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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굿맨
A. J. 카진스키 지음, 허지은 옮김 / 모노클(Monocle)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작가 이름 얼핏 보고 [그리스인 조르바] 작가인 줄 알았다. [그리스인 조르바] 작가 이름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인데 카진스키랑 혼동한 거. 하긴 생뚱맞다고 생각하긴 했다. 겉날개 펼쳐보고 바로 아닌 줄 알았지만. A.J. 카진스키는 필명으로 덴마크 출신의 영화감독 안데르스 뢰노우 클라르룬과 시나리오 작가 야콥 베인리히를 합친 이름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두 사람이 공동으로 집필한 책이란 말씀. 근데 두 사람이 책을 쓰면 어떻게 쓰는 걸까? 자료를 수집하거나 등장 인물들 이름 정하기, 주인공들 성격 창조 및 중심 인물 관계 엮기, 배경 설정, 대략적 줄거리 잡기 같은 건 두 사람이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쓰는 건 어떻게 쓰지?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서 한 사람이 자판 두드리면 나머지 한 사람은 옆에 앉아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나? 아니면 한 챕터씩 맡아서 쓰고 그걸 서로 바꿔서 손질을 하나? 그래서 전체가 완성이 되면 둘이 같이 모여 손을 보던가 각자 손을 봐서 합치나? 모르겠다. 암튼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쓴 책이라 그런지 책을 읽다보면 '아, 이거 영화로 찍으면 장르가 잘 맞겠네' 싶다. 주인공 두 사람(베니스의 형사 토마소와 코펜하겐 경찰국 소속 교섭전문가 닐스)을 중심으로 계속 이야기가 짧게 왔다갔다 하는 구성이라 줄거리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게 교차 편집하면 긴장감이 살 거 같은 느낌이 든다.
분량은 적지 않지만 줄거리는 간단하다. 세계 도처에서 등에 검정색 무늬가 생긴 채 사람들이 죽자 베니스의 형사 토마소는 관심을 갖고 혼자 사건을 수사하고 인터폴을 통해 각국에 경고의 메세지를 전하는데 유일하게 반응을 보인 코펜하겐 경찰국 소속 교섭전문가 닐스가 천체물리학자인 한나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추적한다는 얘기. 유대인의 경전인 [탈무드]에 나오는 36명의 '굿맨'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을 모티브가 됐다. ‘36명의 굿맨이 세상에 나타나 인류를 보호하며 그 36명이 사라지면 세상은 멸망할 것이고 36명의 굿맨은 자신이 선택된 사실을 알지 못한다'라는 게 [탈무드]의 '굿맨' 이야기다. 시작은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시간적 배경이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와 겹치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부부 이름을 비롯해 미국대통령 전용기인 에어 포스 원 같은 게 나오기 때문에 마치 지금 이 시대에 어딘가에서 진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진다.
'2011 덴마크 범죄 아카데미 지정 최고의 데뷔 소설상'과 '2011 프랑스 를레 문학상Prix Relay'을 수상한 책이라는데 그래서 그런가 640쪽이나 되는 장편소설이 술술술 넘어간다. 물론 주제의 무게에 비해 이야기 전개는 얕다는 점,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의 굿맨이 살아남는 방법이 너무 엉성해서 용두사미가 된 점, 아주 무겁게 내용을 전개하거나 아니면 아예 살짝 환타지 같은 느낌으로 신비하게 전개하는 게 장르가 분명했을 거 같은데 물타기를 한 것처럼 어중간하게 장르를 설정한 점 같은 건 아쉽다. 아마 영화로 만든다면 딱히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와!" 감탄이 나올 정도도 아닌 범작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책 그대로만 풀어낸다면. 그래도 번역은 특별히 눈에 거슬리는 점이 없어 읽기 편했다. 번역서 읽다 보면 번역이 눈에 걸려서 진도가 잘 안 나가는 책들도 많은데. 더울 땐 이런 책 하나 붙들고 꼼짝 안 하고 있으면 더운 줄도 모르고 좋긴 하다. 그래서 여름에 추리소설을 읽으면 딱이라는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