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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테라스에 펭귄이 산다 - 마젤란펭귄과 철부지 교사의 우연한 동거
톰 미첼 지음, 박여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기 전에는 당연히 소설인 줄 알았다. 테라스에 펭귄이 산다니. 당연히 소설로 알지. 펭귄은 추운 곳에 사는 거로 아니까. 그러다 프롤로그를 보고 알았다. 이 책 소설이 아니었다. 실화였다. 정말 톰 미첼의 집(정확히 말하면 숙소) 테라스에 펭귄이 살았었다.
영국 출신의 톰 미첼은 우연히 영국의 교육 관련 잡지 [타임스 애듀케이셔널 서플리먼트]에 실린 구인 광고를 보고 어릴적 꿈을 이룬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싶어 아무 연고도 없는 남아메리카로 가고 싶었던 꿈 말이다. 12살 때 남몰래 스페인어 사전을 사서 공부를 시작한 후 10년이 지나 기회가 정말 온 것이다. 아르헨티나 기숙학교 교사 구인 광고를 본 것. 당장 우체국으로 달려갔고 30분 만에 입사지원서를 작성해서 보냈다. 물론 합격. 엄마가 집에서 악어 3마리를 기르기도 했고 시골에서 자라 가축이나 야생 동물을 잘 알았지만 그때만 해도 펭귄과 같이 살게 될지는 몰랐다.
후안 살바도르, 톰 미첼과 같이 살았던 펭귄의 이름이다. 펭귄 중에서도 마젤란 펭귄. 줄무늬펭귄속 펭귄 종인 마젤란펭귄은 남아메리카 남쪽 해안에서 서식한다. 톰 미첼과 후안 살바도르가 만난 곳도 친구의 배려로 휴가를 보내러 간 우루과이 해안의 휴양도시 푼타델에스테이다. 처음 만났을 때 후안 살바도르는 기름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기름을 뒤집어쓰고 죽은 펭귄 수천 마리의 사체가 해안에 가득 쌓여있었는데 딱 한 마리, 후안 살바도르만 살아있었다. 생포하는 것도, 경비의 눈을 피해 몰래 리조트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도, 기름때를 벗겨내는 것도 모두 쉽지는 않았지만 살아있는 펭귄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 아르헨티나로 들어오는 게 제일 곤란했다. 1970년대라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톰 미첼은 처음에는 후안 살바도르의 존재를 숨겼다. 그러다 직원들에게 알리고, 학생들에게 알리고, 멀리 떨어져있는 가족에게까지 알렸다. 직원들은 후안 살바도르를 만나기 위해 맥주를 들고 톰 미첼의 숙소를 찾았고, 아이들은 후안 살바도르에게 짝사랑 상담을 하기도 했다. 국제전화 요금이 어마어마하던 시절, 그래서 국제전화가 오면 무슨 큰일이 있나 걱정하게 되던 시절, 톰 미첼의 어머니는 아들의 생일 축하 전화를 하며 후안 살바도르의 안부를 더 챙겼다. 모든 사람들이 후안 살바도르를 사랑했고 후안 살바도르 역시 모든 사람들을 사랑했다.
동화 같은 이야기라 끝도 동화 같을 줄 알았다. 모든 동화는 '그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니까 톰 미첼과 후안 살바도르의 이야기도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근데 역시 소설이 아니었다. 동화가 아니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날 줄 몰랐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읽었을 때처럼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말았다. 책에 후안 살바도르의 사진이 한 장도 없는 걸 보고 미리 알았어야 했다.
후안 살바도르,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나 책으로 만났지만 반가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