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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폴 오스터(1947-2024)는 미국의 소설가이다. 대표작으로 <뉴욕 3부작>(1987), <달의 궁전>(1989), <4 3 2 1>(2017)이 있고, 이 책은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이다.
바움가트너의 아내 애나는 10년 전 파도에 사지가 뜯겨 나가며 죽었다. 파도가 거세니 들어가지 말라고 말렸음에도 늘 원하는 걸 하고마는 아내는 그렇게 사고를 당해 죽은 것이다. 아내가 죽고 얼마 안되어서 아내가 치던 타자기 소리가 그리워 아내의 타자기를 쳐보고, 애나의 옷을 개고 개며, 두 잔의 커피를 만들고, 야한 편지를 아내 앞으로 쓰고 부치는 일을 반복한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새로운 여인 주디스가 등장하지만, 이혼의 과정을 거치며 자유를 새삼 느끼게 된 그녀는 재혼의 생각이 없다. 아내의 작품으로 논문을 쓰고자 하는 코언이라는 젊은 여성이 집에 머물 날을 위해 바움가트너는 집안을 정리한다.
간단한 줄거리이고 분량도 길지 않지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주인공들의 부모 이야기와 본인들의 어린시절 이야기부터 연애하고 결혼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일생을 담는다. 무엇보다 40년의 결혼 생활과 아내가 죽은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아내를 잃은 것이 자신의 몸의 일부가 떨어져나간 것처럼 통증이 지속되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수다스러운 작가의 말을 듣는 것처럼 이야기가 끊임없고, 묘사가 자세하기도 하다. 첫 챕터는 아침에 냄비를 태운 것부터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야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자꾸 이런 저런 일로 미루어지게 되고, 검침원이 와서 지하실을 내려가다 다치고 도움을 받아 올라와 정신을 차리기까지를 이야기한다. 이게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일까싶다. 아내의 시집을 읽고 논문을 쓰고 싶어하는 코언이 멀리 미시간에서 뉴저지로 차로 운전한다는 소리에 걱정과 만류와 포기하는 마음이 진진하게도 길다.
폴 오스터의 따옴표를 사용하지 않는 작법도 독특하지만, 번역자의 관용표현을 직역한 점 역시 특이하다. "뭐 하러 죽은 말에게 돌아가서 때려 대고 있는가140"는 '헛수고를 한다는 뜻'인데, 굳이 직역을 하고 아래에 주를 달아 뜻을 설명한다. 굳이 직역한 의도가 궁금하다. 거친 단어 사용도 문맥상 순화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것도 독특하다.
폴 오스터의 마지막 소설이라고 해서인지, 주인공 바움가트너의 일생이 담긴 이 작품이 예사롭지 않다. 저자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적은 것이 아닐까한다. 길지 않은 분량에 일생을 담아낸 능력이 대단하지만, 아주 상세한 묘사를 놓치지 않는 점도 특이하다.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하는 이야기의 흐름에 이리저리 휩쓸리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한 남자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