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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 나의 친구, 나의 투정꾼, 한 번도 스스로를 위해 면류관을 쓰지 않은 나의 엄마에게
이충걸 지음 / 예담 / 2013년 4월
평점 :
01.
책 표지가 참 마음에 들었다. 너무 맑지도, 너무 푸르지도, 너무 시리지도 않은 물색. 깊고 깊은 바닷속도 아니고, 얕고 얕은 개울물도 아니고 중간 어디쯤 될 거 같은 물색. 어딘지 모르게 아련한 물색이었다. 거의 모든 책에 들어가는 띠지도 없고, 요란한 홍보문구도 없고, 작가 사진도 없이 책 제목과 작가 이름, 그리고 세 줄의 글. 물색이 마음에 들어 표지를 손으로 쓰다듬어 봤다. 물색이 손에 물들기라도 할 것처럼.
02.
오래전 우연히 GQ 편집장 이충걸 씨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글을 참 잘 썼길래 글을 쓴 이의 이름을 기억해뒀었다. GQ Korea 편집장 이충걸. 잡지 에디터라는 사람들 특유의 글투를 썩 좋아하지 않는데 그런 특유의 글투가 없어 좋았다. 할 말만 간결하게 멋 부리지 않고 쓴 글이 좋았다. 그 뒤에도 같은 사람이 쓴 글을 몇 편 더 읽었고 그때마다 '이 사람 글 잘 쓰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갖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 인생을 위하여]를 읽고 싶은 책 목록 위에 올려뒀었다. 근데 이 책을 읽고 마음이 변했다. 어쩌면 그 책을 안 읽게 될지도 모르겠다. '할 말만 간결하게 너무 멋 부리지 않고' 쓴 글이 좋았는데 글투가 바뀌었다. 살짝 당황스러웠다.
03.
이번 책은 2002년에 쓴 [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는 책의 개정증보판이다. 그 책에서 딱 한 장(章)만 빼고 다 실었고, 추가된 열 몇 편은 그 후의 이야기라고 한다(그러니 [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를 읽은 사람이라면 덧붙여진 열 몇 편의 이야기만 더 읽으면 된다는 말씀). 막내로 엄마와 둘이 살며 보고, 듣고, 느끼고, 부대낀 엄마에 대한 이야기들을 가득 담은 에세이인데 에세이라기보다는 '엄마'를 소재로 쓴 소설 같은 느낌이었다. 그다지 극적인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에세이라기엔 어딘지 이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유가 뭘까?
글에 참 꾸밈이 많다. 내 기준에서는 너무 많다. 비유가 너무 많아 글이 하나의 흐름으로 읽히지 않고 문장으로 끊긴다. 공감이 되지 않는 비유가 흘러넘쳐 '이게 뭔 뜻일까?' 생각하느라 글은 계속 끊겼다. 글이란 다 어느 정도는 글을 쓴 사람의 배설의 수단이긴 하지만 그래도 좀 심했다 싶다.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 피곤한 게 아니다. 너무 수다스러운 글을 읽는 것도 비슷하게 피곤하다. 아, 내가 너무 오랜만에 이 사람 글을 읽은 건가?
'집에 둘이 있을 때 우리는 은으로 만든 껍질 속에 파묻혀 있다. 곧 엄마와 나를 위한 궁형이 생기고, 그 아래에서 둘만을 위한 식사를 한다(45쪽)'
이런 문장이 좋은 사람이거나 무조건적인 작가의 팬이거나 색다른 비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작가의 이번 책이 반가울 거 같다. 하지만 나처럼 수다스러운 책은 질색이라면 읽기 전에 집에 진통제가 있는지부터 확인하길. 읽다가 머리가 지끈지끈해질 수도 있다. 아- 간만의 두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