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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문제는 과학이야 - 산업혁명에 숨겨진 과학의 원리들
박재용 외 지음, MID 사이언스 트렌드 옮김 / Mid(엠아이디) / 2019년 2월
평점 :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 이를 다루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경제·경영 전문가 혹은 미래학자 정도입니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을 대하는 과학자들의 대답은 미디어나 경제·경영 분야에서처럼 당장 낙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신중하게 좀 더 지켜보자는 눈치였죠.
그 이유는 아직 4차 산업혁명을 이루는 핵심 과학기술들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과학기술을 만드는 당사자들은 묵묵히 상용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 과학기술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까지 만들어가면서 열광하는 중인 상황입니다.
이 책은 뭔가 엄청난 변화처럼 공상과학영화처럼 거론되는 현재의 ‘4차 산업혁명’의 뜬 구름잡기식의 담론을, 실제 이를 기술로 이끌고 있는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의 시각으로 차분하게 현실 검토를 해보는 책이라 하겠습니다. 즉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인 과학적 측면에서 4차 산업혁명을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우선 1~4차 산업혁명의 흐름을 주도한 수학과 과학 그리고 기술은 무엇이었을까요? 1차는 물리학의 발달로 열역학의 발전이 증기기관의 발명을 이끌었으며 이는 공장의 새로운 동력원이 됐습니다. 2차는 전기역학과 화학의 공학적 발달로 정밀한 공정 제어를 바탕으로 컨베이어벨트 기반의 대량생산 체제가 완성되었고 화학적으로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을 찾아내 인공 합성 비료를 만들 수 있었으며 이는 식량 생산을 증가시켰다고 합니다.
3차는 수학적 알고리즘의 성립을 바탕으로 한 컴퓨터의 대중화와 인터넷 보급이 기반이 되어 모든 계산을 하나의 기계가 처리할 수 있도록 구현하고 이로써 컴퓨터를 생산하고 보급했다고 합니다. 4차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이 기반이 되고, 수학적 방법론의 적용을 확장시켜 불규칙적인 데이터들 속에서도 향후 추이를 예측할 수 있도록 딥러닝이 고안됐으며 빅데이터 역시 수학적으로 카테고리를 묶어 분류하는 일이 더욱 쉬워진 것을 들고 있습니다. 이처럼 각 산업혁명의 뒤에는 모두 수학이 자리하고 있고 수학적 방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소위 4차 산업혁명이 이전과 큰 차이를 보이는 분야는 무엇일까요. 이미 많이 거론된 분야들이지만 그 내용과 전망을 정리해 보자면, 먼저 인공지능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해 처리하는 것으로 인간의 역할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대신할 수는 없겠으나 인간의 자리를 위협할 인공지능이 언젠가 등장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합니다.
사물인터넷은 인간 주변의 사물이 인터넷 네트워크로 연결돼 상호간에 정보를 전달하며 소통할 줄 아는 기능을 말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5G로 넘어가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효율적으로 오갈 수 있어야 하며 해킹으로 악용되는 일이 없도록 튼튼한 보안이 필수입니다. 또 4차 산업혁명은 사실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지만 에너지의 전달 및 저장 기술은 여전히 한계에 부딪혀 있습니다. 생산 또한 지금의 화석연료 발전 중심으로 갔다가는 지구온난화로 재앙이 닥칠 수 있으므로 친환경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며 리튬 배터리를 넘어서는 연료전지의 생산 여부가 이슈가 될 것입니다.
저자들은 세계사의 관점에서 볼 때 1차 산업혁명은 봉건주의체제에서 자본주의체제로 사회체제가 완전히 바뀐 대사건이었다. 한편 2차에서 4차에 이르는 다른 산업혁명 또한 사회체제를 변화시켰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지만 각각의 산업혁명의 근간이 되는 기술혁신이 자본주의체제 내에서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세계사적 관점에서 2~4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각 과정은 2차의 경우 분산돼 있던 공업 및 산업구조를 대공장 방식으로 바꿨으며 식민경제의 등장으로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를 일으켰습니다. 3차는 공장의 기계화 및 자동화로 생산 규모는 커졌으나 인력은 증가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을 만들었죠. 4차에서는 3차까지 그럼에도 인간의 역할이던 생산현장의 제어 및 통제까지도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이 가져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중에 핵심이 아무래도 인공지능입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학습 방식의 차이를 구분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먼저 지도학습은 자율주행 자동차가 교통신호 체계를 학습할 때처럼 인공지능의 학습 과정 전반에 인간이 개입해 무엇이 맞고 틀린지를 일일이 가르쳐주는 방식입니다. 비지도학습은 사진을 구분하는 것처럼 정답과 상관없이 수많은 정보를 먼저 입력시킨 다음 인공지능이 스스로 각각의 유사도를 평가해 분류하게 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강화학습인데, 특정한 목적이나 규칙이 있는 환경만을 제공해준 뒤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치며 학습을 강화해 최적의 방법을 찾는 방식으로 알파고가 바로 그 예가 된다고 합니다.
세 방식 가운데 연구자들이 가장 많이 기대하는 분야는 사람이 할 시행착오를 인공지능이 더 빠르고 정확하게 대신 해주니 훨씬 많은 경우의 수를 확인해볼 수 있기 때문에 연구개발이나 산업 방면에서 다양한 분야에 쓰일 가능성이 큰 강화학습이라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나쁜 인공지능이란 없습니다. 좀 더 확장하면 나쁜 산업혁명이란 없을 것입니다. 기술 자체와 그 기술이 변화시키는 산업혁명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좋은 기술도 인간이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나쁜 도구가 될 수 있으므로 그런 측면에서 인공지능 개발자는 상당한 철학적 소양과 윤리의식을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고 저자들은 강조합니다.
이 책에는 인공지능 외에도 총 아홉 개의 장에 걸쳐 자율주행, 스마트팩토리, 스마트시티, 스마트팜 그리고 유전자 기술의 발전 현황과 미래에 대해서 기술적 측면을 중심으로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지금껏 4차 산업혁명의 들뜨거나 비관적인 예측과 전망을 내놓은 책들과 차별화되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4차 산업혁명을 되짚어 보는 신선한 책이라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