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22가지 재판 이야기
도진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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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책표지를 보면, 헨젤과 그레텔의 집같아 보이는 건물 앞 길에 성냥팔이 소녀가 태우다 죽어갔을 성냥개비가 하나 떨어져있다. 뭔가 동화이면서 실마리를 던져주는 추리 소설같다. 전직 판사이자 현직 변호사이자 추리소설가인 저자의 법 설명을 익히 아는 동화와 영화, 실재 사건을 바탕으로 풀어내는데, 그 해석이 궁금하다. 이 책은 2013년 작품의 개정판이다.

500년간 지옥을 지키던 염라대왕은 하데스와 자리를 바꾸며 연옥에서 죄를 판결하는 판사가 된다. 법률지식이 없는 염라는 변호사로 소크라테스를 선임하고, 법과 논리에 뛰어난 변호사 소크라테스는 22건의 사건을 변호한다. 법에 대한 무지했던 염라 판사는 처음에 불쌍하다는 이유로 장발장을 풀어주고 사람들의 항의를 받기도 하고, 나쁜 짓인지 아닌지를 투표로 결정하자는 엉뚱한 말을 하지만, 재판이 진행되면서 점차 법을 알아가고, 증거재판주의를 내세워 춘향이를 무죄판결내리게 하는 폭풍 성장을 하면서 재판의 어려움과 신중함을 깨닫는다.

설정이 흥미롭다. 법을 모르는 염라 판사와 이를 살짝 무시하는 검사와 변호사 소크라테스가 연옥계의 법정에서 재판을 한다. 피고는 동화, 영화, 실재 사건의 주인공들이다. 저자는 재판을 통해 법의 범위, 죄가 되는 행위, 죄와 무죄 사이, 형사 재판의 원칙, 민사 재판의 원칙, 형사와 민사의 차이를 설명한다.

나라마다 다른 법체계로 '착한 사마리아인법'이 있는 곳에서는 성냥팔이 소녀를 보고 지나치면 유죄이지만, 우리나라에는 해당 법이 없으므로 무죄이다. 민사와 형사의 구분은 의외로 쉬운데, 돈 문제에 관한 다툼이면 민사이고, 죄 지은자를 처벌하는 것이 형사라는 말은 명쾌하다. 형사는 민사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고, 결과도 같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형사재판이 한 사람의 운명이 걸린 것이므로 매우 신중한 결정이 요구되지만, 민사는 상대보다 많은 증거로 이길 수 있기 때문에 간혹 결과가 다를 수 있다. O.J 심슨 사건처럼, 심슨은 형사에서 무죄, 민사에서는 유죄를 받았다.

재판의 기본이 되는 원칙만 소개한 것인데도 판단이 쉬워보이지 않고, 절차까지 합법이어야하는 것이 꽤 까다롭다. '고의와 과실'은 일부러 그런 것 인지, 실수로 그런 것인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 이로인해 검사와 변호사의 논쟁이 치열해지는 것이겠다. 형사재판에서 절차의 중요성은 다 잡은 범인도 무죄로 풀려나는 안타까운 상황을 일으킨다. 대표적으로 여아를 납치한 미란다를 체포할 때 경찰이 '묵비권과 변호사 선임권'에 관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무죄판결이 났다. 이후로 이 절차를 엄격히 지키게 되었다.

실재 발생했던 이태원 햄버거집 살인사건의 두 용의자에 대해 무죄판결이 내려진 이유가 '합리적 의심없는 증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로를 범인이라고 지적하는 상황에서 한 사람이 범인이라는 충분한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에 둘 중 한 명이 반드시 범인이지만, 억울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둘 다 무죄가 된 것이다. 사건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판결을 이해할 수 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이 피를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는 1파운드의 살을 가져갈 수 없기 때문에 패배하지만, 이는 문학적 결말이다. 저자는 변호사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빌어 '살을 1파운드 가져간다'는 계약이 '사회질서에 어긋나는 행위'이기 때문에 무효라고 법적인 원칙을 들어 변호한다. 현대에 신체포기각서를 받고 돈을 빌리거나, 불법인 도박으로 진 빚은 같은 법적 원칙에 따라 무효이기 때문에 갚지 않아도 된다.

대화체라 술술 잘 읽힐 뿐 아니라 유머와 반전이 있어서 흥미롭다. 재판장에서 염라 판사와 소크라테스 변호사, 검사 간의 대화가 캐주얼하면서 톡톡 튀는 재미가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중요한 내용은 굵은 글씨로 표시하고 있어서 핵심을 놓치지 않도록 강조하고 있다. 어려운 법률용어를 이보다 쉽고 재미있게 풀어쓰기는 쉽지 않겠다. 재미와 지식을 함께 잡은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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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함께 춤을 - 시기, 질투, 분노는 어떻게 삶의 거름이 되는가
크리스타 K. 토마슨 지음, 한재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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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 감정과 잘 지내는 핵심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솔직해지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129)"

일반적으로 감정은 이성보다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감정 중에서도 부정적 감정은 긍정적 감정보다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부정적 감정은 나쁜 것'이기 때문에 되도록 긍정적인 감정을 갖도록 노력하거나 부정적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이를 잘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 좋다고 알고 있다. 감정적으로 행동을 했을 때 파괴적이거나 나중에 후회할 일을 만들ㅍ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정적 감정이 나쁘기만 할까?

저자는 스와스모어대학교 철학과 부교수로 감정철학, 도덕철학, 철학사, 정치철학 등을 연구한다.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감정통제형 성인, 감정수양형 성인으로 나누어 그 문제점을 설파한다. 감정통제형 성인들인 간디나 스토아학파의 금욕주의자들에게 나쁜 감정은 억제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수양형 성인은 나쁜 감정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수양하거나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자가 애제자 안회가 죽었을 때 슬픔을 표현한 것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모욕에 대한 반응인 분노를 제대로 표현해야한다고 말한다. 무작정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이유를 생각해보고 이해가 된다면 화를 내지 않는다. 올바른 성품과 올바른 사고를 지니면 올바른 감정을 적절히 느끼고 표현할 수 있고, 날 것의 감정을 표출해서는 안되고 길들여야한다고 믿는다. 감정 통제형과 수양형 모두 모범적으로 알고 있는 것의 사례를 정리하고 있다.

저자의 반박은 나쁜 감정을 통제하거나 수양하려하지 말고 느끼라고 한다. 부정적 감정은 자기애에 대한 발로이므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윈이 정원의 지렁이가 땅을 비옥하게 하듯, 저자는 나쁜 감정이 인간을 비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실락원>의 사탄이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는 아담과 하와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인간적이고, 몽테뉴의 말대로 자신에게 결점이 있어도 삶과 자신을 사랑하라는 것, 니체의 아모르 파티(운명에 대한 사랑)를 강조한다. 나쁜 감정도 그냥 그대로 느끼고 삶의 일부라고 인정한다. 저자의 반박이 더 편하게 받아들여진다.

저자의 예가 이해를 돕는다. 이웃의 새 차가 부러우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부러움을 없애기 위해 자신이 물질주의적이라고 질책하거나, 이웃이 과시한다고 여기고 분노로 바꾸거나, 자기 계발의 동기로 삼지 않는다. 그저 '옆집 차가 부럽다'고 소리내 말하고 멈춘다. 왜 부러운가? 자신이 저 차를 살만큼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고통을 감내하라. 화풀이하고 감정을 밀어내려하거나 합리화하며 감정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결국, 부정적 감정이 생기면, 억제하거나 변화시켜 벗어나려 하지 말고 있는대로 느끼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필요하겠다.

부정적 감정 중에서 분노, 시기와 질투, 앙심과 쌤통, 경멸을 고전과 철학 사상을 바탕으로 설명하는데 저자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분노'는 로마황제 네로의 가정교사였다가 자결하라는 명을 받았던 세네카와 불교의 샨띠데바의 이야기를 들어 설명하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와 공자, 페미니즘의 사상을 비교한다. '시기와 질투'는 그리스신화의 메데이아와 베이컨을 들어 설명하고, '앙심과 쌤통'은 스피노자와 몽테뉴를, '경멸'은 루소와 울스턴크래프트, 듀보이스와 같은 인물을 들어 설명한다. 올바른 분노와 정의로운 경멸처럼 나쁜 감정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지적이 흥미롭다. 또한, 앙심은 그저 치졸하고 무례한 행동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동서양의 철학자, 성인, 과학자, 문학가들을 대거 인용하며 부정적 감정들을 어떻게 다루어야하는지를 설명하는 책이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여러 인물의 사상과 철학과 문학을 인용할 수 있다는 것은 저자가 이미 그들에 대해 숙지하고 있기 때문인데 저자의 학문적 넓이와 깊이가 느껴진다.

초반부에 가벼운 에세이라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밑줄을 그으며 읽어야하는 책이다. 많은 인용이 있고, 고전이나 철학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잠시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론에서 다시 정리해주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꼼꼼한 비유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어 빨리 읽히지는 않지만 어렵지는 않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논리 전개가 압도적이다. 시간을 두고 읽고 또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지렁이가 정원의 일부인 것처럼 나쁜 감정도 좋은 삶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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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시대에 오신 것을 애도합니다 - 더 늦기 전에 시작하는 위기의 지구를 위한 인류세 수업 서가명강 시리즈 39
박정재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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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 위기는 전적으로 인간의 과오와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207)."

4계절이 있었던 우리나라가 어느 순간 여름과 겨울만 남은 느낌이 든지 꽤 오래다. 특히 올해 여름은 매우 더웠고, 그 더운 날이 오래도록 식을 줄을 몰랐다.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가 바라보는 기후 변화와 이로 인한 지구의 위기 상황이 어떠한지, 그 극복방안은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자.

책은 4부로 나누어 인류세의 유래와 기후위기, 생물종 다양성 문제와 환경위기의 극복방안을 설명한다.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는 인간이 만들어가는 지질시대를 의미한다. 미국 고생태학자가 1980년대 자신의 논문에서 처음 사용했으나,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네덜란드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1933~)에 의해 크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이후로 기후가 급변했음을 의미한다. 이후 지구과학자인 윌 스테펀이 핵폭발 실험이 활발했던 1950년대 이후 다양한 지표가 급변하는 것을 '대가속시대'라 하고 인류세의 시작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자연의 힘에 무력했던 인간이 자연을 개발하며 생태계를 급속하게 위협하였고, 임계점을 넘어선다면 앞으로 다시 자연의 힘에 의해 인류와 자연 모두가 위기에 처할 것이다.

인류세를 상징하는 네 가지 중요한 속성으로 기후 위기, 생태계 위기, 환경오염, 기후 난민을 꼽는다. 모두 부정적인 이 네 가지 속성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강조하는것이 아니라, 함께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지구온난화가 지속되면 가뭄, 홍수, 태풍, 폭염, 산사태, 산불, 해수면 상승, 전염병과 같은 자연재해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고, 생물종 다양성 감소, 식량 위기, 기후난민과 같은 환경 문제도 점차 심화된다.

서구 선진국이 산업혁명과 핵폭발 실험을 통해 지속적으로 야기한 결과 발생한 기후위기의 피해는 미개발국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기후 난민은 남아시아의 방글라데시와 태평양 섬국가와 같은 침수지와 가뭄으로 굶주림에 지친 아프리카 지역에서 발생한다. 난민들은 좀더 잘 사는 선진국으로 이민을 원하지만, 받아들이는 나라에서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받아들일지 안보 위기로 간주하고 봉쇄할지, 공존하느냐 공멸하느냐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2009년 지구의 한계를 9가지 부문(기후변화, 생물 다양성 손실, 질소.인 순환, 해양산성화, 토지 시스템 변화, 담수 사용, 오존층 파괴, 대기오염, 화학물질 오염)으로 나누고, 어떤 부문이 위험한지를 과학적 근거로 논했다. 2023년 이 중 이미 6개부문(기후변화, 생물 다양성 손실, 질소.인 순환(비료), 신물질의 양(예: 플라스틱), 토지 시스템 변화, 담수 사용)이 경계를 초과하여 안전하지 않은 상태에 있다고 하는데 섬짓하다. 특히 만성적인 물부족에 시달리는 지역에 비해, AI수요증가로 데이터센터의 확장은 물 수요를 더욱 필요로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인류는 공룡이 멸종했던 다섯 번째의 대멸종 이후 이제 여섯 번째 대멸종의 위기에 있다. 다섯 번의 대멸종으로 전체 종의 70% 이상이 사라졌다. 원인은 화산 폭발로 인한 온실가스의 증가였는데, 온실가스의 증가는 대기 기온 상승과 해양의 산성화를 유도하여 대량멸종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다. 이미 열대우림훼손과 산호초 군락의 폐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해결방법은 무엇일까?

지구공학적으로 성층권에 황산염 입자로 에어로졸 막을 만들어 온난화를 늦추기는 하지만, 물순환에 이상을 가져오는 부작용이 심하므로 최후 수단으로 이용하여야한다. 그보다 인간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과 공생한다는 생각, 자연을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하고 보존할 대상으로 여겨야한다.

서가명강 시리즈의 39번째 책이다. 작은 크기인데다 250쪽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그 내용이 가볍지 않다. 현재 신생대 제4기 홀로세 메갈라야절에 살고 있는 우리가 굳이 인류세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신경써야하는 이유는 임계점을 넘지 않고 후손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상태 정도의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서이다.

인간에게서 비롯된 지구의 위기를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고찰하면서 왜 문제의식을 가져야하는지 일깨워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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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화의 비밀 - 건축과 예술의 만남, 그 안에 숨겨진 세계의 걸작들
캐서린 매코맥 지음, 김하니 옮김 / 아르카디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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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을 장식했던 4년간의 작업을 일컬어 "살아있는 지옥에 갇혀 지내는 고문"이었다고 표현했다(9)."

유럽 여행을 하다보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다양한 건물의 천장화는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늘 궁금하다. 종교적인 배경지식이 없다면 거의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과 상징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멀어서 자세히 보기도 어려운 천정화를 모아 책으로 냈다니 반갑다.

저자는 독립 큐레이터로 런던의 소더비 아트 인스티튜드에서 강의하고 있다. 미술사와 현대 미술에 관한 글을 썼다.

책은 종교, 문화, 권력, 정치의 4개 파트로 나누어 천장화를 설명한다. 천장화는 성당이나 모스크, 사찰과 같은 종교시설이나, 궁전이나 의회의사당과 같은 권력과 정치가 이루어지는 건물에서 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극장이나 박물관, 도서관, 지하철역과 같은 문화 생활공간에서도 볼 수 있다. 소개된 천장화는 대부분 유럽의 것이지만, 이란, 튀르키예, 러시아, 미국, 일본과 인도의 건물도 포함한다.

아직도 짓고 있는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천장화는 여느 성당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보통의 성당 천장화가 성경 이야기를 가져와 묘사하면서 천사와 성경 속 인물을 그리는 반면, 이 성당은 성모 마리아의 남편 요셉에게 헌정된 속죄의 성당을 짓는 프로젝트였다는데, 시각적으로도 뾰족한 첨탑이 천장을 향해 찌르듯 서있고 기하학적 문양이 천장을 장식하고 있다. 수학, 철학, 신학적 상징주의의 학문을 기반으로 하였다는데, 평가는 갈린다. 자연의 암석을 가져와 자연의 법칙을 구현했다고 감탄하는 반면, 조지 오웰은 끔찍하다고 했다.

이슬람교는 우상숭배를 피하기 위해 기하학적 무늬의 반복을 사용한다. 이슬람교의 모스크나 궁전을 보면, 천장은 물론 벽까지 기하학적 무늬가 가득 메워져 있다. 이맘 모스크의 천장화는 파란 바탕에 기하학적 무늬를 그리고 그 안에 노란 꽃과 초록 덩굴이 가득하다. 기하학적인 무늬 안에 쏟아질 듯 가득 그려져있는 덩굴과 꽃무늬는 빈틈을 용납하지 않는다. 질서정연하고 무한히 팽창하는 무늬 속에서 신이 존재한다고 믿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일본 도쿄 센소지의 천장에는 기독교의 천사와 같은 인물인 텐뇨가 그려져 있는데, 우리나라 불교화와는 다른 모습이다. 센소지의 본당 천장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여인이 연꽃과 함께 온화한 모습으로 그려져있다. 힌두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육중한 여인의 몸에 온화한 표정과 붉은 입술이 인상적이다. 그 옆에 배치한 용은 일본 불교에서 깨달음을 상징하고, 물의 신이자 천황의 조상으로 여겨진다. 밝고 온화한 텐뇨의 그림과 어두운 배경에 역동적인 용이 언뜻 보아서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저자는 "20세기 거대한 세계화 흐름에 직면한 일본 전통예술의 섬세함과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한다. 중국과 한국 사찰의 천장화를 더 연구하면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하다.

샤갈의 그림을 팔레 가르니에 천장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팔레 가르니에는 파리의 발레와 오페라를 공연하는 장소이다. 1962년 문화부 장관인 앙드레 말로가 샤갈을 추천하여 천장화를 바꾸도록 하였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꽃 모양으로, 5개의 꽃잎은 흰색, 노란색,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으로 구분하였고, 각각 파리 오페라단의 공연에 등장하는 작곡가들에게 헌정되었다. 에펠탑과 개선문을 비롯한 프랑스를 상징하는 건물도 보인다. 저자의 설명이 없다면 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 역동적이고 압도적인 천장화는 이탈리아 만토바에 위치한 테 궁전의 '거인들의 방'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족인 기간테스가 신들의 고향인 올림포스 산을 지상으로 옮기고 신들을 정복하려하자 제우스가 이들을 죽이고 올림포스 산을 지켜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위에서 아래로 쏟아져 내려오는 그림이 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 이를 소토-인-수 기법이라고 한다. 범상치 않은 뭉게구름 위에서 전쟁을 하는 거인들의 모습과 제우스의 벼락을 맞아 기둥과 아치가 무너지고 이를 바라보는 거인들의 놀란 표정이 천장에서 벽을 타고 아래로 쏟아져 내려와 압도적이다. 3D 영화를 보는 듯하다. 꼭 한번 직접 찾아가 보고 싶은 천장화이다.

가장 최근 만들어진 것은 2008년에 완성된 유엔 제네바 사무국 천장화다. 추상적이고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난다. 푸르스름한 색이 압도적으로 많은 바탕에 노랗고 붉은 종유석들이 거꾸로 메달려 봉우리와 산등성이를 이룬다. 이 작품은 지구를 의미하는데, 세계 각지에서 가져온 흙과 암석을 이용해 만든 페인트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세계가 조화로운 국제관계를 만들자는 의도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기금을 사용했다는 비판은 피하지 못했다.

건물에 들어서서 천장을 올려다 보려면 고개도 아프고 멀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해상도 좋은 천장화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좋은 책이다. 길지 않은 저자의 설명을 읽으면, 처음 본 느낌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보게된다. 더 구체적이고 의미있게 다가온다. 펼치는 장마다 화려한 천장화가 '우와'하는 탄성과 함께 다음 장에는 어떤 그림이 있을지 기대하게 된다. 유럽여행을 가기 전에 한 번 꼭 읽고 가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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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순례길 여행
이준휘 지음 / 덕주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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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의 사전적 의미는 예를 갖춰 의미 있는 곳을 돌아보는 행위를 총칭한다. (중략) 이 말에는 물이 흘러가듯 천천히 주의를 둘러본다는 순행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순례라 하면 종교 성지를 돌아보는 성지순례를 가장 먼저 떠올리겠지만 우리가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성지는 종교라는 틀을 벗어나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4)."

책은 4부로 되어있다. 녹색 순례길, 마을 순례길, 역사 탐방 순례길, 종교 성지 순례길이다. 자연과 사람과 역사와 종교의 주제를 가지고 50개의 순례길을 소개한다.

자연 순례길에서 인상적인 곳은 주상절리와 람사르 습지이다. 겨울 한철에만 공개되는 한탄강 물윗길의 주상절리는 사진만으로도 이미 장엄하다. 화산이 남기고 간 돌기둥 모양의 석주가 다발을 이루는 장관은 제주도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한탄강을 따라 현무암 절벽, 주상절리, 폭포가 형성되어 장관을 이루는 것은 의외의 장소에서 예상하지 못한 풍경을 대하는 듯하다. 임꺽정이 숨어들었다는 고석정부터는 현무암에서 화강암 계곡으로 전환해서 또 다른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내륙습지인 우포늪은 주변 5개의 습지가 모여 이루어진 것이다. 호수를 따라 한바퀴 돌아보는 트레일(8.4km)에서 텃새, 철새, 갈대와 억새, 사초와 같은 생물들을 볼 수 있다. 우포늪에서만 볼 수 있다는 세계적인 희귀조 따오기 역시 볼 수 있다니 한 번 가보고 싶어진다.

부산의 영도 절영해안산책로는 피난민이 만들어낸 마을로 인상적이다. 일제시대 조선중공업회사가 생기자 전국의 노동자가 이 섬에 모여 살았고, 6.25전쟁에는 피난민이, 제주 4.3사건에는 제주도 사람들이 들어와서 지금도 해녀촌이 있다. 현재는 관광객으로 상업시설만 있고, 이 마을에 사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은 좀 쓸쓸하다. 마을을 내려와 바다를 보며 걷다가 해녀촌에서 석양을 보면 좋을 코스이다.

도전적인 코스인 봉정암 순례길은 고행의 길이다. 하루 42,997보로 책에 수록된 코스 중 가장 많이 걸어야하는 이 길은 10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 중 2시간은 최고 난이도 코스이다. 내설악 백담사에서 해발 1,242m에 있는 봉정암까지는 한국 불교의 대표적 순례길 중 하나인데, 봉정암에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셔놓은 사리탑이 있기 때문이다. 봉정암 순례길은 두 개의 코스가 있는데, 비교적 쉬운 수렴동계곡코스와 아주 험한 오세암 코스이다. 오세암에는 매월당 김시습과 만해 한용운의 자취가 남아있다. 저자는 수렴동계곡 코스로 가서 오세암 코스로 내려왔는데, 체력에 따라 1박2일 혹은 수렴동계곡 코스 왕복을 권한다.

책의 구성이 가보고 싶도록 만든다. 먼저 해상도 좋은 사진들이 4계절의 장관을 보여준다. 주로 푸릇한 여름 사진이 많지만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 풍경도 감탄스럽다. 무엇보다 각 순례길의 첫 페이지에 소요시간과 몇 보를 걸으며, 고강도 운동이 포함되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해서 각 순례길의 수준을 짐작하게 한다. 뒷 부분에는 서울에서 가는 법과 갈만한 식당 안내는 물론, 출발에서 도착까지의 경로 지도까지 모두 유익하다. 특히 '탐방가이드'에서 해설사나 투어버스와 같은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정보를 알려주는데, 그 지역을 좀더 깊이있게 이해하기 위해 꼭 참고할 부분이다. 추가적인 자료를 검색하지 않아도 될 만큼 완벽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정성스럽게 잘 만든 책이다. 국내 걷기 여행에 필요한 정보를 보기 쉽고 알기 쉽게 제공한다. 내일 당장 떠날 수 있도록 코스 설명과 주의사항, 참고사항을 알려주고 있어서 이 책 한 권이면 바로 출발할 수 있다. 자연과 역사, 종교에 관한 서사가 있는 길을 걸으며 생각하는 여행을 계획한다면 꼭 참고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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