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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엔 뭐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이선배 지음 / 지식채널 / 2013년 2월
평점 :
01. 제목을 잘 지었다.
가끔 책 제목을 보면서 '제목 잘 지었다' 싶을 때가 있다. 책 제목은 아니지만 일 때문에 제목을 뽑아봤던 적이 있는데 이게 쉽지가 않다. 다 어디서 본 거 같은 흔하디 흔한 제목이 나오는 게, 제목만 보면 딱 3류 에로영화처럼 제목이 나와버린다. 사람마다 책 제목 잘 지었다 싶은 기준은 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론 누구나 한 번쯤 했을 법한 마음을 콕 집어낸 제목을 좋아하는데 이 책이 그렇다. 20대에 막연히 서른을 생각하며 '아... 그래도 서른이 되면 뭔가는 이룬 상태겠지' 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하지만 막상 서른이 되면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서 '이건 뭐야'란 마음이 되는데 [서른엔 뭐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제목에 그 마음이 다 담겨있다. 그래, 이 책 쓴 작가 서른 넘긴 사람인 거 안 봐도 알겠다.
02. 책이 예쁘다.
일단 책이 손에 들어오면 꼼꼼히 보는 편이다. 제목, 앞표지, 뒤표지, 띠지, 앞날개, 속날개, 작가 이력, 번역가 이력, 프롤로그, 에필로그, 목차까지 하나도 안 빼고 읽는다. 활자중독증 환자도 아니면서.
이 책도 보자마자 때깔부터 살폈다. 다홍색이라고 해야 하나? 빨간색이라고 하기엔 주황색에 가까운 표지, 만지면 손으로 느껴지는 표지의 촉감, 살짝 고풍스런 느낌이 드는 제목의 글자체, 얇은 띠지. 띠지와 책 중간중간 가득한 일러스트. 내용과 딱히 연관은 없어 보이지만 색연필로 그려낸 홍시아 씨의 일러스트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예뻐 눈에 담았다. 나도 색연필이 있는데 따라서 그려볼까? 이런 일러스트는 그리는 사람도 그리면서 행복하겠다 같은 생각을 했다.
03. 그리고 서른이 지난 작가가 건네는 말
아는 어떤 이는 서른을 한 달 앞둔 스물 아홉의 12월 한 달 내내 술을 마셨다고 했다. 또 다른 이는 스물 아홉의 12월 한 달 내내 울었다고도 했다. 여자도 있었고, 남자도 있었다. 그런데 서른을 맞으며 엄청난 몸살을 앓았다고 했다. 그 얘기를 해줬을 때 여자도, 남자도 이미 서론을 몇 년 넘긴 뒤였는데 그때 그들의 표정은 너무나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스물 아홉에서 서른이 될 때는 그렇게 힘들었는데 막상 서른이 되고 보니 딱히 달라진 것도 없고, 대단한 것도 없더라고 했다.
작가 역시 서른을 이미 예전에 겪은 사람이다(작가의 정확한 나이는 모른다. 서른 넷에 결혼을 했고, 결혼한 지 만 6년차가 됐다는 내용으로 나이를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그런가 이제 서른을 맞이하는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지금 작가의 목소리는 안정적이다. 이미 겪어본 이, 잘 넘긴 이의 담담함 같은 게 느껴진다. 몇 살 위 언니처럼 조근조근 '나도 그땐 그랬어. 그랬는데 살아보니 그렇더라. 내 주변의 누구누구는 이랬고, 누구누구는 이랬고, 나는 이랬는데 지금은 이래'라고 말을 걸어온다. 괜찮다고 다독일 때도 있고, 그건 그러면 안 된다고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막상 서른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괜히 바쁘고, 엉켜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말을 들을 여유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조용히 앉아, 마음 다독이고, 다정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소란스러움이 가라앉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론 행복에 대한 이야기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좋았다. 사람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똑같은 책을 봐도 마음에 닿는 부분이 다른 법인데 왜 나는 지금 행복에 대한 이야기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은 걸까? 모르겠다.
어쩌면 그 친구는 다른 이의 행복이 나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잠시 착각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62쪽, '행복이란 건 말야, 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