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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는 즐거움 - <걷기예찬> 그 후 10년
다비드 르 브르통 지음, 문신원 옮김 / 북라이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2002년 [걷기예찬]을 쓴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 사회학과 교수, 다비드 르 브르통의 신간이다. '걷기예찬 그 후 10년'이란 꼬리말이 붙은
걸 보니 그당시 상당히 반응이 좋았던 거 같은데 왜 난 안 읽었지? 기억이 없다. 내가 읽은 걷기 책이라고는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쓴 [나는
걷는다]밖에 없다. 그것도 세 권 중에서 한 권밖에 안 읽었다, 이런. 하긴 걷기에 관한 책을 읽을 시간에 걷고 있었을 거다. 4km가 넘는
거리를 아침마다 걸어서 출근하고, 퇴근하고 운동한 다음 6km를 또 걸어서 집에 가던 시기였으니까.
이 책은 책상에 앉아서 읽으면 안 된다. 날씨 좋은 날 가벼운 배낭 하나 들고 나가면서 그 배낭에 챙겨서 가지고 나가 이리저리 걷다 어디
앉을 자리가 보이면 거기 털썩 주저앉아 몇 장 읽거나 갈증을 해소할 겸 카페에 들어가 음료를 주문하고 땀 식히며 읽어야 한다. 걷는 즐거움,
걷기에 대한 책인데 늘 앉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기만 한다면 그게 무슨 재미일까? 요리책 사서 눈으로 보기만 하고 생전 요리를 해보지는 않는
거랑 똑같은 거 아닌가?
139쪽 '느리지만 멈추지 않기'에는 반가운 내용이 나온다. 스위스 출신의 여행 작가 니콜라 부비에와 아내 엘리안느가 제주도에 있는
한라산을 오르며 경험한 내용이 두 쪽에 걸쳐 소개됐는데 난 제주도에 다녀왔으면서도 한라산에는 가지 못했는데 프랑스 사람의 책에서 한라산에 오른
스위스 여행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니 기분이 묘하다. 한라산에 올라가본 사람이라면 139쪽에서 140쪽에 나온 내용이 이해가 될 테니 책이 더
재미있겠다.
분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바탕지식이 많으면 더 재미있는 책이다. 책에 꽤 많은 사람이 나오는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책을
썼으며 하는 것들을 모르고 읽으면 지루하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도 마침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라는 책을 비록 한 권이지만
읽었고, 어떤 책인지 알기 때문에 작가가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이름을 짧게 언급했을 때 바로 이해가 됐지만 만약 몰랐다면 그냥 활자를 읽는
정도밖에 안 됐을 거다.
걷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고 걷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 발바닥이
근질근질해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