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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신경병자의 회상록
다니엘 파울 슈레버 지음, 김남시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
다니엘 파울 슈레버 지음│김남시 옮김
망상의 기록 그리고 전염
이 책에 대해…… (나는 과연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나는 이 책의 ‘외면’을 말하고 싶다. 이 압도되는 사이즈. 표지를 보자마자 나에게 엄청난 중압감이 밀려왔다. 책의 크기와 두께는 말할 것도 없다. 내가 부담을 느낄 만큼 크고 두껍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제목이 무시무시하다.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 제목에 걸맞게 레터링도 인상적이다. 마치 방금 칼로 누군가가 난도질을 한 것처럼 무질서한 칼자국으로 가득 차 있다. 다만 다행으로 여긴 것은 책이 생각보다 가볍다는 것. (아마 모르긴 몰라도 제작비용이 엄청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글씨도 큼직큼직하고, 작가의 의도이긴 했지만 중간중간 진한 고딕체로 표시된 부분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불편한 점이 있었다면, 보통의 책이 양끝 맞춤으로 일정한 데 비해 이 책은 왼쪽으로만 정렬되어 있어서 읽기 시작했을 당시에는 적응하기가 좀 힘들었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익숙해졌으며, 이제는 오른쪽을 이렇게 제멋대로 흘리게? 놓아두는 것이 이 책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인상은 어느 정도 설명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대로 끝내고 싶긴 하다. 하지만 책이 외면으로만 평가된다면 더 이상 책이 아니겠지. 사실 이 책의 ‘내면’은 외면보다 더 큰 심오함? 가졌다.
나는 망상은 지면으로 기록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망상이 아무리 체계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해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그의 망상은 우리의 언어 규칙과 논리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망가진 사람’이 하는 말은 그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 역시 망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조금 달리 했다. 이 책의 망상은 꽤 논리적이었다. 좀 횡설수설하고 두서가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그의 설명에 따라 상상을 거듭할 수 있었다. 상상이 가능해지면서부터 그의 이야기에는 설득력을 갖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망상은 나에게 전염되고 말았다.
그는 신으로부터 자신을 ‘선택받은 자’라고 여겼다. 그것은 남들이 경험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체험을 통해서 확신하게 된다. 그는 그것을 ‘비전’이라고 일컬었다. 말하자면, 그의 환각은 종교적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의 환각과 망상은 어쩌면 자신을 예수나 성모 마리아와 비슷한 인물로 상상하는 것에서부터였다고 생각된다. 일종의 ‘선택받은 자’ 말이다. 그리하여 자신은 끊임없이 다른 영혼들로부터 고통을 받지만 노화로 인해 수명이 다할 때까지는 다시 살아난다고 생각한다. 마치 예수가 박해를 받고 부활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쯤에서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상상들을 생각했다. 이는 모든 현실에서 무언가의 결핍들로부터 시작된다. 나의 결핍은 항상 내가 소외되는 것으로부터 왔다. 다시 말해, 상상 속의 주인공은 항상 나다. 누군가로 인해 나는 억압당하지만 언젠간 그를 누르고 다시 일어선다. 그럼으로써 나는 행복해진다.
내가 이렇게까지 생각한 데에는 그의 어린 시절 가정 환경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그의 이런 망상들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억압을 이야기할 수 있다. (마치 하느님의 아들 예수처럼 말이다.)
어쩌면 나의 생각들 역시 엄청난 억측이고 오류일지도 모른다. 이것 역시 나의 망상으로 치부해도 좋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다만 책을 이렇게 읽었을 뿐이야, 라고 나는 대답한다.
이 책은 많은 생각을 안겨 준다. 참으로 이런 책을 오랜만에 만나서 힘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기뻤다. 넓은 맥락에서 보자면, 나와 같은 이유로 그렇게 많은 유명인들이 이 책에 주목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멀었다. 우리는 이 책을 좀 더 깊이 있게 읽을 필요가 있다. 학자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세계’를 주목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쯤은 읽고 감상을 가질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