨 끝에 좀비가 된 아버지를 찾아냈고 마침내 그를 평안하게 해주고 자신도 평안해진다. 그러나 막판에 지도를 잃은 덕환은 자신의 아들에게 물려줄 이 지도를 잃고 우왕좌왕한다. 단편인데도 그 묵직함이 장편 못지 않다. 마지막 지도의 쓸모가 씁쓸하다. 덕환의 아들에 대한 부성과 아버지를 버리는 불효 간의 간극이 크게 느껴진다.

<청소의 신>에서 필요에 의해 쓰이고 버려지는 노동자의 존재가 씁쓸하다. 코로나가 닥치자 정부는 노숙자들을 모텔에 투숙하게 하고 종수가 모든 관리를 맡아 한다. 주인은 감염될까봐 모텔에 전혀 나와보지 않는다. 종수는 주인을 위해 성실하게 일하고 보고하고 입금하지만, 종수가 사라진 후 주인은 그가 왜 사라졌는지 캐지 않고, 그저 종수가 없는 모텔을 팔아버린다.

장르문학을 좋아한다면 5편 모두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구성이 치밀하고, 읽고 난 후 여운이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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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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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폴 오스터(1947-2024)는 미국의 소설가이다. 대표작으로 <뉴욕 3부작>(1987), <달의 궁전>(1989), <4 3 2 1>(2017)이 있고, 이 책은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이다.

바움가트너의 아내 애나는 10년 전 파도에 사지가 뜯겨 나가며 죽었다. 파도가 거세니 들어가지 말라고 말렸음에도 늘 원하는 걸 하고마는 아내는 그렇게 사고를 당해 죽은 것이다. 아내가 죽고 얼마 안되어서 아내가 치던 타자기 소리가 그리워 아내의 타자기를 쳐보고, 애나의 옷을 개고 개며, 두 잔의 커피를 만들고, 야한 편지를 아내 앞으로 쓰고 부치는 일을 반복한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새로운 여인 주디스가 등장하지만, 이혼의 과정을 거치며 자유를 새삼 느끼게 된 그녀는 재혼의 생각이 없다. 아내의 작품으로 논문을 쓰고자 하는 코언이라는 젊은 여성이 집에 머물 날을 위해 바움가트너는 집안을 정리한다.

간단한 줄거리이고 분량도 길지 않지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주인공들의 부모 이야기와 본인들의 어린시절 이야기부터 연애하고 결혼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일생을 담는다. 무엇보다 40년의 결혼 생활과 아내가 죽은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아내를 잃은 것이 자신의 몸의 일부가 떨어져나간 것처럼 통증이 지속되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수다스러운 작가의 말을 듣는 것처럼 이야기가 끊임없고, 묘사가 자세하기도 하다. 첫 챕터는 아침에 냄비를 태운 것부터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야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자꾸 이런 저런 일로 미루어지게 되고, 검침원이 와서 지하실을 내려가다 다치고 도움을 받아 올라와 정신을 차리기까지를 이야기한다. 이게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일까싶다. 아내의 시집을 읽고 논문을 쓰고 싶어하는 코언이 멀리 미시간에서 뉴저지로 차로 운전한다는 소리에 걱정과 만류와 포기하는 마음이 진진하게도 길다.

폴 오스터의 따옴표를 사용하지 않는 작법도 독특하지만, 번역자의 관용표현을 직역한 점 역시 특이하다. "뭐 하러 죽은 말에게 돌아가서 때려 대고 있는가140"는 '헛수고를 한다는 뜻'인데, 굳이 직역을 하고 아래에 주를 달아 뜻을 설명한다. 굳이 직역한 의도가 궁금하다. 거친 단어 사용도 문맥상 순화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것도 독특하다.

폴 오스터의 마지막 소설이라고 해서인지, 주인공 바움가트너의 일생이 담긴 이 작품이 예사롭지 않다. 저자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적은 것이 아닐까한다. 길지 않은 분량에 일생을 담아낸 능력이 대단하지만, 아주 상세한 묘사를 놓치지 않는 점도 특이하다.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하는 이야기의 흐름에 이리저리 휩쓸리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한 남자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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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로 보다, 근현대사 - 한국 근현대사의 순간들이 기록된 현장을 찾아서 보다 역사
문재옥 지음 / 풀빛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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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공간은 기록이 전하지 못하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역사 현장에서 만난 시공간이 전해준 이야기를 책에 담고자 했습니다"(책 앞 날개)

저자는 현재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울역사박물관,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도슨트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천과 서울의 근현대사 현장을 설명한다.

근현대사는 1863년 흥선대원군의 집권부터 현재까지를 말한다. 개항의 현장인 강화도와 인천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현장과 광복 후 혼란스러운 정치의 현장,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 동상을 거쳐 2016년 촛불집회로 대통령 탄핵을 외친 광화문 광장까지 한국의 근현대사의 현장을 걸으며 설명한다. 답사코스에 현재의 지하철 역은 표기하되, 건물은 과거의 건물명으로 표기했다.

개항 이후 외국인들이 몰려 살았던 인천과 서울의 모습이 유사하다. 외국인들은 안전을 위해 몰려 살며 기독교와 교육을 위한 건물을 세웠다.인천에는 청조계지, 일본 조계지를 비롯해 약간 높은 지대에 위치한 서양인들의 각국 조계지가 있었다. 서울에도 청계천 이남 남촌에 일본인과 중국인들이, 덕수궁 근처 정동에 서양의 각국 공사관이 몰려 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숙박시설인 인천의 대불호텔과 서울의 손탁호텔이 있었던 것도 유사하다.

놀랍게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 아직도 그대로 사용중이거나, 이름과 쓰임을 달리해서 사용중인 것이 있다. 일본인 직원 숙소로 지은 미쿠니아파트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로 아직도 건재하다. 또한 현재의 서울시립미술관터에는 독일 공사관이, 지금의 창덕여자중학교 자리에는 프랑스 공사관이, 서소문로 대한항공빌딩 자리에 이탈리아공사관이 있었다. 영화를 상영했던 명치좌는 현재 명동예술극장으로 이후 명동과 을지로 일대에 많은 극장과 다방, 술집이 들어서 예술인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광복이 되고 나서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정치인들이 귀국하면서 친일세력의 집에 머물렀는데 규모가 커서 이름에 '장'이 붙는다. 이승만의 숙소인 이화장, 김구 선생이 묵었던 경교장, 임시정부 부주석인 김규식의 숙소인 삼청장은 해방 후 정치활동의 3대요람이다.

저자의 역사 비판은 날카롭다. 저자는 일본 낭인에게 살해된 민비에 대해 동정하지 않는다. 민비가 살해된 경복궁의 옥호루에 앉아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청을 끌어들이고 러시아와 밀착하려한 민비에게 조선은 없다'고 비판한다. 또한 고종은 그렇게 아내를 죽인 일본이 두려워 아관파천하며 여러 이권을 러시아에 넘길 뿐 아니라 "황제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사치를 부리는 동안 조선의 근대화, 산업화를 위한 시간들은 계속 무의미하게 흘러갔다(80)"고 비판한다. 흥미롭게, 미국이 플라자합의로 일본 경제를 무너뜨렸듯이 일본은 100여년 전 남대문로를 식민지 조선의 금융허브로 만들어 대한제국의 경제를 무너뜨렸다고 비유하는데 적절하다.

글로 배운 역사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학교 교육에서 답사 시간을 통해 학생들에게 직접 걸으며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어른들과 한국의 역사를 좀 아는 외국인에게 좀더 구체적인 역사를 소개하고 싶을 때 이 책을 참고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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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 노트 -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지침서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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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와 정신이 건강할 때 죽음을 준비해야한다. 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는 우리가 '좋은 삶'을 고민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므로, 건강할 때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74

저자는 법의학자로 27년간 3천 건 이상의 부검을 해오면서 죽음을 마주했다. 누구든 죽지만 그 때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죽음을 회피하지 말고, 미리 고민하고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언뿐 아니라 죽음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내려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과 상실감, 죄책감을 덜어줄 수 있다.

책은 3개의 노트로 되어있다. 첫 번째 노트는 죽음을 배우는 시간, 두 번째 노트는 후회없는 삶을 위한 준비, 세 번째 노트는 삶을 기록하는 작업이다. 죽음을 이해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 써내려간 에세이다.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는가? 세번째 노트에 가서야 일곱 가지로 정리해 준다. 먼저 누구에게 메시지를 남길것인지 정한다.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죽음의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장기기증, 치매의 경우 대처 방안), 남겨진 사람이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지(예: 나의 장례식에 밤 10시 이후에는 조문을 받지 말고 집에 가서 자거라), 재산분배, 쑥스러워 하지 못한 말을 하고, 마지막으로 내 부고를 직접 작성해본다. 가장 마음에 와닿는 것은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지 적는 것이다. 남을 의식하고 불효라고 인식될까봐 내용보다 형식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에서 마음만 있다면 허식은 의미없다고 말해주는 것이 성숙한 조언이다.

그러면 어떻게 유언을 작성하는가? 저자는 작년에 써놓은 유언을 공개한다. 그 형식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내용은 담담하기조차 하다. 모든 연명기구와 콧줄을 이용한 영양공급도 중단하지만, 통증없이 가도록 마약성 진통제는 충분히 투여해달라는 당부가 있다. 깊이 공감한다. 연명의료중단은 안락사에 포함하지 않는다. 안락사에 관한 법제는 소수의 나라에서만 허용되고 있을 뿐,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확립이 되어있지 않다.

죽음을 1인칭, 2인칭, 3인칭으로 나누는 것이 인상적이다. 1인칭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다. 불안, 공포, 혐오의 감정이 강하다. 2인칭의 죽음은 주위 사람의 죽음으로 상실감과 함께 비로소 죽음을 깊이 생각하게 한다. 3인칭의 죽음은 사건, 사고에 나오는 타인의 죽음으로 잠시의 감정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해당하는 2인칭의 죽음은 시간을 가지고 그 슬픔을 극복한다. 보통 격렬했던 감정도 1-2년이 지나면 수그러들고, 어느 정도 삶에 적응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상담을 받는 등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잊으려 하지 말고 마음에 간직한다고 생각한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삶을 더 생각하게 한다. 나를 위해 좀더 의미있게 살아야한다. 내 삶은 조금 더 내 중심으로 산다. 내가 원하는 걸 하면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고, 필요없는 인간관계에 내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말이다.

책 한 권이 행동을 바꿀 수 있다면 그 책은 다른 사람에게 권할 만하다. 이 책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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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떠나는 여행 - 낯선 곳에서 침묵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정원철 지음 / 어깨위망원경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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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여행은 우리에게 세상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보이는 대로 보라고 가르친다."49

혼자서 떠나는 해외 여행은 조금 겁이 난다. 여행 중에 발생할 지도 모르는 모든 일을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하고, 언어적 한계로 아무일도 아닌 일이 번거로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께 떠나고 패키지를 이용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혼자 떠나는 여행을 꿈꾼다.

저자는 3년간 3번에 걸쳐 혼자 여행을 했다. 2016년 유럽, 2017년 북인도와 네팔, 2018년 남인도와 스리랑카이다. 만만치 않은 인도 지역을 두 번이나 다녀와서 궁금해진다. 책은 이 세 번의 여행에 따라 3부로 되어있다. 각 부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따로 썼는데, 마치 3권을 합쳐 놓은 느낌이다.

유럽은 런던, 파리, 스위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네덜란드를 여행하는데 처음 런던에서 여행을 시작할 때는 지하철 표를 사는 일상의 낯섦과 서툼에 어린애 같지만 바로 적응을 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중년의 나이에 여행을 하면서 하나라도 더 보고 느끼기 위해 '강박'처럼 움직이는 자신이 인생도 그렇게 살아왔음을 되돌아본다. 가끔은 쉬어가는 힘의 안배가 여행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필요하다.

인도와 네팔 편의 프롤로그는 자못 의미심장하다. 저자의 삶은 인도 여행을 떠나기 전과 후로 나뉠 정도라니 인도를 두 번 방문한 이유를 알겠다. 인도에서 실체 없는 생각의 두려움, 물질의 실상에 눈먼 채로 살아오다 삶에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도록, 헛된 욕망을 부수었다고 고백한다.

유럽과 인도를 대하는 것이 사뭇 다르다. 유럽은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에 감탄하는 반면, 인도에서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더 다가가려한다. 어린 나이에 집안을 돕는 아이들, 아이를 안고 동냥을 하는 엄마, 슬리핑 부스 아래 통로에 쪼그리고 가는 사람들, 아름답고 화려한 타지마할에 이르는 길에 펼쳐지는 쓰레기 더미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에 마음이 쓰인다. 치안이 좋지 않고, 정각에 오지 않는 버스나 기차를 기다리고, 아수라장 같은 길 위에 먼지와 매연, 소음과 혼돈이 가득하지만, 어느새 익숙해지고 다시 가고 싶을 정도로 그리워진다. 삶은 꼭 의미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떠나고 평온한 마음이 찾아오고, 나약하고 비난하다고 자책하지 않고, 허영도 허세도 부질 없다고 느낀다. 내려놓으니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된다.

유럽 편의 사진이 기가 막히다. 글을 읽다가 다음 페이지에서 문득 펼쳐지는 풍경은 '우와!'하는 감탄을 자아낸다. 초록이 쨍한 하이드 파크, 한 쪽에 안개 덮인 스위스의 알프스, 베네치아의 좁은 수로를 지나는 곤돌라, 하늘과 맞닿아 있는 티볼리의 빌라 데스테 정원, 암스테르담 수로의 푸른빛과 어스름한 푸른 빛 하늘이 환상적이다.

톡톡튀는 문장이 읽는 재미가 있다. "런던에서 이틀 머무르다 파리로 와서 받는 느낌은 학교에서 공부만 하다 나이트클럽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터져 나오는 흥분과도 같았다"43 "더 좋고 더 편리한 것이 있으면 고치고 바꾸는 개발도상국가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파리는 온통 고칠 것 투성이었다.46 까칠한 자기비판이다.

아껴 읽고 싶은 책이다. 간단하게 여행기록을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톡톡 튀는 문장이 어우러져 읽는 것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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