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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레드 에디션, 양장) -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ㅣ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백영옥 작가의 책을 오랜만에 읽었다. 7, 8년은 된 것 같다. 그동안 마음 가는대로 책을 읽으며 백영옥 작가랑 멀어져서 그런 작가가 있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다 신간 소식을 보고 '어? 여전히 책을 쓰는구나' 생각했다. 그동안 쓴 책을 쭉 보니 쉬지 않고 쓴 것 같다. 내가 관심 갖지 않았다고 멀쩡하게 열심히 글 쓰고 있는 사람을 백수로 만들 뻔했다.
그때 읽었던 것 소설이었다. 그리고 인터뷰 기사를 몇 개 읽었던 것 같다. 책을 보고 지은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찾아서 읽었겠지. 오랜만에 읽게 된 백영옥 작가의 책은 에세이다. 기본 글빨이 되면 장르가 무엇이든 잘 쓰겠지만 백영옥 작가가 쓴 에세이는 처음이라 어떨까 궁금했다. 오래전이기는 하지만 소설을 읽었을 때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에세이에서도 그런 느낌을 느낄 수 있을까?
이 책은 지은이가 애니메이션 [빨간머리 앤]을 읽고 느낀 걸 쓴 책이다. 에니메이션의 원작인 캐나다의 소설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쓴 [그린 게이블의 앤]을 읽고 쓴 게 아니다. 소설 [그린 게이블의 앤]을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이 각색해 만든 게 50부작 애니메이션 [빨간머리 앤]이니까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각색이란 과정을 거친만큼 지은이가 만나고 느낀 앤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앤이 아니라 다카하다 이사오의 앤이다.
난 [빨강머리 앤]을 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TV로 화면을 본 적은 있는데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무 인상도 없다. 하지만 이 책이 궁금했었다. 여러 사람들이 책에서 [빨강머리 앤]에 대해서 말하는 걸 봤기 때문이다. 대체 앤이 어떻길래, 그 사람들은(기억에 다 여자였던 것 같다) 앤을 그리워하는 걸까? 이 책을 읽으면 공감은 안 돼도 이해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근데 역시 모르겠다. 앤은 어렸을 때 만났어야 하나 보다. 어른이 돼 보니 지은이가 옮겨 놓은 앤의 대사에 자꾸 토씨를 달게 된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다.
책의 재미는 오히려 다른 데 있었다. 이런 게 재밌다. 같은 책을 읽어도 공감하는 부분이 다르니까. 지은이가 지금은 남편이 된, 그때는 남자친구였던 사람과 있었던 일과 지은이 친구의 6살난 딸의 사랑 이야기. 좋아하는 유치원 남자아이가 보고 싶다고 엉엉 울고, 유치원에만 가면 좋아하는 그 남자아이가 하는대로 졸졸 따라하고, 물속에서 그 남자아이의 얼굴을 보는, 사랑할 때의 우리 어른과 다를 것 하나 없는 6살 여자아이의 사랑 이야기가 무엇보다 인상에 남았다. 사랑스럽고 귀엽고. 그 아이는 지금 첫사랑을 하는 걸까?
제목부터가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인데 빨강머리 앤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제일 인상적이라니 지은이가 들으면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대신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의 열혈 시청자로서 앤을 그리워했던 사람들은 열렬히 공감해줄 테니까 나 하나 정도 엉뚱한 데서 재미를 찾아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