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 고기를 굽기 전, 우리가 꼭 생각해봐야 할 철학적 질문들
최훈 지음 / 사월의책 / 2012년 12월
평점 :
작가 최 훈은 교수다. 책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철학을 전공했고 현재 강원대학교에서 인문사회과학대학교 교양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고기를 먹던 작가가 반쪽짜리나마 채식주의자가 된 것은 철학자인 피터 싱어에 대한 책을 쓰면서였다고 한다. 출판사 김영사에서 사상가들을 두 명씩 묶어 비교하는 방식으로 사상을 소개하는 '지식인 마을' 시리즈를 기획한 적이 있는데 [데카르트&버클리: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에 이어 [벤담&싱어: 매사에 공평하라]를 쓰게 되면서 공리주의 철학자인 두 사람을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물에 대한 윤리적 대우에 대해서도 쓸 수밖에 없었고, 자신의 고기 먹는 행위에 대해 심각하게 따져보게 됐다는 것이다. '습관을 따를 것인가, 앎을 따를 것인가' 고민하다 '앎을 따른 것'인 셈이다. 소크라테스가 그랬단다. 의지와 실천이 없는 지식은 진짜 지식이 아니라고.
철학자인 작가는 이 책에서 채식주의 필요성을 오로지 윤리적 기준에서 풀어간다. 종교적 이유에서 채식을 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채식을 하거나, 환경을 위해서 채식을 하거나, 고기가 입맛에 맞지 않아 채식을 하거나, 동물이 불쌍해서 하는 채식은 작가가 보기엔 '채식주의'가 아니다. 채식은 맞겠지만 '채식주의자'라고 보긴 어렵다는 거다. 윤리란 개인적인 믿음이나 취향에 토대를 두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이성을 가지고 사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근거에 바탕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철학자가 윤리적 당위성만 갖고 채식의 필요성을 풀어낸 책이라 자칫 재미없지 않을까? 딱딱하지 않을까? 어렵지 않을까? 걱정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350쪽 좀 안 되는 책이 술술 넘어갈 만큼 쉽고, 재미있다. 채식주의자가 된 사연, 채식주의자로서 살면서 사회생활하며 부딪힐 수 있는 문제와 편견, 그에 대한 개인적 대처 방법을 비롯해 채식의 단계, 공장식 사육 방법에 대한 고발 등을 차례대로 읽을 수 있다. 책 뒤에는 작가가 참고한 문헌 목록도 실었으니 좀 더 깊이 있게 알고 싶은 사람은 목록을 참고해 책을 읽어도 좋을 거 같다.
중간중간 '교수님, 이건 좀 무리에요'라는 부분도 살짝 있긴 하지만 채식주의자로서 이론적 토대를 갖추고 싶은 사람,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왜 사람들이 채식을 하는지 알고 싶은 사람, 채식에 관심은 없지만 너무 어렵지 않은 사회과학 책을 읽고 싶은 사람 모두 읽기 무리 없는 책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윤리적일 수 없기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채식주의자가 될 순 없지만 이런 책을 통해 다양성이 인정받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다.
참, 책 표지 그림에 나온 사람은 작가의 모습을 딴 건데 책 앞날개에 있는 작가 사진이랑 너무 똑같아서 보고 웃음이 빵 터졌었다. 얼마나 닮았는지 궁금하신 분은 꼭 책의 앞날개를 펼쳐 앞표지의 그림과 비교해 보시길. 이렇게 닮기도 힘들 만큼 닮았다.