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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오브 브라더스
스테판 앰브로스 지음, 신기수 옮김 / 이미지앤노블(코리아하우스콘텐츠)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지난 2002년에 나온 이 책의 초판본을 보고, 너무나 어이없는 군사용어 번역에 헛웃음이 나왔다. 필자는 당시 이런 글을 썼다.
기관단총(sub machine gun)과 경기관총(light machine gun)을 헷갈리는, 비교적 ‘애교로 봐 줄 수 있는’ 오역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러분은 도대체 ‘반자동 기관총’이나 ‘톰슨 45구경 캐리버 경기관총’이라는 이름의 무기체계를 구경이나 해 본 적이나 있으신지? 기갑, 전차를 다 의미하는 독일어 panzer의 적당한 용례와 해석예를 몰라서인지 ‘팬저여단’ ‘적의 팬저들이 몰려온다’식의 글이 적혀있고, 타이거 I 사진에 ‘타이거 로열-이것도 로열 타이거, 즉 킹타이거의 오기로 짐작되지만-‘이라는 주석을 붙여놓거나, 카빈 소총 사진에 ‘M1 개런드’라는 주석을 붙였다던지 하는 식으로, 그림과 글이 따로 노는 것도 여러 번 봤고, ‘MG-42가 9밀리탄을 분당 750발씩 사격하고 이 총이 개량되어 MG-34가 되었다(!)’하는 식의, 사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주석을 태연히 적어놓은 것은 그 중에서도 정말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 했다. 철십자 훈장을 의미하는 영어 cross of iron을 몰라서 ‘철제 십자가’라고 번역해 놓은 곳도 있었다. 이것 외에도 2차대전 기본상식만 있다면 발견할 수 있는 버그가 여러 곳이 있지만 일일이 다 적지는 않겠다. 드라마의 명성을 믿고 뛰어난 번역상태를 기대했던 필자에게는 큰 실망이었다.
이런 글을 쓰고 나서 8년이 지났다. 그런데 이 책이 개역이 돼서 새로 나왔다고 했다. 그래도 2002년판에 비해서는 번역이 나아졌겠지 하는 기대감에 한번 비교해 보고자 2002년판을 들고 서점으로 달려갔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9mm 탄을 분당 750발씩 쏘는 MG-42와 그 후계기종인 MG-34', 그리고 '톰슨 캘리버 45구경 반자동기관총', '팬저여단', '타이거 로열' 등은 2010년판에도 그대로 나온다! 물론 2002년판의 '연료전차'를 '연료탱크'로 고치거나, '철제 십자가'를 '철십자 훈장'으로 고치는 등 일부 나아진 부분도 있긴 하지만 2002년판에서 문제가 되었던 부분 몇 군데만 골라 부분 검수해본 결과 고쳐지지 않은 번역오류들이 더욱 많은 것 같다.
2002년 이래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을 시간이 무려 8년이나 있었다. 정 번역자 개인의 능력으로 해결이 안 되었다면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릴 시간도 충분했을 터이다. 아무리 출판계가 어렵다지만 정말 이래도 되나?
리뷰를 쓰고 나니 누가 '친구 없는 오타쿠'라고 하는데...
이 책의 번역은 군사적인 지식 및 전문용어 번역을 차치하고서라도 충분히 졸역이다.
필자가 서문 1페이지를 리뷰한 내용을 아래에 올릴 테니 읽고 판단하시라.
밴드 오브 브라더스 번역 비평
이 글은 한국어판 <밴드 오브 브라더스>(스티븐 앰브로스 지음, 신기수 옮김, 코리아하우스 2010년 출간)의 번역 품질을 비평하기 위해 작성된 글이며, 원문 관련 각종 사항은 Stephen E. Ambrose, Band of Brothers, Simon & Schuster, 2001을, 번역문 관련 각종 사항은 앞서 말한 한국어 번역서를 기준으로 삼았음을 밝힌다.
*일단 헌사 번역에서부터 문제가 있다.
원문: To all those members of the Parachute Infantry, United States Army, 1941-1945, who were the Purple Heart not as a decoration but as a badge of office.
번역문: 훈장이란 의미를 넘어 참군인의 상징으로 ‘Purple Heart’를 받은 1941년부터 1945년, 미합중국 육군 공수부대원들 모두에게 바칩니다.
비평자 코멘트: office에 언제 참군인이라는 뜻이 있던가? 게다가 ‘1941년부터 1945년’이라는 표현도 대단히 어색하다. 필자라면 약간의 의역을 섞어 이 문장을 이렇게 번역하겠다.
추천 번역문: 1941년부터 1945년 사이에 복무했던 모든 미 합중국 육군 공수부대원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엄청난 희생을 치른 그들에게 전상장은 누구나 갖고 있던 신분증일 뿐, 절대 훈장이 아니었습니다.
*지도에 나오는 지명이 일절 번역되지 않았다. 알아서 보라는 뜻일까?
*원서의 색인(Index)이 번역되지 않았다.
*들어가는 말(Foreword)부터 오역 투성이이다.
원문(13p): They got a lot of attention from visitors, members of board, reporters, TV cameras-the works.
번역문(14p): 그들의 방문은 주위의 관심을 끌었는데,
비평자 코멘트: visitors, members of board, reporters, TV cameras가 일절 번역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They는 the works, 즉 행사를 의미한다.
추천 번역문: 그 행사는 방문객들, 행사 진행위원들, 기자들, TV카메라맨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원문(13p): There were thousands of World War II veterans at the various events-most of all in a two mile long parade where they rode in army trucks, waving to the hundreds of thousands of people lining the streets, may holding signs they said, simply, "Thank you," others holding up the front page of New Orleans Times-Picayune from V-E Day or V-J Day.
번역문(14p): 그곳에서는 수천 명의 참전용사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용사들은 군용트럭을 타고 약 3km에 이르는 퍼레이드를 하였고, 연도에 늘어선 사람들은 뉴 올리언즈 타임즈의 표지를 장식했던 대독전(代獨戰, V-E/Victory Europe)과 대일전(代日戰, V-J/Victory Japan) 승전을 알리는 푯말과 함께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진 판을 들고 환호했다.
비평자 코멘트: 딴 건 그렇다 쳐도, 용어 설명에서 한자 표기 및 해설까지 틀렸다. 원어의 V-E Day 및 V-J Day는 각각 Victory in Europe Day, Victory in Japan Day의 약자이며, 유럽전쟁 승전 기념일, 태평양전쟁 승전 기념일 정도로 번역되어야 옳다. 게다가 대일전 및 대독전의 대는 代가 아니라 對이다.
추천 번역문: 수천 명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들이 다양한 행사를 벌였다. 그들 중 대부분은 군용트럭을 타고 3km가 넘는 행렬을 지어 퍼레이드를 벌이며 거리를 따라 늘어선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구경꾼들 중 많은 사람들은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었다. 유럽전쟁 승전, 또는 태평양전쟁 승전 내용을 담은 뉴 올리언즈 신문 <타임 피카윤> 지의 제1면을 들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원문(13p): It was the biggest military parade-bands, marching units, reenactors, fly overs, and, of course, veterans-since World War II.
번역문(14p): 이는 지금까지 그 어떤 군사행렬보다 큰 규모였으며, 붕대를 감고 당시 군복을 입은 배우들과 커다란 풍선까지 동원되어 장관을 연출했다.
비평자 코멘트: 어떻게 해석하면 ‘bands, marching units, reenactors’가 ‘붕대를 감고 당시 군복을 입은 배우들’로 해석되는 걸까?
추천 번역문: 군악대, 도보부대, 역사 재현가, 축하 비행, 그리고 물론 참전용사들까지 어우러진 이 행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대 규모의 분열식이었다.
원문(13p): When a group of rangers marched by, Tom leaped out of reviewing stand to shake their hands and ask for photographs
번역문(14p): 특히 의 주인공 레인저 부대가 모습을 드러내자 톰 행크스는 사열대를 뛰어내려가 그들에게 악수를 청하고 함께 사진 찍어줄 것을 요청했다.
비평자 코멘트: ‘의 주인공’에 해당되는 말은 원문에 없다.
추천 번역문: 레인저 부대가 행군해 오자 톰은 사열대에서 뛰어내려 그들에게 악수를 청하고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원문(13p): Steven also went up to veterans to ask for auotographs and photographs.
번역문(14p): 스필버그 역시 뒤따랐다.
비평자 코멘트: 스필버그가 레인저 부대원들이 아닌 참전용사들의 사인과 사진을 요구했다는 원문의 내용은 번역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추천 번역문: 스필버그 역시 참전용사들에게 달려가 사인을 해 주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원문(13p): They sent me scripts for each episodes.
번역문(p): (번역하지 않았다)
비평자 코멘트:
추천 번역문: 그들은 내게 각 화의 대본을 보내 주었다.
원문(13p): They paid attention to my comments and suggestions-although I must say that in no way am I a scriptwriter.
번역문(14p): 본인은 비록 그 드라마의 작가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요청에 의해 원고와 주연배우들에 대한 나의 조언을 충분히 반영해 주었다.
비평자 코멘트: 원문과는 지극히 동떨어진 번역문이다.
추천 번역문: 나는 비록 드라마 극본작가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나의 조언과 제언에 귀를 기울였다.
원문(13p): I know how to write books, not how to make a series or a movie.
번역문(p): (번역하지 않았다)
비평자 코멘트:
추천 번역문: 나는 책을 쓰는 방법은 알지만, 드라마나 영화를 만드는 법은 모른다.
원문(13p): They also sent scripts to the leading personalities in the story.
번역문(p): (번역하지 않았다)
비평자 코멘트:
추천 번역문: 그들은 이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들에게도 대본을 보내 주었다.
원문(13p): Even more, the actors began calling the men they were portraying. How did you feel, they would ask, after this or that happened? Did you smile? Were you elated? Were you depressed? And more.
번역문(14~15p): 해당 배우들도 배역을 파악하기 위해 직접 전화를 하며 당시의 상황과 느낌을 물어보기도 했다.
비평자 코멘트: 차와 포를 너무 많이 떼었다! 이 정도면 번역문이 아니라 차라리 요약문이다.
추천 번역문: 더구나, 배우들도 자신이 연기하는 실존 인물들을 찾아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이 벌어진 후에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이 때는 미소를 지으셨나요?” “이 때는 신이 나셨나요?” “우울해 하셨나요?” 등의 것들을 물어 보았다.
원문(13p): I've already told, in the Acknowledgements of this book, how I came to write about Easy Company.
번역문(15p): 내가 어떻게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는가는 이미 책에서 소개하였다.
비평자 코멘트: 역시 차와 포를 너무 많이 떼었다.
추천 번역문: 내가 이지 중대에 대한 책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책의 ‘감사의 말’ 부분에서도 다루고 있다.
원문(13p): Tom and Steven read the book and decided to make a series out of it, but things weren't quite that simple.
번역문(15p): 행크스와 스필버그는 이 책을 읽고 곧바로 드라마 제작을 결정했는데,
비평자 코멘트: but things weren't quite that simple. 부분이 번역되지 않았다.
추천 번역문: 이 책을 읽은 행크스와 스필버그는 이 이야기에 기반한 드라마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간단하게 풀려주지 않았다.
원문(13p): First of all, there are hundreds, indeed thousands, of books on World War II.
번역문(p): (번역하지 않았다)
비평자 코멘트: 이쯤 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추천 번역문: 우선,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책은 수백 권, 아니 수천 권이나 있다.
*총평
원서의 제13페이지, 그러니까 들어가는 말의 첫 페이지 번역에서만 제대로 번역되었다고 볼 수 없는 문장 또는 누락된 문장이 무려 13개나 나왔다. 원서의 제13페이지에 적힌 한 문장으로 볼 수 있는 글 덩어리의 개수는 채 20개가 안 된다. 특히 원문의 내용 누락은 대단히 심각한 수준이다. 원고 첫 부분에서만 이쯤 되면 나머지 부분은 더 볼 필요도 없다는 것이 비평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번역자인 신기수 씨는 2002년에도 박순채 씨와 같은 책을 공역하였으며, 이번 2010년판에는 “...공동번역으로 인한 상이한 문체라든가 이름, 관점 등을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꽤 정리했다. 또한 부끄럽지만 오역부분도 다시 검토하여 수정하였다.(번역서 343p)”라고 했는데, 이게 대체 어디를 봐서 그만큼 고친 원고란 말인가?
리뷰한 부분에는 나오지 않지만 비평자가 스팟 체킹한 결과 각종 군사용어의 오역(9mm탄을 쏘는 MG-42, 톰슨 45구경 캘리바 반자동기관총, 타이거 로열 등...)도 2002년판과 거의 차이가 없던데, 도대체 뭘 믿고 독자들에게 이걸 ‘개역판’으로 봐 달라는 것인가?
지난 2002년판을 보고 어떤 독자가 이런 평을 남겼다. “원서와 드라마에서 느낀 감동은 전혀 느낄 수 없는 번역본”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서문 부분을 비교해 보니 2002년판과 2010년판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한국의 독자들은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진정한 감동을 느낄 기회를 이렇게 박탈당해야 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